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5화 (46/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5화

나는 얼토당토않은 소리에 곧장 한숨을 쉬었으나, 유세림은 덤덤히 나를 내려다볼 뿐이었다. 그 투명한 시선이 부담스러웠다. 그리고 놈은 묵묵히 내 대답을 기다렸다. 바보처럼.

지금의 유세림은…… 그래, 솔직히 인정한다. 욕하고 때리고 미워하기가 힘들다. 비슷한 외모의 다른 사람 같다고 할까.

그래서 더 밉다. 그때, 나한테 왜 그랬어? 라고 물을 수 없으니까.

‘달라질 수 있는 건가.’

나는 베개를 끌어안고 돌아누우면서 고민에 빠졌다.

지금까지는 ‘유세림을 어떻게 하면 떼어 낼 수 있을까?’만 고민했다면, 이젠 만약 유세림이 달라질 수 있다면 어떻게 놈을 그 이기적이고 사람을 도구로 보는 마인드를 바꿔 놓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 생각하게 됐다.

솔직히 말하자면 아직까진 딱히 그런 기미가 보이진 않았다. 오히려 멍청해 보일 때가 더 많으니까.

‘5년간 저놈에게 대체 무슨 일이 있었던 거지?’

나는 돌아와서 처음으로 유세림에게 일어났을 일들이 궁금해졌다. 물론, 그게 유세림과 한 침대에서 잠들 정도로 궁금해졌다는 뜻은 아니었다.

유세림은 내 무언의 거절에 결국 제자리로 돌아갔고, 내 쪽을 향해 돌아눕긴 했지만 눈을 감고 잤다. 

나는 그런 놈의 얼굴을 훑다가 어느샌가 스르륵 잠이 들고 말았다.

* * *

“솔아.”

나는 익숙한 체취에 얼굴을 돌려, 눈도 뜨지 않은 채 어리광을 부리듯 품에 파고들었다. 그러자 나직한 웃음소리가 들리고, 형이 내 머리칼을 헝클이면서 물었다.

“눈은 또 왜 퉁퉁 부었어.”

“……몰라.”

“몰라? 운 건 아니고?”

“……아니―.”

……어?

나는 거기까지 말하고 나서야 형이 진짜 내 곁에 있다는 사실을 깨닫고는 눈을 번쩍 떴다. 성훈 형은 짐짓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나를 보면서 내 볼을 쭉 잡아 늘였다.

“집에 안 들어오고 여기서 자냐? 형한텐 맨날 들어오라고 잔소리하더니.”

“혀, 형?”

“그래, 인마. 형이다.”

“형이 왜 여기에 있어?”

“연락도 없이 외박하니까 걱정돼서 와 봤지.”

무슨 당연한 걸 묻냐는 듯 형은 그렇게 말하곤, 나를 대할 때와는 또 다른 표정으로 내 너머에 있는 유세림을 쳐다봤다. 

친절하지만, 틈 없는 미소. 덩달아 뒤를 바라보니 약간 긴장한 얼굴의 유세림이 눈에 들어왔다.

“세림 씨, 고생이 많아요.”

“아닙니다. 괜찮습니다.”

“특이 사항이 있으면 저한테 얘기해 달라고 했는데…… 별일 없었나요?”

순간 유세림이 괜히 희도 얘기를 나쁘게 꺼낼까 봐 몹시 긴장했는데, 유세림은 내 표정을 한번 힐끗 바라보더니 고개를 저었다.

“없었습니다.”

“……알겠습니다. 잠깐 와 본 거니까, 너무 긴장하진 마시고.”

“예.”

나는 유세림이 형 앞에선 이토록 긴장하는 이유가 뭔지 궁금했지만, 어쨌든 형이 찾아온 것 자체는 기쁜 일이었다.

그간 계속 형에게 어리광을 부려 온 탓인지, 형도 내가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 모양이다.

과거에 형은 ‘저쪽’ 일로 바빠서 ‘이쪽’에 있는 나에겐 거의 신경을 쓰지 못했고, 심지어 이쪽 세계에 자주 오지도 않았다. 그래서 생활비를 직접 벌어서 써야 했을 정도였다.

사실, 당시에 형한테 손을 벌렸다면 아마 형은 나에게 생활비를 넉넉하게 줬을 것이다. 하지만 그때 나는 형이 나에게 신경을 쓰지 않는 게 서운해서 좀 삐져 있는 상태였다.

‘형은 맨날 형 말곤 아무것도 신경 안 쓰지.’

전부터 관심 있는 게 있으면 집요하게 파고드는 성격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를 잊어버릴 정도로 저쪽 세계에 몰두하는 형의 모습에 서운함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서 오기가 들어 아르바이트를 하고, 가끔 집에 들르는 형에게 냉랭하게 굴고는 했다. 

형은 당시 그런 나에게 뭔가 말하려고 했지만, 나는 듣지 않았다. 그때를 생각하면 대체 왜 그렇게 바보처럼 굴었을까 싶다. 형은 조금만 신경 써 달라고 해도 이렇게 잘해 주는데 말이다.

그때, 상념을 끊고 성훈 형이 부드럽게 미소 지으면서 내게 말했다.

“앞으론 외박할 것 같으면 되도록 미리 말해 줘. 알았지?”

“응.”

“알겠습니다. 죄송합니다.”

“아니에요.”

