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7화
“―허어억!”
나는 부유하는 생각 속에서 자리를 박차고 일어났다. 식은땀이 나면서 이불 속에서 축축하게 젖은 몸이 차갑게 식기 시작했다.
‘여긴 어디지?’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우선 내가 있는 곳이 어디인지부터 확인하고자 했다.
그런데…….
“어?”
익숙한 공간이었다. 내가 5년 전, 각성자가 됨과 동시에 박차고 나온 형의 집. 그 집 안에 있는 내 방이었던 것이다.
나는 너무 놀라서 자리에서 일어나다가 덜그럭하고 뭔가 떨어지는 소리를 듣고는 침대 위를 살펴봤다.
그곳엔 완전히 검은색으로 변해 버린 펜던트가 반쯤 바스러져 있었는데, 곧 천천히 가루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펜던트……!’
나는 그 펜던트를 보고 나서야 내가 죽음으로부터 다시 한번 돌아왔다는 것을, 그리고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동시에 보류해 두었던 모든 기억이 한꺼번에 물밀듯이 밀려오기 시작했다.
“백…… 희도…….”
먼저 떠오른 것은 충격적인 죽음을 맞이한 나의 연인이었다.
내가 아니었다면 R등급의 전사로 부족함 없이 살아갔을 그. 그의 마지막은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구역질이 났다.
“우욱…….”
그리고, 유세림.
내가 죽여야 할, 이번 생애에서 무조건 복수해야 할 대상.
나는 유세림을 떠올리면서 놈이 내게 맺었던 페어 인장이 아직도 목에 있는 듯한 소름 끼치는 기분이 들어 바로 일어나 화장실로 달려들어 갔다.
“어?”
그러다 놀라서 숨을 멈추고 말았다.
형이…… 성훈이 형이 게이트에서 나오고 있었으니까.
“……성훈 형?”
“뭐 하냐? 이 새벽에.”
나는 말문이 막혀서 성훈이 형의 모습을 가만히 쳐다봤다.
형의 모습을 다시 보다니. 아니, 그래 펜던트가 나를 다시 이 시간대로 되돌아오게 해 준 것이겠지만 설마하니 형과 마주칠 수 있게 되다니.
나는 눈물을 흘렸다.
“……엥?”
“형!”
나는 화장실에 가서 페어 인장을 확인하려던 것도 잊고 성훈이 형에게 달려가 아이처럼 울었다.
성훈이 형은 난감한 표정으로 나를 달랬다. 하지만 나는 오랜만에 맡는 형의 냄새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꺼이꺼이 울기만 했다.
* ♟ *
“그러니까…… 악몽을 꿨다고?”
“엉…….”
“이제 스물한 살 된 녀석이?”
“…….”
지금 나는 스물한 살이구나. 스물한 살이면 형이 ‘몬스터 침공’ 이후 행방이 묘연해지고, 그리고…….
‘백희도가 열아홉…….’
그땐 단발머리라고 했었나? 나는 왠지 모르게 웃음이 나와서 피식 웃었다.
“어쭈, 이젠 웃기도 하네.”
“아니…… 그러니까, 이제 형도 있으니까…….”
“웃기는 놈이네. 난 진짜 집에 뭔 일 난 줄 알았다.”
“…….”
“겁나게 오자마자 와앙― 울어 젖히고. 참나.”
형은 그렇게 타박하면서도 나를 토닥토닥해 주는 손길은 멈추지 않았다. 왜냐면 내가 아직도 형의 품에 안겨 형을 꽉 붙잡고 있었기 때문이다.
형은 내가 여전히 악몽의 여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듯, 내가 그렇게 하고 있어도 손을 떼려고 한다거나 핀잔을 주면서 벗어나려 한다거나 하진 않았다.
대신, 그냥 나를 허리춤에 매달곤 내가 어질러 놓은 집이며 하나도 해 두지 않은 집안일 따위를 보고 한숨을 푹 내쉬었다.
“설거지해 두랬지.”
“미안. 진짜 미안해.”
“……오늘따라 진짜 반응 이상하네.”
형은 곧장 튀어나온 사과에 머쓱한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고, 나는 형과 눈이 마주치자 다시 또 눈물이 났다.
성훈이 형은 형 허리춤에 눈물을 닦는 나를 보며 내 머리를 쓱 쓰다듬었다.
“에효……. 간만에 너 어릴 때 같네.”
그러더니 손을 쓱쓱 걷고는 내가 해 두지 않은 설거지를 먼저 해치우기 시작했다. 당연히 내가 해야 하는 일인데도 말이다.
근데 웃긴 건, 나도 그냥 형 허리춤에 매달려 있기만 하고 형이 집안일 하는 내내 어리광만 부렸다는 것이다.
5년 동안이나 형을 찾으러 다녔는데, 이렇게 만나고 나니까 형을 붙들고 있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아졌다. 그리고…… 백희도. 희도 생각을 하면 너무 고통스러워서…….
“너 많이 피곤해 보인다. 악몽을 얼마나 꾼 건지.”
“…….”
“좀 더 자라.”
“형, 옆에 있어 줄 거야?”
“뭐라냐.”
“형이 옆에 있어 주면 잘래.”
