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53화 (54/104)
  •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3화

    “……!”

    나는 소스라치게 놀라며 고개를 들었다. 

    그것은 어느새 목을 길게 빼고 원 안에 들어와 있었다. 머리카락은 무척 길었고, 흰자가 보이지 않는 검은 눈은 괴기스러웠다. 

    게다가 그것은 내가 자신을 주시하고 있다는 걸 알았는지 고개를 양옆으로 까닥거리면서 비웃음 비슷한 표정을 지었다. 

    당연히 이런 것에 면역이 별로 없는 나는 비명을 질렀다.

    “으악!”

    그리고 자연스럽게 바닥에서 손을 뗐다. 떼지 않았다면 분명 귀를 물렸을 것이다. 

    그것은 처음 공격이 실패했음에도 검은 입을 벌린 채 뒤쫓아왔고, 나는 비틀거리면서 바로 일어나 방향 감각을 잃고 뛰었다.

    “살려 주세요! 정원 님!”

    뛰면서 정원 님을 불렀지만, 여전히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쉬이익―!

    내 뒤를 쫓아오는 정체불명의 무언가에게서만 위협적인 소리가 날 뿐이었다.

    ‘어떻게 해야 하지?’

    그것은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잘 들리진 않지만, 바닥을 끄는 미묘한 소음이 점차 커지고 있으니 머잖아 내 뒷덜미를 잡아챌 거란 공포심이 몸집을 불렸다.

    또한, 한 치 앞도 보이지 않는다는 것 때문에 전력으로 달릴 수도 없었다. 만약 전력으로 달리다가 이 공간 어딘가에 부딪힌다면……. 

    ‘지금이라도 옆으로 뛸까? ……젠장! 정원 님은 대체 어디에 있는 거야!”

    그러나 그렇게 생각할 여유도 곧 끝났다. 돌연 허리춤에서 싸늘한 기운이 느껴지기에 서둘러 손을 내려서 방어하려 했으나…….

    “아악!”

    거대한 끈에 묶인 것처럼 허리가 번쩍 들렸다. 

    허공으로 솟구친 나는 곧장 비명을 질렀다. 그리고 나를 붙잡은 그것은 곧 내 얼굴을 향해 느릿느릿 올라왔다.

    때마침 어디선가 새어 들어오는 희미한 빛 속에서, 언뜻 보이는 윤곽으로는 여자의 얼굴에 아주 긴 목을 지닌 몬스터 같았다. 

    그것은 여자인지 남자인지 헷갈리는 목소리로 음울하게 중얼거렸다.

    “플레이어……. 좋아. 완벽하진 않지만…… 너무 오래 갇혀 있었으니까.”

    그렇게 알 수 없는 말을 하던 괴물은 나에게 얼굴을 바짝 들이대면서 씩 웃었다.

    너무 두려우면 성대가 꽉 막힌 듯 아무런 소리도 낼 수 없게 되는 모양이다. 나는 부들부들 떨기만 할 뿐, 조금도 반항하지 못했다. 

    그리고 그 순간, 괴물은 나에게 이상한 촉수 같은 것을 부착하기 시작했다. 이어 끈적끈적한 무언가가 피부 속으로 침투하는 감각을 느꼈는데, 아주 역겨웠다.

    “……어?”

    그런데 더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괴물이 점점 내 모습으로 변하기 시작한 것이다.

    눈동자가 검다는 것 외에 그것이 내 모습과 거의 똑같아졌을 때쯤, 나는 위기감을 느끼고 몸을 흔들었다. 

    “크헉…….”

    하지만 반항하자마자 그것은 촉수로 내 목을 휘어 감아 질식시키기 시작했다.

    나로서는 어떻게든 의식을 되찾으려 노력했으나 곧 시야는 암전되었다.

    * * *

    휘이잉―.

    다시 눈을 떴을 때, 나는 차가운 바람을 견디지 못하고 눈꺼풀을 들었다. 눈떠 보니 검은 철창 같은 것이 앞을 가로막고 있었다. 그리고 바닥은 지나치게 차가웠다.

    “뭐…… 야, 여긴?”

