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4화
끌어안은 희도의 품에서는 좋은 냄새가 났다. 뭐라 말할 수 없는, 살아 있는 사람에게서만 나는 좋은 냄새가.
마지막 설원에서 맡았던 피비린내가 순식간에 씻겨 내려가는 것 같았다. 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 희도의 품에 얼굴을 묻었다.
“―아!”
하지만 얼굴을 묻자마자 거칠게 뒤로 밀려났다. 바로 희도에 의해서 말이다. 순간 너무 놀라서 나오던 눈물이 쏙 들어가 버렸다.
“이봐. 갑자기 들이대면 곤란해.”
희도는 냉정하게 말한 뒤, 인상을 쓴 채 나를 밀쳐내곤 내게서 반걸음 물러섰다.
그 냉랭함을 마주한 순간 온몸에 힘이 쭉 빠진 바람에 비틀대다가 뒤로 넘어질 뻔했고, 그걸 붙잡아 준 사람은 유세림이었다. 유세림의 품이라는 걸 알자마자 어깨를 비틀어 빠져나왔지만 말이다.
“…….”
그리고 나는…… 충격에 빠졌다.
물론, 머릿속으로는 알고 있었다. 지금의 희도와 나는 ‘이번’이 첫 만남이라는 걸. 그러니까 희도가 지금의 나를 경계하는 건 당연한 일이지만…….
“희, 희도야…….”
“내 이름은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잔뜩 날이 선 채, 금방이라도 검을 뽑아 들 것 같은 자세로 경계하며 묻는 희도가 너무나도 낯설고 서러워서…….
하지만 계속 멍하니, 믿을 수 없다는 반응만 보일 때가 아니었다. 내게 있어 희도는 다시 돌아온 이유 중 하나일 정도로 소중하고, 꼭 되찾아야 할 사람이었으니까.
그래서 희도의 경계심을 누그러뜨리기 위해 억지로나마 입을 벌려, 잘 나오지 않는 목소리로 변명하듯 자기소개를 했다.
“나, 나는 한솔이라고 해. 내 형은 한성훈이고. 드, 들어 봤을 거야…….”
“……한성훈?”
그제야 희도는 엄지손가락으로 검환을 천천히 밀어 올리다가 그만두고서 나를 아래위로 훑어봤다.
나는 그 시선에 떨면서도 고개를 끄덕였다.
“응…….”
언젠가 유세림에게 형의 이름을 팔면서까지 관심을 얻어 보려 했던 기억이 오버랩 되면서 다시금 나는 스스로가 초라해지는 걸 느꼈다. 그때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한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희도는 그 말을 듣고 나서도 큰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예전, 유세림과 마찬가지로 말이다.
“근데, 나한텐 무슨 볼일이지?”
“……그, 그게……. 나는…… 그러니까…….”
볼일이 있을 리가 없다. 그저 희도를 만나고 싶어서 찾은 것뿐이니까. 희도는 어물쩍거리면서 아무 말도 못 하는 나를 보고 인상을 확 구겼다.
“뭐 하자는 거야.”
나는 그 날카로운 말에 다시금 얼어붙었다.
그런데 이런 나를 도와준 사람은 놀랍게도 유세림이었다. 유세림은 나에게 질문하듯이 희도에게 물었다.
“한성훈 님의 파티에 참가할 의향이 있는지 물으러 오신 것 아니었습니까?”
그 말에 희도가 조금 놀랍다는 듯이 우리를 쳐다봤다.
“한성훈 파티에, 나를?”
사실 금시초문이고 그럴 생각을 한 적도 없지만, 지금 상황을 모면하는 동시에 희도와 접점을 만들 수 있는 절호의 기회이긴 한지라 딱딱하게 굳은 고개를 애써 움직였다.
“……마, 맞아.”
“흠. 바로 대답해야 하는 건가?”
“아, 아니……. 며칠 정도는 고민해 봐도…….”
나는 더듬거리면서 말했고, 희도는 깊게 골이 팬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갑자기 휙― 등을 돌려 계단으로 올라가면서 말했다.
“그럼 삼 일 안에 대답을 주도록 하지. 삼 일 뒤에 보자고. 그땐 갑자기 끌어안는 개수작은 집어치우고.”
“…….”
나는 멍하니 계단을 타고 올라가는 희도를 보다가 너무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빨개졌다.
‘멍청이……. 대체 무슨 자신감으로 희도한테 안기려고 했던 거야?’
아무리 그리웠다지만, 보고 싶었다지만 이건 나만 아는 기억이고 감정인데. 각오했으면서도 희도의 얼굴을 보자마자 무너져내린 꼴이라니.
나는 결국 새빨개진 얼굴로 내 방에 올라갔다. 유세림은 조용히 내 뒤를 따랐다. 하지만 방에 와서도 조용했던 건 아니었다.
“그 남자와는 무슨 사이입니까?”
“…….”
대답할 수 없는 질문을 건네는 유세림의 얼굴은 예전의 트라우마를 건드렸다.
“하아…….”
나는 대답하지 않고, 내 침대에 앉아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자 유세림은 내가 저에게 대답해 줄 생각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는지 비아냥거리기 시작했다.
“난 한솔 씨가 무슨 병이라도 생긴 줄 알았습니다. 일면식도 없는 남자한테 정신없이 달려들길래 말입니다.”
