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2화
어쨌든 그렇게 우리 파티는 출발했다. 눈 두더지들의 서식지를 피해서 산을 넘기로 한 것이다. 그렇게 결정하게 된 이유는 마성두 씨의 말 때문이었다.
“눈 두더지들은 워낙 개체 수가 많은 데다 무리 지어 사람을 공격하는 성향이 있어서 이 인원만으로 돌파하기는 무립니다.”
마성두 씨는 퍽 노련해 보이는 A등급의 전사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대부분 노련해 보이고 등급이 높은 사람의 말을 따르기 마련이었다.
하여 나도 마성두 씨의 말이 틀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다만…….
‘산에도 분명 눈 두더지 못지않은 몬스터가 있을 텐데…….’
산에서 출몰하는 몬스터에 대해서는 입을 꾹 다물고 있는 게 약간 마음에 걸린다고 해야 하나.
‘산 쪽으로 가면 분명 눈 오우거나 눈 오크들이 많을 거야.’
눈 두더지보다는 낫다는 생각인 걸까?
확실히 땅 아래로 다니면서 눈과 비슷한 흰색인 데다가 발밑을 무너뜨리는 눈 두더지의 공격보단 평범하게 돌아다니는 눈 오크가 훨씬 상대하기 편하긴 했다.
하지만 눈 오우거는 파워가 엄청나서, 유세림 정도의 실력자가 아니면 파티에 입히는 피해가 상당할 것임을 나는 알고 있었다.
‘눈 오우거가 절대로 나타나지 않으리라는 보장도 없잖아?’
나는 유세림을 믿지 않지만, 놈이 형의 파티에 들어가고 싶어 하는 건 알고 있었으므로 놈이 여기서 나를 배신하거나 두고 가지는 않을 거라는 것쯤은 알았다. 때문에 놈을 전력에 포함해서 계산해 보면, 눈 오우거 정도는 간단히 해치울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문제는 다른 파티원이 유세림의 실력을 아직 모른다는 점이다.
‘다른 방법이 있는 건가?’
그런 생각을 하던 때였다. 갑자기 마성두 씨가 괴상한 냄새가 폴폴 풍기는 주머니를 들고 우리를 향해 다가왔다.
“좀 역겨운 냄새가 나긴 하겠지만, 이걸 옷에 바르세요.”
“이게 뭐죠?”
“수컷 고르고스의 오줌입니다. 비싸게 주고 샀죠. 그래도 여러분들께 값은 안 받겠습니다.”
“네!?”
갑자기 마성두 씨가 옷에 바르라면서 몬스터의 오줌을 가지고 온 것이다. 나는 충격에 빠졌다.
“이, 이걸 왜 바르는 건데요?”
“이걸 바르면 눈 오우거가 접근을 못 합니다. 이 근처에 있는 던전의 왕이 고르고스, 설인이거든요.”
나는 충격에 빠졌고, 유세림은 단호히 거절했다.
“싫습니다.”
단칼에 내뱉는 거절에 잠시 벙쪄 있던 마성두 씨가 화를 벌컥 냈다.
“아니, 저는 뭐 좋아서 바르는 줄 압니까? 이걸 발라야 눈 오우거를 포함한 다른 몬스터들이 저희 냄새를 못 맡아서 공격을 안 한다니까요!”
“절대로 싫습니다.”
“어허, 거참!”
“…….”
솔직히 말해서 나도 몬스터 오줌 따위를 옷에라도 바르고 싶지 않았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게다가 몬스터의 오줌으로 다른 몬스터의 접근을 물리칠 수 있다니? 전 생애를 통틀어서 처음 듣는 말이었기 때문에 더 신뢰가 가지 않았다.
‘저런 좋은 게 있으면 저희끼리 나눠서 바르고, 산을 오르면 됐던 거 아닌가? 왜 굳이 파티를 꾸려서 올라가려고 한 거지?’
나는 일순 머릿속을 스치는 생각에 마성두 씨를 의심하면서, 처음으로 유세림과 한편이 되어 고개를 저었다.
“내키지 않네요. 저희는 바르지 않고 가겠습니다.”
“그러다 당신들 냄새를 맡고 눈 오우거 같은 게 나타나면 어쩌려고 그러시오?”
“그땐…… 저희가 책임지겠습니다.”
나는 그렇게 말하곤 다시 한번 단호하게 거절했다. 눈 오우거 정도는 유세림이 간단하게 처리할 테니까.
결국, 우리의 단호한 고집을 꺾지 못한 마성두 씨는 굉장히 화가 난 얼굴로 제자리로 돌아갔다. 그리고 다른 파티원은 그 역겨운 오줌을 제 옷에 차례대로 바르기 시작했다. 살짝만 맡아도 토할 것 같은데 말이다.
“굳이 우리가 안 발라도 이 정도 냄새면 사방에서 달려들 생각도 못 할 것 같습니다.”
“……조용히 말해.”
나는 눈치 없는 유세림의 옆구리를 퍽! 하고 때리고는 최대한 코가 아닌 입으로 숨을 쉬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 * *
처음 산을 오르기 시작했을 땐, 정말 쥐새끼 한 마리도 우리에게 다가오지 않았다. 마성두 씨는 한 시간 정도 지나고 나자, 마치 우리 들으라는 듯이 큰소리로 이렇게 말했다.
