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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화 (56/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5화

옷을 손에 쥔 채 손이 닿지 않을 만큼 창살에 다가서자, 괴물은 팔짝 뛰면서 좋아했다. 

나는 손을 벌벌 떨면서도 조심스레 옷을 내밀었는데, 괴물은 내 옷을 마구 끌어당기면서도 옷보다는 가까이 다가온 내게 열렬히 반응했다. 

이게 함정인지, 아니면 여기서 나갈 수 있는 다른 단서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일단은 가만히 서 있었다. 

“으응! 끄응…….”

그렇게 아슬아슬한 거리에 서 있자, 놈은 아쉬운 듯 계속 낑낑거렸다. 그러다가 갑자기 창살에 온몸을 부딪쳐 오기도 했다.

쾅―!

“살려 줘! 살려 줘!”

이상한 소리를 하면서 말이다.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 뒤로 물러섰지만, 괴물은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계속 몸을 부딪쳐 왔다.

쾅―! 쾅―!

창살에서 가루가 부스스 떨어져 내렸다. 하지만 소년이 워낙 말라비틀어진 탓에 창살이 휘거나 떨어져 나가진 않았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면서 고민에 휩싸였다.

‘……이용할 수 있나?’

어차피 이곳에 계속 갇혀 있어 봤자 언젠가는 죽고 말 것이다. 여긴 먹을 것은커녕 물조차 없으니까.

나는 이미 배가 너무 고팠고, 피곤했으며, 점점 지치고 있었다. 그래서…… 처음으로 창살 밖을 향해 손을 내밀었다. 그러곤 괴물의 겉가죽을 스치듯 만졌다. 

“헥헥헥!”

그러자 괴물은 그 접촉이 마치 전기 충격이라도 된 듯 몸을 부르르 떨었다. 창살에 몸을 던지는 짓도 그만뒀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방금 내가 손을 뻗었던 창살 틈 사이로 들어가지도 않는 얼굴을 내밀었을 뿐이다. 

나는 놈의 뾰족한 송곳니가 신경 쓰였지만, 별수가 없었기에 다시 손을 내밀었다. 그리고 쓱쓱, 거칠거칠한 얼굴을 만지자마자 놈은 온순하게 눈을 감았다. 

다행히 놈은 나를 물어뜯지 않았다. 역시 내가 저를 쓰다듬어 주길 바란 게 분명했다.

‘미친…….’

놈이 내게 이러는 이유가 대체 뭘까.

피를 핥던 모습과 지금 모습의 괴리가 커서 놈이 몹시 징그럽게 느껴졌지만, 이 점을 이용해 여기서 구조되는 것이 먼저였기 때문에 얼굴을 쓰다듬는 것을 멈추진 않았다. 

괴물은 이제, 마치 극락이라도 체험하는 듯한 표정을 지으며 얌전히 내게 제 얼굴을 맡기고 있었다. 울컥해서 그대로 눈을 찔러 버릴까도 고민했으나, 그 뒤 마땅한 계획이 없는지라 공격하고 싶은 충동을 가까스로 참아 냈다.

“……넌, 대체 정체가 뭐야?”

그러면서 푸념하듯 중얼거렸더니, 왜 안 만져 주냐는 듯 항의하는 목울음 소리가 되돌아왔다.

“으르릉…….”

그때였다. 

갑자기 놈이 입을 벌리더니 내 손가락을 핥은 것이다. 나는 그 징그러운 감각에 몹시 놀라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뒤로 물러났다. 

“아파!”

“뭐가 아파, 야! 이 미친놈아!”

하지만 놈은 뭐가 문제냐는 듯 내게 항의하는 것처럼 아무 말이나 외치며 계속 저를 쓰다듬어 달라고 시위하기 시작했다.

나는 다시 손을 내밀었지만, 놈이 또 핥으려고 들기에 입술을 강하게 때렸다.

“가만히 있어! 네가 무슨 개야?”

“끄응…….”

“…….”

현타가 와서 멍청히 서 있다가, 놈을 살짝 때렸다. 강아지를 혼내듯 가볍게 말이다.

놈은 얌전히 내게 맞아 주면서도 손길을 기다렸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이 새끼가 나를 공격하지는 않을 거란 예감이 들었다.

“……일단, 여기서 나가야 해.”

나는 놈의 볼을 꼬집으면서 중얼거렸다. 잡히는 거라곤 거죽뿐이었으나, 그냥 개…… 라고 생각하니 마음은 한결 편해졌다.

“근데, 이 새끼 힘으로도 이건 안 열리잖아?”

나는 창살을 툭툭 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괴물은 나를 따라 하듯 양손으로 창살을 잡고 흔들었다.

“열쇠…….”

“뭐?”

“열쇠!”

그런데 내 중얼거림을 들었는지, 괴물은 열쇠 구멍을 손톱으로 긁던 중 또박또박하게 말했다. 나는 놈이 뭔가 알고 있다고 생각해, 흥분하며 되물었다.

“너,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알아?”

“응?”

“……아니, 열쇠라며. 열쇠!”

“열쇠!”

“그러니까, 여기 열 수 있는 열쇠가 어디 있는지 아냐고.”

“응?”