“…….”
“그래 놓곤 거절당할 줄도 몰랐다는 얼굴인 게 신기하네요.”
“……그만해.”
“그만해야 하는 건 한솔 씨 아닙니까? 당연한 결과라는 건 본인이 더 잘 알 텐데, 왜 계속 이러고 있는 거죠?”
“…….”
“설령 무슨 사이였다 한들, 그 남자는 한솔 씨를 기억도 못 하는 것 같은데요.”
나는 그 날카로운 말에 눈물이 났다.
사실, 어쩌면 내가 사랑했던 백희도는 1회차에서 비참한 죽음을 맞이하고 끝나 버린 게 맞을지도 모른다. 내가 사랑한 사람은 죽었고, 지금의 희도는 나와는 상관없는 백희도인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생각하면 정말 미쳐 버릴 것 같아서 애써 생각하지 않은 것뿐이다. 그리고 이 사실을 다른 사람도 아닌 유세림이 지적하는 건…… 너무 잔인했다.
‘행복할 수 있었던 꿈을 깬 건 너였잖아.’
그럼 나는 대체 누구를 원망하고, 누구를 사랑하며 살아가야 하는 걸까.
유세림은 뭔가 더 말하려고 했으나, 내가 그를 쏘아보자 달싹이던 입을 다물었다. 나는 그에게 말했다.
“너보다 내가 더 잘 알아. 그러니까 아는 척 그만하고, 나한테 신경 꺼.”
그 말에 유세림은 내게 한 걸음 다가왔다.
“신경 끄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렇게 울고 있으면…….”
그 말과 동시에 유세림은 품에서 손수건을 꺼냈고, 나는 그것을 못 본 척 눈을 감았다.
하지만 유세림은 질리게도 그 손수건으로 내 눈가를 닦아 주었다. 원치 않는 친절, 이전과는 다른 관심, 조심스러운 행동이 나를 화나게 한다.
마치 이것이 지금의 현실이라는 걸 보여 주는 것 같아서. 나보고 이젠 여기에 적응하라고, 누군가 조롱하는 것만 같아서.
“치워.”
“울지 마세요.”
“…….”
왜 너 따위가 나를 위로하려 드는 걸까.
나는 서툰 위로에 화도 내지 못하고 침묵했다. 그럴 기운이 없기도 했다. 유세림은 손수건이 다 젖도록 내 눈물을 닦다가, 나를 살며시 끌어당겼다.
“…….”
지독하게 싫었지만, 희도에게 밀쳐진 아까의 상황이 자꾸만 떠올라서 오늘은 그 누구의 품이라도 빌리고 싶었다.
나는 결국, 유세림의 품을 더럽혔다.
* * *
유세림은 한솔의 뜨거운 얼굴을 품에 가두고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그의 머리를 쓰다듬지도, 어깨를 쓸어 보지도, 혹은 그 눈가에 입술을 대어 보지도 않았다. 모두 머리를 스쳐 지나간 일이긴 하나 해선 안 될 일이기도 했다.
‘지금도 지나쳐.’
자신의 친절이 지나치다. 어제도 거리를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유세림이 원한 건 한성훈의 파티에 합류하는 것이지, 이런 게 아니었으니까.
한성훈의 동생에게 적당한 호감을 사고 편안하게 경호 임무를 마치고는 초월자급 랭커, 한성훈의 파티에 합류하는 것. 제 목표는 그것뿐이었는데.
어째서일까. 한솔이 순순히 얼굴을 품에 기대 오자 손이 떨릴 만큼 기쁘고 그가 가여웠다.
‘내가 원하는 건…….’
유세림은 곧 얼굴을 뗀 한솔을 가만히 쳐다봤다. 자신이 원하는 것이 그가 아님을 확인 받고 싶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한솔은 눈가가 붉어진 채로 가만히 눈을 감고는 잠긴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이제 됐어.”
평소의 차갑고 멸시하는 시선 없이 그렇게 말하는 건 반칙이다. 마치 항복하는 것 같아서, 가엾게 여길 수밖에 없지 않은가.
팽팽하던 긴장은 결국 끊어졌고, 한솔은 제게 틈을 내주고 말았다. 그러면서도 끝까지 고맙다고는 말하지 않는다. 완전한 항복은 아닌 것이다. 빠르면 내일, 한솔은 또 저를 밀쳐 낼 것이며 언제 그랬냐는 듯 화를 내고 결국엔 열 받게 만들겠지.
유세림은 그것을 깨달았다.
그래서 다시 또 물었다. 스스로에게.
‘이 감정은 무엇일까.’
이 아쉬움은. 그를 끝까지 손에 쥐지 못하리라는 것을 예감하면서도 어째서 손을 움켜쥐는 것일까.
하여 유세림은 거절당할 것을 알면서도 물었다.
“오늘은 저와 같이 자는 게 어떻겠습니까?”
“……뭐?”
“같은 침대에서요. 이렇게 계속 울면 탈수 증상이 올 수도 있지 않습니까.”
“하아…….”
역시나 한솔은 유세림의 말을 듣고 한숨을 내쉬었다. 언제 울었냐는 양 표정을 굳히고, 눈물마저 쏙 들어간 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