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6화
“검의 무덤이라뇨?”
나는 아엔이 한 말에 주목하며 그에게 물었다. 그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이며 답했다.
“이곳은 마검을 봉인하기 위해 만든 감옥이었습니다. 그리고, 한솔 씨가 본 그 괴물이 바로 마검이지요.”
나는 약간 충격을 받았다. 아니, 검이라며?
“검이 아니라, 사람…… 비슷한 거던데요?”
“겉으로는 그렇게 보일 겁니다. 하지만 그 본질은 마검입니다.”
“네……?”
나는 아엔의 말을 이해해 보려고 애썼다. 하지만 그런 타입의 몬스터는 전혀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여전히 그의 말을 신뢰할 수 없었다.
아니, 뜬금없이 사람 모양을 한 마검이라니……. 그럼 결국엔 마‘검’이 아니잖아?
심지어 나는 한차례 마검의 본모습을 본 뒤에 이쪽으로 넘어온 것이었기 때문에 그의 말이 더더욱 이해되지 않았다.
그건 분명 검의 모습이었고, 이후 돌변해 나를 공격할 때도 사람 같은 느낌은 전혀 아니었기 때문이다. 몬스터를 만난 양 검은 어둠에 질식할 것 같기만 했는데…….
“하지만…….”
“혼란스러우신 것, 이해합니다. 저희도 처음에는 어떻게 된 일인지 전혀 알 수 없었거든요. 다만 말씀드릴 수 있는 것은, 현재 검이 두 개로 나누어진 상태라는 겁니다.”
“검이 나누어졌다고요?”
“네. 지금 이곳에 있는 건 검의 ‘육신’. 즉, 검의 뼈대가 사람의 모습을 한 것이고 검의 ‘정신’은 아마도…… 한솔 씨가 건드린 게 아닐까 싶습니다.”
“……검의 정신이라니.”
망연히 중얼거리는 내게 아엔은 이 마검에 얽힌 이야기를 조금씩 늘어놓기 시작했다.
“마검은 봉인된 이후부터 계속해서 틈을 노렸습니다. 이 시설의 관리자들을 지배하려 하기도 해서, 하마터면 저희는 실패할 뻔했죠. 다행히 큰 희생이 있었으나 마검을 다시 봉인할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러던 중, 마검을 봉인할 때 일어난 충격으로 검신에 작게 금이 갔다고 한다. 그리고 그 부분은 어느 날부턴가 점점 더 크게 벌어지기 시작했다고.
“처음엔 마검의 힘이 다해 부서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아니었어요. 마검의 검신 속에 정신을 묶어 두는 주문이 새겨진 부분이 있는데, 그것이 파손된 것이었죠.”
그리하여 마검은 놀랍게도 자신의 몸. 즉, 검신을 이용하지 않고도 검을 쥐지 않은 사람을 지배하는 데 성공했다고 했다.
물론 검신을 손에 쥐었을 때처럼 강력한 통제력을 발휘하는 건 아니었지만, 정신만으로 사람의 몸에 기생해 세상 밖으로 나오는 것이 가능해진 것이다.
“……그럼, 마검의 정신이 현재 어디로 갔는지는 알 수 없는 건가요?”
“네. 이후, 만약 그렇게 사라져 버렸다면 영영 알 수 없었을 겁니다. 하지만 마검의 분리된 정신은 자신의 육체. 즉, 검신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했죠.”
마검의 정신은 검신을 오래 떠나 있을수록 서서히 흩어진다고 한다.
그렇다 보니 검의 정신은 다시 검신을 향해 접근해 올 수밖에 없었으며, 정신력이 약한 사람들을 조종해서 이곳으로 돌아오기를 반복한 것이다.
“그럼 제가 본 마검은…… 진짜 마검이 아닌 거네요?”
“네. 이곳에 있는 마검이 진짜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의문이 들었다. 내가 보기에 아까 본 마검의 검신은 전혀 ‘검’의 형태가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럼, 정신을 잃은 검신이 왜 어린 소년의 모습을 하고 있는 거죠?”
내 질문에 아엔은 기다렸다는 듯이 대답했다.
“설명해 드릴 수 있습니다. 다만, 한솔 님은 이런 이야기를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으신 것 같아서…… 제가 마검에 대해 간략히 이야기해 드려도 될까요?”
나는 그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좋죠.”
“그럼 마검이 정확히 무엇인지, 그리고 마검을 쥐었음에도 기적적으로 생존한 사람의 기록을 먼저 이야기해 드려야 할 것 같군요.”
“생존자요?”
“네. 보통 마검의 주인들은 마검을 노리는 사냥꾼들에게 살해당하거나, 더 수준이 높은 검사 혹은 토벌대에게 죽임을 당하곤 하죠.”
“아…….”
“그리고 설령 외부의 공격에서 살아남는다 해도 마검에게 정기가 다 빨려서 결국엔 죽습니다.”
