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7화 (28/104)
  • 27화

    보통 보스 몬스터는 머리 위에 붉은 글씨로 몬스터의 이름이 써 있다. 라카누엘도 마찬가지였다.

    라카누엘은 아래는 황금색 뱀, 위는 상체까지 있는 남성의 모습으로 눈에 흰자가 없이 검은 것 빼고는 제법 미남이라고 할 수 있는 모습이었다. 물론, 엄청난 길이의 꼬리와 두께를 보니 외모 감상 따위를 할 시간은 없어 보였지만 말이다.

    ‘어떻게 해야…… 하지…….’

    나는 가물가물한 정신 속에서 대등하게 싸우고 있는 백희도와 라카누엘의 결투를 보고 있었다.

    하지만 백희도가 좀 더 상황이 나쁜 것이, 라카누엘의 뱀독이 상당히 강해서 녀석은 백희도가 검으로 접근할 때마다 검은 혀를 내밀고 백희도를 물려고 들었다. 

    그 행동이 너무 빨라, 백희도도 결정적인 한 방을 제대로 잡지 못하고 있는 듯했다.

    ‘이 상태로 보이지 않는 고통이나 주박을 다시 쓰는 건 무리야……. 실패할 확률도 크고, 내상이 생각보다 심해서 백희도에게 짐이 될 테지.’

    나는 냉정하게 판단하며 아릿해져 오는 배를 붙잡았다. 

    ‘……하지만, 나에겐 모든 뱀독에 저항이 있는 아르실라의 뱀독 저항 목걸이가 있어.’

    이걸 백희도에게 전달하면 좋겠지만, 녀석은 그럴 찰나조차 없을 만큼 치열하게 다투고 있다.

    그렇다면…….

    ‘내가 미끼가 되자.’

    나는 허리띠와 뱀독 저항 목걸이를 믿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어나는 것만으로 구역질이 났지만, 스르륵스르륵 움직이는 라카누엘의 꼬리가 지척에 있었다. 

    나는 그 꼬리를 아주 꽉 밟았다. 그러자 라카누엘의 고개가 대번에 내게 돌아왔다.

    “미친……! 한솔!”

    그 모습을 본 백희도가 고함을 질렀지만, 이미 라카누엘은 어느 쪽이 더 만만한 먹잇감인지를 파악한 것 같았다. 내게서 풍기는 피비린내를 감지한 것일지도 몰랐다. 

    라카누엘은 내게 엄청난 속도로 달려들었고, 멀끔한 인상에서는 상상도 못 했던 이중 턱으로 날카로운 독니를 드러내 머리를 막은 내 팔을 물었다.

    으드득―!

    마치 사탕을 부숴 먹는 것처럼 라카누엘의 물기 공격은 내게 걸려 있는 삼중의 실드를 전부 씹어 먹었다. 아마 실드가 아니었으면 내 팔은 그 자리에서 두 동강이 났을 것이다.

    하지만 실드가 라카누엘의 치악력을 버텨 주었고, 독니에서 떨어지는 독도 피부에 닿으면 살짝 타듯이 스며들다가 뱀독 저항 목걸이의 힘으로 해독되었다.

    그리고, 내가 믿었던 대로 백희도는…….

    서걱―!

    그렇게 내 팔을 물고 있는 라카누엘의 목을 베어 버리는 것으로 지난한 던전 공략의 종점을 찍었다.

    * * *.

    백희도는 허공에서 천천히 떨어지는 보상, 아름다운 아티팩트에는 관심도 없이 갑자기 내 멱살을 확 잡았다. 그러곤 대뜸 욕을 했다.

    “너 진짜 또라이냐? 거기서 왜 나서, 네가?!”

    나는 백희도의 거친 모습에 놀라, 방어적으로 대답했다.

    “윽……. 아니, 난 다 계산하고 움직인 거니까…….”

    “계산? 지랄하고 있네. 알량한 아티팩트 하나 믿고 나대라고 너한테 그거 사 준 줄 알아?”