하지만 문제는 말이 안 통한다는 것이다. 놈은 분명 무시무시한 힘을 가지긴 했으나 하는 짓은 앵무새와 다름없었다.

“철컥철컥, 몰라?”

“몰라?”

“……됐어.”

하지만 놈이 ‘열쇠’라는 단어를 어디서 배웠을까? 사람들이 하는 말을 듣고 따라 한 게 아닐까? 그런 생각이 들자, 열쇠가 존재할 거란 생각이 들기 시작했다.

‘그러고 보니 얘랑 싸웠던 사람들…… 그 사람들도 자유롭게 왔다 갔다 했잖아? 그 사람들한테 혹시 열쇠가 있는 거 아닐까?’

“……하아.”

첩첩산중이었다. 아까 불렀을 때 대답도 안 했고, 내 쪽에서는 움직임이 보이지 않는다. 저쪽에서 먼저 접근하는 게 아니면 사실상 내가 그들을 만날 방법은 없는 것이다.

그런데 고민에 빠져 있던 와중, 뜻밖에도 그들이 내게 먼저 연락해 왔다.

퉁―!

괴물 놈이 내게 실컷 쓰다듬을 받은 뒤, 어디론가 어슬렁거리며 사라졌을 때였다. 

나는 밀려오는 배고픔과 목마름에 지쳐 무릎 사이에 얼굴을 파묻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창살이 울리는 듯한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눈을 떴더니 거기엔 화살과 함께 화살에 묶인 작은 주머니가 놓여 있었다.

“……!”

나는 주머니를 끌렀고, 그 안엔 녹슨 열쇠가 하나 들어 있었다. 

열쇠를 보자마자 나는 그것이 무엇인지 깨달았다. 나는 떨리는 손으로 열쇠를 들고 창살로 다가갔다.

철컥.

나는 끼이익, 열리는 문을 조심스럽게 바라보다가 곧장 뛰쳐나왔다. 

“허억, 허억…….”

“여깁니다.”

동시에 유령 같은 속삭임을 들었다. 

황급히 고개를 뒤로 돌리자, 얼굴을 붕대로 칭칭 감은 사람들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그들을 향해 조심스럽게 다가갔다.

“……당신들은.”

“일단, 여기서 벗어나도록 하죠. 그 미친 괴물이 언제 다시 올지 모르니.”

“……좋습니다.”

나는 그들의 권유에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괴물의 주의를 끌지 않도록 충분히 조심하면서 조용조용 따라갔다.

“드세요.”

“가, 감사합니다.”

마치 앞뒤로 포위되듯 걸어갔는데, 다행히 내 곁에 선 어떤 여자분이 내게 물주머니를 건네주셨다. 나는 드디어 타는 듯한 목에 물을 축일 수 있게 되었다.

“이쪽으로.”

무리는 자연스럽게 나를 앞뒤로 포위했는데, 나는 그 움직임을 눈치챘지만 아무런 행동도 취하지 않았다. 사실, 그들이 해코지하려고 했으면 진작 했을 거라는 생각도 들었고 말이다.

‘저들도 나한테 원하는 게 있으니까, 이렇게 구는 거겠지.’

나는 애써 초조해지지 않으려고 노력하며 그들의 뒤를 조심스레 따랐다. 

그렇게 한참 어두운 복도를 따라 걸었을 때, 거대한 문이 나왔다. 문 앞에는 부적 같은 종이들이 붙어 있었는데, 그 문에는 동그란 핸들이 달려 있었다.

리더로 보이는 남자가 그것을 힘겹게 돌리며 문을 열었다.

구구궁―.

문은 녹슨 소리를 내며 천천히 벌어졌다. 

안내를 따라 안으로 들어서자, 내부는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컸다. 특히 방의 중간에는 큰 호수 같은 것이 있었고, 천장은 뻥 뚫려 있었다.

“……!”

내가 그것을 보며 눈을 크게 뜬 사이, 철문이 다시 닫히는 소리가 들렸다. 

뒤를 돌아보자, 이제 사람들은 완전히 나를 둘러싼 채 쳐다봤다. 그 시선에 약간 긴장했는데, 나를 데리고 온 리더는 마치 힘을 풀라는 듯 내 어깨를 툭툭 두드리며 손을 내밀었다.

“아엔이라고 합니다.”

“……저는 한솔입니다.”

“특이한 이름이군요. 멀리서 오신 분 같네요.”

“…….”

마땅히 대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아 침묵하자 아엔은 손을 내저었다. 딱히 대답을 바라는 말이 아니라는 뜻 같았다.

그러나 그 뒤, 아엔은 거침없이 말했다.

“그럼, 한솔 씨.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네? 아…… 네.”

“혹시, 마검을 아십니까?”

나는 그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아엔은 내 반응을 보곤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마검 때문에 여기에 오게 된 것이군요.”

나는 그에게 서둘러 물었다.

“마검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저는 갑자기 여기로 오게 된 거라…….”

“잘 알다마다요. 저는, 아니, 저희는 마검을 봉인하기 위해 바로 이곳, ‘검의 무덤’을 만들었는걸요.”

아엔은 그렇게 말하며 파란 눈을 빛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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