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51화
정원 님의 목소리는 특이했다. 마냥 가벼운 것 같으면서도 뭔가를 가르칠 때면 확 빨려 들어가는 듯한 기분이 든다고 할까.
나는 이번에도 눈을 감은 채 조용히 집중했고, 그러느라 점점 내가 붙잡은 손이 누구의 것인지를 잊었다. 그저 차분하게 다시금 머리 위에 원을 띄워 보려고 노력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서늘한 기운이 머리 위로 모이는 듯한 느낌이 들면서 사락사락, 원이 돌아가는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오, 이번에도 한솔 군이 가장 먼저 원을 만들었네요.”
나는 그 말을 듣고 천천히 눈을 떴다. 그리고 위를 올려다보았는데, 내가 처음 만들었던 것과 거의 비슷한 크기의 원이 내 머리 위에서 아주 천천히 돌아가며 둥둥 떠 있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나뿐만 아니라 다른 둘도 머리 위에 원을 띄운 상태였다.
희도는 초록색, 유세림은 붉은색 테두리를 띤 원이었다. 셋 다 같은 크기인데도 색이 달라서인지 묘하게 느낌이 달랐다.
“이런 거였군.”
“…….”
희도는 살며시 눈을 뜨면서 그리 중얼거렸고, 유세림은 말없이 자신이 만든 원을 제 눈앞까지 가져왔다.
정원 님이 웃으면서 박수를 쳤다.
“잘했습니다. 두 분은 정말 특이하네요. 희도 군은 원이 풍기는 향까지 세심하게 구현했고, 세림 군은 원을 자유자재로 움직일 수 있군요. 어떤 성향을 가지고 있는지 이것만으로도 알 수 있죠.”
나는 정원 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아까부터 우리 주변에서 나던 은은한 향기가 어디서 기인했는지 알 수 있었다.
정원 님이 재밌다는 듯 눈을 휘었다.
“희도 군은 셋 중 가장 섬세한 타입입니다. 본질을 탐구하고 채워 가는 것에 흥미를 느끼죠. 개성적인 것을 중요시하고요. 시야가 넓기 때문에 본인이 원하는 힘을 찾아 발전시킬 수 있을 겁니다.”
희도는 정원 님의 말에 반박하지 않았다. 물론, 표정은 수긍하는 것처럼 보이지 않았지만 말이다.
이어 정원 님은 유세림에게 고개를 돌렸다.
“세림 군은 통제력에 관한 관심이 비상하네요. 자신이 가진 힘을 통제하는 건 아주 중요하죠. 또, 고도의 집중력을 요하는 일이고요. 세림 군의 재능이라면 머지않아 여러 개의 원을 띄우는 것, 그리고 원으로 일정한 모양을 만드는 데 성공할 겁니다.”
유세림은 미미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정원 님은 마지막으로 내 머리 위의 원에 시선을 주었는데, 설핏 웃기만 할 뿐 따로 한마디를 덧붙이진 않았다. 다만, 그는 우리를 보면서 즐거워했다.
“세 분은 서로에게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 같아요. 역시 소통과 간섭 방법이 세 분을 가르치는 데 효과적이군요.”
희도는 여태껏 얌전히 있다가 그 말을 듣자마자 기분이 나쁘다는 듯 양손을 확 떼어 버렸지만, 나는 반사적으로 희도의 손을 움켜쥐었다.
‘……아.’
그러자마자 아차 싶었다. 이곳의 희도는 나를 불쾌하게 생각하니까…….
해서 금방 떨어뜨릴 거라 생각해 좀 움츠러들었는데, 의외로 희도는 달라붙은 내 손을 함부로 떼지 않았다. 인상을 팍 구기며 나를 돌아보긴 했지만 말이다.
“…….”
나는 그 시선에 움찔했으나, 모른 체 다시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때에도 희도가 나를 떼어 내지 않았다는 점이다. 희도는 그렇게 나와는 손을 붙잡고, 유세림과는 떨어진 상태에서 원을 유지했다.
반면, 유세림은 이런 소란에도 꼼짝하긴커녕 눈도 뜨지 않았다. 깊이 집중하고 있는 듯 그의 원이 빙글빙글 돌면서 일정한 패턴을 그리기 시작했다.
곧, 유세림의 원은 크기가 정확히 같은 2개의 작은 원으로 분할되었다. 정원 님의 말과 정확히 일치한 것이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원은 테두리가 흐물흐물해졌고, 유세림은 식은땀을 흘리면서 눈을 떴다. 2개의 원은 유세림이 눈을 뜨자마자 사라졌다.
“……어렵군요.”
유세림의 입에서 힘들다는 말이 나온 건 처음이었다.
정원 님은 미소를 지으며 그의 어깨를 가볍게 토닥거렸고, 유세림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 *
그 뒤, 수업이 끝났다는 말에 우리는 동시에 자리에서 일어났다.
“……?”
그런데 정원 님이 나를 붙들었다. 나는 맨 마지막으로 빠져나가다가 정원 님의 손길에 발걸음을 멈춰야 했다.
그러자 앞서가던 희도와 유세림이 나를 돌아봤다. 모두의 시선을 받게 된 정원 님이 어깨를 으쓱하며 입을 여셨다.
“한솔 군은 저를 좀 도와줬으면 하는데요.”
“아…… 넵!”