    어찌나 살벌하게 말하는지, 나는 나도 모르게 백희도에게 사과하고 말았다.

    “……미안. 미안해.”

    왜 사과를 해야 하는지는 솔직히 억울한 면이 있었으나, 백희도의 기세가 워낙 심상치 않았기 때문이었다.

    백희도는 내가 사과하고 나서야 멱살을 풀어 주었는데, 그러고 나서도 “으윽…….” 하고 내상을 입어 신음하는 내게 짜증을 냈다.

    “이런 상태로 나대긴 왜 나대?”

    “…….”

    “씨발, 그때 조금만 내가 늦었어도 넌…….”

    나는 그제야 백희도가 화를 낸 게 나를 걱정했기 때문이라는 것을 깨닫고 조금 눈을 크게 떴다.

    백희도는 거칠게 제 겉옷을 입고, 이번 던전 보상의 아티팩트는 대충 품속에 집어넣은 뒤, 포션을 따서 내게 줬다.

    나는 그것을 눈치를 보면서 마셨는데, 포션도 만능은 아닌지라 먹고 나서 곧바로 회복되거나 그렇지는 않았다. 물론, 천천히 회복되는 느낌이 들기는 했다. 허리띠의 실드도 천천히 복구되었고 말이다. 

    백희도는 내 안색이 조금씩 돌아오는 걸 보고 나서야 찢어진 제 손등에 남은 포션을 대충 붓고는 나를 다시 자신의 등에 업히게 했다. 나는 반항하지 않고 얌전히 백희도에게 기댔다.

    백희도는 나를 들추어 업고 던전을 나오며 싸늘하게 말했다.

    “주술사, 너 유세림 파티에서도 이딴 식으로 구는 거면…….”

    “…….”

    “당장 다 때려치우고 집에 처박혀 있어. 그딴 방법으로는 너희 형 찾기 전에 네가 먼저 황천길에 갈 테니까.”

    악담 가득한 말일진대 왜 울컥하는지는 모르겠다. 나는 괜히 눈물을 흘리고 싶지 않아서 위만 올려다보고 있었다.

    처음이었다. 그렇게까지 하지 않아도 된다고 말해 준 사람은. 언제나 그 이상을 해야 하고, 일 인분을 하지 않으면 안 되는 곳에만 있다가…….

    “알았어. 미안해, 백희도. 그만 좀 해. 알아들었어. 알아들었…… 다고.”

    “…….”

    나는 울먹이지 않으려고 힘겹게 말했고, 백희도는 내 목소리를 듣고는 무어라 말하려던 것을 잊은 것처럼 가만히 입을 다물었다.

    결국, 백희도의 등에서 눈물을 뚝뚝 흘렸다. 놈의 머리카락에 내 눈물이 스며들었다. 녀석은 코를 먹으며 훌쩍이는 나를 꾸역꾸역 업은 채 ‘이쪽’으로 넘어왔다. 덕분에 호텔 바닥은 곧 모래로 가득해졌다. 

    * * *

    나는 욕조에서 한참을 씻고 나와 머리를 잘 말린 뒤에 백희도의 방에 있는 커다란 침대에 누워서 잠을 청했다.

    ‘이쪽’에도 내 집이 있기는 하지만, 어느샌가 백희도가 장기로 투숙하고 있는 이 호텔 방이 내게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백희도도 내가 여길 들락거리는 걸 별로 신경 쓰지 않았고 말이다.

    생각해 보면 백희도는 참 이상한 놈이다. 저가 나랑 만나면 뭘 얼마나 만났다고 집도 공유하고, 거금을 들여서 아티팩트도 사 주고…….

    ‘대체 왜?’

    나는 좀 졸다가 막 씻고 나온 백희도를 보고 놈이 머리카락을 꼼꼼히 닦는 걸 봤다.

    “할 말 있냐?”

    “……어.”

