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31화 (32/104)

31화

“여기서 그만해…… 제발.”

나는 토할 것 같은 기분으로 유세림에게 간청했다.

자아와 유리된 신체의 흥분이 얼마나 징그러운지, 유세림이 만질 때마다 튀어 오르는 몸이 얼마나 역겨운지 내 얼굴에 선연하게 드러나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유세림은 이해하지 못한 것 같았다. 아니면, 이해할 생각이 없거나.

놈은 기어이 상의를 들춘 후 내 맨살을 만졌고, 나는 눈을 감았다. 하지만 끔찍한 흥분 속에서 치솟은 분노가 다시금 입이 열리게 만들었다.

“너랑 하고 싶지 않아.”

“반응은…… 그렇지 않은 것 같은데요.”

나는 덤덤한 그 말에 수치심을 느끼며 발작하듯 외쳤다.

“난 백희도랑 하고 싶어!”

“…….”

“백희도랑 페어를 맺고 싶다고!”

차라리 백희도의 이름을 팔아서라도 유세림의 너저분한 짓을 막고 싶었던 것뿐이었다.

내 생각이 통한 건지 눈을 부릅뜨고 그렇게 외치자, 여태껏 제 마음대로 주물럭거리던 유세림의 손길이 딱 멈췄다. 

그런데 분노할 거라고 생각했던 것과 달리, 유세림은 기분 좋은 미소를 지었다.

“그럴 거라 생각했습니다.”

“……뭐?”

“그래서 더 기쁩니다. 당신이 제 페어라는 것이.”

“너……!”

그 뒤부터 유세림은 내가 무슨 말을 하든, 어디를 어떻게 때리고 발버둥을 치든 멈추지 않았다. 백희도의 이름을 꺼낼 때마다 더 강하게 몰아붙일 뿐이었다.

“하지 마! 하지 말라고!”

베개를 물어뜯어도 새어 나오는 신음은 막을 수 없었고, 스스로 몸을 꼬집고 찌르려 해도 유세림의 손에 한번 붙잡히면 빠지질 않았다.

그때, 유세림이 눈물로 범벅이 된 내 얼굴을 내려다보며 속삭였다.

“내게 성의 있게 키스하면 놓아주죠.”

“……뭐?”

“성의 있고 성실하게. 아니면, 이대로 계속하고요.”

나는 놈이 미쳤다고 생각했으나 유세림의 손이 내 허리춤에 닿았을 때, 그리고 바지 속으로 손가락을 넣기 시작했을 땐 별수 없었다.

그래서 가까이 있는 유세림의 입술에 내가 먼저 입을 맞췄다. 소름이 돋을 만큼 좋고, 또 싫었다. 상반된 감정이 연이어 휘몰아치자 피곤이 몰려들었다.

“풀어 줘, 이제!”

“혀를 제대로 쓰세요. 내내 가르쳐 주지 않았습니까.”

“…….”

결국 속으로 계속 욕을 하면서도 또 한 번 내가 먼저 입을 맞춰야 했고, 유세림은 내 서툰 모습을 지적하며 다섯 번이 넘게 키스를 했다. 그 뒤에야 풀려날 수 있었다.

“하아, 하아…….”

“앞으론 ‘이쪽’이든 ‘저쪽’이든, 어디에 있어도 저와 함께 있어야 합니다. 당신은 저의 페어니까요.”

“…….”

좆까라고 하고 싶었지만, 키스의 여운이 남아 숨을 쉬는 게 고작이었던지라 대답을 할 수 없었다.

유세림은 그런 나를 보며 설핏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그다음 말을 할 때는 언제 그랬냐는 양 표정이 없어졌다.

“또, 앞으로 백희도와 만나는 건 금지입니다. 저는 백희도보다 강력한 R등급이고, 백희도도 저도 그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

“그를 죽이고 싶다면 불러요.”

나는 유세림이 허세를 부리고 있지 않다는 걸 안다. 하지만 놈이 기세등등하게 백희도를 죽이니 살리니 말하는 게 아니꼬웠다.

“백희도한테 손대면, 나도 가만히 있진 않겠어.”

그렇게 말하는 내게, 유세림은 정신병자나 할 법한 소리를 했다.

“그의 팔다리를 자르고, 그 앞에서 아까 하려던 일을 이어 할 수도 있습니다.”

“……!”

“이젠 말하지 않아도 잘 알겠지만, 당신의 의지는 페어의 강제력보다 훨씬 떨어지죠. 나를 미워한다면서도 흥분하지 않았습니까.”

“닥쳐!”

“사실만을 말한 것뿐입니다.”

그렇게 얄밉게 말한 놈은 내게 마지막 경고처럼 못을 박았다.

“백희도에게 집착하지 마세요. 나와 페어가 된 이상, 당신이 설령 백희도랑 잔다고 한들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 테니까.”

“…….”

그렇게 말한 후, 유세림은 제 옷을 챙겨 입었다.

나는 구겨진 수건처럼 침대에 처박혀 유세림을 쳐다봤다. 놈은 젖은 내 앞머리를 치가 떨릴 만큼 다정하게 넘기며 이마에 마지막 키스를 남기고는 떠났다.

갑작스러운 유세림의 집착과 광기에서 나는 놈이 이 일로 인해 내게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생각해 봤다. 

나의 사랑? 아니……. 

‘내게 사랑을 받길 원했다면, 이따위로 행동하지 않겠지.’

