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화
‘미친 건가?’
나는 혹시 유세림이 와이번한테 머리라도 얻어맞았나 싶었지만, 그래도 침착하게 거절의 의미를 담아 말했다.
“저는…… C등급인데요. 주워듣기로 세림 님 파티는 A등급 이상부터 받으신다고…….”
[핑―!]
그런데 그때 유세림의 애완조, 핑이 내 주변을 한 바퀴 핑그르르 돌아선 유세림의 어깨 위에 앉았다.
유세림은 그런 핑을 힐끔 쳐다본 뒤, 여전히 미소를 띤 채로 내게 말했다.
“괜찮습니다. 제가 눈여겨본 건 등급이 아니라, 한솔 씨의 스킬 숙련도였으니까요.”
‘아니, 씨발. 내가 안 괜찮다고!’
하지만 분위기는 이미 내가 유세림의 파티원이 되는 쪽으로 흘러가고 있었다. 나 역시 등급마저 상관하지 않겠다는 놈에게 더는 거절할 말도 떠오르지 않았고 말이다.
곧, 유세림은 창백해진 내 손을 멋대로 잡고 흔들었다. 등줄기에 소름이 쫙 끼치기 시작했다.
“그럼, 앞으로 잘 부탁드려요?”
“…….”
그때, 내가 어떤 표정을 지었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유세림은 내 표정을 보고 잠시 멈칫했다. 그림 같던 미소도 잠시 지울 만큼 말이다.
나는 그 순간, 위기의식을 느꼈다.
‘여기서 더 거절하는 건 위험해.’
결국, 어쩔 수 없이 애써 표정을 풀고 고개를 끄덕이면서 유세림에게 말했다.
“감사합니다. 앞으로 잘 부탁드립니다.”
“……그래요.”
유세림은 그제야 다시 밋밋한 미소를 짓기 시작했고, 나는 그 미소를 보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래. 어차피 유세림…… 이 개새끼한테 복수하고 싶긴 하니까.’
저를 좋아한다는 걸 알면서도 내 마음을 기만했던 것. 형을 찾아야 한다는 것도, 매번 이 핑계 저 핑계로 한 번도 도와준 적 없었던 것.
이런 것들이 저 매끈한 면상을 볼수록 떠올라, 생각할수록 열이 받았다.
‘이대로 꽁무니를 빼면 안 되겠어.’
나도 똑같이 이 새끼를 이용해서 형에 관한 정보를 찾은 후 먹고 버리거나, 같은 파티원이 되어서 유세림이 무방비해졌을 때 공격하거나, 몰래 디버프를 걸어서 처리할 수 있다면…… 그것도 나쁘진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또, 지금 나한텐 유세림이 준 반지가 있지.’
지금은 땅바닥에 굴러다니고 있겠지만, 그 저주 반지는 꽤 쓸 만했다. 스킬이 두 개나 붙어 있는 아티팩트이니까.
‘그건 나중에 던전에서 나온 것을 배분 받은 거니까, 지금 끼고 다녀도 괜찮겠지?’
나는 돌아서는 유세림의 뒷모습을 뚫어져라 쳐다보다가 다른 파티원 놈들의 시선을 느끼며 고개를 숙였다.
살의를 숨겨야 했으므로.
* * *.
“잘 가! 연락할 수 있으면 꼭 연락하고!”
“그래.”
김지우는 방방 뛰면서 내게 인사를 건넸고, 나는 그런 녀석에게 고개를 끄덕였다. 김지우의 아쉬움 가득한 배웅을 받으며 나는 유세림의 뒤를 따라 걸었다.
어제 나는 짐을 정리해야 한다는 핑계로 하루의 시간을 번 다음, 반지만 남기고 물에 젖은 옷을 전부 조각내 태웠다. 이 시점에서 놈의 파티원 복장을 가지고 있는 건 아무래도 이상한 일이니까 말이다.
그리고 바닥을 굴러다니던 아티팩트, 반지를 찾아내 손가락에 끼웠다.
[주술사 라몬의 저주 반지
―스킬1: 주박 (대상의 털 필요)
―스킬2: 보이지 않는 고통 (시전자의 혈액 필요)]
‘주박’은 보통 거대한 몬스터나 처리하는 데 시간이 오래 걸리는 던전의 보스 몬스터를 공격할 때, 몬스터의 표피에서 털을 뽑아내 저주를 거는 스킬이다.
하지만 그보다 자주 쓰는 스킬은 두 번째인 ‘보이지 않는 고통’이었다. 아무래도 전투할 때 몬스터의 털을 뽑고 다닐 만큼 여유롭지는 않으니까 말이다.
‘지금 보이지 않는 고통을 확 써 버릴까?’
나는 반지를 만지작거리면서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보이지 않는 고통’은 저주할 대상의 실력이 얼마나 뛰어난지에 따라 요구하는 혈액의 양도 많아져서, 나는 나와 유세림의 차이를 가늠해 보다가 고개를 저었다.
‘내 피가 전부 메마른다고 해도…… 유세림을 죽이는 건 불가능해.’
역시, 기회를 노리는 수밖에 없나.
생각해 보면 나는 앞으로 1년간 일어날 일을 알고 있다. 그럼, 그 오만한 유세림도 어쩌면 내 손안에서 가지고 놀 수 있을지도 모른다.
‘그래. 이건 차라리 기회야.’
그래서 나는 좋게 생각하기로 했다. 이 기회에 유세림을 처리해 버리자고.
‘그 대단하다는 등급, 어디 한번 내가 부숴 봐 주마.’
* * *
“세림아.”
AA등급의 전사, 김재호는 마지막 와이번의 시체에서 도끼를 빼내며 유세림을 불렀다.
“네.”
