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화
“침입자다! 침입자가 나타났어!”
그 찰나 한 남자가 고함을 지르며 어느 한쪽을 가리켰다. 모인 신도들은 전부 그쪽을 향해 뛰어갔고 말이다.
나는 안 봐도 그곳에 백희도가 있을 거라 생각하며 그쪽으로 가지 않고, 좀 더 내성 깊숙한 심처로 향했다.
‘어?’
그리고 거기서 옷을 느슨하게 입고, 막 문을 나서는 이혜를 발견했다. 나는 어쩔 줄을 몰라, 우선 퍼뜩 고개를 숙였다.
“뭐냐, 침입자?”
나는 고개를 숙인 채 이혜의 이상한 손이 있는 부분을 보다가 얼른 그의 질문에 대답했다.
“예, 침입자가 나타나서 마침 보고를 드리러 가는 중이었습니다, 이혜…… 님.”
다행히 내 태도에 이상한 점은 없었는지, 이혜는 무심히 넘어갔다.
“흐응, 그래? 몇 명이나 들어왔지?”
“하, 한 명입니다.”
“한 명? 고작 한 명 때문에 이 난리를 피운 거야?”
“죄송합니다…….”
나는 바짝 군기가 든 상태인 것처럼 대답했고, 이해는 이내 멀쩡한 손을 휘휘 손을 저어 보였다.
“됐어. 놈이 R등급이 아닌 이상에야 더 신경 쓸 필요는 없겠지. 산 채로 잡아 와라.”
“예. 전달하겠습니다.”
나는 여기까지 말하고 뒤도는 이혜의 모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혜는 어제의 숙취 때문인지 비틀비틀하며 걷다가 제 침대 위로 엎어졌다. 그런데…… 불쑥 다른 손이 튀어나와서는 이혜의 등을 꽉 끌어안는 것이 아닌가.
‘분명히 남자의 손이었는데…….’
나는 못 볼 것을 본 것 같은 기분이 들어, 서둘러 그 문을 닫아 주곤 후다닥 자리를 비켰다.
‘어젠 털보랑 키스하지 않나, 방금은…… 아, 생각을 말자.’
나는 “남의 일이다, 남의 일.” 하고 주문을 외면서 살금살금 이혜의 방 앞을 벗어났다. 그러곤 어디 숨을 데가 없을지 생각해 보았다.
아까는 방심한 적에게 스킬을 날려 보낼 수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인원이 바짝 긴장하고 있을 테니 내 저주가 먹히진 않을 것 같아서였다.
어딘가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백희도가 잡혔다는 얘기가 들리면 그때부터 움직일 생각으로 빈방을 찾아 돌아다녔다.
그러다 마침 딱 좋은 방 하나를 발견했다. 천장에 이음새가 있어 천장 쪽으로 올라가 숨을 만한 구조가 있는 큰 방이었다.
나는 책상을 살짝 밟고, 천장으로 올라갔다. 그리고 거기서 나와 똑같이 옷을 갈아입은 채 엎드려 있는 백희도를 만났다.
“……!”
백희도도 내가 올라오는 모습도 봤는지 인상을 팍 쓰곤 한 손으로 내 멱살을 잡아 나를 가뿐히 들어 올렸다. 그리고 내가 올라와 천장 문을 닫자마자 이혜와 이홍, 두 형제가 나란히 이 방으로 들어왔다.
내가 깜짝 놀라자, 백희도가 조용히 하라는 신호를 보냈다.
“침입자가 하나? 하지만, 시간 차를 두고 또 한 명이 침입한 흔적이 있어.”
“저한테 보고한 놈이 그랬는데…….”
“아무튼, 뇌령검 소문이 퍼지긴 한 모양이구나. 근데, 소문의 진원지가 이쪽으로 퍼지면…….”
두 형제는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었고, 백희도는 황당하다는 얼굴로 나를 쳐다봤다. 내가 어떻게 숙소를 빠져나왔는지 의구심이 가득한 얼굴이었다.
백희도는 두 사람이 얘기를 나누다가 방을 나서자마자 낮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주술사, 미쳤냐? 여기가 어디라고 따라 들어와? 그리고 어떻게 빠져나온 거야?”
“……내가 할 말이야. 너야말로 어떻게 빠져나갈 생각으로 이 사이비 단체에 잠입한 거야? 고작 C등급인 나 하나도 제대로 묶어 놓지 못하면서.”
“…….”
내 말에 백희도는 할 말이 없는지 잠시 입을 다물었지만, 그렇다고 놈의 기가 꺾였다는 말은 아니었다.
백희도는 나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어이없다는 듯이 말했다.
“그러는 너는 대체 왜 나를 따라온 건데? 내가 죽는 게 그렇게 두려워?”
“말했잖아. 나한테 답은 너밖에 없다고.”
“…….”
“날 형이 있는 곳에 데려가 주겠다고 한 사람은 너뿐이었어. 그래서, 널 죽게 내버려 둘 수가 없단 말이야.”
내 대답에 놈은 성가시다는 듯이 인상을 찡그렸지만, 내가 한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백희도 말고는 아무도 내게 그런 말을 해 준 사람이 없었다. 그런 녀석이 여기서 음모에 휘말려 죽는 걸 내버려 둘 수는 없는 것이다.
나는 백희도에게 물었다.
“실제로 뇌령검은 없었지? 내 말이 맞지 않아?”
“…….”
백희도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내가 하는 말이 사실인지 반박하지는 못했다.
“아침이 오면 날이 밝아져서 운신하기 더 힘들어져. 여기서 도망쳐야 해.”
“너만 아니었으면 금방 튀었어.”
