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12화 (13/104)

12화

백희도는 그 말에 눈을 조금 크게 떴다. 

“유세림에게 아티팩트를 감지하는 능력이 있나?”

백희도가 목소리를 낮춰 물었다. 나는 고개를 작게 끄덕였다.

“그랬군……. 항상 놈이 아티팩트를 먼저 찾아내서 가끔은 그 새끼가 가는 곳에 먼저 가서 훼방을 놓곤 했는데, 역시 그게 맞는 방법이었구나?”

“……하.”

나는 어린애도 안 할 법한 발상에 어처구니가 없어 코웃음을 쳤으나, 이내 다시 어깨를 꽉 붙잡힌 바람에 신음을 내고 말았다.

“윽!”

“그래, 네놈 말대로 뇌령검이 미끼라고 쳐. 그럼 누가 날 죽여서 이득을 본다는 거지? 유세림은 날 싫어하긴 해도, 죽이고 싶어 할 정도는 아냐.”

“그것까지 내가 어떻게 알……! 아앗!”

놈은 내가 제대로 대답하지 않자, 어깨를 쥔 손에 힘을 더 주었다. 

뼈가 부러질지도 모르는 상황이기에 상당히 두려웠으나, 실제로 나는 뇌령검 사건에 대해서 잘 아는 바는 없었다. 그래서 그냥 입에서 나오는 대로 지껄이기 시작했다.

“너한테 그 정보를 물어 온 새끼를 족치던가……! 이거 놔!”

“오호. 괜찮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내 말을 들은 백희도는 그제야 내 어깨를 놔주었다. 나는 그대로 자리에 주저앉을 뻔했지만,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다리에 힘을 주어 버텼다. 

백희도는 그런 나를 보며 킥킥 웃었다.

“엄살은.”

“하…….”

“야, 근데 너 이름은 뭐냐?”

나는 대답 대신, 어깨가 잡히지 않은 다른 팔을 들어 가운뎃손가락을 치켜들었다. 욕을 먹어 놓고도 백희도는 뭐가 좋은지 낄낄 웃으면서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그 얘기가 진짜면 난 너한테 빚을 하나 진 셈이니까, 네 파티장을 흠씬 두들겨 패는 데 동참해 줄 순 있어.”

나는 거들먹거리는 태도에 열불이 치솟아 올라, 놈에게 소리쳤다.

“필요 없어, 이제! 너 같은 막무가내랑은 아무것도 같이 안 할 거야!”

“그래? 그럼 한번 자 줄까?”

“……뭐?”

“처음 만났을 때 나한테 눈을 못 떼던데. 뭐 익숙해, 그런 건.”

“미, 미, 미친 거 아니야?”

나는 갑자기 미친 소리를 해 대는 백희도에게서 화들짝 떨어져선 왁왁 소리를 질렀다. 하지만 백희도는 수치심도 없는지, 느긋하게 나를 내려다보며 여상하게 말했다.

“난 빚은 꼭 갚아. 그러니까, 개 헛소리 늘어놓은 거면 넌 나한테 뒈지는 거고…….”

백희도는 어깨를 잡은 손을 움직여선 엄지손가락으로 내 목젖을 부드럽게 어루만지며 말을 이어 갔다.

“네 말이 맞으면, 내 나름대로 잘 갚아 주겠다는 거지.”

나는 어쩐지 꼼짝도 할 수 없는 그 뉘앙스에 등줄기를 타고 소름이 끼쳤다.

하지만 곧, 백희도는 내 어깨와 목 모두에서 손을 뗐다. 그러고는 아주 자연스럽게 내 품을 벌리더니, 수첩에 꽂혀 있는 볼펜을 집어 들고 수첩 뒤편에 무언갈 휘갈겨 썼다. 

나는 놈이 수첩의 앞면을 볼까 두려워 깜짝 놀란 채 굳어서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자, 이건 내 메일 주소. ‘이쪽’으로 넘어가면 여기로 연락해. 알겠냐?”

