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화
뚝딱, 쿵―!
‘노아’는 산꼭대기에 방주를 만드는 미치광이 목수라는 콘셉트의 몬스터다. 그리고 노아의 주변에는 그를 돕는 거인들, ‘퀴클롭스’들이 있었다.
외눈박이지만 퀴클롭스들은 인간의 네 배는 되는 거대한 몸에 엄청난 근력을 지닌 데다 마법 저항도 무시무시한 놈들이었다. 이번 던전에서 내가 괜히 ‘안화영이나 구출해 볼까?’라고 생각한 게 아니었다.
‘내가 나서서 할 만한 게 없으니까.’
거기다 보스인 노아에게 가는 길 중간중간에는 함정이 있는데, 교묘히 흙으로 덮어 놓은 터라 빠지면 죽창에 찔리거나 입을 벌리고 있던 관에 갇히게 된다.
관이 닫히면 노아를 죽이기 전까진 빠져나오지 못한 채 꼼짝없이 그 속에서 파티원이 노아를 처치해 주기를 기도하는 수밖엔 없었다.
‘예전에도 안화영은 공중에 떠 있는 소환수의 등에 타고 있어서 방심하다가 갇혔었지.’
하지만 퀴클롭스들이 함정 속에도 숨어 있다는 게 문제였다.
죽창과 관뿐만 아니라, 퀴클롭스들은 함정 속에 숨어 있다가 불쑥 손을 뻗어 붙잡힌 각성자들의 뼈를 부러뜨리거나 잡아먹었다. 예전에 안화영도 숨어 있던 퀴클롭스에게 잘못 걸려 떨어졌던 것이다.
“안화영.”
[꺼억, 나를 부른 거예요이?]
“발밑 조심해.”
나는 안화영에게 주의를 주면서 땅을 향해 무작위로 저주를 날렸다.
“[어두워진 눈동자]!”
[실패.]
그리고 마침내 숨어 있던 한 마리를 발견했다. 바로 안화영의 발밑이었다.
“안화영! 아래!”
[그워어어어어억!]
퀴클롭스는 거대한 손을 뻗었고, 안화영은 잠시 당황해 기우뚱하기는 했으나 곧 소환수의 균형을 잡고 입을 크게 벌렸다.
우두두득―!
뼈째로 씹어먹는 끔찍한 소리가 들리고, 안화영이 한숨 돌렸을 때였다. 나는 그의 뒤에서 다른 퀴클롭스의 손이 뻗어져 나오는 것을 보고 있는 힘껏 뛰어 몸을 날렸다.
“안화영―!”
달그락, 달그락.
“허억, 허억!”
“흐으윽!”
다행히 나는 안화영의 옷 등 부분을 두 손으로 붙잡을 수 있었다.
안화영은 발밑에서 딱딱거리고 있는 관을 보며 창백해진 채 몸이 바짝 굳어 버린 상태였다. 폐소 공포증이 있는 안화영에게 관에 갇히는 건 세상에서 가장 끔찍한 일일 것이다.
그리고 내가 안화영을 붙잡은 사이 퀴클롭스를 먹어 치운 소환수가 안화영과 나를 태웠고, 우리는 무사히 함정 구역을 벗어났다.
휘리릭―!
아니, 벗어났다고 생각했는데 내 허리에 유세림의 채찍이 감겼다. 그리고 안화영의 소환수의 등 위에서 유세림의 품으로 휙 끌어당겨져 왔다.
나는 너무 놀라서 눈을 크게 떴는데, 유세림은 드물게 미간을 찡그린 채로 나에게 말했다.
“미쳤습니까?”
“뭐, 뭐라고요?”
“당신 바로 뒤에 양팔을 잃은 퀴클롭스가 입을 벌리고 있었습니다.”
그러면서 유세림은 보란 듯이 채찍을 다시 휘둘러, 아까 내가 있던 곳에 서 있던 퀴클롭스의 머리를 반으로 쪼갰다.
