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7화 (8/104)

7화

“아, 아…….”

유세림은 그제야 납득한 듯 선선히 고개를 끄덕였다.

“예지의 성곽은 지금 저희의 수준으로조차 클리어 할 수 없는 높은 등급의 던전으로, 지금껏 살아서 나온 각성자가 없을 정도로 악명 높은 곳입니다.”

“……그렇군요.”

“그래서 저는 아티팩트를 최대한 많이 모아서 예지의 성곽을 클리어 할 수 있을 만큼의 무력을 가지고 도전해 볼 생각입니다. 어제처럼 중간중간, 한솔 씨처럼 좋은 동료들도 모집하고요.”

“…….”

나는 아티팩트라는 말에 움찔했다. 아마 형이 내게 남긴 이 펜던트도 아티팩트일 것이 분명하다. 그것도, 엄청난 힘을 지닌 아티팩트.

그도 그럴 게.

‘죽기 1년 전으로 돌아올 수 있다니…….’

거의 사기라고 해도 무방하잖아.

그래서 나는 목걸이 형태의 아티팩트를 옷 아래로 잘 숨겨 놓았는데, 이걸 유세림이 눈치를 챘는지는 잘 모르겠다. 

어쨌든 유세림은 여기까지 말한 뒤, 자신의 허리에 매단 채찍을 가리키면서 내게 친절히 설명했다.

“제가 가진 이 채찍도 아티팩트입니다. 스스로 몬스터를 감지하는데, 그 외에도 몇 개의 스킬이 더 붙어 있죠.”

“……대단하네요.”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유세림의 채찍을 노려봤다.

‘그래. 저 채찍만 없었어도 유세림을 한번 어떻게 해 보는 건데.’

놈은 호리호리한 체격과 다르게 채찍만 들면 집채만 한 커다란 몬스터도 거뜬히 들어 올릴 만큼 괴력을 발휘하곤 했다.

“또 간혹 던전에서 아티팩트를 얻는 경우가 있는데, 이 경우엔 다툼이 일어나지 않도록 제가 중재해서 배분합니다. 하지만 보통은 아티펙트가 주인을 선택하는 경우가 많죠.”

유세림은 간단하게 이 파티의 목적, 최종 던전인 예지의 성곽 클리어와 강력한 아티팩트 모으기, 이 두 가지에 대한 설명을 마친 후에 빙긋 웃으면서 내게 물었다.

“그럼……. 이제 한솔 씨가 가진 아티팩트에 대한 설명을 들어도 될까요?”

두근― 하고, 심장이 크게 요동쳤다. 심장께에 놓인 펜던트까지 진동이 느껴지지 않았을까 싶을 정도로.

‘……이 녀석, 내가 아티팩트를 가진 걸 알고 있었어.’

그런 주제에 시치미 뚝 떼고 파티원이 될 때까지 아무것도 안 물어본 건가? 하긴, 전에도 내가 가진 펜던트를 한번 가져가 확인해 본 이후, 다시 돌려주긴 했다. 

그러나 이번에는 이 펜던트를 놈의 손에 얹어 주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제가 가진 아티팩트는…….”

나는 표정이 너무 딱딱해지지 않기만을 바라며, 주머니에 있던 반지를 꺼내 들었다.

“형님이 저에게 남기신 저주 반지입니다.”

“아하. 제가 좀 살펴봐도 될까요?”

“……네. 그러세요.”

저 반지는 혹여 유세림이 가져간다 해도 상관없었으니까.

내게서 반지를 가져간 유세림은 신중한 얼굴로 그걸 몇 번 매만지다가, 곧 나에게 다시 넘겨주었다.

“좋은 반지네요. 주술사에겐 무척 쓸모가 많겠어요.”

“네. 저도 감사히 쓰고 있습니다.”

“그런데 혹시…… 다른 아티팩트는 없나요, 한솔 씨?”

