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4화 (15/104)

14화

[주술사.]

“…….”

[왜 말을 안 해?]

백희도는 내가 전화를 걸 줄 알았다는 듯이 말했다. 그래서 나는 묻지 않을 수 없었다.

“나인 줄은 어떻게 안 겁니까?”

[이 번호는 너 말고 아무도 모르니까.]

“…….”

뜻밖의 말에 멈칫한 사이, 백희도가 느긋하게 말을 이어 갔다.

[어쨌든, 네 말대로 나한테 소문을 물어다 준 녀석은 돈을 받고 소문을 뿌리는 일을 하고 있었어. 사이비 교단에서 의뢰를 받았다고 털어놓더군.]

나는 생각보다 더 스케일이 큰 배후가 뒤에 있다는 것을 알고는 조금 당황하고 말았다. 

그런데, 백희도는 거기까지만 말하고는 황당한 소리를 했다.

“그럼…….”

[더 자세한 얘길 듣고 싶으면, 내일 두 시까지 **호텔 앞으로 와.]

“뭐라고요?”

[늦지 말고.]

그 말을 마지막으로 뚝 하고 전화가 끊겼다. 

“아니 내가 저가 오라 그러면 오고, 가라 그러면 가는 그런 한가한 사람으로 보이나? 미친놈 아니야!”

하지만 재수 없게도 유세림에게 복수하려면 백희도의 도움이 필요한 건 사실이라…….

나는 고민 끝에 어쩔 수 없이 다음 날 두 시, 놈이 말한 **호텔 앞에 불퉁한 표정으로 서 있었다.

“일찍 왔네?”

백희도는 정확히 정각에 갑자기 내 앞에 모습을 드러냈고 말이다.

“…….”

나는 놀란 티를 내지 않기 위해 움찔 떨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백희도는 히죽 웃더니 갑자기 내 어깨로 불쑥 손을 가져다 댔다. 나는 보이지도 않는 속도로 뻗어진 손을 미처 피하지 못하고, 놈에게 다시 어깨가 잡혔다.

움츠러든 나를 보며 백희도가 태연하게 물었다.

“어깨는 치료한 거야?”

그리고 놈의 질문은 어제의 유세림의 태도까지 떠오르게 만들면서 내 기분을 더럽게 만들었다.

해서, 인상을 구기며 빈정거렸다.

“네. 포션을 부었거든요.”

내 대답에 백희도는 감탄하는 건지 비웃는 건지 모를 소리를 했다.

“생각보다 돈 많구나, 너.”

“누구 덕분에 생돈 날렸죠.”

그런데, 이렇게 말하자 백희도가 뜬금없이 점심을 사겠다고 하는 것이다.

“미안하게 됐네. 그럼, 오늘 밥은 내가 살게.”

“뭐라고요? 아니, 난 밥 따윈 됐고 뇌령검 얘기나…….”

“배 안 고파?”

그러면서 백희도는 저는 배가 고프다며 내 말을 씹고 내 팔을 붙들었다. 그러곤 **호텔 안으로 성큼성큼 들어갔다. 나는 백희도의 손에 거의 끌려들어 가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미친놈 아니야?’

내가 저랑 밥이나 먹고 노닥거리게 생겼어?

하지만 백희도의 힘을 뿌리치긴 어려웠다. 결국, 나는 팔자에도 없는 **호텔 9층 레스토랑에 앉아 능숙하게 주문하는 백희도를 떨떠름하게 노려보기만 했다.

“넌 뭐 먹을래?”

“……아무거나 시켜요.”

“삐쩍 마른 이유가 있었네.”

진짜 죽이고 싶다, 이 새끼도…….

“…….”

하지만 나는 빈정거리는 대신, 입을 꾹 다물었다. 솔직히 호텔 같은 데서 뭘 먹어 본 적이 없는지라 좀 주눅이 든 상태였기 때문이다.