즉 마검이란 검을 쥐는 것만으로도 생명력이 빨려 들어가고, 자아를 잃으며, 마검의 사악한 명령으로 주변을 학살하기 때문에 ‘마검’이라 불리는 것이었다.
나는 그 말을 듣고 식은땀을 흘렸다. 마검을 봉인한다는 건 내 생각보다 훨씬 위험한 일이었던 것이다.
질린 내 표정을 보며 아엔은 처음으로 희미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어떻습니까. 마검 같은 것은 스치기도 싫겠죠?”
“다, 당연하죠?”
“그럼에도 뛰어난 검사들이 마검에 홀리게 되는 이유가 궁금하지 않나요?”
“아…… 네. 왜 그런 거죠?”
“저희도 처음엔 그 이유를 잘 몰랐습니다. 왜냐면 이유를 알기 위해선 일단 마검에 홀린 사람의 신병을 어떻게든 확보해서 심문하거나 조사를 해야 하는데, 대부분 그전에 죽어 버렸으니까요.”
“…….”
“그렇다 보니 어렴풋이 마검에게 사람을 미치게 만드는 뭔가가 있다고만 여기고 있었죠.”
아엔은 그렇게 말하면서 턱을 쓰다듬었다.
“그러다 기적적으로 단 한 명의 생존자를 확보하게 되었습니다.”
“생존자요?”
“네. 강인한 검사였고, 토벌대나 사냥꾼들에게 당하지도 않았지만…… 그럼에도 결국 팔이 잘려서 마검에게 먹히지 않은 남자가 한 명 있었거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왠지 모르게 오른팔 아래가 오싹하게 느껴졌다. 하지만 아엔은 그런 내 표정엔 아랑곳하지 않고 말을 이어 나갔다.
“그 사람의 말에 따르면 자신이 마검에 홀린 이유는 마검을 쥐기 전, 오래전에 돌아가신 아버지의 모습이 나타났다고 하더군요.”
“환각인가요?”
“비슷합니다. 그리고 본인이 마검을 쥔 이후의 기억이 전혀 없어요. 끔찍한 살인을 저질렀다는 말에 충격을 받더군요. 참고로 그 사람은 일곱 곳의 마을에서 어린아이까지 남김없이 도륙한 잔인한 살인마였습니다.”
“…….”
“아무튼, 마검을 쥐고도 살아남았던 유일한 생존자인지라 마검을 쥐었던 모두가 같은 일을 겪었다고 확신할 수는 없지만……. 검이 모습을 변화시키는 것은 사실입니다. 저희도 한번 겪어 봤고요.”
나는 그 말을 듣고 나서 생각에 잠겼다. 하지만, 의문은 가시지 않았다.
‘……나는 돌아가신 아버지라거나 내가 그리워할 만한 모습으로 나타난 게 아니었는데?’
난생처음 보는 소년의 모습이라 딱히 마검을 향한 강력한 충동을 느끼지도 못했다.
그때, 아엔이 말했다.
“그런데 현재는 예상치 못한 일이 일어난 상태입니다.”
“예상치 못한 일이요?”
“마검의 자아가 사라지고 나서, 홀로 남은 검신에 아주 천천히 변화가 일어났거든요.”
아엔은 그렇게 말하면서 나에게 손짓했다. 나는 그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아엔이 비켜선 벽에 시선을 고정했다.
우웅―.
거기에는 반토막 난 검이 쇠사슬에 묶여 있었다. 그 검은 새까만 아우라를 은은하게 내뿜고 있었는데, 이 때문인지 검이 계속 울렁거리는 것처럼 보였다. 꼭, 진동하는 것 같다고 할까.
그리고 놀랍게도 부서진 검신 끝은 먼지처럼 회색의 재가 날리고 있었다. 마치, 검이 본래 잿더미로 만들어진 양 말이다.
세기말에나 나올 법한 외형에 질려 버린 나는, 손가락으로 그것을 가리키며 물었다.
“이게…… 마검의 본모습인가요?”
“맞습니다.”
자세히 보니 쇠사슬에는 낡은 종이 같은 것이 고리마다 붙어 있었는데, 감옥에서 봤던 부적들과 비슷한 색의 종이들이었다.
‘저 부적이 그럼 봉인지겠지? 아마도, 아이템일 거고…….’
“그럼, 아까 본 그 남자아이 형태는……?”
“저희가 추측하기로는 제2의 정신이 아닐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2의 정신이요?”
“네.”
아엔은 아직 이해하지 못한 나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정신을 잃은 마검의 검신이 빈자리를 메꾸기 위해 새로운 자아를 만들어 낸 것 같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내가 봤던 검의 부러진 끝부분을 다시 가리켰다.
“저 소년의 모습이 나타나면서부터 검이 다시 복원되고 있거든요.”
“……그게 무슨 뜻이에요?”
“검의 길이가 지난달보다 약 2센티미터 정도 늘어났습니다.”
마치 살아 있는 생물 같다며 아엔은 인상을 찌푸렸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