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40화 (41/104)

40화

“형은 걔가…… 어떤 새낀지 몰라서 그래!”

“세림이 말로는 너랑 처음 만났다던데, 오늘.”

“…….”

나는 여기서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이 시간대’에서는 처음 만난 게 맞긴 하니까. 하지만…….

‘형은 지금 그 펜던트를 가지고 있을까? 또, 펜던트의 능력을 알고 있을까?’

왠지 모르고 있을 것 같다는 게 내 추측이었다. 그래서 나는 형에게 떠보듯 물었다.

“형. 만약에, 시간을…….”

하지만 형은 그런 내 말을 끊고 나에게 말했다.

“맞다. 그래서, 세림이가 너랑 한 달 안에 친해져 보겠대.”

“……뭐?”

“자기한테 시간을 달라던데? 그래서 난 오케이 했다. 혹시나 그 녀석이 나쁜 짓하면, 형한테 바로 이르고.”

“……무슨…….”

“정 싫으면 얼씬도 못하게 할게. 그런데 난 네가 ‘저쪽’으로 넘어갈 때 세림이랑 같이 넘어가면 넘어가게 해 줄 거고, 아니면 안 된다고 할 거야. 어떻게 할래?”

나는 이 말도 안 되는 폭거에 곧장 대들었으나 형은 단호했다. 

C등급인 나와 R등급인 유세림. 

형은 애초부터 나를 보호하기 위해서 유세림을 꼬드긴 거나 마찬가지였던 것이다. 유세림은 형의 파티에 들어오고 싶으니까 C등급인 내 경호를 맡겠다고 나선 거고.

나는 이 판이 어떻게 짜여졌는지를 눈치채자마자 형에게 절대로 싫다고 말했지만…….

“세림이가 집에 놀러 오는 것까지는 걔 맘 아니냐? 그리고, 엄연히 말하면 여긴 내 집인데.”

“지, 진짜 치사한 거 아니야!?”

“너도 첫인상이 별로라고 사람을 그렇게 매도하면 안 돼. 사람이라는 건 겪어 봐야 아는 거야.”

젠장! 겪다 못해 별 개 같은 꼴 다 당해 봤다니까! 나는 차마 형에게 소리를 지르지 않기 위해서 온 힘을 다해 주먹을 꽉 쥐었다. 

그때, 형이 내게 말했다.

“그리고 백희도 말이야.”

“……!”

“각성한 후로 계속 ‘저쪽’에 있다고 하더라.”

“……!”

“그래서 행방은 ‘저쪽’에서만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하대. 어떡할래? ‘저쪽’으로 넘어가서 세림이랑 백희도를 찾을 거야, 아니면 여기서 그냥 들려주는 소식이나 기다릴 거야?”

“…….”

결국, 나는 형이 던진 미끼를 물 수밖에 없었다.

* * *.

“잘 부탁드립니다.”

“…….”

유세림은 특유의 밋밋한 얼굴로 내게 인사를 건넸다. 당연히 나는 일부러 놈의 인사를 씹었다.

‘이렇게 쌀쌀맞게 구는데 갑자기 또 자백제 같은 걸 처먹고 와선 나를 좋아한다느니 하는 개소리를 하진 않겠지.’

나는 유세림이 속으로는 나를 싫어하게 만들 거라고 굳게 다짐하면서 놈이 뭘 싫어하는지를 곰곰이 따져 봤다. 

‘같은 파티였을 때 민폐를 끼치거나 제 지시를 제대로 따르지 않으면 분위기가 차가워졌었지…….’

좋다. 그럼 앞으로 유세림 말을 제대로 따르지 않거나 하는 말마다 건성으로 들어서 놈에게 스트레스를 주는 게 좋을 것 같다. 

나는 그렇게 결심하고 일명 ‘청개구리’ 작전을 시행하기로 했다. 물론, 유세림이 무슨 말을 하든 개무시하는 걸 전제로 깔아 두는 것 역시 잊지 않았다. 

안하무인에 제멋대로 구는 C등급 각성자를 참아 줘야 하는 처지에 놓인 R등급 각성자가 그 C등급 각성자를 좋아해서 억지로 페어를 맺을 확률은? 제로에 가깝지. 다시는 그런 일을 당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그런데 유세림은 내가 인사를 씹었음에도 나에게 스스럼없이 가까이 다가와선 금으로 된 팔찌 아티팩트를 상자째 건네주었다.

“뭡니까?”

“체력 회복이 걸려 있는 아티팩트인데, 오다가…… 주웠습니다.”

“네?”

아니, 떡하니 판매 상점 정품 인증 도장이 찍혀 있는데 무슨 오다가 주워? 뭔 개소리야?

하지만 유세림은 꿋꿋하게 먼 산을 보면서 내가 자신이 준 아티팩트를 착용하기를 기다렸다. 물론, 나는 놈이 준 걸 착용할 마음이 없었다. 꺼림칙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유세림이 준 아티팩트를 착용하는 대신, 소름이 끼쳤지만 놈의 손목을 붙잡았다. 움찔하고 어깨가 튀는 유세림의 깨끗한 손목에 나는 그 팔찌를 끼워 주었다.

“오다 주운 팔찌 같은 걸 내가 왜 낍니까? 이딴 건 그쪽한테나 잘 어울리네요.”

“…….”

“전 형이 준 목걸이가 있어서 필요 없어요. 솔직히 유세림 씨가 주는 건 다 기분 나쁠 뿐이니까, 앞으로도 뭐든 줄 생각 마세요.”

“……네.”