근데 웃긴 건 형이 나한테 한 말에 유세림이 괜히 나서서 죄송하다며 사과를 한 것이다. 형은 날 쳐다보고 말했는데……. 괜히 제가 찔리나 보지?

나는 내 앞에서만 막무가내로 구는 유세림을 흘겨보다가 형의 팔을 끌어당겼다. 형은 순순히 내 쪽으로 귀를 기울여 주었다.

“있잖아, 형. 저번에 말했던 희도라는 애, 내가 찾았어. 형 말대로 여기 머물고 있더라.”

“그래? 잘됐네.”

하지만 잘되었다고 말하는 형의 표정은 별반 변화가 없었다. 

아니…… 솔직히 말하면 영 탐탁지 않아 하는 느낌이 들었다. 아직 희도를 보지도 않았는데 왜 그러지? 싶었지만, 나는 형에게 희도를 좋게 보이고 싶어서 안달이 난 상태였다.

“당장 형 파티에 합류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야. 실력도 대단하고…… 어…… 얼굴도 엄청 예뻐.”

“실력은…… 내가 다시 한번 봐야지.”

“그, 그치…….”

하지만 파티에 대해선 꽤 엄하게 말하는 바람에 나도 더는 어필하지 못했다. 그 분야에 대해서는 형의 관할이라는 느낌이 강하다고 해야 할까?

잠시 민망해졌지만, 어쨌든 더 말하기보다는 차라리 형이 희도를 한번 보는 게 낫긴 할 테다. 한번 보면 잊지 못할 만큼 아름다운 얼굴에 실력도 뛰어나니까. 

그러는 동안, 형은 미간을 잠시 찌푸렸다가 펴면서 나를 쳐다봤다. 그러곤 내게 직설적으로 물었다. 

“희도라는 애를 꽤 좋아하나 보다?”

“……꼭, 그런 건 아니고…….”

“흐음.”

형은 마치 내가 어린애라도 되는 양 쳐다봤지만, 나는 정말 사심만으로 형한테 희도를 추천한 건 아니었기 때문에 당당했다.

성훈 형은 그런 나를 쳐다보다가 유세림에게도 질문을 던졌다.

“세림 씨가 보기엔 어땠습니까?”

“……실력은 잘 모르겠습니다. 붙어 본 건 아니라서요.”

“그래도 엇비슷하다고 느끼긴 했나 보네요?”

“…….”

유세림은 침묵했지만, 그건 긍정에 가까웠다.

“세림 씨랑 비슷한 나이에 그런 실력을 갖추긴 힘든데……. 흐음.”

형은 고민하는 듯했으나 나는 어쩐지 형이 희도를 썩 좋아하진 않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들었다. 유세림만큼이나 말이다.

‘어째서지?’

아직 얼굴도 안 봤는데, 희도를 왜……. 

‘……혹시 내가 일어나기 전에 유세림이 먼저 희도를 안 좋게 말한 건 아닌가?’

하지만 그런 비열한 짓을 했다기엔 유세림이 너무 당황하고 있어서 뭔가 그건 아닌 것 같았다. 그냥 형이 뭔가 혼자 생각을 하는 것 같은데…….

“형은 희도가 별로야?”

그래서 나도 직설적으로 물었는데, 형은 씩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뭐!?”

나는 산뜻하게 긍정하는 형의 모습에 살짝 충격을 받고 ‘왜?’ 라고 물으려 했다. 하지만 형은 그마저도 선수를 쳤다.

“네가 너무 그 희도라는 애를 정신없이 좋아하니까, 형이 좀 질투가 나네…….”

“뭐, 뭐라는 거야!”

“뭔가 빼앗긴 기분이라고 해야 하나.”

“……아니, 그게 무슨…….”

“형은 아직 솔이랑 오래오래 같이 살고 싶은데 말이지…….”

나는 형의 그런 말에 약해서 입을 꾹 다물었고, 형은 장난인지 진심인지 모를 소리를 하고는 나를 품에 안아 토닥거리던 자세에서 몸을 일으켰다. 

“아무튼, 희도라는 애도 파티에 합류하게 되면 세림 씨가 저한테 알려 주세요.”

유세림은 이 촌극을 보면서도 웃음기 하나 없는 표정으로 대답했다.

“네.”

“그리고, 동생 잘 부탁해요.”

“알겠습니다.”

형은 그렇게만 말한 뒤, 어디로 가는지 모를 게이트를 열었다. 나는 형의 옷을 잡아끌었다.

“형은 어디 가?”

“던전 하나 깨자마자 여기로 넘어온 거라, 다시 가 봐야 할 것 같아.”

“…….”

나는 그 말에 차마 더 있다 가라는 말은 못 하고 입을 꾹 다물었다. 형은 그런 내 표정을 보며 실실 웃더니, 내 목에 목걸이를 하나 걸어 주었다.

“아. 그리고, 이거.”

“뭔데 이건?”

“네 위치를 알려 주는 목걸이야. 좌표가 찍혀 있어서 언제든 형이 찾아올 수 있으니까, 잘 끼고 다녀.”

……그냥 위치 추적기 아닌가?

순간 그런 생각을 하긴 했지만, 형의 얼굴에 워낙 걱정이 그득해 보여서 그렇게 반문하기가 미안했다.

결국, 나는 내키진 않지만 목걸이를 잘 착용했다.

[감시자의 목걸이]

……이름도 참 살벌하기 그지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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