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4화 (35/104)

34화

“자고 싶어.”

“주무세요.”

“갑갑해서 그래.”

“기분 좋게 해 드릴까요?”

“……아니.”

제어할 수 없는 쾌감을 불러일으키는 행동을, 유세림은 수치심도 없이 종종 내게 하고는 했다.

나는 언제나 이성을 잃지 않은 상태에서 그런 짓들을 당해 왔고, 유세림에 대한 혐오감은 나날이 짙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 혐오감을 보이는 순간 유세림이 어떻게 나올지는 뻔했다. 나를 여기 감금해 두고 제 내킬 때만 찾는 그런…… 취급이나 하겠지.

그래서 참고 있는 것뿐이다. 하지만 참는 것도 한계가 있고, 내 프라이드에는 조금씩 금이 가고 있었다. 이토록 싫어하는데도 떨쳐 낼 수 없다는 게 내 무력함을 매번 상기시키기 때문이다.

그놈의 등급. 내가 R등급이었다면…… 아니, 하다못해 A등급 정도만 되었어도 어쩌면 일방적인 페어 각인을 막을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내 몸뚱어리에도 혐오감이 들기 시작했다. 나는 왜 성훈이 형처럼 강하게 각성하지 못해서…….

“무슨 생각을 하고 있죠?”

“……형 생각.”

“아, 한성훈 씨.”

유세림은 내 말에 잠시 고민하는 듯하더니 이렇게 물었다.

“형을 찾고 있다고 했었죠?”

“……어.”

“제 스승님이 예전에 한성훈 씨와 잠깐 같은 파티였습니다.”

“뭐?”

나는 처음 듣는 말에 벌떡 일어나 유세림을 쳐다봤고, 놈은 예의 그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나를 바라보았다.

“스승님 말로는, 한성훈 씨는 마치 미래를 다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고 하더군요.”

“…….”

“스승님의 지병 역시 한성훈 씨가 발견해 줘서 알게 된 거라고 하셨고요.”

“……!”

나는 그 말을 들으며 어쩌면 성훈 형도 이 펜던트를 사용해 과거로 돌아온 적이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이어진 유세림의 말이 그 가정에 확신을 더해 주었다. 지금의 나와 놈이 말하는 형의 상황이 비슷했기 때문이다.

“또, 특별한 이유가 없는데도 몇몇 사람에게는 상당히 냉담하게 대했다고 들었는데…… 그런 점은 형제가 닮은 것 같긴 합니다.”

“…….”

특별한 이유가 ‘아직’ 생기지 않은 것일 뿐, 형에게도 유세림과 나처럼 분명 끔찍한 상대가 존재했으리라. 

나는 처음으로 유세림의 손을 붙잡았다. 놈은 내가 제 손을 붙잡자마자 기껍다는 양 내 손을 마주 꽉 쥐었다.

나는 그 불쾌감을 무시하고 놈에게 물었다.

“형이 유독 냉담하게 굴었던 사람이 누구였는지 알아?”

“그것까지는 모릅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손을 빼내려고 했지만, 유세림은 힘주어 놓아주지 않은 채 이어 말했다.

“하지만 스승님 외에 다른 한성훈의 파티원이었던 사람은 알고 있습니다. 지금은 ‘이쪽’에서만 지내고 있는 각성자이죠.”

“누군데?”

“데려다드릴 순 있습니다. 단…….”

나는 유세림의 조건을 듣고 표정을 잃었으나, 놈은 평소처럼 내 표정 따윈 상관도 하지 않고 말을 이어 갔다.

“어떤가요?”

“…….”

당연히 싫었다. 내 의지로 유세림과…….

도무지 참을 수 없었지만, 유세림이 그 사람을 만나게 해 주지 않으면 형을 찾는 일이 요원한 처지인 것도 사실이었다.

나는 유세림에게 물었다.

“너는 내가…… 평생 널 혐오해도 상관없는 거야?”

“…….”

유세림은 잠시 말을 하지 않다가, 곧 밋밋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

“이미 혐오하고 있지 않습니까?”

“……그래. 좋아.”

나는 그 말에 좋다고 대답하긴 했으나 막상 유세림은 썩 즐거워 보이지 않았다. 오직 그 표정만이 그나마 내게 위안이 되었다.

* * *.

“씻고 올게.”

“이미 씻지 않았나요?”

“속이 울렁거려서 더 씻어야겠어.”

“……알겠습니다.”

대놓고 토할 것 같다는 말에 유세림의 표정은 끝내 무표정해졌다. 애초에 본인이 원한 게 이런 관계 아니었나? 싶어서 비웃음이 새어 나올 뻔했으나 참았다. 

나는 온몸을 씻고 또 씻으면서 이게 과연 맞는 길인가를 생각했다. 그러자 참을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워졌다.

‘……도망치고 싶어.’

그렇게 생각하기 무섭게 백희도가 떠올랐다. 그런데 더 당황스러운 것은 열지도 않았는데, 마치 도망치라는 듯이 게이트가 열렸다는 것이다.

나는 그 게이트를 보자마자 갑작스레 게이트가 열린 이유를 생각하기도 전에 도망치고 싶은 생각만으로 대책 없이 알몸으로 뛰어들어 갔다. 그리고, 물기를 닦지 못해 축축한 몸으로 누군가의 몸 위에 안착했다.

