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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화 (19/104)

18화

펑―!

“저기다!”

“잡아!”

목재로 만들어진 건물은 금세 불이 붙어 빠르게 옆으로 불길이 번지기 시작했고, 우리를 쫓아오던 화교인들은 백희도의 엄청난 속도를 따라잡지 못했다. 

그렇게 백희도는 나뭇가지를 밟으며 빠르게 화령 신궁에서 멀어져 갔다.

‘……대단하다.’

속으로는 그렇게 생각했지만, 당연히 말은 하지 않았다.

그런데 거의 한 시간 가까이 달렸음에도 불구하고 백희도는 속도를 멈추지 않았다. 아직도 추적자가 따라붙었다는 얘기였다.

‘아니면, 나 때문에 떨쳐 내지 못한 건가?’

나는 자괴감에 빠져 백희도의 품속에 꽉 매달렸고, 녀석은 그런 나를 힐끗 쳐다봤으나 아무런 말도 없었다.

역시 내 예상대로 추적자가 있었다. 그리고 추적대의 선두에는 괴상한 생물체를 탄 이홍과 이혜가 비웃듯 우리를 내려다보고 있는 차였다.

“남의 궁을 멋대로 태우고 설계도까지 훔쳐서 도망을 가면 안 되지, 백희도.”

“쳇.”

게다가 놈들은 이미 백희도의 정체를 알고 있는 상태였다. 백희도는 결국 숲 중앙에서 달리는 것을 멈췄고, 나도 녀석의 품에서 떨어졌다. 

그리고 어느새 우리 근처에는 스킬을 써서 쫓아온 듯, 화교인 수십 명이 포위망을 만든 상태였다.

‘좋지 않아…….’

듣기로 화령 궁주인 이홍은 백희도와 같은 R등급, 그리고 이홍의 동생인 이혜는 S등급의 각성자이다. 둘만 상대하기도 벅찬데, 백희도는 나까지 다른 화교인들에게서 보호하면서 싸워야 했다.

하지만 백희도는 하얀 검집에서 검을 뽑으면서, 나에게 짤막하게 한마디만 했다.

“내 뒤에 있어.”

이 순간조차 나를 두고 가지 않겠다는 뜻이었다.

“…….”

그 판단에 놀라고, 이상하게 눈가가 시큰거렸다. 

나는 이를 악물고 아까 챙겼던 머리카락을 주먹에 쥐었다. 그러자 심장이 두근거리면서, 이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단박에 알 수 있게 되었다.

‘이혜의 것이군.’

그렇게 생각하자마자 이혜가 기괴한 생물체에서 멋지게 뛰어내려 백희도의 앞에 섰다. 기괴한 팔 자체가 그의 무기인 듯 팔을 신중하게 앞세운 자세였다. 반면, 백희도는 자세를 바꾸지 않았다.

“얘기를 들어 보고 싶으니, 둘 중 하나는 혀를 남기고 잡거라.”

이홍은 여전히 허공에 뜬 생물체 위에 앉은 상태로 그렇게 말하면서 딱! 손가락을 튕겼다. 

그러자 이혜를 비롯한 화교인의 눈이 모두 붉게 빛났다. 그리고 모두의 기세가 한층 더 소름 끼치게 올랐다.

나는 그제야 이홍이 정신 계열이 아니라 R등급의 버퍼라는 것을 깨닫고는 전율이 일었다. 화령 신궁엔 뇌령검 따위는 없지만, 능력을 한 단계 올려 주는 버퍼는 실제로 있었던 것이다.

‘지금 이혜는 S등급이 아니라 R등급의 전사라고 봐야 해.’

또, 나는 동시에 화령교의 신도들이 왜 그렇게 이홍을 기꺼이 궁주로 섬기고 모시는지 이해했다.

끼이이익― 깡!

먼저 덤벼든 것은 이혜였다.

이혜는 자신의 괴물 같은 팔을 이용해 백희도의 검을 막아 냈다. 다행히 백희도는 정교한 검술로 무지막지한 힘으로 밀어붙이는 이혜를 잘 방어해 냈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화교인들이었다. 다른 녀석들은 둘의 일전을 기다리는 게 아니라, 검진을 짜서 백희도를 쉬지 못하게 계속해서 압박해 들어오기 시작했다.

그래서 백희도는 검진으로 압박해 오는 최소 A등급의 검사들과 R등급이나 마찬가지인 이혜의 무식한 힘을 홀로 상대해야 했다. 더구나 아직 이홍은 길들인 듯 보이는 괴상한 몬스터에서 내려오지도 않은 상태였다.

‘……이대로라면 백희도는 죽어.’

쫘악―!

지금도 백희도의 어깨에 화교인 중 하나의 검이 스쳐 지나갔다.

핏자국이 터지고, 녀석의 검은 옷이 얼룩지는 것을 보니 마음이 애탔다. 게다가 백희도는 지금 나를 보호하며 싸워야 하기 때문에 운신의 폭이 좁기까지 했다.

한마디로 충분히 피할 수 있음에도 결국 나 때문에 피하지 못하는 셈이다. 나도 그것을 알기에 뒤로 더 물러서려고 했으나…….

[하하하하하하하.]

사람 웃음소리를 내는, 이홍이 탄 괴물이 나를 주시하면서 슬그머니 다가오기 시작했다.

여기에 저 괴물까지 합세하면 정말 답이 없었기에 나는 결국 선택해야 했다. 백희도를 이렇게, 나 때문에 죽음으로 몰아넣을 수는 없으니까.

