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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화 (5/104)

4화

유세림의 파티에서 구르고 또 구르면서, 나는 등급이 낮다 해도 미세하게 성장할 수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에 유세림은 축하해 주긴 했지만, 놈은 마치 알고 있었다는 듯한 태도를 취했다. 물론, 내 성장을 그리 기꺼워하는 것도 아니었고. 왜냐면 성장한 게 요 모양 요 꼴이니까.

‘그래……. 일단 내 능력이 그대로인 건 고마운 일이지. 유세림, 그 개씨발 새끼랑 또 만나야 하는 건 곤욕스러운 일이지만 말이야.’

나는 그렇게 생각하면서 허공에서 빙글빙글 맴돌며 도망치는 사람들을 노리는 와이번 중 하나를 노려본 채 스킬을 외쳤다.

“[뒤집어쓴 가죽]!”

그러자 내가 노린 와이번이 움찔하더니 도망치던 다른 사람을 공격하지 않고 나를 쳐다봤다.

[뒤집어쓴 가죽]은 몬스터로 하여금 나를 동료로 인식하게 만드는 스킬이다.

곧, 와이번의 징그러운 눈알에 서서히 호기심이 일기 시작했다. ‘너 왜 거기에 있어?’ 같은 표정이 슬쩍 비춘다고 해야 하나.

[성공.]

스킬은 당연히 먹혀들었다. 회귀 전에는 던전의 몬스터들에게도 스킬이 통했었다. 그러니 필드의 와이번쯤은 이제 혼자서도 해치울 수 있다는 뜻이다.

나는 차분히 내려앉아 내게 뒤뚱뒤뚱 걸어오는 와이번을 보곤 미소를 지으며 반지를 돌려 끼려고 했으나…….

‘아뿔싸!’

그제야 푹 젖은 파티원복을 신경질적으로 벗으면서, 끼고 있던 액세서리마저도 전부 던져 버린 기억이 났다. 그 액세서리 역시 유세림이 줬던 것이었으니까.

‘……이걸 어쩌지?’

맨손으로 와이번을 어찌해 볼 수 있을 만큼 근력이 좋은 건 아니었기 때문에 고민하던 때였다.

휘리릭― 촤악!

등 뒤에서 이제는 너무도 익숙한 채찍 소리가 희미하게 들려왔다. 나는 뒤를 돌아볼 생각도 하지 못한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쿵.

유세림이라고 생각하자마자 심장이 먼저 뛰었다. 하지만 전처럼 좋아하는 마음에 뛴 것은 아니었다.

차가운 물속에 빠진 날 두고 돌아서던 그 눈빛. 경멸과 무가치한 것을 보던 놈의 표정을 보며 망가졌던 마음이 다시 한번 무너져 내렸다.

[꾸르르르…….]

하지만 지금은 유세림의 등장에 굳어 있을 때가 아니었다. 서서히 스킬의 효과가 가시는지, 와이번이 점점 머리를 흔들기 시작했으니까.

나는 입술을 깨물고, 마음을 굳게 먹은 채 뒤를 돌아봤다. 그러고는 소리를 내서 외쳤다.

“여기에……!”

우두둑―!

[냠냠.]

그런데 다행인지 불행인지 1년 전과 다르게 유세림보다 놈의 파티원인 안화영이 먼저 나타났다.

안화영이 매일 타고 다니는 분홍색 소환수가 귀여운 척을 하면서 와이번을 와그작와그작 씹어먹었다. 그 위에 타고 있는 안화영은 뚱한 표정으로 나를 내려다보고 있었고 말이다.

[꺼어어어어억~~!]

이내, 안화영의 소환수는 비릿한 피비린내가 물씬 풍기는 트림을 했다.

그 역겨운 냄새에 코를 막고 싶었지만, 나는 이 안화영이라는 인간에 대해 잘 알고 있었으므로 그런 행동은 하지 않았다.

안화영.

AA등급 소환사.

특이 사항은…… 제 소환수로 제 말을 대신한다. 무슨 뜻이냐면, 자기가 입을 벌려 말하지 않고 소환수로 자기 의견을 말한다는 뜻이다.

[화영이가 흥미로운 주술사를 발견했다고 하네요오이.]

바로 이렇게 말이다.

방금도 소환수가 말했지만, 저 말은 안화영의 생각인 것이다.

나는 이 이해할 수 없는 기행에 1년간 적응했기 때문에, 말하는 소환수에게 현혹되지 않고 안화영을 똑바로 쳐다볼 수 있었다.

안화영은 눈을 내리깐 채 나를 꼼꼼히 훑어보는 중이었다. 물론, 그는 눈이 마주치자 움찔하더니 마치 안 본 척 고개를 돌렸지만 말이다.

[화영이는 당신의 등급이 궁금하다고 합니다요오이.]

“……C등급이야.”

[화영이는 믿기지 않는다고 하네요오이. 방금 쓴 주술은 상당히 숙달된 숙련도를 가지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요오이!]

“믿고 믿지 않고는 네 자유지.”

나는 그렇게만 말하곤 아예 몸을 돌려 버렸다. 더는 이 파티원 놈들과 얽히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

‘……하.’

그러나 뒤를 돈 순간, 바로 혀를 깨물고 싶어졌다. 어느새 싸늘한 표정을 짓고 있는 표유정과 흥미롭다는 듯 옅은 미소를 띤 유세림이 나를 쳐다보고 있었으니까. 

