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61화 (161/172)

#161.

삶의 대가 4

[각성자 협회가 2차 대격변의 징조라고 발표한 균열이 중국 광저우 상공에서 최초로 발견되었습니다. 상공에 하얀 선처럼 보이는 희미한 선은 비각성자의 육안으로도 보일 정도며, 그 길이가 대략 300m가 넘는 것으로…….]

[지금 보시는 것처럼 저 상공에 희미한 균열이 길게 이어져 있습니다! 특별한 에너지 파동은 없는 것으로 확인되었으나, 중국 정부는 이 이상의 접근은 하지 못하도록…….]

[한 인터넷 방송 BJ가 1인승 드론에 탑승하고 균열에 가까이 다가가 촬영한 영상을 공개했습니다. 균열 틈새를 이렇게 가까이 촬영한 것은 처음이며, 내부는 짙은 보랏빛이 언뜻 보이는 모습…….]

[중국 BJ가 생중계한 영상이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화면을 보시면 균열 틈새로 보이는 공간에 작은 빛들을 조합해 봤을 때, 지구가 포함된 은하계라는 추측이…….]

[전문가들은 인터넷에 나도는 영상을 맹신하거나, 과잉 해석 등 불안을 부추기는 이야기를 경계하고 조심해야 한다며 당부…….]

[수정 안정화 작전 광저우에서 1차 테스트를 진행합니다. 이번 안정화 작업을 위해 최성훈 교수가 이끄는 팀이 광저우로 향하였으며…….]

[2차 대격변 대응을 이끄는 각성자 협회는 현 시점 가장 중요한 것은 과도한 걱정이나 공포에 질리지 않고 일상을 유지하는 것이라며 입 모아 말하고 있습니다.]

삣-

거실을 시끄럽게 울리던 TV가 꺼졌다. 까맣고 반질반질한 화면으로 소파에 등을 기대고 바닥에 앉아 무릎을 안고 있는 임세주의 머리통이 살짝 비쳤다.

“후우…….”

뉴스는 온통 광저우에 나타난 균열로 도배 중이었다. 2차 대격변 조짐을 발표한 이후 평온했던 일상은 상공 균열이 나타나자마자 깨졌고, 광저우 지역 주민은 물론 전 세계가 불안에 떨고 있었다.

그 탓에 최근 임세주는 아예 휴대폰을 꺼 두었다. 대체 제 번호는 어찌 알고 연락하는 것인지, 임세주에게 저들이 사는 지역의 영상을 보내며 ‘그 보이지 않는 기운’이라는 게 심한지 확인해 달라는 요청이 미친 듯이 쏟아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김현아가 새로 마련해 준 휴대폰도 얼마 가지 못해 결국 현재는 평화 길드 각성자들만 사용하는 보안 기기에 의존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마저도 조금 전에 전원을 끄고 말았다.

이유는 위와 비슷했다. 같은 평화 길드 소속의 몇몇 각성자들이 저들 가족이 사는 지역을 확인해 줄 수 없겠냐며 임세주에게 개인적으로 요청하기 시작했던 탓이다. 개인이라고 하나둘 들어주다 보면 끝이 없을 것을 알기에 김현아와 상의 후 결정한 일이었다.

가족이 있는 곳이 안전하다는 확답을 받고 싶어 하는 마음을 모르는 건 아니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더 심란했다.

‘그 무시무시한 게 나오면 어차피 다 때려 부순다고 하는데……. 지금 안전해 보여도 재앙이 나오면 하나도 소용없다고 말할 수도 없고…….’

보인 유지 맹약 때문에 이번 작전에 깊게 관여한 이들은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었다. 특히 지금 진행 중인 수정을 이용한 감정 제어 작전이 만능이 아니라는 것과 ‘재앙’이라 불리는 거대한 괴물이 나타나기만 하면 그 지역을 모두 쑥대밭으로 만들 거라는 내용은 더더욱.

