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4화 (55/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4화

“꺼져! 꺼지라고!”

나는 소년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먹힐지는 모르겠으나 조금이라도 겁을 먹고 내게서 물러나 줬으면 하는 바람으로 말이다.

하지만 소년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쳐다볼 뿐, 그 자리에서 계속 버텼다.

‘이대로 계속 여기 서 있다가, 뭔가 틈이 보이면 날 공격할 생각인 건가?’

꼭 우리에 갇힌 사자를 보는 기분이라고 할까. 하지만 소년은 철장 안으로의 침입은 더 시도하지 않았다. 

나는 가만히 선 채로 내 움직임에 따라 움직이는 시선을 애써 무시하며 일단 놈을 훑어봤다. 어쨌든 이 괴상한 공간에 놈과 나, 둘뿐이니 말이다. 저 새끼를 잘 파악해 둬야 목숨을 구할 수 있을 테니까.

“우이! 워이!”

하지만 놈은 내가 저를 훑자마자 괴상한 소리를 내면서 다시 뭔가를 말하려 했다.

나는 놈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가까이서 본 놈의 눈동자는 인간의 것 같지 않게 노랗고, 동공은 세로로 쪼개져 있었다.

‘……진짜 괴물이야. 그럼, 여긴 저쪽인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저쪽으로 넘어오게 된 건가?’

그러던 중, 또 다른 신체적 특징을 발견했다. 앙상하게 마른 놈의 가슴 중간에 ‘5’라는 숫자가 작게 적혀 있었던 것이다. 

마치 문신과도 같은 그것은 묘하게 꿈틀거리면서 내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리고 그 아래, 인간의 몸에선 찾아볼 수 없는 미세한 금도 발견했다.

‘저건 대체 무슨 생명체지?’

잠시 의아하게 여길 때였다. 나는 시선을 더 아래로 내리다가 놈의 손톱을 발견했다. 손톱은 뿌리까지 검고 끝이 뾰족했는데, 무척 무섭고 기괴해 보였다.

끼기긱, 끼긱.

“으윽!”

내 시선이 손톱에 닿자, 놈은 그것을 쇠창살에 대고 긁음으로써 끔찍한 소음을 만들어 냈다. 

나는 귀를 감싸고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소년은 내가 뒤로 물러서자 붙잡고 싶은 것처럼 다시 창살 안으로 손을 내밀었다. 

철컹하는 소리와 함께 저지당하자 기분이 나쁜 듯 미간을 찡그리는 게 바보스러웠지만, 한편으로는 징그러웠다.

그때였다.

휘이익―! 갑자기 창살 밖에서 공기가 갈라지는 날카로운 소음이 들려왔다. 소년은 그 소리에 아주 기민하게 반응하며 뒤를 돌았다.

푹―!

소년의 고개가 비켜진 만큼, 창살의 틈으로 화살 한 대가 날아들어 박혔다. 

“죽어라! 이 괴물아!”

그리고 분명한 사람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반색하며 화살이 날아온 방향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소년의 몸에 가려, 상대가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으르르르…….”

소년은 목울대로 으르렁거리더니 곧 그 무시무시한 점프를 활용해 시야에서 사라졌다. 나는 주춤거리면서 창살 가까이 다가갔다.

그리고, 그 아래서 본 것은……. 

“……사람들?”

다들 저 괴물만큼 말랐으나 분명히 사람들이었다. 꼬질꼬질하고 앙상하게 마른 그들은 각자 무기를 들고 소년을 상대했다.

하지만 말라비틀어졌을 뿐, 괴력을 가진 소년의 상대는 되지 못했다. 

“아아악―!”

“도망치지 마! 이번이 아니면 안 돼!”

무리의 리더로 보이는 사람의 독려에도 불구하고 기본적인 전투력의 차이가 너무 컸다. 결국, 몇몇 사람은 괴물의 손에 목숨을 잃고 말았다.

나는 얼마 지나지 않아 피범벅이 된 아래층을 보면서 할 말을 잃어버렸다.

할짝. 할짝.

심지어 소년은 네 발로 주저앉아 흐르는 피를 핥아 마셨다. 

아직 목숨이 붙은 사람들은 생존 본능에 따라 도망치기 시작했다. 그런데 의외로 소년은 그들을 뒤쫓지 않았다. 하지만 몇 명은 도망치다 숨이 다한 건지 몸을 부르르 떨다가 그대로 멈춰 쓰러졌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시체들이 놓인, 고운 흰모래로 된 듯한 바닥에 천천히 소용돌이가 치기 시작하더니 시체를 아래로 빨아들이기 시작한 것이다. 

소년은 그 광경을 무심하게 바라보다가 두 발로 일어났다. 그러곤 정확히 내가 있는 곳을 빤히 쳐다봤다. 

“여긴, 대체…….”

나는 그 광경을 모두 본 뒤, 낮은 신음을 흘렸다. 

하지만 충격에 빠져 있을 새도 없었다. 소년이 다시금 내가 있는 곳으로 점프해 와서는 창살을 긁어 댔기 때문이다.

“미친놈아,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그만하라고!”

놈은 머저리처럼 내 말을 따라 하면서 히죽히죽 웃었다. 그 미소는 이상하게도 순진해 보였지만, 놈이 방금 한 짓을 알고 있는 나로서는 포식자의 기만처럼 느껴졌다. 

