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9화
싸한 정적이 흘렀다. 게다가 방금 형이 한 말은 정원 님뿐만 아니라 희도와 유세림에게도 들린 듯했다. 그 두 명 역시 내 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렇다네요. 하하하.”
다행히 정원 님은 형의 어처구니없는 소리를 웃음으로 넘어가 주셨다. 그리고 나는 형이 창피해서 고개를 들지 못할 지경이었다.
“형, 빨리 가. 언제까지 있을 건데. 안 바빠?”
“뭐? 너무한 거 아니야, 너?”
성훈 형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내 예상대로 이미 시간이 많이 지체되었던 듯 순순히 게이트를 열었다. 하기는, 원체 바쁜 사람이니까.
형은 게이트에 한쪽 발을 걸치면서 나를 돌아봤다. 내가 붙잡지 않아 섭섭해하는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형아, 잘 가. 하고 인사도 안 해 주냐?”
“……잘 가.”
나는 소극적으로 손을 흔들었지만, 형은 그것만으론 충분치 않았는지 기어코 내 목을 감싸 안았다.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해라?”
“아! 알았…… 알았다고!”
나는 형이 또 무슨 짓을 벌일까 두려운 마음에 서둘러 외쳤고, 성훈 형은 그러고도 내 머리칼을 잔뜩 헝클인 다음에야 놓아주었다.
나는 형이 사라지고 난 후, 한숨을 내뱉었다.
“하아…….”
이 촌극을 지켜보고 있던 정원 님이 키득키득 웃으면서 내게 말했다.
“성훈이가 진짜 한솔 군을 아끼나 봐요.”
“…….”
아끼다 뿐인가. 형이 사실 저렇게 노골적으로 나를 예뻐하게 된 것에는 또 한 번 회귀한 뒤, 매일 형을 따라다닌 내 탓도 있어서 할 말이 없었다.
다시는 못 볼 거라 생각한 형을 다시 만났다는 감격에 젖어 절제하지 못하고 마음을 표현했던 게 이제 이런 식으로 돌아오는 중이었다.
내가 졸졸 따라다니자 형도 처음엔 당황하는 것 같더니, 요즘은 더 나서서 나를 과보호하려고 드니까. 이게 좋은 건지는 모르겠지만…….
“네……. 알아요.”
하지만 나는 그런 형을 거부할 수가 없었다. 정원 님은 얼굴이 새빨개진 나를 보고는 뭔가 할 말이 있는 것처럼 입을 달싹이다가 더 놀리지 않고 미소만 씩 지으셨다.
* * *
나와 희도, 그리고 유세림은 정원 님의 집에 짐을 풀게 되었다.
나로서는 ‘징조’가 일어나기까지 얼마 남지 않은 상황이라 최대한 빨리 힘을 얻는 것을 목표로 삼고 있었기에 집에 갈 시간조차 아까워서 내린 결정이었고, 마침 정원 님도 권유해 주셔서 덥석 민폐를 끼치게 되었다.
그런데 희도와 유세림도 나처럼 정원 님 집에 짐을 풀 줄은 몰랐다.
시작은 유세림이었다.
“그럼 저도 이곳에 머물면서 수련하고 싶습니다.”
유세림은 냉큼 그렇게 말한 뒤, 인상을 팍 찡그린 나를 개무시했다. 하지만 집주인은 내가 아니었고, 정원 님은 학생들의 열의(?)에 감격하신 것 같았다.
“아주 좋아요. 희도 군은?”
“……저 녀석이 하면, 나도 해.”
다만 뜻밖에 좋은 일은 희도도 정원 님 집에 머물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승부욕이 불타올랐는지, 희도는 유세림을 노려보면서 대답했다. 그 모습을 보던 정원 님은 웃으면서 흔쾌히 우리가 머무는 것을 허락하셨다.
“혼자서 넓게 사는 것도 좋지만, 역시 사람이 좀 있는 편이 낫죠.”
정원 님은 그렇게 말하시곤 우리에게 방을 하나씩 안내해 주셨다. 내 방은 정원 님의 침실 맞은편이었고, 내 방을 기준으로 각각 오른쪽에는 유세림이 왼쪽에는 희도가 머무르게 되었다.
“자, 그럼 오늘은 명상하는 방법에 대해서 알려 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대망의 첫 수업은 명상이었다.
“자세는 편안하게 하세요. 앉아도 좋고 누워도 좋습니다. 본인에게 가장 편안한 자세를 찾아서 눈을 감고, 무엇이 떠오르든 규칙적으로 호흡하는 것만 잊지 않으면 됩니다. 숨을 들이마시고, 천천히 내쉽니다.”
유세림은 원래도 명상을 자주 하는 편인 듯 자리 잡은 자세가 능숙했다. 나는 유세림이 앉은 모습을 따라 할까 하다가 관두고 그냥 좌식으로 앉았다.
“잡념은 흘러가게 내버려 두세요.”
이어 눈을 감고 호흡에 집중하려 했으나…… 곧 수많은 생각이 범람해 오기 시작했다.
처음엔 명상 호흡에만 집중했는데, 눈을 감고 있으니 여러 비관적인 상상과 1회차 때의 기억 따위가 불쑥불쑥 치솟았다. 개중에서 나를 가장 많이, 그리고 집요하게 방해한 생각은 바로 희도에 대한 것이었다.
