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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화 (53/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2화

하지만 들을수록 내게는 그럴 만한 능력이 없다는 생각이 들었다. 

정원 님마저 완벽하게 봉인하지 못한 마검을 내가 무슨 수로 봉인한다는 말인가. 단순히 저주를 내리는 능력이 있다고 건드리기엔 급이 맞지 않았다.

“저, 저는 정말 무리예요!”

“할 수 있습니다. 제가 보여 드릴게요.”

그러나 정원 님은 대체 내게서 뭘 보신 건지, 확신에 찬 목소리로 대답하셨다. 

이어 그는 마검을 보여 주겠다며 벽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마검의 손잡이를 잡아 벽에서 떼어 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말했다.

“그 검…… 위험하다고 하지 않았나요?”

“검집에서 검날을 ‘뽑아 들면’ 정말 위험하지만, 단순히 손잡이를 잡는 수준은 제어할 수 있습니다. 물론, 아무런 정보 없이 이 검을 만지는 사람은 바로 뽑아 들려고 하겠지만요.”

그때였다. 정원 님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검이 웅웅거리면서 떨리기 시작했다.

나는 검의 울음소리를 듣자마자 등골이 오싹해졌다. 마치 수많은 사람이 비통해하며 흐느끼는 듯한 느낌을 받았기 때문이다.

게다가 이젠 검의 주위로 검은 오라가 보이기도 했다. 정원 님의 몸을 타고 오르는 오라는 마치 뱀처럼 보였다. 

더군다나 그 오라는 정원 님의 팔다리, 목을 휘감고는 뾰족한 끝을 계속해서 눈과 귀가 있는 부분에 찌르려고 했다. 마치, 정원 님의 머릿속에 들어가려는 것처럼 말이다.

“위, 위험……!”

“괜찮습니다. 지금은 제가 스킬로 보호하고 있으니까요. 그러니 좀 더 자세히 보세요. 원을 그릴 때처럼 집중해서 보면 됩니다.”

그 말에 나는 두근두근 뛰는 심장을 진정해 보려고 노력했다. 

이어 천천히 눈을 떴는데, 처음에는 보이지 않았던 무언가가 정원 님의 몸을 희뿌옇게 감싸고 있는 게 아닌가.

“……어?”

“이제 제 스킬이 보이시나요?”

“이게 뭐죠?”

“제 스킬 중 하나인 ‘검막’입니다.”

정원 님의 몸 주변을 두른 희뿌연 막은, 자세히 보니 마치 뾰족한 가시를 세운 고슴도치 같았다. 불투명한 무언가가 가시를 바짝 세운 채 몸에 침입하려는 마검의 오라에 맞서 일렁이고 있었다.

“그럼, 이제 한 발자국 물러나세요.”

나는 정원 님의 말을 따라 내가 있는 자리에서 한 발 뒤로 물러났다. 정원 님은 내가 뒤로 물러나자마자 똑같이 한 발짝 뒤로 물러나셨다. 

정원 님은 그렇게 거리를 둔 채로 내게 바닥에 손을 대고 원을 그려 보라고 말씀하셨다.

“이 바닥은 특수한 재료로 만든, 일종의 봉인석입니다. 제가 바닥에 이 마검을 꽂아 넣기 전, 원을 그려 몸을 둘러싸고 스스로를 보호하세요.”

“원으로 제 몸을 지킬 수 있는 건가요?”

“고유한 성질을 담은 기운이기 때문에 마검의 기운과는 이질적일 겁니다. 이를 구별하는 것, 그게 가장 중요해요.”

그 말을 끝으로 그는 말릴 새도 없이 곧장 바닥에 마검을 꽂아 넣었다. 

츠츠츳― 파직―!

마검에서는 마치 용접할 때처럼 스파크가 튀기 시작했다. 그리고 내가 원을 그리자마자 마검이 심상치 않게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제 정원 님은 신중한 표정으로 두 손을 다 써서 검의 손잡이를 붙들었다.

[갸아아아악―!]

그때부터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괴이한 소리가 검에서 터져 나오기 시작했다. 또, 은은하게 빛나며 방을 비추던 빛이 일시에 사라졌다. 마치 삽시간에 홀로 검은 방 속에 내던져진 기분이었다.

“저, 정원 님!”

“전 아까 그 자리에 있습니다. 걱정하지 마세요.”

여전히 모습은 보이지 않으나, 정원 님은 겁에 질린 나를 배려하듯 목소리로나마 격려해 주셨다.

“…….”

나는 바닥에서 손을 떼지 않은 채, 내가 앉은 자리를 둘러보았다. 

내 몸을 감싼 작은 원의 밖은 완전히 새까맣게 변했지만, 원의 안쪽으로는 희미하게 내 몸의 윤곽을 볼 수 있었다. 원 자체가 미약한 빛을 품고 있기 때문이었다. 

‘……아까보다 추워졌어.’

나는 속으로 그렇게 생각하면서 침을 꿀꺽 삼켰다. 

우웅―.

그리고 어디선가 윙윙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정원 님이 서 있던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였다.

나는 여전히 새카만 그곳을 향해 고개를 들었다가, 흠칫 놀라서 하마터면 바닥에서 손을 뗄 뻔했다.

뭔가 검고 덩어리진 것이 느릿느릿하게 내 주변을 맴돌고 있다는 걸 느꼈기 때문이다. 꼭 바다에 빠져 가라앉는 와중, 고래를 만난다면 이런 기분일까 싶었다.

