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9화 (40/104)

39화

“백희도?”

“엉. 아는 애냐?”

“이번에 R등급으로 신규 각성한 애 아냐? 미성년자 각성자로 유명해졌었던…….”

“미성년자라고?”

“올해 열아홉이야. 작년에 각성했다던데?”

한성훈은 채창연에게 백희도의 이름을 물었고 생각보다 훨씬 빠른 답변을 받았다. 

‘솔이가 찾는 백희도가 이 백희도가 맞는 건가…….’

한성훈은 단발머리에 차가운 얼굴을 한 소년의 사진을 보며 고뇌에 빠졌다. 그러다가 한 사람의 이름이 또 생각나서 묻게 되었다.

“우리 파티에 오기로 했던 애, 걔도 미성년자 때부터 각성자였다고 하지 않았냐.”

“아, 맞아. 유세림.”

“걔는 완성형이라고 수빈이가 칭찬이 자자하던데.”

“천재래. 그리고 한성훈 너 빠돌이 같다던데? 그러고 보니 너랑 좀 닮은 것 같기도 하고…….”

“엥?”

“능력치도 비슷한 데다, 계속 네 얘기만 묻더래. 너 동생 있는 거까지 알더라.”

“그래? ……그러고 보니까 유세림 걘 언제 온댔지?”

“다음 주 월요일부터 파티에 합류하기로 했어.”

“흐음……. 알았다. 면접은 너희가 알아서 잘하니까.”

한성훈은 그렇게만 말하고 새로 올 파티원, 유세림에 대해서는 신경을 끊었다. 

그러고는 홀로 현재 백희도가 살고 있다는 맨션으로 향했다. 백희도라는 이름을 말할 때에 얼굴빛이 흐려지던 동생의 모습이 몹시나 신경 쓰였기 때문이다.

* * *

딩동―.

‘누구지?’

나는 홀로 있는 집에 초인종 소리가 들려와 후다닥 문으로 달려 나갔다. 그리고 현관문을 열었는데…… 가장 먼저 내 눈에 보인 것은 하얀색 옷과 가슴이었다.

익숙한 정장에 막 소름이 끼칠 무렵, 기억과 전혀 다르지 않은 목소리로 유세림이 내게 말했다.

“아……. 안녕하세요. 한성훈 님 동생 한솔 님, 맞으시죠?”

“…….”

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대낮부터 끔찍한 악몽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것 같았으니까. 

나는 아직도 이따금 회귀하기 직전에 보았던 잔혹한 유세림이 꿈에 나오고는 했다. 다정하게 나를 안아 주는 백희도보다 더 자주 말이다.

그래서 나는 매일 ‘언젠가 유세림을 만난다면 꼭 죽여 버리고 말리라’고 생각했다.

“…….”

하지만…… 막상 실제로 만나고 나니 죽이기는커녕 공포심만 커졌다.

유세림의 내리깐 속눈썹, 허리춤에 맨 채찍, 보석처럼 빛나는 자안 모두가 내게는 소름 끼치는 공포로 와닿은 것이다.

쾅―!

“허억, 허억, 허억…….”

나는 유세림이 뭔가를 더 말하려는 것을 듣지도 않고 현관문을 닫아 버렸다. 그러고는 부들부들 떨면서 날카로운 것을 찾았다.

형을 위해 볶음밥을 해 주려고 파를 다듬느라 꺼내 놓았던 식칼이 눈에 들어왔다. 나는 그것을 쥐고, 덜덜 떨면서 현관문을 노려봤다.

철컥―.

때마침 문고리가 돌아가는 소리가 들려왔고, 공포 영화보다 더 무서운 광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스산한 겨울을 연상케 하는 남자, 유세림은 식칼을 든 나를 보았음에도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

“…….”

그렇게 우리는 말없이 대치했다. 

그러다 먼저 입을 연 사람은 유세림이었다.

“저는 유세림이라고 합니다. 한성훈 님을 만나 뵈러 왔습니다.”

나는 그 침착한 인사를 듣고 나서야 과거로 돌아왔기에 지금의 유세림과 나는 아무런 사이도 아니라는 것을 간신히 자각할 수 있었다. 그제야 나는 식칼을 쥔 팔을 주춤거리며 내렸다. 하지만, 온몸은 여전히 떨리는 상태였다.

유세림은 그런 나를 눈으로 훑더니 정중히 말했다.

“놀라셨다면 죄송합니다. 최종 면접을 보고자 방문한 건데, 아직 전달이 안 된 것 같습니다.”

“면접……?”

내 작은 혼잣말에 유세림은 성실히 대답했다.

“네. 파티 면접 때문에 방문한 겁니다.”

‘면접이라니? ……설마. 이 새끼가 형이랑 같은 파티를 한다는 거야, 지금?’

나는 금시초문으로 돌아가는 상황에 멍하니 있다가, 성훈이 형과 유세림이 같은 파티가 된다고 생각하니 배알이 뒤틀리기 시작했다. 저 새끼가…… 내 소중한 사람들 곁에 있는 게 치가 떨릴 만큼 싫었기 때문이다.

‘역병 같은 새끼.’

전에도 그 이전에도 이런 상황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내가 기억을 가지고 회귀한 것이 어떤 나비효과를 불러왔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 나비효과의 결과가 형과 유세림의 파티라면 절망 그 자체였다. 

