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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화 (4/104)

3화

나는 유세림의 다감한 말투와 나도 모르는 사이에 찢어진 내 손등에 고정된 그의 눈동자를 보면서 심장이 쿵쿵 뛰는 것을 느꼈다.

무관심하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 걸까? 게다가 그는 부상을 입은 내 손을 잡아끌더니 귀하디귀한 포션을 품에서 꺼내 직접 발라 주기까지 했다.

“포, 포션을 쓸 정도는……!”

“괜찮아요. 이건 핑한테 수시로 발라 주는 거라…….”

[핑!]

“……핑이요?”

“네.”

그러면서 유세림은 제 손을 넘나드는 털 공처럼 생긴 작은 새를 톡톡 건드렸다. 

핑이라 불린 그 새는 눈코입이 제대로 보이지 않았지만, 유세림이 부르면 움찔움찔 떨면서 그의 근처를 부지런히 날아다녔다.

어떻게 봐도 일반적인 새의 모습은 아니었다. 몬스터가 아닐까?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이상하게 심장께가 간지러웠다.

‘나사가 하나 빠진 것 같아…….’

자칫하기만 해도 생과 사가 갈리는 세상. 몬스터들이 즐비하고, 등급 불문 누구나 살아남고자 날 서 있는 이 세상에서 몬스터를 애완조로 키우는 남자.

유세림에게는 강자만이 가질 수 있는 여유, 그 이상의 뭔가가 있었다. 적어도 그때의 나는 그렇게 생각했다. 

그런 여유로움에 매료되었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나는 저절로 벌어지는 입을 막을 새도 없이 그에게 고개를 숙이며 외쳤다.

“유세림 님! 저를 파티원으로 받아 주세요!”

그 탓에 짤랑― 목에 항상 걸고 다니던 펜던트가 턱에 맞고 흔들렸다.

하지만 나는 감히 허리를 펴지 못했다. 다리를 꼬고 앉은 유세림의 무릎 위로 가지런하면서 아름다운 손이 톡톡 무릎을 두드리고 있는 것을 보았기 때문이다.

‘고민하고 있다…….’

나는 그 모습을 보며 작게 희망을 가졌지만…….

“한솔 씨는 등급이 어떻게 되시죠?”

“……C등급입니다.”

“미안해요. 우리 파티는 A등급 이상부터 받고 있어요.”

하지만 유세림은 간단히 거절했다. 아닌 건 아니라는 듯이. 

나는 그 짤막한 거절이, 여태껏 한두 번 당했던 당한 게 아님에도 그때만큼은 너무 괴로워서…….

탁―!

“제발, 부탁이에요. 저는 형을 찾아야 해요. 시키는 건 뭐든지 할 테니까…….”

유세림의 손을 꽉 붙들었다.

그는 내가 손을 잡은 게 꽤 놀란 일이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올려다보았다. 

유세림은 눈시울이 붉어진 내 얼굴을 유심히 보다가 품에서 손수건을 하나 건넸다. 나는 그 손수건을 벌벌 떨면서 받았다. 이어 그는 차마 얼굴에 손수건도 대지 못한 채로 선 나를 가만히 보더니 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사방이 조용해진 걸 느꼈다. 살아남은 사람들뿐 아니라 그의 파티원도 사납게 나를 쳐다보고 있었던 것이다. 특히, 아까의 그 여자는 팔짱을 끼고 미간을 있는 힘껏 찡그린 채였다.

‘나도 알아, 내가 무모하다는 거. 하지만…….’

애완조를 값비싼 포션을 발라 기를 정도로 여유가 넘치는 사람이라면 나도…… 거두어 주지 않을까.

성훈이 형의 단서나마 찾기 위해서라면 뭐든 할 수 있었다. 나는 손수건을 쥔 채 부들부들 떨며 내 뻔뻔한 생각을 합리화하려고 애썼다.

그때, 유세림이 내 목에 걸린 펜던트에 잠시 시선을 주었다.

“그 목걸이는 누구 거죠?”

“……아. 형의 유품이에요.”

“…….”

내 말에 유세림은 고민을 거듭하듯 톡톡, 무릎을 다시 두드리기 시작했다.

“세림 님. 파티는 저희와도 논의를…….”

그사이 아까 어깨빵을 한 여자가 죽일 듯이 달려와 말리려는 듯했으나, 유세림은 고개를 들어 나를 다시 쳐다봤다. 

“성훈 씨한테는 저도 빚이 있죠.”

“……!”

“좋아요. 파티원이 된 걸 환영해요, 한솔 씨.”

그렇게 말하며 유세림은 잠시 내 펜던트에 시선을 주다가, 다시 내 눈을 쳐다보고는 싱그러운 미소를 지었다.

그때, 나는 순간 형을 잊을 정도로.

바보처럼 사랑에 빠졌다.

* * *.

“커억, 컥, 쿨럭……!”

유세림에 대한 기억을 마지막으로 의식이 꺼져 갈 때쯤, 나는 돌연 바닥을 굴렀다. 분명 물속이었는데 말이다.

그리고 부족한 산소를 연거푸 들이마시며 계속해서 물을 토해 냈다. 

“쿠, 쿨럭……! 뭐, 뭐! 뭐야!?”

생생한 죽음과 원망이 채 시들기도 전에 일어난 일이라 온몸이 떨리기만 하고 제대로 된 사고는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다가 문득 내가 손에 절그럭거리는 걸 쥐고 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바로, 형의 펜던트.

[남은 기회는 이제 한 번뿐이니, 신중히…….]

“……이게, 뭐야?”

전에는 이런 글씨가 없었기 때문에 눈이 저절로 부릅떠졌다.

