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8화 (29/104)

28화

“……그랬지.”

“지금은 아니야?”

나는 짧은 침묵 뒤에 대답했다.

“……지금도 그래.”

“근데 왜 지금도 그놈 파티에 붙어 있는데?”

“유세림의 약점을 모르겠어.”

“…….”

내 말에 백희도는 잠잠해졌다.

녀석 역시 유세림과 같은 선생 밑에서 수학하던 사이라면 나보다 그를 더 잘 알 것이다. 

같은 R등급이라고 해도…… 백희도와 유세림은 뭔가 느낌이 달랐다.

백희도는 분명 강력하지만 가끔 위태로운 느낌이 들기도 한다면, 유세림은 전투할 때 위태롭다거나 그를 도와야 한다거나 하는 느낌을 받았던 적이 단 한 번도 없었다. 

솔직히 말해 둘은 같은 R등급이나 실력의 격차가 있을 것이다. 둘을 다 경험해 본 내 생각엔 그랬다.

‘유세림이 백희도보다 한 살 위였나.’

물론, 단순히 나이가 그 격차를 만들어 냈을 거라곤 생각하지 않는다. 각성자는 오로지 힘과 경험으로 분류되지, 나이는 아무 상관 없으니까. 

그 말인즉 유세림에게는 우리가 모르는 뭔가 다른 방법, 적어도 드러나지 않은 아티팩트라도 있는 게 분명했다. 

나는 그것을 알고 싶었다. 유세림을 흔들 수 있는 방법을. 그래서, 백희도에게 물었다.

“같은 선생님 밑에서 수학했다며.”

“유세림이 그렇게 말해?”

“어.”

“몸 쓰는 법을 알려 줬던 선생이 하나 있었어. 지금은 죽었지만.”

“…….”

“병 때문에 죽은 거고, 유세림은 배울 거 다 배우고는 바로 떠나 버렸지만 난…… 죽기 전까지 병수발 좀 들었어. 스승이 제일 아꼈던 제자는 유세림이었는데 말이지.”

“……유세림답네.”

“그치? 그 새낀 원래 사람 샐샐 꼬드겨 놓고 쓸모없어지면 냅다 버리니까.”

그래서 자기는 첫눈에 재수 없어서 말도 안 붙였다며, 백희도는 어깨를 으쓱해했다. 

나는 유세림과 백희도의 그런 차이에 대해 생각해 보았다. 백희도는 안하무인이긴 해도 유세림과 달리 마음에 정이 있는 녀석이었다.

‘그래서 나랑도 안면 튼 사이이니 차마 제 앞에서 죽는 꼴은 못 보겠다…… 뭐 이렇게 변한 걸까.’

백희도가 생각보다 마음이 약한 녀석이라면 나한테야 좋은 일이긴 하지만, 무정한 유세림의 상대가 될 수 있을지는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너, 유세림을 죽일 수 있어?”

백희도는 곧장 대답했다.

“죽여야 할 이유만 있으면?”

‘지금은 없다는 걸까.’

허세 같진 않았다. 그나마 현 시점에서 유세림에게 맞설 수 있는 상대라면 백희도뿐일 테니까.

하지만 백희도에게 유세림을 죽여 달라는 말을 하려면 내가 회귀했다는 얘기부터 해야 하는데, 그럼 얘기가 너무 복잡해진다. 무엇보다 말한다고 하더라도 이건 내 일이지 백희도의 일이 아니지 않은가.

“고민이 많은 얼굴이네.”

“…….”

“밥 먹는 동안은 얼굴 좀 펴라.”

백희도는 느슨한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나는 그런 녀석을 쳐다봤다. 그리고 물었다.

“……내가 유세림을 죽여 달라고 하면, 죽여 줄 수 있냐?”

“아니. 내키지 않아.”

“…….”

“그러니까 내킬 때까지 날 잘 꼬드겨 봐, 주술사.”

백희도는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얼굴로 그렇게 말했고, 나는 태연히 말하는 놈의 진의를 알기 위해 잠시 녀석을 바라봤다. 하지만 결국엔 도통 진담인지 농담인지는 읽을 수 없었다.

* * *.

“…….”

오늘은 유세림의 파티가 소집하는 날이었다. 그런데 재수 없게도 내가 가장 먼저 온 바람에 유세림과 나는 잠시 단둘이 있게 되었다.

유세림은 인사도 하지 않고 내 허리띠를 바라봤다. 처음엔 숨길까 하다가 굳이 그럴 필요가 있나 싶어 차고 온 것인데, 생각보다 유세림의 신경을 많이 거슬리게 만든 듯했다. 

“백희도가 준 겁니까?”

“네.”

“…….”

심지어 유세림은 아예 대놓고 묻기도 했다. 

나는 짧게 대답한 후, 말없이 유세림을 쳐다봤다. 놈은 무표정했지만 그 속엔 미묘하지만 분명히 거슬린다는 감정을 담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하이요이~!]

그 순간 안화영이 오지 않았다면 뭔가 한마디 하려고 했던 것 같은데, 게이트가 열리면서 안화영이 등장했다.

유세림은 내게서 고개를 돌리고 희미한 미소를 지었다. 마치, 응당 그래야 하는 일을 수행하는 것처럼.

“반갑습니다.”

“세림 님!”