‘C등급 벌이로는 이런 곳은 무리지…….’

예전에 형이 살아 있었을 때도 형은 돈보다는 저쪽 세계에 틀어박혀 있어서 생계를 위해 내가 아르바이트를 해야 했으니 말이다.

그래서 이내, 서빙되어 나오는 음식들을 보면서도 섣불리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고 딱딱히 굳은 나를 본 백희도는 피식 웃으면서 서빙된 접시에 나온 음식 몇 개를 하나하나 잘라 옮겨 주기 시작했다.

“무…… 뭐 하는 건데.”

너무 놀라서 나도 모르게 반말이 튀어나왔는데, 백희도는 어깨를 한번 으쓱해 보이곤 제 먹을 것을 먹기 시작했다.

나는 백희도의 괴상한 친절에 어쩔 수 없이 조금씩 음식에 입을 댔다.

“주술사, 넌 몇 살이냐?”

내가 음식을 먹기 시작하자, 백희도가 내 나이를 물었다. 나는 입에서 사르르 녹는 소고기를 꿀꺽 삼키고 놈에게 대답했다.

“스물여섯.”

반말에 크게 개의치 않아 보여서 나도 그때부터는 그냥 반말을 했다. 그런데, 문제는 그게 아니었다.

“오. 나보다 두 살 형이네.”

“푸웁―!”

형이라는 말에 입에서 음식이 튀어나올 뻔했다.

나는 입을 꾹 다물고 놈을 위아래로 쳐다봤다. 백희도는 실실 웃으면서 포크로 새우를 찍어 먹는 중이었다.

“왜? 내가 스물넷인 게 안 믿겨?”

“……서른은 먹은 줄 알았는데.”

“난 너 스무 살인 줄 알았어.”

‘시발. 나이를 알고도 계속 반말이네.’

어처구니가 없었지만, 백희도에게 존댓말을 듣는 것도 소름 끼치는 일이란 생각이 들었다. 특히 놈이 형이라고 부른다거나 하는 건 내 쪽에서 사양하고 싶달까.

백희도도 같은 생각인지 놈은 우아하게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말했다.

“나한테 존댓말 들을 생각은 없지?”

알고 있었지만 저렇게 말하니 속이 배배 꼬였다. 그래서 부러 인상을 팍 구기면서 답했다.

“없어.”

“그래. 그리고 또 어디 보자, 나야 유명인이라 이름은 잘 알 테고……. 우리 보기보다 늙은 주술사는 이름이 뭐야?”

진짜 말 한마디 한마디 할 때마다 주둥이를 때리고 싶다.

“……한솔.”

“외자?”

“어.”

“한솔, 한솔이라…….”

나는 내 이름을 되뇌는 백희도를 보면서 처음으로 유세림의 마음에 공감할 수 있었다. 저렇게 무례하고 막되게 구는 게 힘까지 세면 정말이지 싫어할 수밖에 없을 테니 말이다.

그런 생각을 하던 중, 불쑥 백희도가 물었다.

“한솔 너, 한성훈의 동생이라고 했었지?”

이 질문은 내가 쪽지에 쓴 말이었기 때문에 나는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백희도는 그런 나를 쳐다보더니 혼잣말을 했다.

“한성훈하고는 별로 안 닮았네.”

이어진 말에 깜짝 놀라서, 나는 놈에게 달려들듯이 물었다.

“너, 우리 형을 알아?”

백희도는 내 태도에 조금 놀란 듯했지만, 곧 여유를 되찾고 대답했다.

“만난 적 있지.” 

“언제!?”

“몇 년 전에.”

“그럼 혹시, 형이 마지막으로 어디로 갔는지 알고 있어?”

백희도는 잠시 고민하는 듯했으나, 내 간절한 표정을 보고는 입가에 미소를 지우고 진지하게 대답했다.

“몬스터 침공 전엔 예지의 성곽에 간다고 했었어.”

“아…….”

