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화
형은 R등급이라 C등급인 나와는 전혀 다른 길을 걸었다. 해서 내가 형의 발자취를 따라가려면 그만큼의 힘을 가져야 했는데, 그럴 수는 없으니 강한 파티에 들어가는 수밖엔 없었다.
“너무 위험한 길이야.”
“……미안하다. 내 능력으로는 널 보호하면서 성훈이까지 찾으러 다닐 수는 없을 것 같아.”
“성훈이도 네가 위험한 던전에 가는 걸 원치 않았을 거야.”
하지만 역시 C등급은 받아 주지 않았다. 형의 동료였다는 분들조차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으니까.
그렇게 다정한 말로 나를 절망하게 한 그들은 결국 내게 몇 가지 장비와 약간의 여비를 챙겨 준 채 떠나 버렸다.
그때부턴 나도 이 세계에서 살기 위해 안간힘을 써야 했다. 아무리 형의 옛 동료분들이라 해도, 매번 ‘이쪽’에서 통용되는 화폐를 달라고 손을 벌릴 수는 없었으니까.
“수고하셨습니다.”
“예, 수고하셨습니다.”
그래서 나는 이 세계의 몬스터 중 약한 몬스터만 골라잡으면서 생활을 유지해 나갔다. 초기엔 불가능했으나 이젠 몬스터들의 피나 가죽 등을 현대 사회로 가져가 팔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필요로 하는 연구소들이 있다. 그래서 나는 그렇게 번 돈으로 또 필요한 것을 바꿔 다시 돌아오는 생활을 반복했다.
몬스터들에게는 현대 사회의 총이나 화기가 통하지 않기에 먹거리라던가 조립식 집 같은 것들을 구입해, 험준한 산이나 마찬가지인 곳에 자리를 잡았다.
그런 사람들끼리 모인 마을이 있다. C~D등급이 모인 마을. 왜냐면 높은 등급의 사람들은 이런 ‘필드’에 있는 몬스터가 아니라, ‘던전’을 토벌하면서 돈을 버니 말이다.
어쨌든 나는 이 마을에 자리를 잡은 후, 형의 소식을 묻거나 던전에 가는 파티에게 데려가 달라고 제안하고는 했다. 물론 대부분 형의 소식을 몰랐고, 파티는 거절당했지만 말이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끼에에에액!]
“미친…… 와이번이야.”
“우리 등급으로 이걸 잡는 건 무리야. 도, 도망쳐!”
대체 어떻게 된 일인지 끽해야 오크나 독 슬라임 정도가 출몰하던 마을에 와이번 마흔 마리가 나타나 사람들을 죽이기 시작한 것이다.
“사, 살려 줘!”
“아아아아악―!”
와이번에게 붙잡히면 그대로 끝장이었다. 어떻게 벗어난다 한들, 높은 상공에서 추락해 몸이 박살이 나는 건 똑같았으니까.
나는 어설프게 지은 방벽에 숨어 와이번을 노려본 채, 내 스킬을 사용해 보았다.
“[어두워진 눈동자].”
이 스킬은 순간적으로 시력을 잃게 만드는 디버프였다. 내가 노린 건 이제 막 하강해서 뒤돌아 도망치는 다른 사람을 노리던 와이번이었다.
하지만…….
[실패.]
와이번은 마법 저항이 높은 몬스터였다. 내가 건 스킬은 실패해 버렸고, 결국 놈은 도망치는 다른 사람을 붙잡아서 다시금 허공으로 솟구쳤다.
‘이대로 가면 전멸이야…….’
후드득 떨어지는 피를 보면서 절망적인 생각을 했다. 벌써 살아남은 사람은 채 절반이 안 되는데, 죽은 와이번은 단 한 마리도 없었으니까.
바로 그때였다.
휘리릭― 촤악!
갑자기 어디선가 검은 채찍이 날아와 와이번의 목을 꺾었다. 조금 전까지 사람 머리를 쪼아 먹던 끔찍한 몬스터는 허무하게 바닥으로 추락했다.
퍽―!
그러자 다른 와이번들도 사냥을 중단하고 채찍이 날아온 곳을 주시하기 시작했다. 나 역시 마찬가지였다.
그리고 거기엔…….
“……형?”
성훈이 형이…… 무기를 들고 서 있었다. 남자는 형이라고 부른 나를 흘깃 쳐다보곤 다시금 무심히 채찍을 휘둘렀지만 말이다.
그때, 내 옆에서 나와 함께 숨어 있던 한 사람이 눈물을 흘리며 나를 부둥켜안고는 소리를 질렀다.
“사, 살았다!”
“네?”
“유세림이야! R등급이 왔다고!”
“아…….”
……형이, 아니었구나.
틀림없이 형이라고 생각했는데. 머리 색도 비슷하고, 체격도 닮아서, 유세림이라는 낯선 이름을 들었음에도 혼란스러움은 가시지 않았다.
하지만 남자의 말에 이제야 자세히 보니 형과는 느낌이 완전히 다르긴 했다. 형은 좀 더 다정다감한 얼굴인데 유세림은…… 전투 중이라서인지는 몰라도 굉장히 싸늘한 얼굴이었으니까.
게다가.
‘이게 R등급인가…….’
가벼운 손짓 한 번에 와이번을 몇 마리씩 바닥에 처박는 압도적인 무위를 보니 안도감과 함께 엄청난 박탈감이 들었다.