“조금만 참으면 곧 정상입니다. 몇 분 빼곤 다들 고생하셨습니다.”
‘단단히 삐졌구만.’
하지만 정말 그의 말대로 쥐새끼 한 마리 접근하지 않은 건 사실이었다.
나는 새로운 지식을 하나 얻었다는 생각으로, 나중에 여차하면 몸에 몬스터 오줌을 발라야 할 수도 있겠다…… 뭐, 이런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런데.
쿵, 쿵, 쿵―!
뭔가 심상치 않은 소리가 들리고, 나무가 한두 그루씩 쓰러지면서 이곳을 향해 돌진해 오는 거대한 몬스터의 소리가 들리는 것이 아닌가.
“어, 어떻게 된 거지!?”
“당신들! 지금이라도 빨리 이걸 발라요!”
“크기를 봐선 눈 오우거보다 더 큰 것 같은데?”
다들 놀라서 우왕좌왕하는 와중, 드디어 우리 앞에 있던 마지막 나무가 쿵! 하고 쓰러지며 모습을 드러낸 것은…… 설인이었다!
“고, 고르고스!?”
“고르고스가 왜 여기에!”
다들 패닉에 빠진 사이, 침착하게 허리에 맨 채찍을 풀며 유세림이 말했다.
“고르고스 암컷이군요. 수컷의 오줌 냄새를 맡고, 흥분해서 쫓아온 것 같습니다.”
“뭐…….”
[그워어어어어―!]
유세림의 말에 마성두 씨의 안색은 창백해졌고, 다른 파티원은 그를 바라봤다. 원망의 기색이 느껴지는 시선들이었다.
“나, 나는…….”
마성두 씨는 할 말을 잃은 채 당황하고 있었다.
“일단 유세림이 나섰으니……. 보조 부탁드려요.”
그래서 나는 우선 패닉에 빠진 파티원에게 차갑게 말했고, 그들은 그제야 무기를 꺼내 들곤 유세림 근처로 가서 자리를 잡았다.
나는 우선 직업 스킬을 써 봤다.
“[어두워진 눈동자]!”
[실패.]
[그워워어어어―!]
실패하리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설마하니 실패하자마자 내 쪽으로 돌진할 줄은 몰랐다. 꽤 호전적인 몬스터였다.
유세림은 내게 어그로가 끌리자마자 채찍으로 고르고스의 양팔을 붙들고 힘겨루기를 했다. 그리고, 그 결과는…….
“우, 우와아…….”
“사, 사람이 어떻게 설인을 끌고 갈 수 있는 거지?”
“…….”
스윽, 스윽.
고르고스가 아무리 발버둥을 친들 유세림이 끄는 대로 끌려가기 시작한 것이다. 유세림은 그렇게 충분히, 나와 파티원에게서 고르고스를 떨어뜨린 뒤에 스킬을 썼다.
“[집행].”
보라색 섬광이 눈을 아프게 찌르고 난 뒤, 남은 것은 하체뿐인 고르고스였다.
털썩―.
반쪽만 남은 고르고스의 시체가 흰 눈밭에 쓰러지며 푸른색 피가 눈밭 위를 적셨고, 사람들은 멍하니 그 광경을 보다가 유세림이 채찍을 거두어들이자 크게 움찔하며 유세림을 쳐다봤다. 다들 그제야 유세림이 진짜 R등급이라는 것을 인지한 것 같았다.
그리고 마성두 씨의 안색은 창백을 넘어 시체처럼 하얗게 질려 있었다.
“제, 제가 R등급이신 걸 모르고 실례를…….”
“괜찮습니다.”
유세림은 뭔가 더 말하려는 마성두 씨에게 간단히 말한 뒤 나에게 다가왔고…… 갑자기 내게 잔소리를 했다.
“한솔 씨.”
“뭐?”
“갑자기 그렇게 어그로를 끄시면 어떡합니까? 마음이 철렁했다고요.”
“뭐래.”
나는 유세림의 말을 건성으로 듣다가 나와 놈을 묘한 표정으로 보고 있는 파티원의 시선을 느꼈다. 그래서 일단 유세림이 뭔가 더 말하려는 것을 재빨리 막았다.
“나중에 말해, 나중에.”
“…….”
“자, 빨리 이동하죠.”
나는 박수까지 치면서 빨리 이동하자고 닦달했고, 사람들은 이제 우리의 말에 순순히 따라 주었다.
물론 여전히 오줌 냄새는 폴폴 풍겼지만, 다행히 다른 고르고스는 더 나타나지 않았다. 고르고스의 피 냄새가 섞여서일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 * *
“도착했다.”
이후 드디어 약 세 시간 반 동안의 산행을 마치고서야 우리는 데보라 마을에 입성할 수 있었다.
데보라 마을은 주변에 던전이 많고, 분지로 되어 있는 구조라 건물은 물론 상주하는 인구수도 많아서 꽤 큰 규모의 마을이었다.
나도 이전 생애에 데보라 마을에 들른 적이 있는데, 왠지 그때보다 지금이 더 사람도 많고 건물도 많아 보였다.
‘몬스터 침공 전이라서 그런가…….’
나는 평화롭게 왁자지껄 떠들며 밝은 기색으로 마을을 오가는 사람들을 보면서 마음 한편이 무거워졌다. 지금 나에게는 희도를 찾는 것 말고도 형을 잃지 않아야 한다는 목표 역시 생겼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