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26화 (27/104)

26화

나는 놈의 남자다움(?) 뽐내기에 머리를 긁적였으나, 어쨌든…… 거부하기엔 너무 좋은 아이템이었고 거절할 명분도 없었다. 단둘이서 A등급 일곱 명이 도전했다 실패한, 새로운 던전에 가야 하니까 말이다.

다만 백희도가 내게 2만 골드나 투자해 선물을 주면서까지 내게 얻고 싶어 하는 게 뭘지……. 그건 아무리 생각해도 이해가 잘 안 돼서 왠지 모르게 긴장이 되었다. 

“돌아가자.”

“으응…….”

그러나 백희도는 허리띠를 사 주고 난 뒤, 내게 별다른 행동을 하지도 않고 곧장 게이트를 열어 ‘저쪽’으로 건너갔다. 

나는 건너오고 나서야 녀석에게 해야 했던 말을 할 수 있었다.

“야, 백희도.”

“……?”

“……고, 고마워.”

하지만 백희도는 내 고맙다는 인사에 오히려 미간을 찡그렸다. 그래서 나는 얼른 말을 덧붙였다.

“언젠간 나도 좋은 아티팩트를…….”

하지만 백희도는 내 말을 끊고 말했다.

“이번 던전에서 나오는 아티팩트 우선권은 내 거야.”

“아……. 그건 당연히 네 거라고 생각했는데.”

“그럼 됐고.”

백희도는 그렇게 말하고는 아무리 생각해도 녀석이 훨씬 불이익인 계약을 즐거이 맺었다.

* * *

챙캉―!

동서쪽에 새로 생긴 던전은 찌는 듯한 더위와 모래 속에서 튀어나오는 전갈들을 상대해야 하는 곳이었다.

“[혼란]!”

그리고 이렇게 외피가 단단한 몬스터들의 경우, 기본 방어력이 높아 어떤 정신 계열 공격을 해도 다 튕겨 낸다는 게 문제였다.

[실패.] 

“……젠장, 이번에도 또 튕겼어.”

“천천히 해, 천천히.”

내가 고군분투하는 것과는 달리, 백희도는 여유롭게 전갈의 외피 이음새에 검을 찔러 넣으면서 하나둘 해치우고 있었다. 그리고 내가 스킬에 실패해도 별다른 질책 없이 여유 만만이었다.

하지만, 나는……. 

‘허리띠까지 받았는데, 이렇게 1인분도 못 하면…….’

그런 생각이 들어서 초조함이 가시지 않았던 것이다.

“우앗!”

또한 바닥에 중간중간 유사가 생겨 몸의 균형을 맞추기도 힘들었는데, 백희도는 꼭 허공을 걷는 것처럼 유사를 손쉽게 빠져나오곤 했다. 나는 넘어지지 않으려고 버티는 게 고작인데 말이다. 

이 모든 것이 내게는 스트레스가 되었으나, 백희도는 내 민망함과는 전혀 상관없이 50여 마리의 ‘큰 독 전갈’을 전부 죽였다.

“괜찮냐?”

백희도는 내 손을 잡으며 유사에 빠진 왼발을 지탱해 주었다. 나는 왼쪽 신발을 먹어 치운 유사를 보며 한숨을 내쉬었다.

“하아…….”

하지만 백희도는 장난스럽게 말할 뿐이었다.

“양말까지 야무지게 먹네.”

웃으라고 한 말 같긴 했지만, 내 꼴이 처참하긴 했다. 이리저리 먼지 먹은 옷에 왼발은 맨발…….

“하아…….”

“왜 자꾸 한숨이야?”

나는 울컥하는 마음에 대꾸했다.

“한 마리도 스킬이 안 통하니까……!”

“어차피 다 잡았잖아.”

‘그건 네가 다 잡은 거고!’

그렇게 말하고 싶었지만, 결국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이래서야 쩔 받는 거랑 뭐가 다른가 싶기도 하고…….

하지만 백희도는 그런 말 대신, 내 왼발을 보며 물었다.

“안 뜨겁냐?”

“괜찮아.”

“업어 줘?”

“괜찮다고.”

“성질은.”

쯧쯧, 혀를 차던 놈은 기어이 나를 툭 밀쳐서 앉히곤 갑자기 제 머리를 묶어 놓았던 허리끈을 풀었다. 그리고 내 발에 묶기 시작했다. 

“괜찮다고 몇 번을……!”

“이 뜨거운 모래 위를 맨발로 걷다가 물집이라도 잡혀 절뚝거리고 싶으면 계속 고집부리고.”

“…….”

그리하여 나는 검은색 천으로 왼쪽 발을 꽉 감싼 채 백희도의 뒤를 따르게 된 것이다.

[샤아아아―.]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나타난 피라미드와 비슷한 건축물 안에는 반은 사람, 반은 황금색 뱀으로 된 수인 몬스터들이 창을 쥔 채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오아시스의 환영’ 던전에 입장하셨습니다.]

내부는 정말 상상 속 피라미드 같았다. 다만 벽화에는 섬뜩한 뱀 그림과 거대한 뱀의 입안으로 떨어지는 사람의 모습만 이어질 뿐이었다. 

휘익―!

나는 반사적으로 고개를 꺾어 날아온 창을 피했고, 몰려 있던 몬스터들이 내게 공격을 가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리고 거의 동시에 희미한 실드가 몸 위로 생성되었다. 허리띠에 부여된 스킬이 발동된 듯했다.

