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1화 (42/104)

2회차 회귀자는 살고 싶다

41화

“[결속].”

유세림은 채찍으로 능숙하게 설인 오우거를 붙잡아 목을 졸랐는데, 어쩐지 나는 그 장면을 오래 바라보기가 힘들었다. 손발이 벌벌 떨렸기 때문이다.

‘……정신 차려.’

지금의 유세림은 그때의 유세림이 아니다. 그걸 알면서도 뭔가 오버랩 되는 장면 때문에 결국 고개를 돌리고 말았다.

우드득―!

나는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를 듣고 나서야 주먹을 꽉 쥔 채로 유세림을 돌아볼 수 있었다.

유세림은 설인 오우거를 간단히 죽인 후에 채찍을 회수하고 있었는데, 그러다가 나와 눈이 마주치자 눈을 깜빡였다. 이어 아무렇지도 않게 물었다.

“무서우셨습니까?”

“뭐?”

“안색이 하얗게 질려서요.”

“…….”

나는 할 말이 없어서 잠시 아무말도 꺼내지 못했다.

그러자 유세림이 어떤 행동을 실행에 옮겼는데, 이건 아무리 나라도 예상하지 못했다. 놈은 성큼성큼 다가오더니 갑자기 나를 꽉 끌어안았다. 그러고는 내 등을 토닥토닥 다독이는 게 아닌가.

“괜찮습니다. 제가 있는 한, 한솔 씨는 안전합니다.”

“뭐, 뭐 하는 짓이야!”

“이러면 다들 안심한다고 책에서 읽었습니다.”

“그딴 책 좀 그만 봐, 이 또라이야!”

유세림은 내가 벗어나려고 애를 써도 한참을 그렇게 안고 있더니, 결국 놈의 옆구리를 주먹으로 때리자 그제야 나를 놓아줬다. 그것도 아파서 놔줬다기보다는 놔줄 타이밍에 맞춰 내가 놈을 때렸다는 게 맞아 보였다.

열 받는 건 놈은 갈비뼈를 얻어맞았는데도 아픈 기색일랑 없다는 것이다. 등급이 높아지면 육체적인 능력도 올라간다는 건 상식이지만…….

“다시는! 내 허락 없이 내 몸에 손대지 마. 알았어?”

“노력해 보겠습니다.”

“노력은 개뿔. 한 번만 더 허락 없이 껴안거나 더듬으면, 형한테 말해서 너 같은 치한이랑은 같이 못 다니겠다고 할 거야.”

“그건 곤란합니다, 한솔 씨.”

“아오, 씨발!”

뭐라고 말한들 말이 안 통하는 상대에게 발악하는 것은 얼마나 짜증 나는 일인가.

나는 한숨을 내쉬다가 그사이 다가오는 놈의 정강이에 한 번 더 발길질해 봤다. 그러자 유세림은 미동도 없이 걷어차이고는 나와 눈이 마주치자 “아프네요.”라고 중얼거렸다. 하나도 아프지 않은 얼굴로 말이다.

나는 지쳐서 놈에게 타협안을 내놨다.

“됐어. 일정 거리 이상 다가오지 마. 그걸로 타협하자고.”

하지만 유세림은 원칙 주의자처럼 굴었다.

“곤란합니다. 습격이 있으면 바로 대응해야 하거든요.”

“무슨 습격이 있다고…….”

“지금처럼요.”

“뭐?”

말이 끝나기 무섭게 유세림은 나를 다시 제 품으로 끌어당겼고, 내가 반응하기도 전에 서 있던 자리는 갑자기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 속에서 몬스터의 울부짖음이 들려왔다.

[크르르르릉―.]

“하얀 눈 두더지인 것 같습니다. 다 죽일 순 있지만, 한솔 님이 무서워할 것 같으니…….”

“무슨……!”

“일단 눈 두더지 서식지를 벗어나도록 하죠. 제 목에 팔을 둘러 주세요.”

물론, 나는 놈의 목에 팔을 두르는 미친 짓은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때문에 폐가 터질 것처럼 유세림의 품에 강하게 끌어안겨져 결국 눈밭 위를 달리게 되었다.

유세림은 온통 하얀 눈밭일 뿐인데 어디가 함정이고 어디가 밟을 수 있는 길인지 다 아는 것처럼 주저 없이 발을 내디뎠다. 

그렇게 해서 약 20분 동안 뛴 결과, 우리는 하얀 눈 두더지 서식지를 빠져나올 수 있었다. 그 대신, 데보라 마을로 가는 길에서는 벗어나고야 말았다.

“몬스터를 피해 산을 오르거나 파티를 구해 여럿이서 다니는 게 좋을 것 같군요. 파티원이 많으면 덤비지 않는 몬스터들도 있으니까요.”

“…….”

유세림 따위에게 고맙다고 말해도 좋은지를 고민하는 사이에 놈은 그렇게 말을 붙여 왔고, 마치 선택하라는 듯이 쳐다봤다.

나로서는 이대로 유세림과 단둘이 움직이는 것보다는 차라리 모르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파티를 구해 움직이는 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래서 유세림에게 퉁명스럽게 물었다.

“파티는 어디서 구하는데?”

“파티 매칭으로 구하면 됩니다.”

“파티 매칭?”