    나는 주변을 둘러보며 어리둥절해하는데, 목이 너무 따갑다고 생각하자마자 기절하기 전 겪었던 일이 떠올랐다.

    “……!”

    나는 황급히 자리에서 일어나 목을 쓰다듬었다. 다행히 목은 아플 뿐이지 큰 문제는 없어 보였다. 펄떡거리는 심장의 울림도 고스란히 전해졌다. 아직 살아 있는 것이다.

    “씨발, 여긴 어디야?”

    나는 욕을 하면서 철장 가까이 다가갔다. 이어 내 반대편 철장을 바라봤는데, 그곳엔 내가 있는 곳과 같은 방 안에 해골이 들어 있었다.

    “무, 무슨!”

    나는 화들짝 놀라 두어 걸음 뒤로 물러났지만, 곧 해골이 전혀 움직이고 있지 않다는 것을 깨닫고는 다시 철장을 붙잡고 주변을 둘러봤다. 

    이제야 나는 여기가 마치 감옥 같은 곳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그리고 현재까지는 나 외에 다른 기척은 느껴지지 않았다. 내부가 비어 있거나, 아니면 내 정면에 있는 철장 속 해골처럼 다 죽어 있는 것이 분명했다.

    철컹, 철컹.

    나는 철장을 몇 번 흔들어 보다가 내 완력으론 이걸 부수고 달아날 순 없다는 걸 인정했다. 그런 뒤에는 방 안을 샅샅이 훑었다. 

    그냥 텅 빈 공간인 듯했지만, 자세히 뒤져 보니 감옥 안에는 무슨 천으로 만들었는지 모를 낡은 밧줄과 바닥에는 이상한 글씨가 쓰여 있었다.

    “뭐라고 써 둔 거지?”

    내가 아는 언어와는 전혀 다르게 생긴 글씨였고, 당연히 나는 그것을 해석할 수 없었다.

    하지만 끈이라도 발견했으니 이걸로 뭔가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철장 밖으로 이 천을 던져서…… 따위의 탈출 방법을 고민하는데, 밖에서 뭔가 구르는 소리가 들렸다.

    퍽―!

    “헤헤…….”

    이어 작은 웃음소리도 들렸다. 나는 다시금 철장에 붙어 소리가 들려오는 쪽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한 층 내려가면 보이는 큰 대로에서 누군가 공 같은 것을 차면서 움직이는 게 눈에 들어왔다. 

    ‘……누구지?’

    체구는 작아 보이나 저 사람이 내게 해가 될 사람인지 아닌지 알 수 없었기 때문에 함부로 그를 부를 수 없었다. 그래서 나는 그가 좀 더 가까이 올 때까지 기다렸다.

    그리고…….

    “……저게, 대체 뭐지?”

    작은 체구의 소년이 점차 보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소년의 모습은 어딘가 이상했다. 소년은 앙상하게 마른 팔다리에 쇠사슬로 이어진 수갑을 차고 있었는데, 그 상태로도 비틀거리면서 용케 움직이고 있었다. 

    아니, 용케 움직이는 것뿐만 아니라 축구를 하고 있었다. 소년은 아주 꼬질꼬질한 뭔가를 계속 걷어차면서 어설픈 드리블을 했다. 재밌는지 간간이 웃기도 하면서 말이다. 

    나는 그 소년의 모습을 지켜보다가 그가 걷어차고 있는 공의 모습이 뭔가 심상치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모양이 동그랗지 않았고, 거뭇거뭇한 뭔가가 달라붙어 있었기 때문이다.

    “……!”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그것이 머리라는 걸 깨달았다.

    “미친…….”

    순간 소름이 확 끼쳐서 뒤로 한 걸음 물러났는데, 끔찍하게도 소년은 내가 움직이자마자 축구를 하듯 걷어차던 움직임을 멈추고, 내가 있는 곳을 향해 고개를 들어 올렸다. 마치 민감하게 소리를 캐치한 것처럼 말이다.

    탕! 탕! 탕!

    소년은 묶여 있는 것이 무색하게도 엄청난 속도로 내가 있는 곳까지 뛰어올라 왔다. 말 그대로 무시무시한 점프력이었다. 

    “……!”