뭘 도와야 하는지는 몰라도 서둘러 고개를 끄덕였다. 희도는 그런 나를 힐끗 쳐다본 후 다시 제 갈 길을 갔고, 유세림은 내가 고개를 돌릴 때까지 가만히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이어 정원 님은 나를 데리고 훈련실에 딸린 반대편의 작은 문을 여셨다. 그런데 거기엔 뜻밖에도 작은 중정이 있었다.
드르륵, 탁―.
문을 닫은 후, 우리는 작은 풀밭을 코앞에 뒀다. 그런데 정원 님은 중정으로 향하지 않았다.
그렇게 정원 님은 중정에 작게 난 길을 따라 앞서 걸으면서도 내게 말 한마디 걸지 않았다. 해서, 나는 잰걸음으로 서둘러 그를 쫓아갈 수밖에 없었다.
“여기예요.”
곧, 정원 님은 미로 같은 복도를 지나 한 방 앞에서 서서야 내게 말했다.
나는 정원 님이 열어 준 문틈을 향해 발을 내디뎠다. 동시에 발바닥에서부터 아주 싸늘한 한기가 단박에 정수리까지 치고 올라오는 느낌을 받았다.
“춥죠?”
정원 님은 예상했다는 양 움찔하고 등을 떠는 내게 물었다. 나는 괜찮다고 말하려다가 입을 열자마자 입김이 나오는 것을 깨닫곤 고개를 끄덕였다.
“여기만 한겨울 같네요.”
몸을 살짝 떨면서 답하자, 정원 님이 부드럽게 대답하셨다.
“여기는 제가 따로 사용하는 수련장입니다.”
“네?”
나는 뜻밖의 말에 놀라 정원 님을 다시 쳐다봤다. 정원 님은 미소를 지으며 나를 스쳐 지나갔다.
그러자 어둡던 방에 은은하게 빛이 들어오기 시작했는데, 그제야 방의 모습을 살펴볼 수 있었다. 가장 먼저 눈에 띈 것은 바닥이었다. 매끈매끈한 게 마치 대리석을 깔아 놓은 것 같았다.
그리고 내가 있는 곳에서 정면 쪽에 사람 키만 한 검 한 자루가 벽에 붙어 있었다. 그 검은 벽에 고정된 상태로 쇠사슬에 묶여 있었는데, 정원 님이 쓰는 검이라기보다는 꼭 봉인이라도 해 둔 것 같은 모양새였다.
“저 검은 마검이라고 불리는 종류입니다.”
내 시선을 따라 보신 듯, 정원 님이 평소보다 한층 낮은 목소리로 설명해 주셨다.
“마검이요?”
“사용자의 의식을 빼앗아 생명력을 소모해 힘을 발휘하는 아이템이거든요.”
“아…….”
“그리고, 제가 이곳에 남아 있는 이유죠.”
“남아 있는 이유요?”
“저 검에 홀리는 사람들을 보호해야 하니까요.”
정원 님은 그렇게 말하면서 묘한 표정으로 검을 올려다보았다. 미소가 사라진 그의 얼굴은 어딘가 낯설게 느껴졌다.
“……혹시, 저 검 때문에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요?”
“많은 사람이 죽었죠.”
“아…….”
“개중엔 제 여자 친구도 있었고요.”
“…….”
나는 할 말을 잃어 입을 다물었다. 사랑하는 사람의 죽음이라니……. 순간 희도의 마지막이 떠올라 아랫입술을 깨물었다.
정원 님은 그런 나를 보며 손을 내미셨다. 의도가 뭔지는 모르나, 나는 그에게 한 걸음 더 가까이 다가갔다.
그러자 정원 님은 그런 내 팔을 아프지 않게 끌어당겼다. 그러고는 내 가슴에 손을 얹은 뒤, 나에게 작게 속삭였다.
“이곳을 보여 준 이유는, 한솔 군의 도움이 필요해서입니다.”
“제가, 도움을요?”
나는 잘 이해가 되지 않아 그를 쳐다봤다. 그런데 정원 님은 농담하는 거라곤 보이지 않는 진지한 얼굴로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제가 대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까요?”
정원 님처럼 강력한 능력자가 나 같은 것에게 도움을 요청한다는 게 이해되지 않아 물은 말이었다.
정원 님은 여전히 웃지 않고, 진지한 태도로 일관했다.
“처음, 한솔 군을 지도할 때부터 느꼈어요. 한솔 군은 마검을 완전히 봉인할 수 있는 자질을 가졌다고.”
나는 뜻밖의 말에 눈을 크게 떴다.
“……제가요?”
“네. 한솔 군은 제가 막연히 생각했던…… 그리고 이번 생에선 찾지 못할 거라 생각한 그 재능을 가지고 있거든요. 오늘 수업으로 확신했죠.”
나는 그 말을 쉽게 믿지 못하겠어서 입을 살짝 벌렸다. 정원 님은 선뜻 대답하지 못하는 내게 이어 말했다.
“한솔 군은 저주를 내리는 스킬을 가지고 있죠?”
“네……? 아, 그건 맞지만…….”
“저 마검도 저주를 내리는 스킬을 가지고 있습니다. 정신 지배와 환각, 그리고 피를 끓게 만드는 독을 주입하죠.”
이어진 정원 님의 설명은 충격적이었다.
그런 이유로 한번 마검을 쥔 자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하고, 죽을 때까지 살아 있는 모든 것을 베면서 무차별적인 파괴를 계속하게 된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