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1화
[진실의 브레이슬릿
―스킬 1: 진실의 판결 (현혹형 마법 저항력을 20% 높여 준다 / 패시브)]
“마법 저항력 20이면…….”
정말 엄청난 수치였다. 나는 이런 엄청난 아티팩트를 담보도 없이 빌려준 백희도 녀석의 배포에 놀랐다.
그러자 백희도는 내 눈에 서린 탐욕을 읽은 건지 웃으면서 섬뜩한 소리를 했다.
“이번 한 번뿐이야. 팔목째로 잘리기 싫으면 얌전히 반납해.”
“……쳇.”
그래도 백희도를 불러낸 것은 잘한 일이었다. 공짜로 이런 아티팩트를 빌리게 되었으니 말이다.
나는 내친김에 백희도를 쭉 훑어봤는데, 녀석의 머리부터 발끝까지 가만 살펴보니 아티팩트처럼 보이지 않는 것이 하나도 없었다. 귀걸이도 그렇고 반지에 목걸이까지……. 입고 있는 옷도 어쩐지 아티팩트일 것 같다고 해야 하나?
“넌 아티팩트 몇 개나 가지고 있냐?”
“그걸 왜 알려 줘.”
백희도는 피식 웃으면서 입을 다물었다. 정말로 안 알려 줄 요량인 듯 보였으나, 나는 놈의 귀에 짤랑거리는 귀걸이를 보며 슬쩍 물었다.
“그 귀걸이도 아티팩트지?”
“공격력 증가.”
“목걸이는?”
“피로도 회복.”
“와…….”
“이제야 알겠냐? 이 몸이 얼마나 대단한지?”
“…….”
나는 갑자기 자화자찬 모드가 된 백희도를 흘겨봤지만, 놈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나를 내려다보면서 불만스럽다는 듯이 말을 이어 갔다.
“알았으면 감사합니다, 정도는 해라.”
“생색이란 생색은 다 내네.”
“그럼 다시 반납하던가.”
“하아……. 너~~어무 너무 감사해요, 백희도 씨!”
그렇게 말하곤 다시 ‘저쪽’ 세계로 향하고자 게이트를 열었는데, 그 순간 백희도가 내 목덜미를 꽉 붙잡았다.
“뭐, 뭐야?”
“용건 끝났다고 바로 가냐? 밥 먹고 가.”
“뭐?”
“나, 밥 혼자 먹는 거 싫어해.”
“컥, 그게 나랑 뭔 상관……!”
“온 김에 밥 먹고 꺼지라고.”
그러곤 사정없이 게이트 경계에서 콱 목을 조르는 바람에 어쩔 수 없이 나는 게이트를 닫고야 말았다.
‘미친놈 아냐?’
속으론 그런 생각을 했지만, 뭐랄까. 백희도는 이상하게 저런 짓거리를 해도 약간 이해는 됐다. 하도 또라이처럼 행동하니까 주변에 사람이 없을 거고, 그러니 밥 한 끼 같이 먹을 인간관계도 없는 모양이지…….
나는 약간의 동정심을 발휘해 주기로 했다. 하지만 놈이 머무는 호텔 레스토랑에 내려갔을 때, 사복 차림의 유세림과 떡하니 마주칠 줄 알았다면 절대로 같이 먹지 않았을 것이다.
‘……젠장.’
레스토랑 한복판에서 유세림을 만났다.
그것도, 백희도와 있을 때.
“…….”
“…….”
“뭐 하냐? 안 오고.”
내 팔을 잡아끄는 백희도에게 속절없이 끌려가는 와중에도 유세림의 차가운 시선이 내 몸에 날아와 박혔다.
나는 백희도를 쳐다봤다. 백희도 역시 긴장감을 놓지 않는 걸로 봐선 유세림이 같은 공간에 있다는 걸 의식하긴 한 모양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시하겠다는 거겠지.
‘둘은, 대체 무슨 사이…….’
“한솔 씨.”
그리고 역시나 유세림은 이 상황을 그냥 넘어가 주지 않았다.
나는 끌려가지 않도록 힘을 줘 봤지만, 힘만 무식하게 센 백희도 녀석 때문에 질질 계속 끌려가고 있었다.
“다, 다음에 보죠…….”
나는 결국 마음에도 없는 미소를 지으며 유세림에게 손을 흔들어야 했다.
그런데 그 손이 유세림에게 턱, 하고 잡혀 버렸다. 거침없이 나를 끌고 가던 백희도의 발걸음이 멈춘 것도 그때부터였다.
“뭐 하냐?”
백희도가 싸늘하게 물었고, 유세림은 미간을 구겼다.
“그러는 넌?”
“주술사랑 밥 좀 먹으려고. 보면 몰라?”
“내 파티원인데…… 같이 밥을 먹겠다고?”
“밥 먹는 정도야 너랑은 상관없지. 그러니까, 손 좀 놓고 꺼지지?”
둘이 레스토랑 한가운데서 내 양팔을 붙든 채로 이 지랄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내 얼굴을 쪽팔림으로 벌겋게 익을 수밖에 없었다.
특히나 나는 유세림이 백희도와 관련된 일이면 이렇게 이성을 잃고 달려드는 것이 이해가 되지 않아 놈을 잠시 쳐다봤다.
‘제발 좀……. 너희끼리 나가서 치고 박고 싸우든가!’
미친놈들이 내 손목 가지고 힘자랑하는 탓에 애꿎은 나만 고생 아닌가.
나는 애써 손목을 이리저리 비틀어 봤지만, 내 움직임에 반응해 주는 놈은 없었다. 역시 인성 쓰레기 R등급들다웠다.
“아…… 프거든?”