“……배, 백희도?”

“……흠. 보기는 좋긴 한데.”

“우악!”

그제야 알몸인 상태로 백희도와 마주쳤다는 것을 깨달은 나는 반사적으로 몸을 웅크렸고, 백희도는 제 겉옷을 벗어선 내게 입혀 주었다. 

‘이곳은…….’

그런데도 추웠다. 

게이트를 넘어온 ‘저쪽’은 눈으로 가득 펼쳐진 설원. 백희도는 그 설원의 작은 동굴에서 갑자기 펼쳐진 게이트에 검을 들었다가 내가 (알몸으로) 뛰어내려 와 놀랐다고 말했다.

그렇게 말하면서 평소처럼 건들거리는 미소를 짓는데…….

‘……좀, 야위었나?’

어쩐지 녀석의 분위기가 이전에 봤을 때보다 날카로웠다. 해서 눈치를 살피다가 백희도에게 물었다.

“혹시, 나 때문에 뭔가가 잘못되어 가는 거야?”

“뭔 소리?”

“아니…… 갑자기 너 있는 곳으로 오게 될 줄은 나도 몰랐거든. 그래서…….”

“방해했냐고? 아니, 마침 잘 왔어.”

그렇게 말한 백희도는 중앙에 놓인 괴상한 마법진(?)에 여러 색의 보석을 신중하게 하나씩 놓기 시작했다. 그러자 주변 공기가 뭔가 달라진 느낌이 들었다.

백희도는 마지막 보석까지 다 두고는 입꼬리를 씩 올리면서 말했다.

“이제 여기로 게이트 열고 들어올 수 있는 사람은 없어.”

“뭐?”

안 그래도 머잖아 유세림이 쫓아올까 신경이 쓰였던 나는 백희도의 자신만만한 설명을 듣자 약간 안심이 되었다. 

백희도는 그런 내 표정을 보곤 모닥불 위에 올려 둔 따뜻한 주전자에서 물을 따라 주었다.

“머리카락 얼어 간다.”

“아, 그러네…….”

백희도는 모닥불 옆에 나를 앉혀 두곤 한참을 빤히 쳐다봤다. 나는 어색하게 차만 홀짝홀짝 마셨다. 왜 쳐다보느냐는 말을 하기가 약간 민망했기 때문이다. 

그때, 백희도가 먼저 말을 걸어왔다.

“주술사.”

“……왜.”

“그동안 잘 못 있었냐? 뺨이 홀쭉하네.”

“그러는 너야말로…….”

야위었다는 말을 하려던 찰나, 뻗어 오는 손에 살짝 굳어서 아무런 말도 꺼내지 못했다. 

백희도는 어색하게 굳은 내 머리를 쓸어 넘겨 주다가 목 뒤에 있는 페어 인장을 발견하곤 한참을 그 인장을 바라봤다. 

“…….”

그저 보고 있는 것만으로 살기가 넘실거리는 느낌을 받아서 나는 조금 불안해졌다.

백희도가 갑자기 유세림을 죽이러 간다고 하면 어떻게 하지? 하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물론, 그래 준다면야 나는 고맙지만…….

‘문제는 유세림이…….’

너무 강력한 R등급이며 대인 전투에도 능숙하다는 것이다. 나는 나 때문에 백희도가 다치거나 죽는 것을 원치 않기에 부러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다.

“아, 이거……. 뭐, 별거 아니야.”

“별거 아니라고?”

“응, 유세림이 좀 짜증 나게 굴긴 하지만…….”

“별거 아닌데 왜 나한테 도망쳐 왔어?”

“…….”

하지만 백희도는 매번 느끼지만 눈치가 빨랐다. 지나치게. 그리고 그 빠른 눈치를 감추지도 않았다.

“주술사. 그날 통화 이후로 2주 동안 별생각이 다 들더라.”

“…….”

“처음엔 유세림 미친 새끼 하면서 욕이 나오다가 너는 어떻게 되었을까, 또 눈에 힘주면서 안 울려고 버티고 있을까…….”

“…….”

“근데, 네가 들으면 역겹겠지만 말이야. 가장 많이 했던 생각은…….”

“…….”

“난 왜 너한테 페어 각인할 생각을 못 했을까였어.”

나는 그 말을 듣고 심장이 쿵 내려앉는 기분이 들었다. 왜냐면…….

“역시 좀 쓰레기 같지?”

왜냐면…… 나도 내 페어가 유세림이 아니라 백희도였으면, 하고 몇 번이나 생각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아니라고?”

내 말을 들은 백희도는 눈을 빛냈다. 그러고는 나에게 가까이 다가왔다. 채 마르지 않은 젖은 뒤통수를 감싸고, 백희도가 내 입술 앞에서 다시 물었다.

“너도 나랑 페어 하고 싶었어? 유세림이 만질 때마다 내 생각했어? 눈 감고, 나라고 상상하면서 참았냐고.”

“……응.”

나는 고개를 끄덕였고, 백희도는 눈물이 흐르는 내 볼에 먼저 입술을 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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