이번에 묻는 얼굴은 아주 노골적이었다. 하지만 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설마, 품속을 뒤지는 짓까진 하지 않겠지.

“없습니다. 뭔가, 찾으시는 거라도……?”

“아, 그게. 사실 저희가 이 마을로 오게 된 이유가 강력한 아티팩트의 파동을 느껴서였거든요.”

“아, 네…….”

“한솔 님의 반지도 물론 좋은 아티팩트지만, 제가 느꼈던 파동하고는 좀 달라서…….”

그래서 1년 전에도 이 마을에 들렀던 거구나. 형이 남겨 준 펜던트를 확인하려고.

“저는 아는 바가 없습니다. 죄송하네요, 도움이 되어 드리지 못해서…….”

“아니에요.”

유세림은 고개를 저으며, 눈을 접어 웃었다.

“더 좋은 동료를 얻었으니 괜찮습니다. 이번만 인연인 것도 아니고.”

‘……우웩.’

나는 잘도 매슥거리는 멘트를 날리는 유세림에게 속으로 쌍욕을 하면서 어색한 미소만 지었다. 표유정은 그런 나를 잡아먹을 듯이 노려봤지만, 당연히 무시했다.

* * *

“오늘은 여기서 묵죠.”

“좋습니다.”

하루를 꼬박 걸어서 도착한 다른 마을에서도 우리는 환대를 받았다. 유세림이 워낙 유명인이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들 눈에는 나도 A등급 이상의 실력자로 보이는지 선망의 시선이 장난이 아니었다. 하지만 나는 눈에 띄고 싶지 않았기에 입고 있던 겉옷에 달려 있는 후드를 뒤집어썼다.

이후, 각자 배정된 방에 들어가자마자 집에서 가져온 노트와 볼펜으로 일명 ‘유세림 죽이기’ 계획을 세웠다.

[ㅇㅅㄹㅈㅇㄱ]

혹시나 수첩을 빼앗기거나 누군가 볼 수 있어서 초성만 썼다. 그리고 내가 알고 있는 1년간의 굵직한 사건들을 간략히 적어 봤다.

‘우선, 막아야 하는 건…….’

[1. 규림 씨 살리기]

과거에 나랑 같이 갔던 두 번째 던전, ‘혹한의 성전’에서 마지막까지 남아 있던 몬스터의 숨통을 끊지 못한 탓에 규림 씨가 대신 죽었었지. 이것만큼은 꼭 막아야 한다.

[2. 형의 흔적 찾기]

유세림은 형의 흔적을 찾는 걸 도와줄 생각이 전혀 없으니, 이건 나 혼자 찾아야 한다. 

막막하다. 하지만 1년 동안 유세림과 클리어 했던 열두 개의 던전은 전부 기억이 생생했다.

‘어쩌면 유세림 앞에서 실력 이상의 모습을 보여 줄 수도 있겠어.’

나는 이미 던전을 클리어 해 보았기 때문에 던전의 구조나 몬스터의 약점 등을 알고 있다. 이건 유세림도 모르는 정보일 테니, 적어도 파티 내에서 내 영향력을 늘릴 수 있지 않을까?

아니면 이 파티를 빨리 떠나는 방법도 나쁘진 않았다. 사실 규림 씨만 아니면 첫 번째 던전에 다녀온 다음, 못하겠다고 질질 눈물 짜면서 빠져나올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러기엔 아무래도 규림 씨가 마음에 걸렸다. 

그래서 두 번째 던전까지는 최선을 다해 보고자 마음을 먹었다.

‘하지만, 무엇보다 유세림에게 한 방 먹여 줘야 하는데…….’

나는 수첩에 글을 쓰다가 볼펜 뒤끝을 잘근잘근 씹었다.

유세림의 약점은…… 잘 모르겠다. 하지만 곰곰이 생각해 보니, 유세림이 정말 치를 떨며 싫어했던 존재가 한 명 있었던 기억은 났다.