하지만 곧 그 글씨는 언제 새겨져 있었냐는 양 날아가 버렸다. 또, 전에는 온전히 은색이었다면 지금은 반절이 새까맣게 변해 버린 상태였다.

이때, 나는 그게 무슨 뜻인지 몰랐다. 다만 한 가지 확실한 건 내가 겪었던 그 일은 꿈도, 망상도 아니라는 것. 

나는 오들오들 떨리는 몸을 내려다보면서 일단은 여기가 어디인지부터 확인했다.

“미친……. 내 방이잖아?”

유세림의 파티에 들어가기 딱 1년 전, 이 세계에서 내가 쓰던 방 안이었다.

다만, 이상한 점은…….

“……내가 왜 여기에 있지?”

나는 분명히 유세림에게 버림받아서 죽어 가고 있었는데…… 갑자기 1년 전에 쓰던 집 안이라니, 이게 있을 수 있는 일인가?

“…….”

게다가 내 집은 유세림과 파티를 맺자마자 다른 사람한테 헐값에 팔았었다. 그런데 1년 전 내 잡동사니들이 고스란히 남은 방의 모습은 이상하다고밖엔 표현할 길이 없었다.

“에취―!”

문득 이러고 있다간 감기에 걸릴 것만 같아, 나는 쭈뼛거리며 일단은 속옷까지 젖은 옷가지부터 갈아입었다.

그런데 벗은 내 옷가지는 또 어처구니없게도 유세림이 내게 준 파티원 복장이었다.

“씨발…….”

당연히 기분이 더러워 삽시간에 벗어 던졌다. 그걸로도 모자라 젖은 옷을 걷어차고, 수건으로 내 몸을 꼼꼼히 닦았다. 그러고는 본래 내가 자주 입었던 낡은 후드를 옷장에서 찾아 뒤집어썼다.

우선 덜덜 떨리는 몸을 침대에 뉘었다. 당연히 잠을 자려는 건 아니었다. 이게 어찌 된 일인지 파악해야겠다는 본능 때문에 정신이 번뜩였으니까.

‘……텔레포트? 이 펜던트에 그런 기능이 있었나?’

평범한 펜던트인 줄 알았는데, 형이 남긴 유품이 혹시나 ‘아티팩트’인가 싶어 유심히 들여다보았다.

하지만 잠시 떠올랐다 날아가 버린 이상한 그 글씨도 그렇고, 갑자기 이 집에 돌아와 버린 것도 그렇고, 뭔가 텔레포트와는 거리가 있었다.

그보다는…….

“으…….”

그 순간 머리가 깨질 것 같아서 더는 생각을 잇지 못하다가 문득 벽에 붙여 둔 달력에 눈길이 갔다.

“……잠깐. 달력이, 왜…….”

작년도 달력이지?

유세림을 따라 마을을 떠날 때, 나에게 헐값에 집을 산 남자가 그냥 이대로 방치해 둔 걸까? 하지만 그런 것치고도 집의 상태는 너무 멀끔했다. 마치 어제 내가 사용하던 것처럼 말이다.

이 집을 산 남자와 나는 아무런 연고도 없었다. 내 물건들을 굳이 내버려 뒀을 수도 있겠지만,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매일매일 사용한 것처럼 깔끔하게 보관할 수가 있는 건가?

“이상해…….”

의구심은 한두 개가 아닌데 해결되는 건 아무것도 없던 그때였다.

쾅쾅쾅―!

“한솔아! 와이번이야! 마, 마을에 와이번이 나타났어!”

나는 문을 두드리는 익숙한 목소리에 홀린 듯이 문을 열었다.

집 밖엔 C등급의 검사, 김지우가 다급한 얼굴로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딱 1년 전 그 모습 그대로 말이다. 

“……김지우?”

“이렇게 멍하니 있을 시간이 없어! 와이번이 공격해 왔다고!”

그렇게 말하며 김지우는 다급히 내 손을 붙들었다.

하지만 나는 그런 그의 모습을 보면서 소름이 쫙 끼쳤다. 왜냐면 김지우는 1년 전 마을에 와이번이 침공했을 때 목숨을 잃고 말았으니까. 그런 그가, 어떻게…….

하지만 김지우는 내가 얼어붙은 이유를 다르게 생각한 건지 한숨을 푹 내쉬면서 내 손을 붙잡아 끌었다. 그러다 화들짝 놀라며 다시 말했다.

“근데 너, 손이 왜 이렇게 차가…….”

“오늘 며칠이야.”

“뭐?”

“오늘 며칠이냐고!”

나는 김지우의 말을 끊고 고함을 질렀다. 그는 멍한 얼굴로 서 있다가 내게 주춤거리며 말했다.

“7월 7일인데…….”

“뭐? 진짜야?”

“으응…….”

“지금이 20××년도 7월 7일이라고?”

“그래. 근데, 그건 왜 물어?”

나는 혹시나 싶어 작년도 날짜를 물었고, 당황스럽게도 김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제야 [남은 기회는 이제 한 번뿐이니, 신중히…….]라던, 펜던트의 말이 무슨 말인지 깨달았다.

“미친…….”

이 펜던트를 통해, 과거로 돌아온 것이다.

정확히 1년 전, 유세림을 만나기 몇 시간 전으로.

“내 정보 보기.”

나는 우선 지붕이 있는 건물 안에 숨어, 현재 내 상태 창을 불러왔다.

[플레이어: 한솔

레벨: 70

직업: 디버퍼

등급: C

스킬:

―무거운 걸음 (위력 30/30)

―어두워진 눈동자 (위력 30/30)

―뒤집어쓴 가죽 (위력 30/30)]

“이건…….”

지금 상황만 해도 황당한데, 심지어 레벨 및 스킬 숙련도는 회귀 전 그대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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