확실히 그대로 있었다면 안화영을 구할 수는 있었겠지만 계속 소환수에 기대어 타고 있다가 혹시나 미끄러졌으면 바로 퀴클롭스의 밥이 되었을 것 같긴 했다.
나는 알았다는 의미에서 고개를 끄덕였다.
“……못 봤어요.”
“가끔 보면 한솔 씨는 목숨이 두 개라도 되는 듯이 굴더군요.”
“……!”
나는 꽤 날카로운 지적에 당황하여 유세림을 올려다봤지만, 놈은 티 하나 없이 아름다운 얼굴로 도통 알 수 없는 표정을 짓고 있었다.
눈이 마주치자 마음이 점점 무거워지기 시작해, 결국 유세림을 강제로 밀어냈다. 허리춤에 닿은 그의 손이 거북하게 느껴졌다. 다행히 유세림은 순순히 나를 놔주었다.
“……주의하도록 할게요.”
“…….”
유세림은 내 말에 싸가지 없게 대답도 안 했다.
나는 괜히 쫄았다고 생각하면서도 앞서 걷는 놈의 등을 잠시 쳐다봤다. 순간이었지만, 가슴이 속절없이 뛰었던 것이 못내 분했다. 놈의 눈에 쫄은 것처럼 보였을까 봐.
* * *
쿵, 쿵―!
드디어 노아는 그 거대한 몸을 땅바닥에 쓰러트리면서 눈을 허옇게 뒤집었다.
이번에도 마무리는 유세림이었다. 노아의 목에 선명히 남은 두 줄의 보라색 멍이 바로 질식할 때까지 놈과 힘겨루기한 흔적이었으니까.
유세림은 저 거대한 거인의 목을 채찍으로 조르면서도 땀 한 방울, 인상 한 번을 찌푸리지 않고 간단히 제압했다.
‘저 정도면 혼자 클리어 할 수 있을 텐데, 대체 우리는 왜 데리고 다니는 거지?’
나는 유세림의 멀쩡해 보이는 면상을 흘겨보다, 알람이 울려서 다시 정면을 쳐다봤다.
[‘노아의 관 조각’ 10개를 획득하셨습니다!]
‘오……. 역시 보스 몬스터를 잡으면 자동으로 퀘스트 아이템이 채워지는 거였나 보군.’
이번에 다소 무리하긴 했지만, 혈갑의 재료를 모았다는 생각에 기분이 좀 나아졌다.
[한솔요이!]
“어?”
그때 안화영이 드물게도 소환수에서 내려서 내게 비척비척 다가왔다.
그는 여전히 창백한 얼굴이었으나 뭔가 단단히 결심한 듯 나에게 가까이 다가와 섰다. 그러곤 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초콜릿을 하나 건네주는 게 아닌가. 맨날 뭔가를 먹고 있는 듯하더니, 찐득한 단맛으로 유명한 초콜릿이었다.
사실 나는 단 걸 그렇게 좋아하진 않았지만, 안화영 나름 대로의 고마움의 표시라고 생각하자 좀 귀엽게 보였다.
‘그러고 보니까 안화영 이 녀석, 몇 살이지…….’
성인은 맞나? 싶은 자그마한 키에 맨날 소환수로만 말해서 목소리도 들어 본 적이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안화영이 건넨 초콜릿을 거절하지 않고 까서 먹었다. 예상대로 찐득한 단맛이 입안을 텁텁하게 채워 갔다. 그리고 안화영은 표정은 밝아졌고 말이다.
[오늘 고마웠다구요이.]
“……나중에 갚아.”
나는 진심을 담아 말했고, 안화영은 고개를 크게 끄덕이고는 곧 다시 쪼르르 제 소환수에 타곤 숙소로 둥실둥실 날아갔다.
‘노아의 관 다음이 여왕의 세례였나?’
그리고 나는 노아의 관 다음 던전이 뭔지 떠올리고는 이맛살을 찌푸렸다.