‘희도랑 이러다 영영…… 어색한 사이로만 남게 되면 어쩌지?’
사실상 최근, 나의 가장 큰 고민은 바로 이것이었다. 나는 희도를 원하지만 희도는 나를 원치 않는 것. 희도의 싸늘하거나 무관심한 태도를 마주할 때마다 나는 불안감과 초조함에 휩싸여야 했다.
짝―!
그때였다. 마치 내 혼란한 머릿속을 꿰뚫어 본 것처럼 정원 님이 돌연 손바닥을 치셨다.
“집중하기가 생각보다 어렵죠?”
“…….”
나는 그제야 희도에 관한 생각을 좀 넣어 두고, 다시 수업에 집중하기 위해서 노력할 수 있었다.
‘그래, 지금은 희도보다는…….’
강해지기 위해서 집중할 때였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다시 정원 님의 목소리에 집중했다.
“머릿속으로 도형을 하나 그려 보는 것도 좋습니다. 원을 한번 그려 보세요. 원의 테두리는 어떤 색인지. 따뜻한지, 차가운지. 원의 색깔과 온도에 집중해 자신만의 원을 그려 보는 겁니다.”
“…….”
“…….”
“…….”
“그리고 그 원이 자신의 머리 위로 올라간다고 생각해 봅시다. 천천히, 어렵지 않습니다.”
나는 정원 님의 목소리에 빨려 들어가는 것처럼 모든 것을 잊고 순식간에 집중했다.
내가 그린 원은 차갑고 푸른 테두리를 가진 검은색 원이었다. 그리고 그것을 천천히 머리 위로 올렸을 때, 정수리에 마치 얼음을 올려놓은 것처럼 차가운 감각을 느꼈다. 나는 그 감각에 깜짝 놀라 눈을 뜨고 말았다.
정원 님은 나를 보고 계셨는지 눈이 마주치자 진지한 태도로 칭찬하셨다.
“완벽하게 집중했군요.”
“네?”
“아주 잘했습니다. 한솔 군이 그린 원이 제 눈에 보였거든요.”
“……!”
“테두리가 푸른색인 원을 그렸죠? 머리 위까지 올렸고요. 어떤 느낌이었나요?”
“아…….”
나는 너무 놀라서 더듬거리면서 대답했다.
“차갑…… 그, 시린 느낌이 들 정도로 차가웠습니다.”
내 대답에 정원 님은 곰곰이 생각하신 후, 다시금 입을 여셨다.
“차갑다, 라……. 좋습니다. 다시 집중해 볼 수 있나요?”
“……해 볼게요.”
“이번엔 정반대의 원을 한번 그려 봐요.”
“알겠습니다.”
대답하곤 눈을 감으려는데 그러기 직전, 희도와 유세림의 표정이 눈에 들어왔다.
우리는 동그랗게 마주 보고 앉아서 수업을 받고 있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서로를 바라보고 있는 상태였다. 그런데 둘이 나를 보는 표정이 꽤 심상치 않았다. 뭔가 굉장히 놀란 듯한 느낌이라고 할까?
“다른 분들도 ‘제대로’ 집중하면 한솔 군처럼 할 수 있습니다. 자, 다시 원을 그려 보도록 하죠.”
“……!”
나는 정원 님의 말을 듣고 나서야 둘에게도 내가 그린 원이 보였다는 것을 깨달았다. 잠시 당황했지만, 동시에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다른 녀석들보다 내가 더 빨랐어…….’
항상 이 둘을 쫓아가기 바빴는데, 이번만큼은 내가 앞선 듯한 기분이었기 때문이다. 정말이지 처음 느껴 보는 감정이었다.
“자, 다시 머리를 비우고 숨을 내쉬어 보겠습니다.”
그 순간부터 이 수업이 더욱더 즐거워졌다.
* * *
[플레이어: 한솔
레벨: 80
직업: 디버퍼
등급: C
스킬:
―무거운 걸음 (위력 30/31)
―어두워진 눈동자 (위력 30/31)
―뒤집어쓴 가죽 (위력 30/31)
―? (위력 3/20)]
수업을 마치고 내 상태 창을 확인했는데, 스킬 위력이 2에서 3으로 오른 모습을 발견하자 저절로 입가에 미소를 짓게 되었다.
‘실전이 아니라 훈련으로도 레벨 업을 할 수 있구나…….’
이 외에도 나는 새로운 사실을 깨달아 굉장히 고양된 상태였다. 왜냐면 수업 내내 희도와 유세림은 단 한 번도 원을 그리는 데 성공하지 못한 반면, 나는 자그마치 두 번이나 더 성공했기 때문이다.
‘집중력과 구상력이 아주 탁월하네요. 제가 가르쳤던 그 어떤 제자들보다도 한솔 군이 가장 빨랐습니다.’
심지어 정원 님조차 놀라워하면서 나를 칭찬하셨을 정도였다.
정원 님은 특히 나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저주를 내리는 디버퍼의 경우 그런 집중력과 구상력, 상상력이 아주 중요하다고 강조하시면서 흡족해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