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화
그렇게 첫 번째 공격을 잘 피한 뒤, 성규림 씨가 있는 곳을 보니 그녀도 바위틈으로 잘 피한 것 같았다. 때마침 규림 씨도 나를 찾던 중이었는지 눈이 마주치자 얼굴이 환해졌다.
“잘 피하셨구나! 다행이에요! 갑작스럽게 공격이 들어와서!”
“괜찮습니다.”
그렇게 대답하고 나서, 나는 아르실라의 다음 공격을 떠올려 봤다. 1년 전이라 가물가물하긴 하지만, 이다음은 브레스 아니면 거대한 꼬리로 후려치기일 것이다.
나는 반지를 왼쪽으로 돌려, 보석에 피가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다. 그사이 아르실라는 거대한 몸을 일으켜선 우리를 보고 꼬리를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규림 씨, 꼬리 조심하세요!”
“네!”
그녀는 이제 내 말을 완전히 신뢰하는 얼굴로 신중히 아르실라의 꼬리를 살펴보고 있었다.
그리고, 내 예상대로.
휘이익―!
아르실라의 꼬리가 무시무시한 속도로 우리를 향해 날아들었다.
나는 꼬리가 닿지 않는 부분까지 재빨리 물러나, 가득 모인 피를 전부 사용해 아르실라의 한쪽 눈을 조준했다.
“[보이지 않는 고통]!”
[크으윽!]
내 저주 스킬인 ‘어두워진 눈동자’는 아르실라 같은 보스 몬스터에겐 거의 통하지 않는다. 심지어 아르실라는 A등급 몬스터이니까.
하지만 아티팩트를 활용한, 또 내 피를 제물로 바친 다음 집중적으로 한 부위만 노린다면 성공할 확률이 커진다.
아니나 다를까 아르실라의 한쪽 눈이 터지면서 피가 흐르기 시작했다. 내 등급을 생각하면 기적과도 같은 상황인 것이다.
“대단해요!”
“…….”
성규림 씨가 나를 보며 대놓고 칭찬했지만, 내 기분은 이상하게 다운이 되었다. 왜냐면 나는 이 방법을 아주 나중에야 깨닫고 조금씩 성장했지만, 그때 이미 규림 씨는…….
‘……젠장. 과거는 그만 생각하자.’
순간 나는 과거의 한심했던 나를 생각하며 잠시 한눈을 팔았고, 때문에 아르실라가 나를 노리고 있었다는 걸 몇 초 늦게 알아챘다.
‘이런!’
[거슬려, 거슬려, 거슬려……. 이 파리 같은 놈이 감히!]
아르실라가 정확히 나를 향해 입을 쩍 벌리더니, 브레스를 쏘아 보낸 것이다.
이무기 브레스는 모든 것을 녹이는 산성 물질로, 방어나 치유 스킬이 없는 내가 막아 낼 수 있는 종류가 아니었다.
그런데.
“[포이즈너 큐어].”
“[윈드 실드]!”
놀랍게도 표유정이 내 앞을 가로막고 서서는 스킬을 두 가지나 사용해 준 것이다.
게다가 누군가 뒤에서 내 어깨를 꽉 붙들고 제 품에 안듯이 감싸더니, 그 상태로 나를 붙들고는 브레스가 지나는 자리에서 탈출시켜 주었다.
그리고 그 누군가는…… 유세림이었다.
“…….”
나는 복잡한 심경으로 표유정과 유세림을 번갈아 쳐다봤다.
표유정은 눈이 마주치자 “흥!” 하는 표정을 짓더니 고개를 팍 돌려 버렸고, 유세림은 다행이라는 듯이 미소를 지었지만…….
‘진짜 싫다. 이런 기분…….’
저 둘에게 빚을 진 기분은, 정말 더러웠다.
* ♟ *
까드득.
퍽―!
이후, 나는 아르실라에게 어그로가 끌렸는지 계속해서 공격을 받았지만, 나보다 강력한 파티원이 나를 보호해 주면서 엄청난 대미지를 넣기 시작했다.
특히 김재호는 정말 AA등급이 맞나 싶을 정도로 엄청난 근력을 발휘해 아르실라의 꼬리 공격을 도끼로 몇 번이나 막아 냈고, 안화영의 소환수는 아르실라의 상체를 공격해 양팔을 먹어 치우는 데 성공했다.
[캬악! 한낱 미물들이, 이 몸을……!]
그러자 천하의 아르실라도 더는 못 버티겠는지 늪으로 도망치려 했으나, 찰나에 유세림이 아르실라의 허리를 채찍으로 묶어 버렸다.
버둥거리는 아르실라의 꼬리는 김재호가, 아르실라의 머리는 안화영이 각각 끊어 내면서 우리는 보스 몬스터를 잡는 것에 성공했다.
[아르실라의 뱀독 저항 목걸이]
그러자 보상으로 ‘아르실라의 뱀독 저항 목걸이’ 아티팩트가 떴다.
1년 전, 이 목걸이는 표유정의 것이었다. 그녀는 파티의 유일한 치유사이니 말이다. 그리고 당시의 나는 벌벌 떨며 숨어 있기만 해서 활약을 한 게 아무것도 없었다.
‘뭐, 이번에도 표유정이 받겠지.’
나야 어차피 이미 가진 아티팩트도 있고, 표유정이 저렇게 기대로 반짝이는 얼굴을 하고 있는데 쟤가 아니면 누굴 주겠어.
그런데 아티팩트를 들고 있던 유세림이 뜻밖의 말을 꺼냈다.
“이 아티팩트는 오늘 던전에서 가장 기여도가 높은 분께 드리려고 합니다.”
‘……어라?’
