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8화
챙, 챙―!
희도는 눈에 보이지 않는 빠른 속도로 정원 님을 몰아붙이기 시작했다. 그런데 목도와 검이 부딪치는 데 목도가 갈리기는커녕 검과 검끼리 부딪치는 소리가 났다. 검기가 희미하게 목도를 감싸고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뒤로 물러서면서 희도의 합을 받아 주고 있는 정원 님은 여전히 여유롭게 미소를 짓고 있었다. 마치, 테스트해 보는 것처럼 말이다.
“백희도 군은 본능적으로 좋은 움직임을 찾아가는군요.”
“……!”
그러나 테스트는 곧 끝났고, 그 말을 시작으로 정원 님은 팔을 우아하게 휘두르기 시작했다.
희도는 처음 두 번까지는 쉽게 막아 냈지만, 점점 마음처럼 안 되는 듯 입술을 꽉 깨문 채 점점 뒤로 밀려났다.
쨍그랑―!
결국, 희도가 쥐고 있던 검은 날아가 땅바닥을 뒹굴었다. 정원 님은 목검으로 희도의 어깨를 툭툭 친 후, 마저 말을 이어 가셨다.
“하지만 본능적인 움직임은 군더더기가 많습니다. 덜어 내는 연습을 하는 게 좋겠어요.”
“…….”
희도는 입을 다물었으나 표정은 아주 좋지 않았다. 그 구겨진 얼굴에 대고, 정원 님은 마치 놀리듯 한 번 더 희도에게 물었다.
“결과에 승복하십니까?”
희도는 움찔, 눈썹을 찌푸리다가 결국 대답했다.
“……해. 확실히 지금은 나보다 몇 수 위야, 당신.”
“하하하. 금방 따라올 수 있을 테니 너무 상심하진 마세요.”
“…….”
희도는 정원 님이 자신을 놀린다고 생각한 건지 표정이 잠시 사나워졌지만, 이내 입을 꾹 다물었다.
그렇다고 해서 풀이 죽은 얼굴은 아니었다. 나는 어린 희도의 얼굴에서 활활 타오르는 승부욕을 봤다. 스물넷의 그에게선 보지 못했던, 미숙하고도 솔직한 얼굴이었다.
“넋을 빼놓고 보네, 아주.”
“……형.”
그런 내 시선을 주의 깊게 지켜보던 사람이 있었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성훈 형에게 들키니까 좀 민망했다. 형은 마치 타박하듯이 나를 흘겨봤다.
“이제야 형이 좀 보이냐?”
“아, 뭐래…….”
“저쪽은 너를 모르는 것 같은데, 넌 왜 몇 년은 못 만난 사이처럼 안달이야?”
“그, 그런 거 아니라니까!”
나는 형에게 손을 내저으면서 제발 소리 좀 죽이라는 뜻으로 입에 검지를 댔다. 그러자 성훈 형은 필사적인 내 모습과 멀리 선 희도의 모습을 번갈아 보더니, 한쪽 입꼬리를 삐뚜름하게 올렸다.
“앞으론 나도 종종 와서 ‘가르침’도 좀 주고 그래야겠어. 곧 우리 파티에 합류할 녀석들인데, 나랑도 합을 맞춰 봐야지.”
맞는 말인데 희도를 노려보면서 한 말이라 나는 형의 옷깃을 세게 당겼다. 형은 순순히 내 쪽으로 귀를 기울여 주었다.
“진짜 왜 그래!”
“네가 안 하던 짓을 하니까 그렇지. 정말 형한테 얘기 안 해 줄 거야?”
“…….”
“쟤랑 어디서 만났고 어떻게 된 건지, 형은 좀 알고 싶은데.”
나는 형이 서운해하고 있다는 걸 깨닫곤 잠시 입을 다물었다.
사실은 희도에 대한 것뿐만 아니라 내가 시간을 역행했다는 걸 형에게 털어놓을까 말까, 많이 고민했다. 형은 지금의 내가 의지할 수 있는 유일한 사람이고, 강력한 힘을 가지기도 했으니까. 또, 전처럼 허무하게 형을 잃고 싶지도 않았다.
‘하지만 내가 말해서 뭔가 중요한 게 바뀌어 버리면……?’
내 행동으로 인해 달라져 버린 관계와 엉망이 되어 버린 1회차를 생각하면 섣부르게 도움의 손길을 바라는 것을 주저하게 된다.
또한 시간을 역행했다는 증거도 없었다. 전에는 펜던트라도 있었지만, 지금은 정말 이렇다 할 게 하나도 없었으니까.
“……미안해. 지금은 말할 수 없어.”
그래서 나는 ‘징조’가 일어나기 전까진 형에게도 말을 아껴야겠다고 생각했다. 특히, 형이 잠적하기 전에 일어날 사건들을 생각하면 미리 말하는 게 옳은 선택일지도 확신할 수 없었다.
물론, 당장은 형을 실망시킬 수도 있다는 생각 때문에 마음이 무겁긴 했다.
“뭘 또 그렇게까지 미안해하냐.”
그런데 형은 내 어두워진 얼굴을 보고는 피식 웃으면서 나를 달랬다.
“숨기는 게 있는 건 알고 있었어. 전부터.”
“……!”
“너도 생각이 있을 테니까, 준비되면 말해. 형한테 못 말할 게 뭐가 있다고 그렇게 뜸을 들이는지는 모르겠다만.”
