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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화 (47/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6화

희도가 3일간 생각해 보겠다고 한 이후, 나는 집에도 가지 않고 계속 이 세계에 남아 있었다.

만약 희도가 찾아왔는데 내가 없어서 어떤 변수가 생기는 걸 원치 않았기 때문이다. 기다리는 동안은 초조했지만, 한편으론 희도가 거절하면 어떻게 해야 할지도 생각해 봐야 했다.

‘우연인 척 계속 마주쳐야 할까.’

나를 기억하지 못할지라도 희도를 포기할 생각은 없으니까.

한편, 내가 이렇게 골머리를 싸매는 동안 유세림은 무서울 정도로 말이 없어졌다. 예전에 시답잖은 농담을 하던 때가 차라리 낫다 싶을 정도?

심지어 요즘엔 쳐다보기만 해도 먼저 시선을 돌리거나 나와 단둘이 있다가도 훌쩍 방을 나가 버리거나 하는 식으로 굴었다. 

‘저 새낀 또 왜 저래?’

형이 나를 보러 이후 부쩍 이러한 행동이 늘었기 때문에 나는 형이 내가 잠든 동안 놈에게 무슨 말이라도 했나 싶었다. 

억지로 말을 걸고 붙어 있으려고 구는 것보다는 훨씬 나았으나 이렇게 부자연스럽게 행동하는 것도 내키는 건 아니었기 때문에 나는 또다시 자리를 피하려던 유세림을 불렀다.

“요즘 왜 그래?”

유세림은 내 말에 나가다 말고 멈칫하며 나를 돌아봤다. 그러곤 약간의 침묵 뒤에 대꾸했다.

“뭘 말입니까.”

“자꾸 나 피하는 거 말이야.”

“눈치챈 줄은 몰랐네요.”

“내가 바보야? 그렇게 티 나게 피하는데 모를 리가.”

유세림은 그 말을 듣곤 잠시 골똘히 생각하는 것 같더니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그때까지만 해도 별생각이 없었기 때문에 나는 녀석이 내 코앞까지 다가왔음에도 아무런 방어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았다. 

그래서…….

“읍!”

녀석에게 어이없이 입술을 내주고 만 것이다. 

물론 혀가 들어오거나 하기 전에 바로 고개를 뒤로 빼고 놈의 몸을 밀어내 버렸지만, 너무 어이없고 황당한 일이 일어난지라 심장이 미친 듯이 뛰면서 말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너…… 너……!”

설마, 전처럼 또 페어 각인이라도 하겠다며 날뛰는 건 아니겠지?

내 극심한 반응에도 유세림은 태연했다. 마치 이럴 줄 알았다는 듯이 말이다. 

“이게 무슨 짓이야!”

“제가 한솔 씨를 좋아하게 된 것 같습니다.”

“……뭐?”

심지어 내 극혐 하는 반응을 보면서도 태연하게 고백까지 하는 게 아닌가. 

나는 머리가 어질어질한 한편, 유세림을 향한 경계심으로 절로 목걸이를 꽉 쥐게 되었다. 여차하면 형을 불러야겠다는 생각에서였다. 하지만 유세림은 딱 거기까지만 하고는 더는 접근하지 않았다.

“갑자기, 그게 무슨 개소리…….”

“걱정하지 마세요. 저도 한솔 씨가 제 취향이었다는 것에 충격을 받은 상태니까요.”

“뭐?”

“제가 이렇게 눈이 낮은 줄 이번에야 처음 알았다는 뜻입니다.”

나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입을 벌렸고, 유세림은 그런 나를 보면서 따박따박 말했다.

“아직 한솔 씨가 무슨 표정을 지어도 다 사랑스럽고 그런 건 아니니까 걱정 마세요. 지금 짓고 계신 표정은 좀 바보 같군요.”

“아니…….”

“그러니까, 제 입장에서도 이 감정을 빨리 정리할 생각입니다. 이해하시죠?”

“…….”

나는 그렇게 일방적으로 말하는 유세림에게서 어떤 벽을 느꼈지만, 굳이 그것을 지적하려 들진 않았다. 아니, 차라리 다행이었다. 유세림이 나에게 애정을 갈구하는 것보다는 뻔뻔스럽지만 이렇게 나오는 편이…….

“……다시는 입술 들이대지 마.”

나는 싸늘하게 일갈했고, 유세림은 이번에도 그럴 줄 알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잠시, 우리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흐르는 와중―.

탕탕탕!

방문을 두들기는 소리가 들렸다.

“뭐야, 이 분위긴?”

방문을 두들긴 사람은 희도였다. 

그리고 문을 열어 주기도 전에 먼저 문을 활짝 열고 방 안으로 성큼 들어왔다. 그러곤 들어오자마자 저렇게 말했다.

“…….”

“……아, 안녕.”

나는 어색하게나마 인사를 했고, 희도는 나를 한번 쓱 쳐다보고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래도 전처럼 화를 내거나 완전히 무시하는 기색은 아니어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또 아직도 단발머리의 희도는 익숙하지 않았지만, 가끔 이러한 행동을 보면 예전 모습이 생각이 났다. 막무가내인 듯하면서도 분위기를 환기하던 그때의 그가 말이다. 