‘걔가 누구였더라……? 아, 씨. 1년 전이라 기억이 가물가물하네.’

이름이 특이했던 건 기억나는데……. 하지만 아무리 볼펜 끝을 씹고 또 씹어도 유세림의 라이벌이었던 남자의 이름은 떠오르질 않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 남자와는 딱 한 번 마주쳤었고, 그 남자는 유세림과 짧게 드잡이질을 하고 사라졌다가 얼마 후 ‘뇌령검 사태’ 때 휘말려 사망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 남자의 이름은 물론, 인상도 뚜렷하지 않은 것이다. 게다가 그때 나는 유세림에게만 집중하고 있었어서…….

“검고 긴 머리였던 건 기억나. 유세림이랑 완전 상반된 색이었지.”

밝은 금발에 자안인 유세림과 달리, 검은 머리칼을 허리까지 기른 남자는 분명 옷차림새도 범상치 않았었다.

“하아……. 아니, 이런 거 말고 더 중요한 걸 떠올리라고, 멍청아.”

나는 내 머리를 쥐어박으면서 그 남자의 특징을 더 떠올려 보려고 노력했지만, 결국 실패했다. 다만 뇌령검 사건은 떠올라서 간략하게 메모는 해 뒀다.

뇌령검 사건은…… 한마디로 말하자면 희대의 사기 사건이다.

어디선가 뇌령검이라는 아티팩트를 가지고 있으면 등급이 올라간다는 소문이 퍼졌고, 이어 그게 북쪽에 있다는 소문이 돌면서 수많은 각성자가 뇌령검이 있다는 북쪽에 몰렸다. 그러던 중 싸움도 일어나고, 실제로 살인마저 벌어졌다고 한다.

그때, 그 남자도 죽었었다. 나는 그렇게만 메모해 둔 뒤, 수첩을 품속 깊은 곳에 소중히 넣어 두었다.

* * *

“오늘은 이 근처에 있는 던전에 입장해 볼 계획입니다.”

이튿날 아침, 아침밥을 먹는 식탁에서 유세림이 먼저 입을 열었다. 물론, 나는 오늘 가는 던전이 어떤 곳인지 잘 알고 있었다.

[고요의 늪].

던전은 처음 가는 경우 입장 전까지는 이게 어느 곳인지 이름조차 모르는 경우가 많아서, 유세림 역시 던전의 이름을 모르는 상태였다.

“처음 가는 던전인데, 듣기로는 던전을 클리어 한 파티가 아직 없다고 들었어요. B등급 다섯 명이 들어갔었는데 전멸했다고 하더군요.”

잔잔하게 들리던 수저와 그릇이 부딪치는 달그락거리는 소리들이 멈췄다. 긴장감이 감돌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 곳에 C등급을 데리고 가도 될까요?”

그러나 곧 표유정이 표독스럽게 하는 말을 듣고, 나는 한숨이 나오려는 것을 꾹 참았다. 전에는 저 소리를 들을 때면 욱하면서도 아무 말 못 했지만, 이번에는 달랐다.

“뭐, 유세림 씨 옆에서 꼭 달라붙어 있으면 되겠죠. 하.하.하.”

“무슨……!”

“저희 파티에서 가장 강한 사람이 유세림 씨니까, C등급 정도는 충분히 보호해 주시지 않을까 해서요.”

나는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하면서 표유정을 약 올렸고, 그녀는 당했다는 얼굴로 볼을 씰룩거렸다. 여기서 더 말해 봤자 유세림이 나를 더 신경 써 주기만 할 뿐이라는 걸 드디어 인지한 듯한 표정이었다.

“네. 여차하면 한솔 씨는 제 옆에 꼭 붙어 계세요.”

‘뭐야, 이 새낀…….’

그런데 표유정을 약 올리려고 한 말을 갑자기 유세림이 진지하게 받아 줌으로써 표유정의 표정은 아주 심하게 일그러지고 말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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