나는 디버프 한 번도 제대로 걸지 못했던 몬스터를 저토록 손쉽게 죽이다니…….
“세림 님!”
“세림 님 감사합니다!”
“유세림 님…….”
“덕분에 살았어요!”
“다치신 곳은 없나요?”
게다가 유세림은 와이번을 순식간에 다 죽이고 나서도 거드름을 피우긴커녕 겸손하게 사람들에게 다가왔다.
그의 파티원도 마찬가지였다. 지나치게 말수가 적긴 했지만, 무시하는 게 아니라 마을의 복구를 돕고 시신을 수습하는 데 큰 도움을 주었다. 심지어 마을 전체에 방어막까지 걸어 주는 수고도 마다하지 않았다.
그래서 당시, 나는 착각해 버린 것이다.
유세림이 친절하고 상냥한 성격일 것이라고.
‘어쩌면 유세림이라면 거절하지 않을지도 몰라…….’
나는 수없이 거절당해 꺼졌던 희망의 불꽃이 다시 타오르는 것을 느끼며, 애완동물로 보이는 새와 손장난하는 그에게 주춤거리며 다가갔다.
[핑―!]
“…….”
또, 가까이 다가갈수록 감탄했다.
어째서 처음 봤을 때 형이라고 착각했는지 나 자신을 이해하지 못할 만큼, 가까이 갈수록 그의 외모는 형과 비교한 게 미안할 정도로 딴판이었기 때문이다.
비슷한 건 체격과 금발 머리인 점 정도? 하지만 같은 금발이라 해도 유세림의 금발은 금실 같은 금발이었다. 형의 개털 같은 금발이 아니라. 그리고 그의 눈은 마치 보석처럼 빛나는 자안이었다.
‘R등급은 외모도 R등급인가…….’
그 모습을 보니 이따위 생각도 하게 되었던 것이다. 물론, 형을 떠올리고는 곧장 고개를 흔들어 지워 버렸지만.
어쨌든, 그래서 나는 나도 모르게 얼굴을 붉히며 내가 생각한 것보다 바보 같은 목소리로 더듬더듬 말을 걸게 되었다.
“저, 저기…….”
“……?”
유세림은 말없이 고개를 들었다.
나는 정면에서 본 그의 수려한 얼굴에 잠시 눈을 마주치지 못했지만, 곧 용기를 내어 다시 그를 바라보며 말했다.
“저는 한성훈…… 의 동생, 한솔이라고 합니다.”
“아아.”
형의 이름을 언급한 이유는 그의 작은 관심이나마 끌어 보기 위해서였다. 보통 형의 이름을 대면 ‘설마, 그 한성훈인가요?’라면서 호기심을 보였으니까.
하지만, 유세림은 달랐다.
유세림은 그저 짧은, 탄식과 비슷한 소리를 내곤 별다른 말 없이 고개를 기울였다. 마치, 그 외에 다른 용무가 있느냐고 묻듯이 말이다.
“…….”
그 태도에 붉어진 내 얼굴은 이제 목까지 새빨개지고 말았다. 이 세상에 발을 내디딘 이후, 지금껏 형의 이름으로 남들에게 호의를 바랐던 일들이 미칠 듯 부끄러워졌기 때문이다.
게다가 하필 그때, 뒤에서 누군가 내 어깨를 툭 밀치고 앞으로 나와선 나와 유세림의 사이에 꼈다.
얼굴에 난 깊은 흉터가 인상적인 푸른색 단발머리의 여자였다. 유세림과 비슷한 옷을 입고 있는 걸로 봐서는 그의 파티원인 것 같았다.
순간 욱했던 나는 그녀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하는 보고에 입을 다물 수밖에 없었다.
“세림 님. 와이번은 전부 처리했습니다. 근처에 다른 와이번 서식지가 있는지도 확인해 봤는데, 다행히 없었고요.”
“고마워요. 중증 부상자는 치료를 부탁해도 될까요?”
“세림 님 부탁이시라면야…….”
그렇게 말한 그녀는 다시 고개를 돌려 나를 위아래로 훑어본 뒤, 자리를 떠났다. 떠날 땐 내 쪽에서 얼른 몸을 비켜서 망정이지 안 그랬으면 아까처럼 다시 어깨를 얻어맞았을 것이다.
‘뭐야, 저 여잔…….’
나는 노골적으로 적대감을 드러내는 그녀의 태도에 불쾌감을 느꼈으나, 손짓 한 번에 집채만 한 와이번의 시체를 길가에 옮겨 놓는 것을 보면서 그녀가 최소 A등급 이상의 각성자라는 사실을 눈치챘다.
“…….”
그래서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여긴…… 누누이 말하지만, 약육강식의 세상이니 말이다.
A등급의 각성자가 기분이 나쁘다는 이유로 C등급인 나를 해친들 이곳에서는 범죄가 되지 않는다. 처벌할 방법도 없고. 그러다 보니 자연스레 등급이 계급화되어 나누어진 것이다.
‘젠장…….’
나는 유세림 앞에서 그녀에게 찍소리도 못하고 움츠러든 모습을 보인 것이 수치스러워서, 그냥 포기하고 본래 내 집이 있는 자리로 돌아가려고 했다.
“한솔 씨는…… 또 다친 곳은 없나요? 아파 보이는데.”
“……네?”
유세림이 이렇게 묻지 않았다면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