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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화 (48/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7화

형은 그렇게 말하고는 씩 웃었다. 나 역시 가능하면 희도 곁에 붙어 있고 싶었기 때문에 그 제안이 기꺼웠다. 

희도는 첫인상 때문인지 나를 이상한 사람 취급하듯 자꾸만 무시하고 있지만…… 같이 수업을 받다 보면 친해질 기회를 얻을지도 모르기에 여러모로 내게는 좋은 일이었다. 

‘최선을 다해야겠어.’

해서, 굳게 마음을 먹었다.

* * *

“오, 네가 성훈이 동생?”

“네! 안녕하세요……. 한솔이라고 합니다. 잘 부탁드려요!”

나는 바짝 긴장한 채로 ‘선생님’을 만났다. 형의 친구라는 남자분은 키도 작고 호리호리해 보였지만 어딘가 강단이 있어 보였다.

아직 유세림과 희도는 오지 않았고 나와 성훈이 형이 먼저 도착했는데, 선생님은 성훈이 형을 보자마자 형에게 다가가 팔꿈치로 배를 꾹 찌르며 말했다.

“동생이 정말 귀엽네. 왜 브라콤이 되었는지 알 것 같은데?”

“조용히 해라, 김정원.”

……브라콤?

나는 처음 듣는 단어에 형을 쳐다봤지만, 성훈 형은 별반 표정 변화 없이 내 어깨에 한 손을 올렸다.

“정원이가 하는 소리는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

“그…… 그치만.”

언제는 잘 배우라며? 

나는 어쩌라는 거냐는 눈빛을 쏘아 보냈고, 형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는 동안 정원 님은 집 안쪽의 커다란 실내 훈련장으로 우리를 안내했다.

“주로 여기서 훈련을 진행할 거야. 한솔 군은 저주 계열이라고 했지? 그럼 정신적인 부분을 단련하는 게 아주 중요해.”

“아, 네…….”

“아직은 정신을 단련한다는 말이 무슨 뜻인지 잘 감이 안 올 거야.”

그의 말이 맞았다. 본격적으로 준비된 훈련장을 보면서도 내가 여기서 뭘 할 수 있을지 의문스러웠으니까.

하지만 이어진 말에는 엄청나게 놀라고 말았다.

“내 등급이 뭐일 것 같아?”

“R등급 아니세요?”

“푸하하, 아냐. 난 A등급이야.”

“네?”

형의 파티원들은 대부분 R등급 아니었던가? 게다가 지금 백희도와 유세림도 R등급인데, 둘을 가르치는 사람이 그들보다 한 단계 낮은 등급이라는 게 가능한 얘기인 건가?

하지만 당황한 사람은 나뿐인 것 같았다. 형이 내게 장난기 하나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정원이는 우리 파티에서 나 다음가는 실력자야.”

“네?”

“후후, 못 믿을 만도 하지. 워낙 등급에 목매는 세상이니까.”

“나도 정원이한테 무예에 대해서 많이 배웠어. 정원이는 정말 걸음마를 할 때부터 무도를 수련한 무술가거든.”

그러면서 한쪽 벽에 시선을 주었는데 거기엔 각종 상장과 트로피, 인증서가 한 면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었다. 

세상이 이렇게 변하기 전, 정원 님의 인생이 담겨 있었다. 나는 그곳을 보면서 진심으로 감탄했다. 

그때, 정원 님이 내게 말했다.

“이따 유세림과 백희도가 오면 내 실력을 보여 주도록 할게. 어때?”

나는 민망함에 소리쳤다.

“못 믿는 게 아니에요!”

“알아. 그치만 확실한 게 좋잖아?”

찡긋 윙크하는 정원 님의 얼굴 어디에서도 자만이나 교만함 따위는 없었고, 나는 그가 정말 멋있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한편으로는 몹시 기대가 되었다.

‘정말로 등급을 뛰어넘을 수 있다면…….’

그야말로 내가 원하던 힘이 여기에 있다는 것이니까.

* * *

이후, 유세림과 백희도는 거의 비슷한 시간에 등장했다. 물론 둘은 인사는 물론 알은체도 안 했지만, 공기 중에는 팽팽한 기운이 맴돌고 있었다. 

나는 그 기운을 뚫고, 희도에게 먼저 인사를 건넸다.

“안녕…….”

사실 씹힐 것을 각오한 터라 약간은 자신이 없었는데, 의외로 희도는 한쪽 눈썹을 들어 올리면서도 내게 마주 대답을 해 왔다.

“어. 넌 여기 왜 있냐?”

나는 뜻밖의 대답에 기뻐서 주절주절 다 얘기를 했다.

“나도 오늘부터 너희랑 같이 수업을 받을 예정이야!”

“같이? 등급 차이가 꽤 나는 것 같은데?”

“……그건 맞지만…….”

우물쭈물하는 나를 지켜보고 있던 성훈 형은 왠지 모르게 짧은 한숨을 내쉬었고, 정원 님도 웃으면서 지켜보고 있다가 입을 여셨다.

“등급은 그렇게 중요하지 않아요. 중요한 건 실력이죠.”

그 말에 희도는 대번에 인상을 찡그렸다.

“등급이 곧 실력 아닌가?”