나는 형이 오기 전에 유세림을 이 집에서 쫓아내기로 마음먹었다. 공포심보다도 놈이 내 주변에 얽히는 게 더 싫었던 것이다.

“형이 자리에 없는 건, 아마 당신을 파티원으로 받지 않으려는 걸 거예요.”

“……네?”

유세림은 밋밋하던 표정에 약간 당황한 듯한 기색을 띠었다. 내가 식칼을 들고 있을 땐 별 내색 없던 놈이 말이다.

하지만 나로서는 유세림이 형의 파티에 들어오는 걸 막아야 했기 때문에 뻔뻔하게 나가기로 작정했다.

“듣기론 당신 말고 다른 사람…… 으로 내정한 것 같던데요.”

“사실인가요? 저는 최종 면접만 보면 파티원이 되는 걸로 알고 온 것입니다만…….”

“네, 사실입니다. 형이 워낙 기분파라서요.”

사실 기분파와는 거리가 먼 형의 이름을 팔면서, 내 말에 당황하는 유세림을 보며 조금은 저열한 기쁨을 느꼈다.

‘이대로 빨리 꺼져라, 좀.’

그러나 유세림은 꺼지지 않고 되레 집 안으로 성큼, 한 발짝 더 가까이 들어왔다.

“무슨 짓입니까?”

나는 곧장 화를 내며 놈에게 식칼을 쥔 손으로 삿대질했다. 그러자 유세림은 덤덤하면서 속 터지는 말투로 대꾸했다.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되지 않아, 한성훈 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 생각입니다.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웃기지 말고 꺼…… 나가세요.”

“죄송합니다. 이 주변은 주택가라 따로 기다릴 만한 공간이 없어서요.”

“아니, 뭐 이런 새끼가 다 있어?”

유세림은 나에게 욕까지 얻어먹고도 눈썹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심지어 마음대로 현관 한쪽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서 품속에 책을 꺼내더니, 느긋하게 그걸 읽기 시작한 게 아닌가.

그 태연한 모습을 보자 속에서 열불이 나 발을 동동 구르게 되었지만, 그보다는 저놈에게 가까이 다가가고 싶지 않은 마음이 더 컸기에 이도 저도 못 한 채 놈을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읽는 책은 또 뭐람? ……‘그 사람의 마음을 읽는 연애 비법 일곱 가지’?’

나는 저딴 걸 진지한 표정으로 읽고 있는 유세림이 한심했으나, 현관 한편에 구깃구깃하게 앉아 있는 모습을 보니 한결 위압감이 사라진 건 사실이었다. 

결국 나는 부엌으로 돌아가, 부엌문 너머로 반쯤 보이는 유세림을 경계하면서 형에게 줄 볶음밥을 완성했다.

그리고 형은 저녁에서야 집에 들어왔다.

“우앗, 깜짝이야!”

형은 저녁 시간이 다 되었을 때에야 돌아왔고, 예상대로 현관에 앉은 유세림을 보고는 깜짝 놀랐다.

하지만 내가 인상을 쓰면서 유세림이 한 짓을 일러바쳤음에도 불구하고 형의 태도는 마치 당장이라도 놈을 파티원으로 받아들일 것처럼 호의적으로 느껴졌다.

“아, 얘기는…… 많이 들었습니다. 설마하니 집에서 기다리고 계실 줄은 몰라서.”

“아닙니다. 동생분이 배려해 주셔서 편안히 있었습니다.”

나는 대뜸 꺼지라고 했기에 대체 뭔 소린가 싶어 노려봤으나, 유세림은 언제나 그렇듯 알 수 없는 표정으로 형만 쳐다볼 뿐이었다.

이후, 형은 분하게도 그런 유세림에게 내가 만든 볶음밥도 나눠 주고 (유세림은 양심도 없이 그 밥을 다 처먹었다) 따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면서 놈에게 점점 호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나는 형이 기분 좋을 때나 보이는 미소를 유세림에게 지어 주는 것을 보곤 충격을 받았다. 그 새끼가 얼마나 미친 사이코패스 새끼인데, 형은 어째서 모르는 걸까?

‘왜? 겉모습이 그럴 듯해 보여서?’

나는 분한 심정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고는 쿵쿵거리며 내 방으로 들어갔다. 형이 유세림을 마음에 들어 하는 게 충격으로 와닿았기 때문이다.

‘어떻게 그럴 수 있어! 그 새끼가 나한테 무슨 짓거리를 했었는데!’

저열한 본성은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약자에게 가하는 폭력을 보면 그 사람의 수준을 알 수 있지 않은가. 

내게 유세림은 인간성을 따지면 최하 등급. 아니, 그 이하의 밑바닥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데 그런 놈을 형이 마음에 들어 하니까 충격을 받을 수밖에.

“한솔아.”

“…….”

형은 유세림이 돌아간 뒤에 내 방으로 들어왔다. 나는 이불을 뒤집어쓰며 자는 척을 했지만, 형은 금방 내가 자는 척한다는 걸 눈치챘다.

“안 자는 거 알고 있어.”

“…….”

“세림이가 그렇게 마음에 안 드냐?”

나는 형이 유세림의 이름을 성을 떼고 불렀다는 것에 화가 나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