결국, 나는 그 괴물이 떠날 때까지 이도 저도 못 하고 벽에 기대 고통 받았다. 얼마 지나자 놈은 어슬렁어슬렁 사라졌는데, 그 뒤에 너무 피곤해서 벽에 기대 깜빡 잠이 들었다.

얼마나 잠들었을까. 깨어난 뒤에는 뒤죽박죽이던 머리가 조금은 정리가 되었다.

‘그러니까 여기……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있는 거지? 분명히 부상을 입고 도망친 사람들도 있었고, 조잡하지만 무기도 가지고 있었잖아.’

심지어 그 사람들은 저 괴물에 맞서 싸웠었다.

‘그럼, 저 사람들하고 협력해서 괴물을 물리치고…… 나는 원래 있던 곳으로 돌아가야 할 것 같은데.’

아무래도 나는 마검을 봉인하다가 ‘저쪽’으로 튕겨 나온 게 틀림없다. 물론 그 소년은 처음 보는 타입의 몬스터라 조금 헷갈리지만, 저걸 몬스터가 아니라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 말이다.

‘그럼, 아까 그 사람들부터 불러내야 하나?’

나는 그 괴물이 주변에 없다는 것을 여러 번 확인한 뒤에 이곳저곳을 주의 깊게 살펴봤다. 하지만 황량하기만 할 뿐, 사람의 움직임은 보이지 않았다. 

“……아무도 없어요?”

그러다 용기를 내어 조금 큰 목소리로 외쳐 봤으나, 여전히 화답해 오는 사람은 없었다. 

그런데 목소리를 크게 내자 멀리서부터 뭔가가 탁탁거리며 달려오는 발소리가 들려왔다.

“젠장…….”

그것은 금세 모습을 드러냈다. 

그 괴물이었다.

“힉, 힉! 힉!”

놈은 마치 꼬리를 흔드는 것처럼 양손을 마구 흔들어 댔고, 나는 당연히 뒤로 물러났다. 하지만 놈은 금방 내 창살 앞으로 다시 다가왔다. 

심지어 잠들기 전에는 손으로만 창살을 긁어 댔는데, 이번엔 입을 쩍 벌리더니 창살을 이빨로 갉아 댔다.

그 덕분이라고 해야 할지 큼지막한 송곳니를 발견했다. 인간의 치열은 확실히 아니었다. 역시, 이 새끼는 인간의 탈을 쓴 몬스터가 틀림없었다. 

찰싹!

“좀 꺼지라고!”

나는 방에 있는 유일한 무기, 줄을 이용해 놈의 얼굴을 때려 봤지만 놈은 눈만 가늘게 뜰 뿐 창살 앞에서 비킬 생각이 없어 보였다.

“헥헥…….”

그저 숨을 가쁘게 몰아쉬면서 눈알을 데굴데굴 굴렸다. 

“아프지, 마?”

“뭐라는 거야.”

“때리지, 마? 때리지 마?”

나는 놈의 메시지를 전혀 이해할 수 없었지만, 놈이 내가 들고 선 줄을 빤히 쳐다보고 있다는 건 눈치챘다.

‘줄로 때리지 말라는 건가?’

그래서 다시 줄을 높게 집어 들었더니 놈은 으르렁거렸다. 하지만 표정은 딱히 화나 보이진 않았다.

“우! 아프지 마!”

“…….”

나는 잠시 멈칫했지만, 놈의 말을 무시하고 한 번 더 끈을 휘둘렀다. 

그러자 놈은 엄청난 속도로 줄을 잡아챘다. 내가 순간 줄을 놓지 않았다면 창살 앞까지 끌려갔을 뻔한 무시무시한 악력이었다.

‘씨발, 멍청한 척하더니…….’

나는 순간 목숨을 잃을 뻔했다는 걸 깨닫고 오싹해져선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하지만 놈은 내게서 줄을 빼앗고는 만지작거리기만 했다. 그러다 내가 잡았던 부분을 혀로 할짝거리거나 냄새를 맡으면서 팔짝팔짝 뛰었다.

혹여 줄을 가지고 노는 건가 싶어 서 있던 자세를 바꾸면, 금방 다시 줄을 내팽개치고 나를 쳐다봤다. 그리고 또 창살을 마구 긁어 댔다.

“으르릉.”

그런데…… 가만히 지켜보니, 목울대를 울리는 소리가 위협이라기보단 주체할 수 없는 흥분처럼 느껴졌다.

나는 상기된 표정의 괴물을 지켜보면서 점점 기분이 이상해졌다. 말도 안 되는 걸 아는데 꼭…… 강아지? 같다고 해야 하나. 놈은 마치 내 손길을 받아 보고 싶어 안달 난 것처럼 굴고 있으니 말이다.

‘하지만, 이걸 확인해 보겠다고 목숨을 걸 순 없잖아…….’

저 괴물의 공격성을 확인한 후이기에 나는 계속 망설였다. 하지만 괴물은 계속 헥헥거리면서 창살에 몸을 비벼 댔고, 이제는 결단을 내려야 했다.

우선, 나는 위에 입고 있던 옷을 벗었다. 그리고 그것을 들고 조심스럽게 놈에게 다가갔다. 놈은 내가 다가오니 만약 꼬리가 있었다면 붕붕 휘둘렀을 것 같은 얼굴로 침을 질질 흘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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