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화
물론, 나는 그러든 말든 아무런 관심도 없었다. 차라리 표유정이 한 대 쳐서 같이 파티 못해 먹겠다고 하는 것도 나쁘지 않게 느껴졌으니까.
“서로 예의는 지키자. 나도 너 같은 새끼랑 같이 파티하는 거, 별로 고맙지 않거든.”
“무……. 너, 지금 뭐라고…….”
“넌 내가 등급도 낮은 게 유명한 파티에 버스 타러 왔다고 생각하겠지만, 정확히 말하면 유세림이 오라고 해서 들어온 거지 내가 들어가고 싶어서 들어간 거 아니야. 그러니까, 너도 처신 똑바로 해. 유세림한테 너 때문에 같이 파티 못 하겠다고 하면 누가 곤란해질 것 같아?”
“이게……!”
표유정은 다혈질인 만큼 금방 머리가 솟아오른 듯 무시무시한 기세로 노려봤지만, 나는 그 분노한 기색을 보고도 그냥 피식 웃었다.
어차피 표유정에겐 남을 공격하는 스킬이 없다. 그녀는 치유사니까. 그리고, 유세림을 무지 좋아하고 말이지.
“난 유세림한테 관심 없어. 넌 유세림이 관심을 두는 모든 것에 날을 세우는 모양이지만…… 글쎄, 그게 유세림을 피곤하게 만드는 건 아닐까 모르겠네.”
“……!”
“혹시나 유세림이 나한테 관심 가지길 바라는 거면 이따위로 해. 그럼 유세림은 팀의 불화에 스트레스를 받을 거고, 일방적으로 당하는 나한테 불쌍함을 느끼겠지. 그리고 네가 점점 귀찮아지지 않을까?”
실제로 그랬다. 표유정은 나보다 먼저 유세림에게 버림받은 파티원이었다. 그땐 그녀가 버림받았다고 느끼지 못했지만…….
유세림은 새로운 치유사를 영입하자마자 던전에서 치명상을 입은 표유정을 지나던 마을에 맡겨 버리고 매정하게 떠났다. 표유정이 입은 치명상은 한쪽 다리가 잘린 것이었고, 처음에 나는 그걸 내심 고소해했었다.
하지만 설마하니 깨어나지 못하고 있는 표유정을 두고 떠날 줄은 몰라서, 당황하며 물었던 기억은 남아 있다.
‘저, 저기. 유정 씨는 그럼…….’
‘여비와 위로금은 충분히 두었으니, 원래 세계로 돌아가도 괜찮을 거예요.’
‘아…….’
그 단호한 태도에서 어떤 위화감을 느꼈지만, 그때는 그게 어떤 의미인지 몰랐다.
아무튼 지금 와서 생각해 보면 유세림은 진짜 개새끼였지. 표유정이 저를 얼마나 끔찍이 아끼고 사랑했는지 모두가 알고 있었는데도, 돈 몇 푼 쥐여 주고 깨어나는 모습도 보지 않은 채 떠나 버리다니…….
그 모든 걸 다 알고 있기에 나는 표유정이 싫다기보다는 이제 불쌍해 보였다. 이 어린 여자는 앞으로 닥쳐 올 자신의 운명을 알까?
“…….”
그런 내 기색을 읽은 듯, 표유정은 주춤하더니 결국 인상을 찌푸린 채로 “흥!” 하고 콧방귀를 뀐 채 뒤돌아 사라져 버렸다.
“하…….”
그리고 나는 내 품에 안겨 있는 깨끗한 파티원복을 심란하게 내려다봤다. 설마, 돌아와서도 다시 이딴 걸 입게 될 줄이야…….
하지만 나는 이것을 불행의 전조라고 여기지는 않게끔 결심했다.
‘유세림. 너는 모든 인간이 네가 쓰고 버릴 말이라고 생각하고 있지? 이번엔 네 차례야. 너도 쓰다 버린 말 취급당하는 게 어떤 기분인지, 알게 해 주겠다고.’
이것은 복수의 전조일 뿐이다.
유세림이 가장 힘들고 고통스러울 때, 그를 버리거나 더 큰 구렁텅이에 밀어 넣는 것이 내 목표였다. 또, 이번에야말로 형에 관한 걸 꼭 찾을 거고.
내가 돌아온 이유는 분명 이것 때문일 것이다. 나는 마음을 다잡고, 흰 로브를 몸에 걸쳤다.
* * *
“잘 어울리시네요.”
‘잘 어울리시네요.’
과거와 똑같은 말을 하는 유세림을 보면서 나는 가볍게 고개만 까닥해 보였다. 보통 남자끼리 이처럼 호들갑스럽게 칭찬하진 않으니까 말이다.
예전엔 저런 칭찬에도 일일이 얼굴을 붉혔지만, 지금은 유세림이 마음에도 없는 소리를 얼마나 잘하는지 알기 때문에 아예 흘려들었다.
그러자 유세림은 제가 원하던 반응이 아니었는지 미소를 짓는 얼굴이 조금 어색해졌다. 그리고 그 뒤로 표유정의 아니꼬워하는 시선이 이어졌다.
하지만 어제 내가 했던 경고가 그녀에게 먹혀든 듯, 표유정은 대놓고 비아냥거리진 않았다. 눈이 마주치자 옷을 가져다줬을 때처럼 또 “흥!” 하고는 고개를 픽 돌릴 뿐이었다.