그리고 그사이, 백희도는 이미 검을 뽑아 선두로 나선 이후였다.

“이번만큼은 제발…….”

나는 백희도를 상대하느라 정신이 팔려 있는 놈들 외에 나를 포위하려고 드는 몬스터 놈들에게 다시 한번 저주를 걸었다.

“[혼란].”

[실패.]

“젠자앙!”

나는 일단 뒤로 물러섰다.

차라리 몸놀림이라도 재빠르다면 백희도에게 몬스터라도 몰아줄 수 있었을 텐데, 상대는 A등급 몬스터. 나보다 근력도 스피드도 월등했다. 내가 죽지 않고 버틸 수 있었던 건 오로지 백희도가 사 준 허리띠 덕분인 것이다.

챙―!

다시 한번 찌르기 공격이 들어왔지만 실드가 막아 주었고, 나는 반지의 보석을 왼쪽으로 돌렸다. 피가 채워지기 시작한 반지를 두고, 다시금 저주를 남발했다.

“[무거운 걸음]!”

“[어두워진 눈동자]!”

“[뒤집어쓴 가죽]!”

[실패.]

[실패.]

[실패.]

하지만 놈들은 마법 저항마저 상당한지 계속해서 실패 메시지만 떴다.

나는 마지막으로 온 힘을 다해 내게 가장 가까이 파고든 몬스터의 오른쪽 눈을 노리며 스킬을 외쳤다.

“[보이지 않는 고통]!”

[성공.]

[끄아아아악!]

퍽― 하는 소리와 함께 몬스터의 눈알이 터졌고, 나는 비명을 지르는 몬스터의 머리털을 쥐어뜯었다. 

고작 이거 하나 성공하는 데 머리가 띵할 정도의 빈혈이 찾아왔지만, 여기서 멈출 수는 없었다.

“[주박]!”

[성공.]

제물이 있는 상태로 저주를 걸면 성공 확률이 크다. 즉, 내가 가진 것 중에 통하는 것은 ‘주술사 라몬의 반지’뿐. 하긴, 이 반지는 상당히 상위 던전에서 나온 아티팩트였으니까.

“죽어!”

나는 반지를 오른쪽으로 잠그지 않았으므로 계속해서 피가 빨려 들어가고 있었고, 라몬의 반지는 내가 원하는 대로 몬스터의 목덜미 동맥에 [보이지 않는 고통]을 가해 주었다.

[케에에엑!]

나에게 가장 가까이 다가왔던 반인 반뱀 수인은, 창을 놓친 채 검은 피를 뿌리며 뒤로 쓰러졌다.

[레벨이 증가하였습니다!]

[플레이어: 한솔

레벨: 72

직업: 디버퍼

등급: C

스킬: 

―무거운 걸음 (위력 30/30)

―어두워진 눈동자 (위력 30/30)

―뒤집어쓴 가죽 (위력 30/30)

―? (위력 1/20)]

‘맞다, 저 물음표가 뭔지 알아봐야 봐야 하는데.’

나는 레벨과 함께 오른 물음표의 위력을 보고 그게 뭔진 모르지만, 일단은 왠지 모를 뿌듯함을 느꼈다. 

하지만 아직 던전은 끝난 게 아니었다. 등 쪽에서 챙―! 하고 다시 창과 실드가 부딪치는 소리가 들려온 것이다.

“하아, 하아……. [무거운 걸음]!”

[성공.]

다행히 이번엔 내 직업 디버프가 걸려, 가까이 다가오던 몬스터의 움직임이 현저히 둔해졌다. 

나는 이제야 반지를 오른쪽으로 잠갔다. 너무 많은 피를 한 번에 써서 어지럼증이 감돌았기 때문이다. 

“이야. 주술사, 제법인걸? 하나 해치웠네?”

그리고 그때, 내 등 위로 백희도의 부드러운 목소리가 떨어졌다. 녀석은 그사이 내 몇 배는 되는 몬스터를 모두 다 해치우고 나를 도우러 온 것이다.

놈은 창백한 내 얼굴을 보곤 잠시 인상을 찡그렸으나, 느려진 반인 반뱀 수인들을 도륙할 때는 망설이지 않았다. 

착― 하고 모든 몬스터를 죽이고 다시 검을 검집에 집어넣은 백희도는 벽에 간신히 기대 있는 나를 향해 터벅터벅 걸어왔다.

“괜찮냐? 얼굴이 존나 하얘졌는데.”

“……안 괜찮아. 그래도 기적이지, 내가 여기서 살아남은 건.”

“그렇긴 해.”

백희도는 그렇게 말하며 말릴 새도 없이 나를 들추어 업었다. 

나는 놈에게 업히자마자 내상을 입은 탓에 “웩!” 하고 피를 토해 냈다. 아까 내가 처치한 몬스터의 목을 터트릴 때 무리했던 것이 이렇게 나타난 것이다. 

그래서 나는 백희도에게 내려 달라고 하지 않고, 얌전히 놈의 목에 팔을 둘렀다. 

“포션은 이따 먹자.”

“…….”

[그르르르…….]

곧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 몬스터로 보이는 몬스터의 울음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백희도는 나를 안전한 기둥 뒤에 앉혀 두고는 제 겉옷을 내게 덮어 주곤 날아가듯 보스 몬스터, [라카누엘]에게 달려갔다.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