“…….”

“…….”

“…….”

그 짧은 대치 속에서, 나는 유세림에게 감히 증오조차 표출하지 못했다. 

그랬다간 뼈도 못 추리고 죽고 말 것이다. 유세림은 겉으론 안 그런 척하지만, 저에게 살의를 가진 사람을 살려 둔 적이 없다.

하여 나는 애꿎은 주먹만 꽉 쥔 채 고개를 까딱 숙여 보였다. 그냥 놀라서 말이 없는 척하는 것이 지금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였다.

“세림 님! 감사합니다!”

“고맙습니다! 덕분에 살았어요…….”

“감사합니다!”

“유세림 님…….”

다행히 다른 마을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어 유세림과 내 사이를 가득 채웠다. 나는 그 틈에 빨리 그 자리에서 도망치려고 했으나…….

“잠시만요. 거기, 주술사분은 성함이?”

갑자기 유세림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 게 아닌가. 심장이 두방망이질 치는 듯 거세게 뛰었고, 몸은 얼어붙고 말았다.

“무, 무슨 일로…….”

……놈이 뭔가 눈치를 챘나?

나는 경계하며 놈을 쏘아봤으나, 유세림은 여전히 뜻 모를 미소만 짓고 있을 뿐이었다.

그런데……. 

“솔아! 왜 뜸을 들여. 얘 이름은 한솔입니다. 한성훈 님의 친동생이에요!”

갑자기 튀어나온 김지우가 내 이름은 물론, 형의 이름까지 말하는 게 아닌가.

‘이 녀석, 안 죽었어?’

나는 김지우가 죽지 않은 걸로도 모자라 유세림에게 나불거리며 내 이야기를 하는 것이 마치 운명의 장난처럼 느껴졌다.

김지우 딴에는 나를 도와주고 싶거나 유세림과 한마디라도 나눠 보고 싶어서 그런 것일지 모르겠으나, 내 입장에선 과거가 되풀이되는 듯한 기이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저는 한성훈…… 의 동생, 한솔이라고 합니다.’

‘아아.’

때문에 나도 모르게 주춤, 한 발짝 뒤로 물러섰다. 하지만 전에 내 입으로 형의 이름을 말했을 때 무심했던 모습과는 달리, 이번에 유세림은 크게 다른 태도를 보였다.

“아, 한성훈 님……. 성훈 님이라면 저도 큰 도움을 받았었죠.”

놈은 가증스럽게도 생긋 웃으면서 내게 말을 붙여 왔다.

‘왜 친한 척이지?’

그 비즈니스적인 미소를 본 나는 경계심이 더 심해졌다.

“……아 네.”

떨떠름하게 한마디 내뱉고 나자 ‘감히 유세림에게?’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어 주위가 싸하게 얼어붙었는데, 누군가 옆구리를 푹 찌르기에 돌아보니 김지우였다. 

김지우는 귀조차 밝은 유세림 앞에서 소곤거리며 나를 타박했다.

“야! 좋은 기회잖아. 너, 형 찾아야 한다며. 세림 님한테 한번 부탁해 봐.”

“아니, 그건…….”

맞는 말이지만, 유세림 같은 새끼랑은 이제 같이 파티를 할 수 없다는 게 내 생각이었다.

유세림은 형을 찾아야 한다는 나를 도와주는 척하면서 한 번도 제대로 도와준 적 없었다. 게다가 그렇게 비참히 버림받았는데 다시 놈과 파티를 한다는 것 자체가 말도 안 되는 일이었으니까. 

게다가, 나는…….

‘처음부터 유세림한테 반해서 개처럼 굴었지. 유세림 말 한마디에 일희일비하고……. 씨발.’

그 흑역사를 생각하니 더욱더 유세림과 멀어지고 싶은 마음뿐인 것이다. 

하나 유세림은 이미 김지우의 소곤거림을 다 들었는지, 입가에 띤 미소가 더 진해졌다. 나는 놈이 저런 미소를 지을 때면 제멋대로 하고야 만다는 것을 이젠 안다. 그래서 설마 싶었는데…….

“한성훈 님을 찾고 계시다고요?”

“네.”

“혼자 힘으로는 찾기 힘드실 텐데, 저희와 함께 찾는 건 어떠세요?”

“……네?”

라는, 말도 안 되는 제안을 해 온 것이다.

“세림 님!”

표유정은 이 말도 안 되는 제안에 당혹스러운듯 그를 불렀지만, 유세림은 들은 체도 않고 나만 쳐다봤다.

‘대체 이게 무슨 상황이야? 왜 상황이 전과 다르게 흘러가는 거냐고.’

나는 어안이 벙벙해져서 유세림을 쳐다봤다. 하지만 놈은 진심이라는 듯 손까지 내밀며 말했다.

“저희 파티에 들어오는 건 어떻겠냐는 말입니다.”

“…….”

“우, 우와아…….”

그 말에 김지우는 부럽다는 표정을 숨기지 않고 나와 유세림을 번갈아 쳐다봤다.

속속들이 모인 다른 파티원 놈들도 마찬가지였다. 일부는 흥미, 일부는 인상을 찌푸리며 우리의 대치를 바라보고 있었다.

당연히 나는 유세림의 그 제안을 듣고는 이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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