‘꽤 성가신 던전이었던 것 같은데……. 그 던전에 보석이 많았지.’
보석에 저주가 걸려 있어서 보는 사람을 현혹하고, 건들면 보스를 잡을 때까지 보석인 상태로 변해 있어야 했다.
‘저항이 낮은 나 같은 C등급이 가기엔 쥐약인데…….’
게다가 중간중간 황금으로 된 여왕의 창고지기들도 상대해야 하는데, 문제는 이 창고지기들도 보석이기 때문에 직접적으로 닿으면 안 된다는 것이다.
특별한 주술이 담긴 아티팩트 무기로 상대하거나, 아니면 아예 성규림 씨처럼 원거리 스킬로 제압해야 했다.
나는 머리를 감싸 쥐면서 고민에 빠졌다.
‘예전에도 그 던전에 가서 내가 할 수 있는 거라곤 아무것도 없었어…….’
오죽하면 그 말없는 김재호마저 거치적거리는 나를 한쪽 구석에 묶어 두라고 했을 정도였으니까.
나는 이번에 향했을 때에도 내가 보석에 걸린 저주에 휘말려 추태를 부릴지 아닐지 확신할 수 없었다.
‘전보다야 레벨은 높아졌지만……. C등급인 건 변함없으니 파티에 도움이 안 될 거야.’
그럼 이번에는 빠지겠다고 하는 게 나으려나?
하지만 선선히 ‘그러세요’라고 말하는 유세림을 떠올리자 뭔가 배알이 꼴렸다. 꼭 지는 듯한 기분이 든 달까. 그래도 이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뭐야. 여기도 퀘스트 아이템이 있잖아?”
나는 숙소로 돌아와 혹시나 싶어서 ‘혈갑’ 퀘스트 아이템을 검색하다가 거기에 떡하니 [여왕의 다이아몬드 부스러기 0/10]가 적힌 것을 보고 다시금 머리를 부여잡았다.
* * *
“……하. 그래서, 나한테 지금 조언을 구하겠다는 거냐? 진짜 급한 일 아니면 연락하지 말랬지?”
“퀘스트 아이템 모으는 일이 급한 일 아니면 뭔데?”
나는 우선 2주간의 전체 휴가를 받았기 때문에 숙소에 짐을 풀어 놓고는 곧바로 ‘이쪽’으로 넘어와 백희도에게 연락을 걸었다. 다행히 백희도는 ‘이쪽’에 있었는지 뚱한 목소리로 내 전화를 받았다.
그렇게 만났는데, 나는 다음 던전을 설명하면서 백희도에게 좋은 방법이 있느냐 물었지만, 놈의 태도가 영 띠꺼웠다.
“그냥 눈감고 유세림 뒤에 붙어 다녀.”
“……씨발. 그러기 싫으니까 너 따윌 불러낸 거 아냐.”
“능력 달리는 걸 남한테 이렇게 화내면서 풀지 말고.”
얄밉게 대꾸한 백희도는 금방 일어날 듯 굴더니 갑자기 뭔가 생각난 듯이 다시 자리에 앉았다. 그러곤 인상을 구기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뭐?”
나는 짜증을 내며 백희도를 쏘아봤다. 그러자 놈이 나에게 말했다.
“야, 이거 빌려주는 거다?”
“뭐?”
“주는 게 아니라 대여라고, 대여. 알겠어?”
그렇게 말하며 백희도는 품에서 팔찌 하나를 꺼냈다.
“뭐야, 이건?”
“써 봐라.”
내가 쓰기에는 사이즈가 지나치게 컸는데, 신기하게도 손목에 끼우자 갑자기 크기가 확 줄어들었다. 아티팩트였던 것이다.
나는 얼떨떨하게 물었다.
“……아티팩트를 준다고?”
“‘발려’준다고 분명히 말했다.”
그리고 동시에 아티팩트의 설명이 시야에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