“네. 한성훈 님이 만드신 프로그램인데, 아티팩트만 있으면 ‘파티 매칭’ 시스템에 접속해서 파티를 구하거나 거래를 원하는 사람들을 한눈에 리스트 업하여 볼 수 있습니다.”

……형이 이런 걸 만들었다고?

나는 유세림의 말에 순간 멍해졌다. 그간 형의 업적은 수없이 들었지만, 이런 것까지 만들었을 줄은 상상도 못 했기 때문이다.

어쨌든 유세림의 말대로 우리는 ‘파티 매칭’이라는 프로그램에 접속했고, [데보라 마을에 가실 분]이라는 글을 올렸다.

그러자 놀랍게도 B등급 세 명, A등급 두 명의 총 다섯 명 각성자가 우리 글을 보고 [참여하고 싶습니다]라는 연락을 해 왔다.

“어떻게 할까요?”

“뭘?”

“파티를 받아 줄까요?”

“…….”

나는 공손히 묻는 유세림을 보다가 불쑥 물었다.

“너는 어떻게 하는 게 좋을 것 같은데?”

“저는 한솔 씨와 둘이 움직이는 게 좋습니다.”

“왜?”

“사람들이 많으면 낯을 좀 가리거든요.”

하…….

나는 어이가 없는 유세림의 뻔뻔한 대답에 당장 말했다.

“그럼 빨리 다섯 명을 받아서 파티로 가자.”

“……알겠습니다.”

유세림은 조금 풀 죽은 듯이 대답했지만, 나는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 * *

그로부터 한 시간 뒤. 

만나기로 한 사람들이 전부 도착했다. 그들도 눈 두더지 때문에 고생하다가 아예 산을 타고 오르는 길을 선택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산을 타고 오르는 것도 상당히 고행이라, 사람이 많을수록 좋을 것 같다는 생각에 데보라 마을로 가는 파티를 구하고 있었다면서 상황을 설명했다.

A등급 각성자이자 이 파티의 리더인 마성두 씨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저어, 그런데 두분은 등급이 어떻게 되십니까?”

나는 등급 얘기만 나오면 스트레스를 받았지만, 그래도 말을 안 할 수는 없었기에 쭈뼛거리며 입을 열었다.

“C등급입니다.”

“아, 아…….”

내 대답에 마성두 씨는 알 것 같다는 표정으로 바뀌면서 유세림을 쳐다봤다. 마치 C등급이라 어쩔 수 없이 파티를 구한 것처럼 보이는 모양이었다.

나는 대번에 표정이 바뀐 마성두에게 약간 짜증이 났지만, 그래도 유세림이 R등급이니 놈한테는 뭐라 말을 안 하겠지 싶었다. 

그런데 유세림이 입을 열지 않았다.

“…….”

“……저기, 그쪽…… 분은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

나는 유세림이 계속 대꾸도 안 하고 덤덤히 서 있는 모습을 보면서 아까 놈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사람들이 많으면 낯을 좀 가리거든요.’

‘미친놈!’

나는 결국 어쩔 수 없이 유세림을 대신해 놈의 등급을 말했다.

“저, 그…… 이 친구는 R등급입니다.”

“네? R등급이라구요? R등급이 왜 C등급이랑……. 아, 아닙니다. 흠흠…….”

“…….”

하지만 본인이 아니라 내가 말을 해서 그런지 썩 믿는 느낌은 아니었다. 

그런데 유세림은 이런 와중에도 자신의 등급을 제대로 설명하기는커녕 내 쪽으로 몸을 기울여서 속삭이더니…….

“저희 이제 친구입니까?”

라는, 개소리를 했다.

“뭐?”

“방금 절 가리키면서 친구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그렇게 말하는 놈의 얼굴이 어쩐지 밝아 보였다. 나는 이 모자란 질문을 듣자마자 최대한 경멸하는 표정을 지으며 놈을 노려봤다.

“……절대 아니니까, 꿈도 꾸지 마세요.”

“…….”

그리고 우리의 기묘한 대화를 본의 아니게 듣게 된 다른 사람들 역시 묘한 표정이 되어 있었다. 특히 유세림을 보는 시선은 절대 R등급을 보는 선망의 시선들이 아니었다. 

나는 유세림이 이토록 바보 취급을 받는 상황이 어이없기도 하고 신기하기도 해서 놈을 쳐다봤지만, 녀석은 살짝 기운이 없어 보이긴 하나 꿋꿋하게 내 곁을 지키고 서 있었다. 남의 시선 따위는 상관없다는 듯이 말이다.

‘원래 이런 놈이긴 했지…….’

어째서 쪽팔림은 나의 몫일까? 

나는 괜히 놈과의 거리를 벌리고 싶어 한 발짝 옆으로 갔다가 두 발짝 더 다가온 놈 때문에 한숨을 내쉬었다.

“자, 그럼……. C등급하고 R등급? 분 두 분은 후미를 맡아 주시면 좋겠습니다.”

“……네.”

그리고 A등급의 마성두 씨는 능숙하게 위치 배분을 끝내고 우리한테는 가장 끝자리를 주었다.

끝자리는 보통 가장 약한 사람들이 맡는 자리였다. 마성두 씨 나름대로 배려해 준 것 같아서 나는 머쓱하기도 하고 유세림이 쪽팔리기도 하여 얌전히 받아들였다.

‘하여튼, 도움이 되는 척하면서 안 된다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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