“아니, 너도 알 거야. 이 건물에서 빠져나가는 건 숨어들어 오는 것보다 배는 어려워. 지금도 철통처럼 구역마다 순찰을 돌고 있고, 계속 천장에서 지낼 수도 없어. 머지않아 천장을 뜯어보자는 말도 나올 거니까.”
“…….”
“무엇보다 침입자가 너라는 걸 들켜선 안 돼. 평생 화교인들에게 쫓기고 싶지 않다면 말야.”
“…….”
사이비 종교인들에게 평생 쫓기는 삶이라니. 생각만 해도 피곤하기 그지없는 일일 것이다.
이제야 내 말이 맞다고 판단했는지, 백희도가 작은 목소리로 내게 말했다.
“하아…… 좋아. 그럼 네 계획은 뭔데?”
“불을 질러야지, 우선은.”
그렇게 말한 뒤, 나는 챙겨 왔던 성냥과 기름종이를 꺼냈다.
이 화려한 궁은 대부분 나무로 만들어져 있다. 해서 나는 이곳에 들어오기 전, 기름종이를 여기저기 박아 놓고 왔고. 제대로 불이 붙으면 건물 전체가 타오르는 데 몇 시간 걸리지 않을 것이다.
‘물론 그 전에 불을 끄려고 하겠지만, 기름불은 물에 잘 꺼지지 않으니까.’
수도 시설이 잘 정비된 ‘이쪽’과 달리 ‘저쪽’은 건물에 불이 나면 불길을 제압하기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물론 이 건물 구석에 ‘이쪽’에서 가져온 것으로 보이는 소화기를 보긴 했는데, 여기서 불만 붙이는 것으로 끝내진 않을 생각이라 곧장 다음 계획을 말했다.
“불이 나서 조금 틈이 생기면 백희도, 너는 빨리 도망쳐. 그리고…….”
그런데 막 다음 계획을 설명하려는 순간, 이 방 안으로 몇 명의 사람들이 들어왔다.
그들은 침입자를 찾는 듯 빠르게 방을 뒤지기 시작했고,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천장을 기어 도망쳐야만 했다.
백희도는 도망치면서도 이죽거렸다.
“불을 질러서 도망칠 거였으면 애초에 폭파해서 도망을 쳤겠지, 멍청아.”
“뭐?”
“내가 그 정도 생각도 없이 들어왔겠냐?”
백희도는 그렇게 말하면서 내게 슬쩍 품을 열어 보였다. 거기엔 화섭지로 돌돌 말은 폭탄이 몇 개 있었다.
나는 얼굴을 붉혔지만, 아래에서 누군가 우리 목소리를 들을까 봐 아무런 대꾸도 못 했다.
“하, 너 때문에 폭탄도 못 쓰게 생겼고……. 어쩔래? 참고로 난 지금도 혼자서 거뜬히 빠져나갈 수 있다?”
나는 그 말을 듣자마자 앞서 기어가던 백희도의 발목을 콱 붙잡았다. 그러자 백희도가 지긋지긋하다는 표정으로 나를 돌아봤다.
“내, 내가 잡히면 네 이름 불 거야.”
“그러시겠지. 이 멍청한 C등급아.”
나는 백희도의 경멸조의 말에도 결국은 간청하고 말았다.
“그러니까…… 두고 가지 마.”
백희도는 그런 나를 돌아보더니 인상을 팍 쓰곤 중얼거렸다.
“에휴. 그럼 내가 여기까지 와서 널 두고 가겠냐?”
“…….”
나는 그 말에 잠시 멍해졌다. 순간 유세림과 백희도가 오버랩 됐기 때문이다.
가차 없이 나를 죽인 유세림과 귀찮아하고 짜증이란 짜증은 다 내면서도 어쨌든 같이 움직여 주는 백희도.
백희도는 심지어 발목을 잡은 내 손을 털어 내지도 않았다. 예의 그 무식한 힘으로 나를 쭉 끌어당겨선 저가 움직인 만큼 날 데리고 이동했다. 내가 제 움직임을 따라올 수 없다는 걸 알고, 그렇게 챙겨 준 것이다.
“…….”
나는 백희도의 행동에 어쩔 줄 몰라 하다가 결국 놈에게 몸을 의지하고, 최대한 짐이 되지 않도록 손발을 놀렸다.
그러다 천장에서 빈 침실을 보고 녀석의 팔을 끌어당겼다.
“또 뭐야?”
“자, 잠시만…….”
나는 잠시 주변을 살펴보곤 침대 위로 뛰어내렸다.
백희도는 무슨 짓을 하려는 건지 싶은 표정으로 나를 살펴봤고, 나는 흰 침구 위에 눈에 띄는 붉은 머리카락 몇 개를 챙겨 다시 백희도에게 손을 뻗었다.
백희도는 짜증 난단 얼굴로도 결국 나를 끌어 올려 주었다.
“그 머리카락으로 뭘 할 건데?”
“……난 저주를 내릴 수 있으니까, 혹시나 해서 챙긴 거야.”
“…….”
백희도는 의문스러운 표정을 짓긴 했으나, 딱히 반박하진 않았다.
그렇게 우리는 끝 방까지 이동했고, 그곳엔 백희도가 기둥에 둘둘 말아 놓은 폭탄이 있었다. 백희도는 그 폭탄에 내가 가져온 성냥으로 불을 탁! 하고 붙였다. 그러자마자 아래로 뛰어내렸다. 정원이 있는 곳이었다.
“얼굴 가려.”
“…….”
내가 대답 없이 얼굴을 가리자 백희도는 나를 감싸 안은 채 구르듯 움직였다.
순간 그 부드러운 착지에 놀랐다. 하지만 그렇게 착지하자마자 우리가 불을 붙인 폭탄이 터지기 시작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