“…….”

나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백희도는 내게 다시 수첩과 볼펜을 돌려줬다. 이후 내 어깨를 툭툭 치고 지나쳐, 본인의 숙소로 올라갔다.

“하, 하아아…….”

나는 그제야 참았던 숨을 내뱉을 수 있었다. 

벌컥.

“……저어, 얘기 다 끝나신 거 맞죠?”

그리고 숙소 주인은 어느새 밖에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지, 빨개진 코를 하곤 바 쪽의 문을 빼꼼 연 채로 내게 물었다. 

나는 그의 얼굴을 잠시 훑어봤다. 그가 나와 백희도 사이에 했던 말을 다 들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돌연 머리를 스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숙소 주인은 금방 내 생각을 알아차린 듯, 얼굴 가득 두려워하는 미소를 지으면서 말을 꺼냈다.

“백희도 님이 오셨을 때부터 밖에 나가 있었어요. 이런 경험은 몇 번 있었던지라, 들으면 안 되는 얘기 정도는 구별할 수 있습니다.”

“……네. 감사합니다.”

나는 숙소 주인에게 돈을 조금 더 주고는 백희도의 숙소를 나섰다. 그리고 방에 돌아와선 놈이 가져갔었던 수첩 뒤편의 메일 주소를 확인했다.

[Huido*****@******.***]

나는 가지고 다니는 핸드폰 공기계에 놈의 메일 주소를 입력했고, 저장하려는 이름에 ‘백희도’를 입력하려다가 멈칫했다.

[또라이ㅗ]

나는 놈의 이름을 그렇게 저장하고, 놈이 수첩 뒷면에 날려 쓴 글씨에는 볼펜을 수십 번 그어서 못 알아보게 만들었다.

거기까지 하고 나니, 급격히 피로가 밀려왔다.

“하아…….”

과연, 뜻대로 흘러갈까?

* * *

“피곤해 보이시네요.”

“……잠을 좀 설쳐서요.”

몇 시간 뒤, 우리 파티는 다시 [혹한의 성전]으로 가기 위해 움직였다.

내 다크서클을 본 건지, 유세림이 먼저 말을 걸어왔다. 나는 대강 대답하고 마을을 떠나기 전, 잠시 백희도가 있는 숙소를 힐끔 봤지만 불은 꺼져 있었다.

[신의 진노가 임하기를…….]

[무도한 이단에게 죽음을!]

역시 어제와 다르게 혹한의 성전으로 가는 길 내내 몬스터가 끊임없이 달려들었다. 오늘은 정말로 다른 이의 방해 없이 던전을 클리어 할 수 있을 듯싶었다.

‘윽…….’

그런데, 문제는 나였다. 어제 백희도, 그 변태 새끼가 내 어깨를 지나치게 꽉 붙잡은 바람에 왼쪽 어깨에 시커먼 멍이 든 탓이다. 

파티원복 위에 방한복을 걸쳐서 가릴 수 있어 다행이지, 안 그랬으면 다른 이들에게 어쩌다 이렇게 되었냐는 곤란한 질문을 받을 뻔했다.

하지만 멍을 가리는 것과 아픈 것은 별개라, 나는 계속 고통을 참으면서 파티원 주변에서 디버프를 걸고 있었다.

“[무거운 걸음]!”

물론 대다수 몬스터가 나보다 등급이 높은 탓에 저주를 튕겨 냈지만, 그래도 범위가 워낙 넓은 스킬이라 보니 한두 마리 정도는 저주에 걸려 움직임이 느려졌고, 그런 몬스터를 안화영의 소환수가 잡아먹거나 김재호가 도끼로 후려치곤 했다.

그렇게 소환사와 전사가 선두에서 나서 주면, 마도사인 규림 씨가 대단위 마법을 펼치기도 쉬워지는 것이다.

“[화염의 벽]!”