    그리고 백희도의 일거수일투족을 계속 보고 있던 나는 단박에 놈의 시선에 걸렸다. 아니, 사실은 말을 걸어오길 바라며 계속 보고 있던 셈이라 노골적인 어필이긴 했다.

    나는 침을 한번 꿀꺽 삼키고, 백희도에게 물었다.

    “너…… 우리 형 알지?”

    “뭐?”

    “그러니까…… 개인적으로 아는 사이, 맞지?”

    “…….”

    백희도는 그 말에는 대답하지 않고 거울 너머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나는 그 시선을 마주 보면서 녀석에게 주절주절, 내가 생각했던 것을 털어놨다.

    “너 사실은 우리 형을 개인적으로 알고 있어서 나 도와주는 거 아닌가 하고. 솔직히 네가 나한테 잘해 주는 이유가, 아무리 생각해도 그거 말고는 없…….”

    “한성훈이랑 난 친하지 않아. 얘기는 해 봤지만, 너라는 동생이 있는 줄도 몰랐지 그땐.”

    “…….”

    “네 형 한성훈이 한참 활동할 때, 난 고3이었다고.”

    “……그, 그러네.”

    백희도가 5년 전에 열아홉 살이었다는 사실이 왠지 모르게 충격적으로 다가와서 나는 할 말을 잃고 말았다. 

    그래서 뻘쭘해진 난, 이상한 질문을 했다.

    “너 그때도 머리 길었냐?”

    “하아……. 진짜 궁금하냐, 그게?”

    하지만 역시나 백희도는 만만치 않은 놈이었다. 한심하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은 놈에게 나는 괜히 얼굴이 빨개져선 결국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그런 내게 백희도가 빈정거리듯 대답했다.

    “그땐 머리 짧았지. 단발 정도.”

    나는 보통 남고생의 머리를 생각하며 혼자 중얼거리듯 말했다.

    “……다, 단발이 짧은 건가.”

    그러자 백희도가 한쪽 눈을 찡그리면서 말했다.

    “이젠 머리 길이 가지고 뭐라 하고 싶은 거냐?”

    “아, 아니, 아니. 그건 아니고…….”

    “내 마음이야 기르는 건.”

    “누가 뭐래? 아니, 그냥……. 뭐, 나도 싫진 않아. 예쁘다고 생각해…….”

    “아하. 싫지도 않고, 예뻐?”

    나는 말꼬리를 잡으며 씩 웃는 백희도가 왠지 얄미웠다. 그리고 내 얼굴이 이상하게 빨개진 것도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는 백희도에게서 등을 돌리며 이불을 머리끝까지 뒤집어썼다.

    * * *

    “유세림 파티에는 언제까지 있을 셈이냐?”

    “……글쎄.”

    나는 룸서비스로 온 해장국을 먹으면서 백희도의 질문에 느릿하게 답했다.

    백희도는 내가 먹고 있던 조기의 생선 가시를 발라 주더니 한술 뜬 밥 위에 올려 줬다. 숫제 제 동생이라도 챙기는 듯해서, 거북해진 터라 그 생선 가시가 발라진 흰 살을 노려보다가 녀석을 쳐다봤다.

    ‘원래 이런 놈인가.’

    까닭 모를 친절 앞에서 괜히 마음이 싱숭해지는 것은 내가 여태껏 의심과 기브 앤 테이크의 방식으로만 살아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희도는 전혀 안 그럴 것 같은 놈이 가끔 이렇게 내키는 대로 친절하게 굴고는 해서 마음을 심란하게 만든다. 

    ‘형과의 인연도 아니면, 대체 왜…….’

    어제부터 이어진 ‘백희도가 나에게 친절한(?) 이유’를 생각하니 머리가 아파 왔다. 그래서 우선은 그냥 흰 살을 덥석 삼켰다. 

    그때, 그런 내게 백희도가 물었다.

    “너 유세림 죽이고 싶다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