나는 울먹거리면서 정원 님을 불렀다.

“저, 정원 님? 저…… 정말 무서운데요.”

하지만 정원 님은 내가 무엇을 보고 겁에 질렸는지 아는 것처럼 침착하게 대답만 하셨다.

“어떤 모습을 하고 위협한들 한솔 군을 해치진 못합니다. 이 검은 검을 쥐고 있는 자를 공격하니까요.”

“하아……. 네.”

“그리고 지금부터는 제 목소리도 들리지 않게 될 테니, 이상한 소리가 들리더라도 현혹되면 안 됩니다. 기억하세요. 바닥에서 손을 떼면 안 됩―.”

애석하게도 말이 채 이어지기도 전에 정원 님의 목소리가 뚝 끊겼다. 나는 불안감에 고개를 치켜들고 그를 목놓아 불렀다.

“……네? 네? 저기요! 정원 님? 정원 님!”

그리고 혼자 남았다.

어떤 인기척이라도 느껴진다면 나는 그 인기척이 정원 님의 것이라고 믿고 버틸 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정원 님의 목소리마저 끊긴 이후, 묘하게 이 공간에 나만 있는 것 같다는 의심이 생겨났다. 아무리 주위를 둘러봐도 칠흑 같은 어둠뿐이니까.

나는 원의 범위를 넓혀 볼까, 하는 생각도 했지만 원은 마치 어떤 공간에 꽉 끼인 듯 더는 움직이지 못했다. 

아니, 사실은 원의 크기가 점점 무언가에 갉아먹히듯 줄어들고 있었다. 나는 선을 침범하는 검은 안개에 신경이 곤두섰다. 

“왜, 나를 여기에…….”

그러다 보니 정원 님에 대한 원망도 피어올랐다. 수업을 시작한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렇게 큰일을 덥석 맡기다니…….

“……난 여기서 죽으면 안 된단 말이야.”

어떻게 돌아왔는데, 이렇게 허망하게 죽을 순 없었다. 하지만 점점 한기는 심해졌고, 정원 님의 목소리는 여전히 들리지 않았다. 

나는 주변을 돌아봤다. 그리고 고개를 정면으로 향했을 때……. 

퉁―

뭔가가 내 원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렸다.

그것은 뒤에서 내 원 안으로 들어오려고 했다. 뒷덜미에 식은땀이 흐르기 시작했다. 더구나 양손으로 바닥을 짚고 있느라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다.

그러는 동안 ‘무언가’는 다시 한번 뒤에서 내가 있는 곳을 향해 몸을 부딪쳤다.

퉁―!

아까보다 울림이 강한 걸로 봐선 이번엔 고의적으로 부딪쳤다는 느낌이 강했다. 

“뭐, 뭐지?”

혼자 중얼거렸을 때였다.

“한솔 군.”

갑자기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어? 정원 님?”

나는 안도하며 막 손을 떼고 뒤를 돌아보려고 했는데, 한참이나 같은 자세를 취하고 있어서 몸이 둔했다.

그래서 바닥에서 바로 손을 떼지 못하던 때,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가 나에게 말했다.

“맞아요, 저예요.”

“…….”

그런데…… 기분이 약간 이상해졌다. 뭔가 이루 말할 수 없는 찝찝함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나를 봐요. 뒤돌아봐요.”

퉁―!

그리고 그것은 말을 하면서 내 등 뒤를…… 걷어차고 있었다. 나는 소름이 끼쳐서 입을 꽉 다물었다.

“한솔 군~ 한솔 군~.”

조금 전까지만 해도 정원 님의 목소리라고 생각했는데, 자세히 들어 보니 여자와 남자의 목소리가 섞인 듯한 기괴한 소리였다.

노래하듯 내 이름을 마구 부르던 ‘그들’은 내가 꼼짝도 않고 있자 짜증이 났는지 원 주변을 마구 걷어차기 시작했다.

웅웅 울리는 반동 때문에 구역질이 났다. 하지만 그것보다 공포심이 훨씬 컸다.

“한솔 군, 잡히면 찢어 죽일 거야!”

“하하하하! 겁에 질린 거 봐.”

“한솔 군, 한솔 군, 한솔 군…….”

이제 그것들은 원 위로 검은 손자국을 마구 내기 시작했다. 원의 가장자리에 우다다다 찍히는 손 모양을 보면서, 나는 기절하지 않기 위해 눈을 꽉 감았다.

끼긱, 기기긱.

하지만 원에 닿은 기괴한 손들은, 이젠 내가 만든 원을 손으로 찢으려는 듯 끽끽거리는 소리를 내면서 계속 원 안으로 들어오려고 애썼다. 

눈을 뜨고 싶지 않았지만, 뭔가가 점점 가까이 다가오는 듯한 기분이 들어 더는 외면할 수도 없었다. 그들의 눈에 나는 투명한 통 속에 담긴 물고기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이가 덜덜 떨려 턱을 악물다가 입술을 깨물었다. 그리고 스킬을 외쳤다.

“[어두워진 눈동자].”

저들에게 스킬이 통할 거라 생각한 건 아니다. 그냥 뭐라도 하지 않으면 미칠 것 같아서 쓴 것이었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 스킬을 쓰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상한 소리들이 멈춘 것이다!

“하아, 하아…….”

나는 숨을 고르며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빠져나갈 방법을 강구하려고 했다.

하지만……. 

“너, 플레이어구나?”

안심하는 순간, 누군가 내 귓가에 바짝 붙어서 속삭여 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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