나는 그렇게 말하면서 형의 팔을 잡아당겼고, 형은 소름 끼친다는 표정을 지으면서 나에게 잡힌 팔을 뺐다.
“야, 이…… 이건 아니지!”
“형, 같이 자자. 응?”
“됐어, 인마. 이 좁은 싱글 침대에 뭘 같이 자.”
“형아아…….”
“어디서 귀여운 척 말끝을 늘여! 군대도 다녀온 놈이!”
형은 내 애교에 면역이 없어서 벌게진 얼굴로 나를 마구 혼냈지만, 결국 나와 같이 잤다.
나는 형의 품에 파고들어 형 특유의 냄새를 맡았다. 그리고 옛날엔 몰랐으나 지금은 알 수 있는, 피비린내도 같이 맡았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형에게 물었다.
“형 어디 다쳤어?”
“엉? 또 뭔 소리야.”
“피 냄새…….”
형은 내 말에 잠시 인상을 굳히다가 다시 표정을 풀고 말했다.
“내 거 아니야. 심하냐?”
“아니야. 아니야, 형…….”
나는 형에 대해서 정말 하나도 몰랐구나.
그렇게 생각하면서 나는 옅은 피비린내가 나는 형의 품을 파고들었다. 형은 한숨을 내쉬면서 결국 내게 계속해서 곁을 내주었다.
* * *.
“동생이 이상하다고?”
“어.”
“이 브라콤, 또 동생 얘기하네.”
“리얼루.”
“아니, 진짜 이상해. 요즘 애가 약간 맛이 갔어.”
“너만 하겠냐.”
한성훈(R등급 각성자, 33세)은 요즘 동생 걱정에 얼굴이 반쪽이 되었다.
하지만 하늘 같은 파티장의 걱정을 파티원은 하찮게 생각하면서 씹었다. 왜냐면 한성훈은 매일 동생 얘기를 달고 사는 브라콤이었기 때문이다.
무슨 얘기만 해도 동생이, 동생 때문에…… 하면서 모든 초점이 동생에게 맞춰진 데다 다 큰 성인인 동생을 무슨 유치원생 돌보듯 굴어 댔다.
한성훈의 오른팔인 채창연은 그런 그를 보다가 어쩔 수 없이 물었다.
“이번엔 또 왜?”
“아니, 들어 봐…….”
그러면서 한다는 말은 괜히 물었다 싶을 만큼, 결국 동생 칭찬이었다.
“얘가 요즘에 내가 집에 들어오잖아? 그럼 막 형 왔냐고, 잘 다녀왔다고 그래. 그러더니 심지어 자기가 밥을 해 놨다는 거야.”
“……밥?”
“어. 밥. 그것도 반찬까지 싹 다 해 놓는다? 심지어 내가 좋아하는 걸로만. 그래서 내가 농담 삼아서 생일이냐고 물어봤더니 앞으로 형 밥은 자기가 책임지고 다 먹여 주겠다고 그러는 거야. 이게 말이 되냐? 너희들도 듣기에 이상하지 않아?”
“…….”
“난 여동생이 종종 그러던데.”
“……그, 그래?”
내심 자랑 반 의심 반으로 동생 이야기를 꺼냈던 한성훈은 다른 파티원의 가족도 그렇다는 말에 잠시 말문을 잃었으나, 곧 다시 동생의 기이한 행동에 대해 지치지도 않고 말을 했다.
“그것뿐만이 아니야. 집안일도 다 해 두고, 옛날에는 내가 와도 본체만체하면서 게임 한다고 인사도 잘 안 받아 줬는데 요즘은 맨날 나 오는 것만 기다린대. 그리고 오늘은 뭐 했는지 궁금하다고, 얘기해 달라고 그러는 게 아니겠냐? 이건 너희도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응?”
“…….”
“…….”
사실상 한성훈이 원하는 대답은 이미 정해져 있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답정너라고 할까?
다른 파티원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나, 파티에서 가장 마음씨가 착한 이수빈만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건 확실히 이상하긴 하네.”
“그렇지?”
그리고 가장 짓궂은 윤서희가 피식 웃으면서 놀렸다.
“그냥 용돈 필요하냐 물어봐.”
“아이, 씨. 내 동생은 그런 거 아니라니까.”
“또 나왔다. 그놈의 내 동생은~.”
“아주 제 동생만 천사지.”
“내 동생은 천사 맞아!”
한성훈은 중증의 브라콤이나 할 법한 소리를 하면서 파티원들과 다퉜다. 물론, 이런 얘기는 한솔은 알 수 없는 소리였다.
* * *
“솔아, 나왔어.”
어느 날부턴가 한성훈은 달라진 한솔 때문에 게이트를 열고 오면 꼭 그의 이름을 부르면서 넘어오는 것이 버릇이 되었다. 안 그러면 한솔이 왜 자신을 부르지 않았냐면서 서운해하기 때문이었다.
“형!”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콩콩 뛰는 소리가 들리더니, 한솔이 뒤에서 다가와 폭 안겼다.
한성훈은 몸의 긴장을 풀고, 한솔이 제 등에 매달리도록 내버려 두었다. 한솔은 배시시 웃으면서 한성훈에게 오늘 하루 있었던 일을 종알종알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