“…….”
성훈 형은 그렇게 말한 뒤, 큰 손으로 내 머리칼을 헝클어뜨리며 웃었다. 나는 멍하니 그런 형의 미소를 바라봤다.
‘역시, 이런 형을…….’
잃을 순 없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눈을 감았다.
‘징조’가 시작되는 건 앞으로 약 한 달 뒤. 몬스터들이 폭발적으로 늘어나고 모든 던전의 보스 몬스터 역시 더 강력해진다. 이 때문에 목숨을 잃는 사람도 많아졌고.
그리고 형은 이 모든 것이 심상치 않은 징조임을 깨닫고 파티원과 함께 조사를 나서기 시작한다. 그러던 도중, 몬스터 웨이브 사태가 터지고…… 그 뒤로 실종이 된다.
‘다시는 그렇게 흘러가게 내버려 두지 않을 거야.’
그러기 위해선 나도 강한 힘을 가져야 한다. 적어도 형을 따라갈 수 있는 힘을.
순간, 나는 이쪽을 바라보고 있는 정원 님과 눈이 마주쳤다. 정원 님이 희미하게 웃으면서 나에게 다가왔다.
“한솔 군은 저주를 내리는 디버퍼라고 했죠?”
“……네.”
“스킬을 공유해 줄 수 있나요?”
“네.”
“……음, 호쾌하네. 좋아요.”
보통 대다수 사람은 자신의 스킬을 공유하는 것을 꺼리지만, 나는 정원 님의 도움을 받아 성장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래서 기다렸다는 듯이 정원 님에게 스킬 트리를 보여 주었다.
[플레이어: 한솔
레벨: 80
직업: 디버퍼
등급: C
스킬:
―무거운 걸음 (위력 30/31)
―어두워진 눈동자 (위력 30/31)
―뒤집어쓴 가죽 (위력 30/31)
―? (위력 2/20)]
“흠……. 생각보다 레벨이 높네요?”
나는 그 말에 뜨끔했지만, 다행히 형은 별생각 없이 듣는 것 같았다. 그리고 다행히 정원 님도 집요하게 레벨에 관해 묻지 않았다.
“여기 아래에 있는 물음표는 뭔지 알고 있나요?”
“……아니요.”
그보다는 스킬 목록에 있는 물음표를 더 궁금해하셨다. 하지만 그 항목은 나도 모르는 일이었다. 그런 내게, 정원 님이 따뜻한 목소리로 물으셨다.
“아마 기존 스킬 트리에서 시간이 지나고 난 뒤에 이 물음표가 추가된 것 같은데, 맞나요?”
“네, 맞습니다.”
“신기하네요. 이런 경우는 딱 한 번밖에 보지 못했는데…….”
“한 번이요?”
“네. 누가 형제 아니랄까 봐, 이런 것도 똑같나 봐요?”
“……네?”
나는 그 말에 반사적으로 형을 쳐다봤고, 성훈 형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으나 정원 님이 뒤에서 마저 말을 이으셨다.
“성훈이도 물음표로만 된 게 있었는데, 그게 나중엔 가장 강력한 스킬이 되었거든요. 맞지?”
“맞아. 한솔이도 물음표가 있어?”
“응.”
“잘됐네.”
나는 둘이 주거니 받거니 하는 말을 들으면서 당황했지만, 정원 님은 내 어깨를 톡톡 두드리셨다. 긴장 풀라는 듯이 말이다.
“위력이 5 이상 되면 스킬명을 알 수 있을 겁니다. 확신할 순 없지만, 성훈이 때는 그랬어요.”
“5 이상…….”
나는 뜻밖의 힌트에 5라는 숫자를 되뇌었다. 정원 님은 그런 내게 다시금 질문을 던졌다.
“어떤 행동을 취했을 때 레벨이 올랐는지, 기억하시나요?”
“……아니요.”
정원 님은 내 표정을 보고는 달래듯 말하셨다.
“에고, 너무 절망하지 마세요. 그걸 도와주기 위해서 나 같은 사람이 있는 거니까.”
“……가, 감사합니다.”
그때였다. 성훈이 형이 그런 정원 님을 보고는 잠시 눈을 가늘게 뜨더니 갑자기 뒤에서 나를 휙 끌어당기는 게 아닌가. 하여 나는 얼결에 형의 품에 등을 기대게 됐다.
“형?”
의아한 눈으로 올려다봤는데, 형은 나를 쳐다보지 않고 정원 님을 빤히 노려보고 있었다.
“수상하게 친절하다, 너?”
정원 님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으응? 그게 무슨 소리야.”
“내 동생한텐 개수작 부리지 마.”
“뭐어? 푸하하!”
배를 잡고 웃는 정원 님을 보니 형보다 내가 더 민망해졌다. 나는 빨개진 얼굴로 형의 팔을 주먹으로 때렸다.
“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 형은?!”
“정원이, 연하 킬러야.”
“아하하하하.”
“바람둥이고.”
“너무하다, 너무해.”
“형, 진짜 미쳤어?”
나는 형의 오버에 몸 둘 바를 모르고 정원 님과의 사이에서 안절부절못하고 있었다. 하지만 형은 엄격한 표정으로 다시 한번 정원 님에게 경고했다.
“내 동생은 절대 안 돼. 명심해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