“아뇨. 정확히 말하면 등급은 성장 가능성의 확률일 뿐이죠. 남들보다 좀 더 높은 확률을 타고 태어난……. 물론, 그것도 재능이라 축복은 맞습니다만 제 경험상 보통은 그것만 믿고 더는 훈련하지 않아 재능을 썩히는 경우가 더 많더군요.”

“…….”

“…….”

유세림과 백희도는 잠시 침묵했다. 그리고 그 침묵을 지켜보던 정원 님은 싱긋 웃더니 한쪽에 한가득 꽂혀 있던 목검 중 하나를 뽑아 쥐신 후, 차분히 말했다.

“만약 제 말에 반박하고 싶다면 ‘대련’을 통해서 겨뤄 보는 것도 나쁘진 않겠죠. 어떻습니까?”

“좋아.”

“……좋습니다.”

둘 다 그 제안을 수락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것은…….

“그럼, 두 분이 동시에 공격해 주세요.”

“뭐?”

“…….”

“확실한 실력 차이를 보여 줘야 할 것 아닙니까. 전 자신 있습니다만.”

정원 님은 심지어 2대1 대련을 제안해 왔다.

나는 너무 놀라 말문이 막혔다. R등급 두 명을 상대하는 A등급이라고? 그것도 유세림과 백희도를?

나는 정원 님의 도발에 할 말을 잃었고, 그건 유세림과 백희도도 마찬가지인 것 같았다. 

하지만 먼저 제 무기를 꺼내 든 것은 유세림이었다. 유세림은 채찍을 바닥에 풀고 정원 님을 노려봤다.

“잘 부탁드립니다.”

하지만 말투만큼은 공손했다. 역시 겉 다르고 속 다른 놈답다고 해야 하나.

우두득, 우두득.

희도는 양옆으로 목을 꺾으면서 몸을 풀더니 천천히 검을 빼 들었다. 검을 든 희도의 기세는 조금 전의 유들유들함이 사라진 싸늘한 느낌뿐이었다. 

“나도 잘 부탁해.”

둘은 그 말과 동시에 정원 님에게 달려들었다.

정원 님은 두 사람이 지척까지 올 때까지도 미동 없이 서 있었다. 목검도 느슨하게 든 그 자세 그대로였다. 

즉 약점이 만연히 드러나 있는 상태였는데 막 유세림의 채찍과 희도의 검이 몸을 가르기 전, 목검을 가로로 들어 한 번에 공격을 모두 튕겨 냈다. 

나로서는 어떻게 움직였는지 보이지 않았으나 정원 님이 그 자세를 잡은 뒤부터는 유세림과 백희도, 둘 다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는 걸 봐서는 꽤 충격인 것 같았다.

“둘은 스타일이 완전히 상반되네요.”

그렇게 한 번의 움직임으로 분위기를 장악한 정원 님이 웃으면서 말을 이어 갔다.

“의외로 세림 씨가 파워를 추구하는 쪽이고, 희도 군이 섬세하군요. 하지만 둘 다 어설퍼요. 이때까지는 그 정도로도 괜찮았을지 모르겠지만…….”

촤악.

목검을 공중에 내리그었을 뿐인데 웅웅― 하고 공기가 찢기는 듯한 소리가 나기 시작했다. 목검 전체에 푸르스름한 검기가 덧씌워진 것도 그때부터였다.

“좀 더 강하고 좀 더 섬세하지 않으면 오늘 대련은 열 합 안에 끝날 겁니다.”

그렇게 말한 뒤, 정원님은 탁― 하고 단 한 번 발을 구르는 것으로 먼저 유세림에게 다가갔다. 유세림은 뒤늦게 채찍을 검에 휘감아 공격을 막았지만…….

지이익―.

놀랍게도 유세림이 자랑하는 힘에서 정원 님에게 밀리기 시작했다. 

유세림은 거의 서너 발자국을 더 밀린 뒤에야 얼굴이 새빨개진 채 채찍을 쥔 손을 다시 역으로 잡았는데, 그렇게 잡고 나서야 더 밀리지 않게 되었다. 무게 중심을 다르게 잡은 듯 보였다. 

정원 님이 웃으면서 말했다.

“판단은 좋았지만, 파워가 자랑이라면 좀 더 밀고 나와야 할 때도 있는 법이죠.”

“……!”

그리고 펑―! 하는 소리와 함께 유세림은 들고 있던 채찍을 놓쳤다. 

채찍은 마치 끈 떨어진 연처럼 흐늘흐늘하게 추락해 벽에 맞고 떨어졌다. 정원 님은 목검 끝으로 유세림의 목젖을 툭 건들고는 뻣뻣하게 굳은 그에게 물었다.

“한 번 죽었죠? 인정하나요?”

“……인정합니다.”

반면 희도는 유세림의 일방적인 패배를 눈앞에서 보고도 여전히 불타오르는 눈으로 정원 님을 쳐다보고 있었다. 오히려 그 광경이 그에게 호승심을 불러일으킨 것 같았다. 

나는 혹시나 희도가 다칠까 봐 염려가 되었으나 한편으로는 정원 님의 승리가 이어졌으면 하는 바람도 품었다. 모순적이게도 말이다.

“좋은 눈입니다. 투지가 있는 편이 가르치기 좋죠.”

“하아앗!”

희도는 대꾸하지 않고 기합을 넣어 빠르게 달려들었다. 정원 님은 싱긋 웃으면서 검을 세로로 세우곤 등허리를 쭉 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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