    그렇게 고작 세 번의 점프만으로 내가 있는 감옥 앞에 도착한 후, 소년은 노란 눈동자로 나를 유심히 살펴봤다.

    “킁킁.”

    그리고 냄새를 맡기 시작했다. 정확히는 내가 손으로 창살을 붙잡은 곳을 계속 킁킁거리면서…… 침을 흘렸다. 그러곤 꼭 먹잇감을 바라보는 것처럼 나를 빤히 주시했다.

    가까이서 본 소년은 아주 앙상하게 말라 갈비뼈가 다 드러나는 체구였지만, 눈빛도 그렇고 조금 전에 내가 본 것도 그렇고…… 아무튼 정상적인 사람으로 보긴 힘들었다. 

    나는 숨조차 제대로 내쉬지 못한 채 제발 이 소년이 나에게 관심을 끄고 다른 곳에 가 주었으면 했다.

    하지만 소년은 내게 손을 내밀었다.

    철컹!

    그 소년의 손에 사슬이 묶여 있지 않았다면 뻗은 손을 안에 들이밀 수 있었을 것이다.

    ‘아.’

    나는 그제야 이 창살이 나를 가두는 게 아니라는 걸 깨달았다. 이 방은…… 저 소년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는 보호 장치인 것이다.

    “스읍, 스읍…….”

    소년은 계속 창살 주변을 맴돌며 나를 힐끗거렸다. 뒤에 두고 온 공에 대한 흥미는 이미 잃어버린 듯, 이젠 나를 가지고 놀고 싶어 하는 게 느껴졌다. 아주 순수한 살의라고 해야 할까. 

    이쯤 되니 속이 터질 것 같았다.

    ‘……씨발, 여긴 대체 어디냐고……. 난 분명히 훈련실에서 그 망할 마검을 봉인하고 있었는데…….’

    그때였다.

    “우쭈쭈…… 이리 온?”

    “……뭐?”

    창살 밖에 있던 소년이 나를 향해 손을 내밀며 손가락을 까닥거렸다. 마치, 내가 짐승이라도 되는 양 말이다. 

    “너, 뭐야?”

    나는 소년이 말을 할 수 있다는 것에 놀라 무심코 중얼거렸고, 소년은 청각이 좋은지 귀를 움찔하며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그 뒤, 소년의 입에서 나온 말은 내 예상과 달랐다.

    “모―야?”

    “……“

    마치 말을 처음 배우는 사람 같은 되물음이 돌아왔기 때문이다.

    나는 소년이 내 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는 걸 바로 깨달을 수 있었다. 말하는 모습이 굉장히 어색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방금 ‘이리 온.’ 하고 말한 건 대체 뭐지?

    “살려, 주 쎄요?”

    “……뭐?”

    “아파! 아파!”

    소년은 계속해서 말을 걸어왔다. 마치, 제가 아는 말이 이것뿐이라는 듯 말이다. 그리고 나는 그 말을 들으면서 점점 표정이 굳어 갔다.

    ‘설마, 여기……. 나 말고도 다른 사람들이 잡혀 왔고, 저 새끼가 다 죽인 건가?’

    소년은 내 추측이 맞다는 듯 몇 번 나를 괴상한 말로 부르다가 결국 제 분에 못 이겨 창살을 쾅쾅 쳤다. 다행히 창살은 꿈쩍도 하지 않았지만, 먼지가 날려서 눈을 따갑게 했다.

    “콜록!”

    먼지 때문에 재채기를 하자, 소년은 나를 빤히 쳐다봤다. 그런데 표정이 괴상했다. 부담스럽게도 눈이 반짝거리고 있었으니까. 

    하지만 소년은 내게서 눈을 떼지 않은 채 다시 뒤로 물러가더니 훌쩍 위에서 아래로 뛰어내렸다.

    그리고 몇 분 뒤, 놈은 아까 제가 발로 차고 놀던 그 축구공을 내게 가져왔다.

    “으아악!”

    나는 너무 징그러워 비명을 질렀지만, 소년은 예상대로 내 말을 전혀 알아듣지 못했다. 내가 비명을 지르자 되레 싱글싱글 웃기까지 했다.

    “제발요?”

    “……씨발.”

    대충 배워 먹은 말을 지껄이면서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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