그저 유세림은 저 스스로 자백제까지 먹고 자문할 만큼 서툰 제 감정에 관해 골몰하다가 나름대로의 결론을 내리고, 나를 본인의 액세서리처럼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

‘미친놈…….’

문제는 이 페어라는 각인이 내 육체의 통제권을 가져가 버린다는 것이다. 머리로는 유세림이 치가 떨리게 싫은데도 육체는 기뻐하고 만다.

이래서야 앙탈이나 부리는 셈이라, 나는 문득 모든 것이 피곤해지고 말았다.

‘죽어 버릴까…….’

하지만 지금 죽은들 회귀 시점을 단언할 순 없기에 최악의 경우, 유세림과 페어인 상태로 과거로 돌아올지도 몰랐다. 처음 돌아왔을 때도 내 육체적인 능력이 고스란히 승계되어 있었으니 말이다.

‘아니면, 내가 죽어서 페어가 풀릴 수도?’

하지만 모험하기에는 리스크가 너무 크다. 마지막 한 번의 기회라고, 펜던트도 분명히 말하지 않았는가.

‘걱정하지 마. 다른 방법이 있을 거야. 내가 찾아 줄게.’

‘그의 팔다리를 자르고, 그 앞에 아까 하려던 일을 이어 할 수도 있습니다.’

백희도가 죽거나 심한 부상을 입는 상상을 하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쿵 털어지는 것 같았다. 유세림은 침착하게 돌아 있는 미친놈이니만큼, 백희도를 해치는 데 아무런 거리낌도 없을 테니까.

‘백희도가 죽으면, 나는…….’

나는 이를 단단히 악물었다.

* * *

2주 뒤.

“오늘 갈 던전의 이름은 ‘라몬의 연옥’입니다.”

나는 최대한 페어의 인장이 보이지 않도록 후드를 뒤집어쓰고 파티에 있었다. 

다행히 유세림의 팔뚝에 난 페어 인장도 그의 옷소매에 가려 잘 보이지 않았지만, 종종 내게 닿는 시선이 평소보다 훨씬 예민하게 느껴져서 기분이 더러웠다. 

그러나 유세림은 별일 없었던 것처럼 파티원에게 새로 갈 던전의 브리핑을 마쳤다.

“라몬의 연옥은 커다란 낫을 을 쥔 심판자들이라 불리는 몬스터들이 있는데, 이들을 주의해야 합니다. 물리적인 공격으로는 대응할 수 없고, 스킬 공격만 적용되니까요.”

그렇게 말하며 녀석은 고개를 돌린 채 외면하고 있는 나를 굳이 콕 집어 불렀다.

“한솔 씨.”

“……뭡니까.”

“한솔 씨는 제 뒤에서 보조를 맞춰 주셔야 할 것 같습니다.”

“…….”

나는 대답하지 않았다. 표유정은 그런 나를 죽일 듯이 노려봤으나, 반대하는 의견이 입 밖으로 나오는 일은 없었다.

나는 구역질이 났지만, 입 밖으로 놈에게 반대하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았다. 2주 동안 별의별 짓을 다 해 보았으나 유세림에게서 벗어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놈은 내 집 현관문을 부수고 들이닥친 후부터 아예 나를 제집으로 납치해 갔고, 감금이나 마찬가지인 생활을 했다.

그리고 그 기간 동안 유세림은 내가 뭘 싫어하는지를 알게 되었다. 그래서 결국, 나는 놈에게 저항하지 못하게 되었고 말이다. 가만히 있으면 굳이 건들지는 않았으니까. 

‘이제야 안정화가 되었네요.’

그 체념을 놈은 이딴 개소리를 하면서 자기 합리화를 했다. 

엿 같은 기분이 들었으나 놈이 내 몸을 건드는 게 더 싫었던지라 이제 반쯤 자포자기한 상태로 유세림의 말을 따랐다.

“저기…… 근데 괜찮은 건가요, 한솔 씨? 안색이 안 좋아 보이는데…….”

성규림 씨가 그렇게 물었지만, 나는 곧장 대답하지 못했다. 유세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문제는…… 유세림이 규림 씨의 말을 들은 건지 내 쪽으로 성큼성큼 다가오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나는 미간을 구겼다. 하지만 아무리 인상을 구겨도 몸은 얼어붙은 것처럼 꼼짝하지 못했고, 결국 유세림의 따뜻한 손이 내 이마에 닿아 왔다.

“어머…….”

그러자 성규림 씨가 주춤 물러나며 탄성을 내뱉었다.

“열은 없는데……. 어제도 푹 자지 않았습니까?”

“…….”

미친 새끼.

나는 유세림의 말에 충격으로 싸늘해진 파티 분위기를 느끼곤 이를 악물었다.

표유정은 거의 기절할 것 같은 얼굴로 나와 유세림을 번갈아 쳐다보더니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어, 어제…… 같이 계셨나요? 두…… 분.”

“네. 이제부터 함께 살기로 했거든요.”

쿵―! 그 김재호마저 동요한 듯 도끼를 바닥에 떨어뜨리곤 이쪽을 쳐다봤다. 유일하게 나이가 어린 안화영만이 파티 분위기가 왜 이런지 잘 모르겠다는 얼굴로 껌을 짝짝 씹고 있었다. 

[왜 같이 사는 거예요이?]

“페어를 맺었습니다. 저와 한솔 씨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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