하지만 의아하게도 유세림은 내 날카로운 말에 큰 신경을 쓰는 기색이 아니었다. 내가 아는 놈이라면 벌써 싸늘한 기색을 내보이고도 남을 텐데 말이다.

볼과 귀 끝이 붉어진 놈을 보면서 나는 왠지 기분이 스멀스멀 나빠지기 시작했다. 이상하고 알고 싶지 않은 뭔가가 내 주변을 맴도는 느낌이랄까.

‘오다 주웠다는 뭔…….’

나는 놈이 한 말을 계속 곱씹으며 비아냥거리다가 종내엔 유세림의 머리통을 쪼개서 대체 무슨 생각을 하는지 확인해 보고 싶다는 생각에까지 이르렀다.

물론, 그런 짓을 할 가치도 없는 인간이라고 생각하며 그만뒀지만 말이다.

* * *

이후, 나는 ‘저쪽’으로 가는 게이트를 열고 이번에도 설원을 밟았다. 

유세림도 곧 내 곁으로 다가왔다. 놈은 설원에 서 있으니 꼭 주변과 하나가 된 듯 제대로 보이지 않았다. 밤이나 되어야 눈과 함께 도드라져 보일 것 같달까.

다만 자색의 눈동자만큼은 어느 순간일지라도 튀어서 지금은 눈만 동동 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런 느낌으로 나를 가만히 쳐다보고 있었다. 

나는 쳐다보지 말라고 할까 하다가 너무 예민하게 구는 것도 지는 듯한 기분이 들어서 그냥 내버려 두었다. 개무시하는 편이 나을 테니까.

‘네가 찾는 백희도가 북쪽으로 갔단 얘길 들었어. 북쪽이면 데보라라고 큰 마을이 있는데, 거기가 제일 유명해. 게이트는 한번 가 본 곳이나 아는 사람이 있는 곳이 아니면 열리지 않으니까, 세림이한테 데보라 마을까지 안내를 부탁해 봐.’

나는 형의 충고를 받아들이기로 하고, 턱짓으로 나를 가만히 보고 있던 유세림을 불렀다.

“네.”

유세림은 순종적으로 대답했다.

“데보라 마을까지 길 안내 가능해요?”

“가능합니다.”

“가죠.”

“네. 이쪽입니다.”

그렇게 말하며 유세림은 내게 손을 내밀었지만, 나는 당연히 무시했다.

유세림은 내가 내민 손에 힐끗 시선을 주곤 그냥 스쳐 지나가자 잠시 굳었으나, 그렇게 꼽을 먹고도 개의치 않고 터벅터벅 잘 앞서나가기 시작했다.

문제는 한번 그렇게 민망하게 해 줬으면 적당히 해야 하는데, 굴곡이 있는 길마다 끈질기게 손을 내밀었다는 것이다. 

“그쪽하고 손잡는 게 싫습니다.”

나는 지치지도 않고 손을 내미는 유세림이 짜증 나서 결국 정확히 말했다. 그러고 나서야 유세림은 내게 손을 내미는 짓을 멈추었다.

하지만 그러고 난 뒤, 유세림은 다시 이상한 기행을 펼쳤다. 뜬금없이 나에게 이상한 질문을 던지기 시작한 것이다.

“만 마리 소가 절을 하면 뭔지 아십니까?”

“뭐라고요?”

“만 마리 소가 절을 하면 뭔지 아시냐고 여쭈었습니다.”

“뭔데요, 그게?”

“만우절입니다.”

뭐 이런 개떡 같은 소리를 하면서 나를 빤히 보는데, 내가 웃기라도 바라는 건가 싶어서 짜증이 났다.

나는 인상을 구겼고, 유세림은 그런 나를 보면서 중얼거렸다. 

“한솔 씨는 저만 보면 인상을 구기시는군요…….”

꼭 서운하다는 듯한 말투라 화가 확 치솟았기에 모르는 척하기로 한 원칙도 잊은 채 대꾸하고 말았다.

“만우절 같은 개소리를 하니까 그러는 겁니다.”

내 말에 유세림은 눈을 몇 번 깜빡이더니 조그맣게 대답했다.

“깔깔 유머집4에 나온 개그였습니다.”

“어쩌라고요.”

“깔깔 유머집 안 보십니까?”

마치 당신은 이런 교양 도서도 안 보냐는 듯한 말투였다. 나는 유세림이 이 나이대에는 이런 식으로 이상한 새끼였구나, 생각하면서 한숨을 내쉬었다.

한데, 이 새끼는 이후에도 더하면 더했지 덜하지 않았다. 내가 이런 개소리에 면역이 없고, 싫어한다는 걸 알게 된 후부터 한술 더 뜨기 시작한 것이다.

“소나무가 삐지면?”

“하지 말라고.”

“답은 칫솔입니다.”

“아오, 씨발…….”

나는 그놈의 깔깔 유머집을 전부 불태워 버려야겠다고 생각하면서 유세림한테 욕을 했다. 하지만 유세림은 욕을 먹었음에도 어쩐지 재미있다는 듯 계속 되도 않는 개그를 지껄였다.

나는 데보라 마을에 갈 때까지 유세림에게 이딴 노잼 개그 공격을 당하면서 갈 줄 알았다.

[크워어어어어!]

“하…… 다행이다.”

그래서 ‘설인 오우거’ 한 마리가 우리 앞에 나타났을 때, 나도 모르게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휘리릭― 촤악.

그리고 이때까지 계속 헛소리만 하던 유세림은 드디어 입을 다물고, 제 허리에서 채찍을 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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