곧 하나둘 파티원이 모였고, 그때부터 유세림은 더 이상 내게 시선을 주지 않았다.

“우와, 혹시 아티팩트예요?”

그저 규림 씨만 내 곁에 와서 허리띠를 보고는 내게 속삭이듯 물었다. 나는 유세림이 과연 내 말을 들을까, 생각하면서 대답했다.

“네. 선물 받았어요.”

“헉! 설마, 애인?”

“…….”

“애인도 각성자예요?”

규림 씨가 눈을 빛내며 물었고, 나는 백희도를 애인이라고 속여야 할지 말지를 고민했다.

그런데 그 순간, 유세림이 입을 열었다.

“애인 아닙니다.”

“에…… 네?”

당황한 규림 씨가 나와 유세림을 번갈아 쳐다봤고, 나 역시 갑자기 끼어든 놈의 저의가 궁금해 입을 다물었다. 

유세림이 내 허리띠를 쳐다보면서 말했다.

“제가 알기로 그 허리띠를 준 사람은 오래 사귀는 정인이 있는 걸로 알아요.”

“어머, 세림 님도 아시는 분인가요?”

“네. 잘 알죠. 그래서…….”

유세림은 나를 쳐다보며 무표정하게 말을 이었다.

“오해로 인해 서로 마음이 상하는 일이 없었으면 하네요.”

마치 경고하는 것 같았다.

나는 유세림이 백희도를 이토록 싫어하고 견제하는 원인에 대해 생각했다.

‘라이벌이라서? 그럼 그냥 나를 파티에서 자르면 그만 아닌가?’

아니면……. 

‘설마, 유세림이 백희도를……?’

나는 떠올린 즉시 말이 안 된다고 생각했으나 엉뚱한 생각에 웃음이 터지기 전, 가정이 유세림의 모든 행동을 설명한다는 것을 깨닫곤 소름이 끼쳤다.

‘백희도는 유세림을 싫어하지만, 유세림은 백희도를 좋아해서…… 나를 견제하는 거라면?’

그럼 백희도랑 내가 얽힐 때마다 저렇게 끼어드는 게 설명이 되니까!

‘미친…….’

나는 왠지 모를 괴상한 감정을 느꼈다. 예전이긴 했지만 내가 배신감을 느낄 만큼 좋아했던 남자가 사실은 백희도를 좋아한다니…….

그래서 내 감정에 무관심하고, 과거에 아무렇지도 않게 나를 버렸던 거라고 생각하자 가슴이 울렁거렸다.

‘그럼 백희도랑 지금처럼 노닥거리기만 해도 유세림의 마음을 갈가리 찢어 버릴 수 있는 건가?’

그러다가 문득 그런 생각이 들었고, 참을 수 없을 만큼 허망해졌다.

‘유세림, 너도 결국 인간이었구나…….’

그런 생각이 들면서 내가 한심하게 느껴진 것이다. 약간 자괴감이 들었다고 해야 할까?

‘백희도에겐 절대 말하지 말아야지.’

백희도는 안 그런 척해도 정이 있는 놈이니, 유세림이 사실 저를 좋아한다고 하면 어쩌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나는 혼자만 깨달은 이 사실을 입을 꽉 깨물며 비밀로 간직하고자 했다.

하지만 자꾸 기분은 다운되어 갔다. 과거의 유세림에게 휘둘리던 내 모습과 지금 유세림이 나를 쳐다보는 질시의 시선이 겹쳐 보였기 때문이었다. 

“수고하셨습니다.”

[모두 수고했다요이~!]

그래서 오늘 내내 던전을 돌면서도 당최 집중하지 못했다. 그나마 내가 알고 있는 던전이라 애써 보조를 맞추는 것은 가능했지만 말이다. 

나는 한숨을 내쉬면서 게이트를 열려 했는데…….

“잠깐 얘기 좀 하죠.”

유세림이 나를 불렀다.

“무슨 일이죠?”

나는 경계 가득한 시선으로 그를 봤다. 안 그래도 심란해 죽겠는데, 여기서 백희도를 사이에 두고 놈과 기 싸움을 하고 싶진 않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유세림은 차가운 눈으로 나를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오늘 내내 집중을 못 하지 않았나요?”

“…….”

그 말은 사실이었기에 나는 결국 입술을 깨물고 유세림의 숙소로 향했다. 이어, 탁자가 있는 유세림의 숙소에서 한쪽 의자에 걸터앉았다.

‘질책이라도 하려는 건가.’

[핑―!]

숙소 안엔 정신 사나운 유세림의 새가 있었는데, 유세림이 들어오자 새는 놈의 품에 비비적거리면서 귀여움을 받기 위해 필사적이었다.

하지만 유세림은 그 새를 몇 번 쓰다듬다가 창밖으로 날려 보냈다. 심지어 창문까지 닫았다. 핑은 날아가다 돌아와 몇 번 두드렸지만, 창문이 열리지 않자 창가에 서서는 고개를 계속 갸웃댔다.

나는 그 모습이 신경 쓰였으나, 곧 유세림이 내게 마시라는 듯 건네준 차에 시선을 주게 됐다.

나는 미미하게 인상을 찡그리면서 물었다.

“길게 얘기할 내용인가요?”

“네.”

유세림은 내키지 않아 하는 기색이 완연한 내 태도에도 눈 하나 까딱 않고 반대편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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