“세림이 너야 항상 ‘좋은’ 쪽을 선택하긴 하지만…….”
“…….”
“아무리 그래도 C등급은 솔직히 무리수 아니냐?”
유세림은 김재호에게 대답하지 않고, 그저 미소만 지어 보였다.
김재호는 유세림이 저런 표정을 지을 때면 아무런 말도 들을 수 없다는 것을 알기에 결국 한숨을 내쉬었다. 또한, 말투도 바꾸었다.
“뭐, 유세림 씨가 알아서 잘하리라 생각은 합니다. ‘좋은’ 쪽으로요.”
“네.”
유세림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그럼, 전 가서 마저 처리하겠습니다.”
“네. 조금 더 수고해 주세요.”
김재호는 그리 탐탁지 않은 표정으로 자리를 떠났다.
김재호의 말을 이해 못 할 건 아니다. 유세림은 와이번의 시체를 내려다보며 골똘히 생각에 잠겼다.
‘근처에 상당한 파동의 아티팩트가 느껴져서 간 것뿐인데, 뜻밖의 걸 발견하긴 했지.’
당시, 유세림은 아티팩트가 내뿜는 강력한 파장을 느끼곤 방향을 잡았다. 그리고 거기서 아쉽게도 이미 주인을 정한 아티팩트를 발견할 수 있었다.
감추어 둔 건지 아티팩트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지만, 그가 가지고 있는 탐색기는 정확히 한 남자를 가리키고 있었다.
‘정확히 어떤 종류의 아티팩트인지는 모르겠지만…… 상당히 강력한 힘을 가진 건 분명해.’
한데 아티팩트의 주인은 어째선지 자신을 경계하고 있었다.
하긴, 어떤 아티팩트 사냥꾼들은 소유자를 죽여서라도 물건을 빼앗기도 하니까 남자가 경계할 만도 했다.
‘성격도 예민해 보였고.’
거기까지라면 이해할 만한데, 사실 이해하기 어려운 건 다른 문제였다.
아티팩트 소유자는 C등급임에도 와이번 한 마리를 어렵지 않게 매혹하여 땅 위로 내려앉게 만드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고작 C등급. 이런 하급 마을에 사는 각성자라곤 보기 힘든 노련함이 엿보였다. 그래서 말을 걸었는데, 알고 보니 ‘그’ 한성훈의 동생이라지 않나.
‘점점 더 내력이 궁금한데…….’
저 노련함은 아티팩트가 준 능력일까? 아니면, 썩어도 준치라고 등급은 낮다고 한들 그 한성훈의 동생이라?
하지만 그렇다기엔 몬스터를 처리하는 스킬의 위력은 형편없다. 처음엔 아티팩트가 목적이었으나, 이내 유세림은 남자의 불균형함이 거슬리면서도 시선을 뗄 수 없었다.
‘아, 한성훈 님……. 성훈 님이라면 저도 큰 도움을 받았었죠.’
‘혼자 힘으로는 찾기 힘드실 텐데, 저희와 함께 찾는 건 어떠세요?’
그래서 남자에게 파티를 제안했다.
곁에서 두고 볼 요량으로.
‘……네?’
그리고 그때, 유세림은 똑똑히 보았다. 처음 보는 남자가 제게 부정적인 감정을 보이는 것을.
‘분명 초면임이 확실한데 말이지.’
이에 더욱더 흥미가 돋았다.
유세림은 자신이 모르는 남자가 자신을 알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자신을 썩 좋아하지 않는다는 걸 깨닫곤 부러 더 진한 미소를 지어 보였다.
그리고 답지 않게 그의 손까지 붙들고 흔들었다. 오로지 그를 압박하기 위해서. 또, 제 손안에 놓은 채로 그를 지켜보기 위해서.
* * *.
쾅쾅쾅―!
어떻게 해야 유세림을 죽여 버릴 수 있을지 고민하느라 밤을 지새우던 때, 새벽에 갑자기 누군가 문을 세차게 두드렸다. 아니, 두드렸다기보다는 발로 걷어차는 수준이었다.
“뭐야?”
나는 신경질을 내면서 문을 열었고, 거기엔 표유정이 차가운 얼굴로 나를 쏘아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녀의 품에는 내 것으로 보이는 유세림의 파티원복이 들려 있었다.
퍽―!
표유정은 사나운 표정으로 내게 파티원복을 던졌고, 나는 그것을 가까스로 받아 냈다.
‘이건 예전하고 똑같네.’
과거에도 표유정은 언제나 날을 세우며 첫날부터 나를 싫어했다. 첫눈에 인상부터 싫은 사람이 있다는데, 그게 표유정과 내 사이였던 것이다.
후회하는 게 있다면, 당시 표유정에게 숙이고 들어갔던 것이다.
표유정이 난폭하게 굴 때면 나는 그녀와 등급 차이가 많이 난다는 이유로 혼자 얼어붙었고, 그녀의 행동에 상처 받으면서도 묵묵히 감내했었다. 참다 참다 한마디 해도 표유정이 ‘그래서, 네가 파티에서 한 게 뭔데?’라는 말 한마디면 와르르 무너져 내리기도 했었고.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애초에 원해서 들어온 파티도 아니고, 유세림을 죽일 생각까지 하고 있는 판국에 표유정에게 거스르지 않으려고 아등바등할 생각은 없다.
그래서 나는 표유정이 내게 파티원복을 던지고 잠시 노려보다 등을 돌렸을 때, 그녀를 불렀다.
“야.”
“뭐? ……야? 너 지금 나더러 야라고 불렀냐?”
“싫으면 이름을 알려 주던가.”
“내가 왜?”
표유정은 가던 길을 멈추고 사납게 다시 뒤돌아봤다. 여차하면 한 대 칠 기세로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