나는 뭔가 1년 전과는 다르게 돌아가는 상황에 나도 모르게 유세림을 쳐다봤다. 그리고 놈도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는 걸 그제야 인식했다.
두근, 두근.
심장이 불쾌하게 뛰기 시작하고, 유세림이 내게 천천히 다가왔다. 그러곤 갑자기 나를 지나치더니…….
“엇!”
“긴장하지 마세요, 목걸이를 채워 드리려던 것뿐이니까.”
갑자기 내게 ‘아르실라의 뱀독 저항 목걸이’를 채워 주기 시작한 것이다.
“…….”
나는 온몸에 소름이 오소소 돋는 것을 느끼며 당장이라도 팔꿈치로 유세림을 패서 떨쳐 버리고 싶은 충동을 간신히 억눌렀다.
대신, 어떻게든 이딴 식으로 목걸이를 받는 걸 막기 위해 입을 열었다.
“저는…… 이미 가진 아티팩트도 있고…….”
“아, 저희도 아티팩트가 없는 분은 없습니다. 모두 최소 두 개 이상은 가지고 계시죠.”
“…….”
“이 와중에 파티원에게 아티팩트를 양보하려 하다니, 정말 좋은 분이시네요, 한솔 씨는.”
이익…….
나는 분한 마음을 참지 못하고 주먹을 꽉 쥐었다. 아마 얼굴도 붉어졌으리라.
하나, 이런 나의 반응을 표유정은 대체 뭐라고 생각한 건지 눈을 사납게 부라리면서 나를 아래위로 노려보기 시작했다.
잘그락.
[아르실라의 뱀독 저항 목걸이
―스킬1: 뱀독 불침 (모든 뱀 혹은 뱀 종류의 몬스터 독에 저항함 / 패시브)]
그리고 빌어먹게도 아티팩트는 나를 주인으로 인식한 듯, 유세림이 고리를 채워 주자마자 바로 스킬 정보를 내게 알려 주었다.
나는 결국 목걸이를 건 채, 재빨리 유세림의 손에서 벗어났다. 놈과 파티원은 지나치게 빨리 벗어나 버린 나를 이상하다는 듯 쳐다봤지만, 내게는 중요한 문제였다.
두근, 두근.
미친 듯이 뛰는 심장의 박동은 정말 순수하게, 오직 분노 때문인 걸까?
나는 고개를 숙이고 이를 잠깐 악물었다가 곧 표정 관리를 하고 다시 고개를 들었다. 모두의 눈동자가 나를 향해 있었다.
“저……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열심히 할게요.”
이후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했고, 파티원은 어째선지 박수를 짝짝 치더니 한마디씩 해 주었다.
[오늘 꽤 멋졌다요오이.]
“쓸 만하던데.”
“정말 대단했어요! 디버퍼 중에 한솔 씨만큼 잘하는 사람이 또 있을까 싶을 정도였다니까요?”
“하! 전투 중에 한눈이나 팔지 마. 뭘 멍하니 있었던 거야? 다음엔 브레스에 녹든 말든 신경도 안 쓸 거니까!”
“……그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헤헤. 유정 씨가 말은 저렇게 해도 속은 따듯하신 분이라…….”
“……칫. 뭐라는 거야.”
나는 파티원끼리 왁자하게 떠드는 모습을 보며 잠시 멍하니 서 있었다. 내가 죽을 당시, 차갑게 돌아서던 동료들의 모습과 이렇게 나를 한 명의 동료로 인정하는 모습의 갭에 약간의 혼란이 와서였다.
‘……아니야. 어차피 이 모습도 1년뿐이야. 1년 뒤에는 무슨 일이 일어나는지 나도 모르니까, 그럼 또다시 버려지겠지. 쓸모도 없고 대처도 못 하는 나 같은 C등급은…….’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나약해지려는 마음을 다잡았고, 그러면서도 다음 던전에서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성규림 씨가 허무하게 죽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했다. 내게 있어 진정한 동료…… 라고 부를 수 있는 건 그녀뿐이니까.
하지만 그녀도 오래 살아 있었다면 달랐을지도 모르겠다. 나를 두고 돌아서는 성규림 씨를 상상해 보니 마음 한구석이 따끔따끔했다. 다시는, 누구든 나를 배신한들 절망하지 않겠다고 맹세했음에도 말이다.
* * *
각 마을에는 오랫동안 그 마을에 터를 잡고 산 사람들이 있기 마련이다.
그리고 나는 그런 사람들을 물어물어 찾아가서, 이번에 아르실라의 독을 팔아 꽤 짭짤하게 번 돈의 절반을 소비하면서까지 형의 소식을 물었다.
“한성훈 씨라……. 한성훈 씨를 마지막으로 뵌 게 5년 전이라서 도움이 될지…….”
나는 그렇게 말하는 마을 촌장에게 돈을 더 주려 했지만, 그는 고개를 저으며 거절했다.
“돈을 더 달라는 말이 아니라, 말 그대로 5년 전 그날 이후로 내게 더 소식이 들려오는 일은 없었네.”
“아주 작은 소식도 없었나요?”
“……한성훈 씨의 동생도 각성자가 되었다, 뭐 그런 소식들뿐이었지. 하지만 그런 얘길 자네한테 할 순 없지 않나. 맹세코 말하지만, 한성훈 씨의 행방은 아무것도 들은 바가 없어.”
“……하아. 알겠습니다.”
“혹여 새로운 소식이 들리면 이쪽 세계에서 메일을 보내도록 하지. 자네도 주기적으로 넘어가지 않나?”
“아, 네. 맞습니다. 그럼 메일 주소를 남겨 둘게요.”
“그래.”
그렇게 이번에도 기약 없는 약속만 받은 후, 숙소로 돌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