“그 이후엔 소식이 완전히 끊겼지만.”

나는 그 말에 절망스러운 기분을 느꼈다.

우선은 형이 몬스터 침공 이후 연락이 없었다는 것도 그랬고, 설령 그때 살아남았다 하더라도 [예지의 성곽]에 간 것이 확실해졌기 때문이다.

[예지의 성곽]은 그 유세림조차 아직 우리가 도전할 수 없다고 했던, 현존하는 던전 중 가장 강력하고 악명 높은 곳이었다.

백희도 역시 내가 왜 창백한 표정이 되었는지 눈치챈 것 같았다.

“혼자 도전하는 건 미친 짓이기는 해.”

“…….”

“그래도 한성훈이면 깰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지.”

나는 그 말에 입술을 깨물었다. 뭐라 말할 수 없는, 복잡한 기분에 휩싸였기 때문이다. 

이제야 형이 어디로 갔는지 알게 되었는데, 생사는 솔직히 절망적인 상황이었다. 게다가 나는…….

‘유세림 파티에서 예지의 성곽까지 버틸 수 없어. 그 전에 버려질 거야.’

예지의 성곽에 갈 수 있는 능력이, 없었다.

“백희도.”

나는 백희도의 이름을 부르면서 놈의 얼굴을 간절히 쳐다봤다. 

하지만 백희도의 표정엔 큰 변화가 없었다. 무슨 말을 던져도 미동도 하지 않을 것 같은 그런, 조금도 내 말에 귀 기울여 주지 않는 태도였으나…….

“나를 데리고 예지의 성곽에 가 줘.”

나는 그 두려움을 이기고, 놈에게 말했다.

“뇌령검 일에 대한 값치곤 너무 비싼데?”

예상대로 백희도는 가볍게 거절했다. 하지만 나는 놈에게 다시 한번 매달렸다.

“……난 가서, 형의 시체라도 찾아야겠어.”

“5년이면 시체도 못 찾을 확률이 높아.”

“그래도 가야 해. 형을…….”

놓을 수는 없으니까.

백희도는 숨도 쉬지 않고 쳐다보는 나를 보면서 한숨을 크게 내쉬었다. 

“하아……. 야, C등급. 차라리 유세림한테 부탁해. 넌 이미 그 새끼 파티원이잖아.”

나는 그 말에 발작하듯 소리쳤다.

“유세림은 언젠간 날 버릴 거야! 날 예지의 성곽까지 데려갈 리가 없다고!”

“뭐?”

“…….”

하지만 내 주장엔 마땅히 댈 근거가 없었다. 그러나 백희도의 표정엔 미묘한 감정이 실리기 시작했다.

“너…… 진심으로 유세림을 증오하는구나?”

“…….”

나는 아무런 말 없이 백희도를 빤히 노려봤다. 놈은 팔짱을 끼고 나를 훑어봤다.

“유세림이 음험한 놈인 건 나 빼고 아무도 모를 줄 알았는데…….”

그렇게 말끝을 흐리던 백희도는 한쪽 입꼬리를 삐딱하게 올렸다. 놈은 어째선지 꽤 기분이 좋아 보였다.

나는 그런 놈에게 내가 아는 유세림에 대해 말했다.

“유세림은 사람을 도구로만 봐. 나는…… 몇 번 쓰다 버릴 도구고.”

“이야, 진짜 정확하게 아네?”

“애초에 놈이 날 파티원으로 받아 준 이유도…… 나중에 갈 던전에 누군가를 제물로 바쳐야 할 때를 대비한 거였으니까.”

“…….”

내가 익사한 던전, [인어의 보화]가 그런 곳이었다. 

파티장이 파티원 중 한 명을 제물로 바치면 전투 없이 클리어 할 수 있는 끔찍한 던전이었는데, 유세림은 제물로…… 나를 지목했다. 그러자마자 내 양쪽 다리의 아킬레스건을 끊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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