유세림은 그런 그녀를 보고 작게 웃은 후, 나에게 자신의 파티원을 한 명씩 소개하기 시작했다.
“여기는 치유사인 표유정 씨. 등급은 A등급이고 조금…… 낯을 가리는 성격이에요.”
“네.”
낯을 가린다기엔 지나치게 무례한 태도였으나 크게 신경 쓰진 않았다. 표유정이나 나나 놈에겐 쓰고 버리는 말에 불과하다는 걸 아는 이상, 고작 저 정도 태도에 적대감이 생기지도 않았고.
“그리고 이쪽은 S등급 소환사인 안화영 군. 직접 대화하기보다는 소환수인 ‘해태’로 대화하는 걸 선호하세요.”
[같은 팀이 될 줄은 몰랐네요오이. 반가워요이!]
해태는 온몸이 둥둥 떠 있는 분홍색 풍선처럼 생겼지만, 만만하게 생긴 것과는 달리 상당히 강력한 소환수다. 그리고 안화영은 등급도 높고 판단력도 좋아서 유세림이 아끼는 편에 속하는 팀원이었다.
나는 안화영에게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며 이전의 기억에서 안화영의 약점이라고 할 수 만한 점을 천천히 되짚어 보았다.
예전에 [노아의 관]이라는 던전에 들어갔을 때의 일이었는데…….
‘어둡고 좁은 공간에서는 패닉을 일으켰지. 그래서 유세림이 직접 나서서 제압했고.’
또, 유세림은 마치 안화영이 패닉을 일으킬 거라는 걸 알고 있는 듯이 굴었었다.
둘의 속사정까지는 잘 모르지만, 지금 나는 안화영의 약점을 알고 있으니 언젠가는 써먹을 순간이 올 수도 있겠다 싶었다. 예를 들자면 유세림에게서 떨어뜨려야 할 때라든가…….
“그리고 이쪽은 성규림 씨. AA등급 마도사예요. 주로 사용하는 무기는 부채입니다.”
“반갑습니다!”
이어 밝은 미소로 나에게 답해 주는 소녀, 성규림은 혹독한 파티 생활에서 유일하게 내게 관심도 있고 또 나쁘게 굴지 않고 잘 챙겨 주던 이였다.
그래서…… 그녀는 혼자서라면 충분히 몸을 뺄 수 있던 두 번째 던전에서 나를 구하려다가 사망하고 만다.
그 이후 유세림은 내게 눈에 띄게 냉정하게 굴었는데, 나 때문에 고급 인력인 성규림이 사망한 것에 대한 분노를 그런 식으로 표출한 게 아닌가 싶다. 그래서 나중에 나를 그런 식으로 버린 거겠지.
“…….”
나는 밝게 웃는 성규림 씨를 보자 너무도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이번에도 그녀는 나를 ‘집에 두고 온 막냇동생과 닮았다’면서 챙겨 줄 게 뻔했다.
‘이 망할 파티에서 유일하게 은혜를 갚아야 할 사람.’
나는 성규림 씨가 내민 작은 손을 꽉 붙들고, 처음으로 제대로 된 인사를 했다.
“안녕하세요. 저는 한솔이라고 합니다. 등급은 낮지만,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좋아요.”
역시나 성규림 씨는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고, 유세림은 이전과는 다른 내 태도에 조금 이채를 띠며 쳐다봤다.
“……마지막으로 도끼를 든 이분은 AA등급 전사, 김재호라고 합니다. 과묵한 친구라 말수는 적지만, 실력은 확실하죠.”
“…….”
김재호는 꾸벅 고개를 숙여 보이고는 내게서 완전히 시선을 뗐다.
그는 전처럼 내게는 아무런 흥미도 없어 보였고, 나 역시 김재호에 대해서는 아는 바가 많진 않았다. 전투가 시작되면 꽤 난폭해지는 경향이 있긴 하나, 그건 몬스터에게만 그런 것이지 파티원에게 해를 끼칠 정도는 아니었으니까.
‘그래도 가끔 유세림과 얘기할 때 보면 친분은 있는 듯 보였어. 저놈도 유세림과 비슷한 과일 수도…….’
나는 김재호는 일단 경계해야 할 대상 쪽에 분류하기로 했다.
그렇게 모든 파티원의 소개를 마치자, 유세림은 본격적으로 이 파티의 존재 이유를 내게 설명했다.
“일단 제가 파티를 결성한 이유는, 최후의 던전이라 불리는 예지의 성곽을 클리어 하기 위해서입니다.”
‘……이것도 전과 똑같아.’
나는 그렇게 생각하며 묵묵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었다.
그때, 유세림이 내게 의아한 듯 물었다.
“그런데, 한솔 씨는 혹시 예지의 성곽에 대해서 들어 본 적 있나요?”
‘아, 이건 실수다. 모르는 척했어야 했는데…….’
바로 엊그제 1년 전으로 돌아온 터라 그런지 모든 게 다 익숙했고, 심지어 유세림이 하는 말도 다 똑같았다. 그래서 적절히 질문할 타이밍을 놓쳐 버린 것이다.
‘너무 다 알고 있으면 당연히 의심을 사기 마련이지……. 일단 유세림이 나를 경계하게 하는 것은 막아야 하니까.’
그래서 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들어 본 적은 있습니다. 형…… 님에게요. 그치만, 자세한 내용은 몰라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