“마음은 정하고 온 겁니까?”

그리고 유세림은 단도직입적으로 용건부터 물었다. 희도는 고개를 끄덕였다.

“파티에는 흥미가 있어. 초월자도 있다고 하니까.”

나는 기쁨을 감추지 못하고 말했다.

“그럼……!”

하지만 희도는 그런 나를 무시하고는 유세림에게 물었다.

“근데, 파티에 들어가면 초월자랑 한번 붙을 수 있는 거야?”

“뭐?”

이어진 말에 당황스러워서 순간 할 말을 잃었다. 하지만 유세림은 덤덤히 대답했다.

“당신 실력으로는 무리입니다. 아마 나보다도 한 수 아래일 텐데요.”

“호오, 붙어 보지도 않고 알 수 있다니 대단한데.”

희도는 빈정거리는 듯하다 내 눈으로는 좇을 수 없는 속도로 검을 뽑아 유세림의 턱 밑에 검을 두었다. 하지만 유세림의 채찍도 어느샌가 희도의 손목을 휘감은 채였다. 

나는 팽팽한 두 사람의 접전에 깜짝 놀라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바라만 보고 있었다. 그때, 유세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더 버티면 손목이 부러질 수도 있습니다.”

“그 전에 네 목이 먼저 날아갈걸?”

둘은 한 치도 물러서지 않았고, 나는 희도의 손목에 감긴 채찍이 신경 쓰여서 견딜 수 없었다. 그도 그럴 게 우두둑하고 무시무시한 소리가 들려왔기 때문이다. 누가 봐도 뼈를 비트는 소리였다.

“그만해! 여기서 무슨 짓이야!”

뒤늦게 말리자 유세림은 곧 채찍에서 힘을 뺀 듯 희도의 손목에 감겨 있던 채찍이 스르륵 풀어졌고, 희도도 유세림이 먼저 물러서자 더는 검을 그의 목에 들이대지 않았다. 

다만 유세림의 턱 끝에는 미세한 흉터가, 희도의 팔에는 붉은 줄이 죽죽 그어져 있었다. 정말 일촉즉발의 상황이었던 것이다.

“너, 이름이 뭐랬지?”

“……유세림입니다.”

하지만 희한하게도 그 한 번의 부딪힘 이후, 오히려 희도로서는 유세림이 호감이 된 것 같았다. 아무래도 실력을 중요시하는 편이어서 그런 걸까.

나는 유세림을 보며 구김 없이 웃는 희도를 보며 이상한 불안감이 생겼다. 왠지 이번에는 희도가 나에게 계속 관심이 없을지도 모르겠다는, 그런 막연한 불안감 말이다.

‘어째서 이번에도 유세림이 먼저…….’

원하는 사람은 나에게 큰 관심이 없고, 원치 않는 놈과는 계속 얽히게 된다.

나는 유세림에게서 눈을 떼지 않는 희도를 보면서, 나도 이 자리에 있다고 소리치고 싶은 마음을 꾹 참아 눌러야 했다.

* * *

“그래서, 백희도라는 친구도 파티에 합류하게 되었다는 거야?”

“……응.”

오랜만에 ‘이쪽’으로 넘어왔고, 내가 넘어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형도 게이트를 통해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유세림과 희도가 부딪혔다는 말만 빼고 형에게 사실대로 말했다. 희도가 형과 붙어 보고 싶어 하는 것 같다는 말도 고민 끝에 꺼냈다. 그러자 형은 너털웃음을 지으면서 “맹랑한 꼬마네.” 하며 가볍게 웃고 넘어갔다.

“상대해 주지 않을 거지?”

나는 형이 얼마나 강력한 무력을 가졌는지는 모르지만, R등급을 초월한 초월자 등급이라는 게 어느 정도인지를 알 수 없어서 조심스럽게 물었다. 기껏 찾은 희도를 폐인으로 만들거나 형에 의해 목숨을 잃게 만들 수는 없으니 말이다. 

“그럼. 아직 어린애잖아.”

형은 내가 무엇을 걱정하는지 아는 것처럼 나를 안심시켰다. 그리고, 여유가 넘쳤다. 

“희도는 좀 가다듬어야 할 게 많을 거야. 그 나이에 그 정도 등급이면 세상에 두려울 게 없을 때기도 하고…….”

그러면서 형은 나를 돌아봤다.

“그리고 너도 네 목숨 하나 건사할 정도는 되어야 하니까, 희도랑 세림이랑 같이 수업을 좀 받으면 어떨까 싶은데. 네 생각은 어때?”

“수업?”

“응. 내 친구가 남을 가르치는 데 기가 막힌 재능을 타고났거든.”

나는 그 말을 듣자 약간 찔리는 기분이 들었다. 둘과 함께 같은 수업을 듣기에 나는…….

“나는 C등급인데…….”

“등급이 중요한 수업은 아냐. 너도 충분히 따라갈 수 있어.”

형은 다정하게 말했고, 나는 그 말에 용기를 얻었다.

“그래? 그럼 해 볼래.”

“그래. 그럼 그렇게 알고 말해 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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