“백희도.”

“왜.”

백희도는 옆구리에 다시 한번 검이 스쳤음에도 태연히 대답했다.

“딱 한 번 기회를 줄게. 잘 받아먹어.”

“…….”

백희도는 비아냥거리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이혜의 머리카락을 쥔 채, 반지를 왼쪽으로 돌렸다.

반지는 내가 저주를 내려야 할 상대를 알아본 듯, 일순 빈혈이 일 정도로 무시무시한 기세로 나의 피를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나는 하얗게 질리는 입술을 사리문 채 내가 할 수 있는 저주를 내렸다.

“[주박]!”

내가 주박을 건 곳은 이혜의 왼쪽 발목, 딱 한 곳이었다. 그럼에도 코피가 솟구쳤고 입까지 피가 울컥 치밀어 올랐다. 

하지만……!

“혜야!”

이홍이 거의 비명을 지르듯 소리쳤고, 백희도는 잠시 [주박]에 걸려 덜컥 움직임이 멈춘 이혜의 상반신을 벨 수 있었다. 뜨거운 피가 튀어, 백희도를 적셨다.

“커억……!”

이혜가 휘청거리며 뒤로 물러서자 검진을 만들어 공격하던 놈들도 주춤했다. 

하지만 백희도는 주춤하지 않았다. 녀석은 능숙하게, 가장 가까운 검진의 첫 번째 검사의 머리를 날리고 두 번째, 세 번째 검사의 심장에 검을 찔러 넣었다.

이혜가 쓰러진 이상, 아무리 대단한 버프를 준들 R등급과 그 이하의 등급의 차이는 극심했다. 게다가 이홍은 전투계가 아닌 보조계이므로 이혜가 아니면 백희도를 막을 수 있는 사람은 이곳에 없었다.

‘다행…….’

나는 호랑이처럼 사납게 날뛰는 백희도를 보다가 눈을 감고 쓰러졌다. 그것이 내가 기억하는 마지막 장면이었다.

* * *.

백희도는 아직 숨이 붙어 있는 이혜의 목을 당장이라도 끊어 버리고 싶었으나, 뒤에서 털썩 쓰러진 소리가 온 신경을 사로잡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뒤로 물러섰다. 

이미 검진을 이뤘던 화교인들은 전부 죽인 상태였다. 이홍은 백희도를 노려봤고, 백희도는 천천히 뒤로 물러서며 멍청…… 아니, 꽤 쓸모 있는 주술사를 안아 들었다. 주술사의 상태는 대강 보기에도 심각했다.

‘내상을 입었군.’

백희도는 주술사의 몸을 몇 군데 점혈하여 더 이상의 피가 흐르는 것을 막고, 이홍에게 보란 듯이 말했다.

“허튼짓하면, 네 동생의 목을 날려 버릴 거다.”

“그런 짓을 했다간 넌 평생 내게 쫓기는 신세가 될 텐데?”

“퍽이나 무섭네. 이미 너 같은 새끼가 몇 트럭인 줄 알아?”

“…….”

그렇게 말한 후, 백희도는 ‘이쪽’ 세계로 가는 게이트를 열었다. 그리고 주술사를 안은 채 붉게 충혈된 이홍의 눈동자를 바라봤다. 

‘귀찮게 됐네.’

새로운 악연이 시작되리라는 예감이 문득 머리를 스쳤으나, 그는 우선 체온이 식어 가는 주술사부터 살려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다행히, 게이트는 방해 없이 무사히 닫혔다.

* * *

“으…….”

진탕 술을 마신 이튿날처럼 머리가 온통 울리고 아팠다. 나는 몸을 일으키고자 팔에 힘을 주었다가, 울컥 차오르는 피를 뱉고 다시 고꾸라졌다.

“웨엑…….”

“야, 씨! 이불 그거 하나야.”

때마침 내 머리 위에서 백희도의 목소리가 들렸다. 나는 힘겹게 눈을 떴다.

백희도는 막 샤워하고 나왔는지 위에 아무것도 걸치지 않은 상태였다. 하지만 샤워하고 나왔음에도 그의 주변에는 여전히 진한 피비린내가 났다.

“욱……. 여긴, 어디야……?”

“씹, 말하지 말라고 내상 입었으니까.”

백희도는 인상을 찡그린 얼굴로 내 입을 수건으로 거칠게 닦아 냈다. 그러곤 물고 있으라는 듯이 턱 사이로 꽉 끼워 넣었는데, 너무 아파서 눈물이 찔끔 났다. 

백희도는 그런 나를 보며 쯧쯧, 혀를 찼다.

“뒈지려고 작정했냐? C등급 주제에 S등급한테 저주를 걸어?”

“……퉤.”

나는 수건을 뱉고, 어질어질한 머리를 부여잡은 채 쏘아붙였다.

“그 덕분에 이렇게 살아 있으면 감사하다고 해라.”

“내 덕분이겠지, 멸치야.”

“뭐? 으…….”

나는 백희도가 기운도 없는 나를 상대로 지지 않고 말대꾸하는 것을 더는 버티지 못하겠어서 다시 뒤로 뻗어 버렸다. 그런데 천장을 보니 몹시 높았고, 푹신한 침구는 내 몸을 부드럽게 감싸 주었다.

‘백희도는 호텔 같은 곳에서 사는구나…….’

―가 아니라, 진짜 호텔이잖아?

나는 그제야 호텔에 누워 있다는 것을 깨닫고 고개만 돌려 백희도를 쳐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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