우리 키의 두 배는 될 법한 강력한 불의 장벽이 전방으로 쏘아져 나가면서, 중앙에 있던 성기사와 사제 몬스터가 절반 가까이가 전투 불능 상태가 되었다. 

나는 규림 씨의 대단한 스킬을 보며 엄지손가락을 들어 올려 보였다.

“헤헤. 조심해요!”

마주 웃어 주던 규림 씨는 내 뒤를 보더니 갑자기 인상을 굳혔고, 나는 미리 뽑아 둔 피로 몬스터를 잡으려고 했다.

“[보이지 않는……].”

휘릭―!

하지만 내 스킬보다 유세림의 채찍이 더 빨랐다. 우두둑하고 목뼈가 부러지는 소리가 코앞에서 들리며, 성기사의 푸른 안광이 서서히 스러져 갔다.

“항상 주변을 경계하세요.”

“……예.”

나는 유세림에게 잔소리를 들은 것이 짜증 나서, 그때부터는 좀 무리다 싶을 만큼 움직이며 자잘한 몬스터들을 처리해 나갔다. 

그러고 나니 우리 파티는 고작 한 시간 만에 혹한의 성전 입구에 도착해 있었다.

“지금부턴 제가 앞서가도록 하겠습니다.”

유세림은 그렇게 말하고는 채찍을 길게 풀어 바닥에 끌리도록 했다.

[알겠다요이. 나도 배가 부르다요이.]

“맘대로 해라.”

김재호는 전혀 지쳐 보이지 않는 얼굴로 유세림의 뒤편에 섰고, 표유정은 유세림의 몸에 실드며 기력 회복이며 온갖 버프를 다 걸어 주면서 호들갑을 떨었다. 

내가 사 준 방한복을 입고 나한테는 기력 회복 한 번을 안 써 준 게 몹시 얄미웠지만, 지난번 던전에서 한번 구해 줬으니 그냥 그걸로 그냥 퉁 치자 싶었다.

‘그나저나 왠지 열이 나는 것 같은데……. 어깨 통증 때문인가?’

유세림이 앞서 걸었기 때문에 나는 편하게 인상을 쓰면서 어깨를 살짝 만졌다가 화들짝 놀랐다. 열이 후끈후끈 나고 있는 데다 심하게 부어 있었기 때문이다.

‘미친놈……. 이 값은 내가 꼭 받아 내고 만다.’

나는 백희도 생각을 하면서 천천히 반지의 보석을 돌렸다. 

가득 차오르는 피를 보며 일단은 마음을 진정했다. 내가 오늘 해야 하는 건 백희도 생각이나 몬스터 잡기가 아니라, 성규림 씨가 다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니까.

나는 둘째 줄에 있는 성규림 씨에게 집중했다.

[이곳까지 오느라 수고했네. 개종할 텐가? 아니면, 죽음을 받아들이겠는가. 이단자들이여.]

그러는 사이 보스 몬스터, ‘성전의 기사단장 레메스’가 등장했고, 그의 열두 사도도 하나둘씩 천장에서 내려왔다.

그렇다. 이번에는 공중전을 할 수 있는 놈들인 것이다. 그걸 파악하자마자 표유정은 거대한 실드를 만들었고, 파티원은 모두 그 실드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나는 회귀한 뒤 처음으로 유세림의 스킬을 눈앞에서 목격했다.

“[집행].”

간략한 시동어와는 달리 채찍은 눈에 보이지 않을 만큼 빠르게 움직였고, 보라색 섬광이 눈을 아프게 찔렀다.

그리고 열두 사도 중 앞서 우리를 향해 날아오던 여섯의 사도가 그 한 번의 스킬로 뭔가 해 보지도 못한 채 머리통이 터져 나갔다.

그러자 레메스는 그동안 뽑지 않았던 검을 들었다.

[흉폭한 힘이로군. 악마와 계약한 자로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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