결국, 나는 그나마 좀 만만한 백희도에게 불만을 표했다. 백희도는 유세림을 노려보고 있다가 내 속삭임을 듣고 팔목을 놓아주었다. 유세림도 그제야 내 손목을 놨다.
나는 유세림의 싸늘한 시선에 일단 뒤로 물러서면서, 놈을 자극하지 않도록 말했다.
“……선약은 백희도랑 있어서. 그럼, 전 이만…….”
“전에 충분히 설명한 것 같은데. 이해를 못 했나 봐요, 한솔 씨.”
“…….”
하지만 역시나 쉽게 물러설 놈이 아니었다. 놈의 자안이 시리게 빛나며 나와 백희도를 번갈아 쳐다봤다.
“제 말을 무시할 정도면…… 어떤 사이인지 물어도 될까요?”
그러고는 돌직구로 나와 백희도의 사이를 물었다.
순간 짜증이 났지만, 막상 둘러대려고 하니 백희도와 내 사이가 어떤 사이인지 설명할 말조차 찾기 어렵다는 걸 깨달았다.
그때, 백희도가 입을 열었다.
“사이는 무슨, 밥이나 먹으려는 거지.”
“밥?”
“그럼 궁상맞게 혼자 처먹냐?”
백희도는 주변을 둘러보면서 내 팔을 마저 잡아당겼다.
하긴, 호텔 레스토랑이다 보니 대부분 2인 이상 밥을 먹고 있었다. 도무지 혼밥을 할 분위기는 아니었기 때문에, 나도 수긍하고 백희도에게 고개를 돌리려던 참이었다.
“그럼 나도 같이 먹자.”
“……뭐?”
“마침 배가 고팠거든.”
그런데 유세림이 생긋 웃으면서 기어이 우리 사이에 끼어든 것이다.
나는 발끈해서 당장이라도 드잡이질할 것 같은 백희도의 팔을 일단 꽉 잡았다. 여기서 유세림을 거절하면 놈이 나에게 가지는 불필요한 의심이 더 커질 테니까.
“…….”
백희도는 내가 저의 팔을 꼬집자 인상을 확 찡그리면서 나를 쳐다봤다. 하지만 다행히 내 의도를 망가트리는, 눈치 없는 말을 내뱉지는 않았다.
그래서 우리는…… 결국 숨 막히는 식사 시간을 가지게 된 것이다.
잘그락.
나는 애피타이저로 나온 수프를 조금 먹으면서 내내 식기에 손 하나 안 대고 있는 두 사람을 힐끗 쳐다봤다.
나만 쳐다보는 건 아니었다. 둘은 각성자는 물론이고 일반인들한테도 유명했기 때문에 이쪽을 보고 소곤거리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었다.
‘체할 것 같구만…….’
나는 억지로나마 나온 음식들을 먹었으나 백희도는 팔짱을 낀 채 유세림을 노려보고 있었고, 유세림은 눈 하나 까딱하지 않고 백희도의 시선을 맞받아치는 중이었다.
“저, 손님. 치워 드려도 될까요……?”
그렇다 보니 나뿐만 아니라 서빙 하는 사람들까지도 둘의 눈치를 봤다. 나는 입을 열지 않는 두 사람을 대신해 말했다.
“네, 치워 주세요.”
“감사합니다.”
이어 본식이 나왔는데, 스테이크였다. 백희도는 그제야 팔짱을 끼고 있던 건방진 자세를 풀고 스테이크를 썰어서…….
“뭐, 뭐야?”
“먹어.”
……내 접시에 올려 주었다.
나는 당황했다. 저번에 잘 못 먹었던 건 처음 먹는 이상한 해산물 요리였기 때문이고, 스테이크 정도는 나도 충분히 썰어 먹을 수 줄 아는 음식이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백희도는 눈짓으로 뭐 하냐는 듯이 굴었고, 나는 결국 놈이 썰어 준 스테이크를 먹을 수밖에 없었다. 이 모습을 유세림이 빤히 보고 있는 앞에서 하려고 하니 너무 수치스러워서 얼굴이 저절로 빨개졌다.
“하…….”
역시나 유세림도 기가 찬 듯 헛웃음을 지었다. 그러나 백희도는 개의치 않고 접시 하나에 있는 스테이크를 다 썰어 주곤 나와 접시를 바꿨다. 그러곤 그제야 제가 먹는 것이다.
“…….”
나는 그 모습에 내가 무슨 다섯 살짜리 어린애로 보이냐며 타박하고 싶었으나, 유세림 때문에 그런 말은 하지 못했다.
유세림은 그런 나와 백희도를 번갈아 쳐다보다가 가만히 내 손목을 주시했다. 나는 놈이 백희도가 준 아티팩트에 시선을 주고 있다는 걸 깨닫곤 소매를 내렸지만, 이미 다 들켜 버린 뒤였다.
“……백희도.”
유세림이 백희도를 불렀다.
“내 파티원에게 찝쩍거리지 마.”
백희도는 그 말에 황당하다는 표정을 지었으나 잠시 후, 좀 오묘한 얼굴이 되었다. 왠지 모르게 장난스러운 표정이라고 해야 할까?
나는 뭔가 불안해져서 백희도가 말하기 전에 유세림의 오해를 풀려고 입을 열었으나…….
“그게 아니…….”
“고작 파티원이면서 뭘 그렇게 유난이야.”
“거슬리니까 그만하라고.”
“안 되겠는데? 나랑 한솔은 꽤 찐한 사이라서 말이지.”
‘안 그래?’ 하고 물어 오는 백희도의 얼굴은 진짜 한 대 때려 주고 싶을 만큼 얄미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