저런 끔찍한 사실을 전부 공개하지 않은 덕분에 혼란하고 불안이 피어오르는 와중에도 사람들이 어떻게든 일상을 근근하게 이어 나가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기에 임세주는 오늘 설치를 마친 유도 대책이 제발 먹히길 바랄 뿐이었다.

재앙에 대해 생각하다 보니 자연스레 마포구 상공 게이트에서 직접 목격한 괴물이 떠올랐다. 눈은 보이지 않았고, 이상한 형태의 콧구멍이 뚫려 있으며, 무시무시한 이빨이 빼곡하게 삐죽삐죽 제멋대로 나 있던 괴물이.

“어우……!”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몸서리쳐졌다. 정말이지 흉측한 몰골이었다. 악마가 세상에 나타난다면 딱 저런 모습이겠거니 싶을 정도로 끔찍한 모습이었다.

‘당분간 두고 봐야 알겠지만……. 하나님. 부처님. 예수님. 흰 양말 님. 제발 이번 방어 작전이 성공하게 해 주세요.’

임세주는 충격적인 재앙의 모습을 애써 기억에서 지우고자 노력하며 자신이 아는 신과 제 후원자까지 들먹이며 방어 작전의 성공을 기도했다. 오늘은 최성훈 교수가 이끄는 대응팀이 몇 달간 작업한 수정 중 ‘부정’을 담은 수정을 처음 설치하는 날이었다.

2차 대격변 대응 발표 후 몇 달간 최성훈 교수는 여러 정신계 에스퍼를 모아 팀을 만들고 그들을 체계적으로 교육해 왔다. 그리고 김현아 에스퍼가 입찰한 대전 던전에서 나온 대량의 수정에 사람의 공포를 심는 데 성공했다.

수정에 공포를 심는 건 간단했다. 먼저 끔찍한 일을 겪어 트라우마로 힘들어하는 사람을 공개적으로 모집했다. 대격변 이후 현 사회에 그런 일을 겪지 않은 사람은 거의 없다 보니, 지원자는 차고 넘쳤다.

공포와 고통 추출은 그날의 기억을 지우는 게 아니라 그들이 가진 기억 속에서 개인이 감당하기에 무리가 있다고 판단되는 과도한 두려움을 추출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다.

정신계 스킬을 사용하고 기억을 추출하는 것이기에 관련하여 온갖 서류와 복잡한 동의서가 필요했지만, 긴 시간 본인들을 괴롭혀 왔던 트라우마를 지우고팠던 이들의 자원이 넘쳐 예정했던 시간보다 훨씬 빠르게 작업이 끝났다고 했다.

또한 처음 계획한 대로 불안과 공포에 잠식된 사람을 안정시킬 수 있도록 안정화 스킬을 건 수정 역시 개량에 성공했다. 성공을 확인한 뒤 곧바로 안정화 수정은 사람이 많은 지역에 설치하고 공포를 담은 수정은 재앙이 나타났을 때 인명 피해가 없을 지역에 설치했다.

‘솔직히 불안하긴 해도……, 표면적으론 좋은 결과도 있어.’

이번 작전을 위해 전 세계 정신계 에스퍼들이 자원했으며, 공개된 수만 8천 명에 다다랐다. 지금껏 자신이 정신계 에스퍼라는 것을 밝히지 않고 함께하는 이들이 우리 곁에 이렇게나 많았다는 사실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신체 능력은 일반인과 다를 게 없는 이들. 하지만 각자 정신계 능력이 있다는 이유만으로 온갖 불이익과 차별을 당했던 이들이 2차 대격변 방어 작전을 통해 세상에 모습을 드러내자, 이번엔 이들을 돕기 위해 나선 이들이 있었다.

바로 가이드로 각성했음에도 가이딩 착취나 각성자와 발생할 수 있는 불미스러운 일, 마찰 등을 두려워해 각성 사실을 숨긴 채 지내던 가이드들이었다. 그들은 모두 누군가의 이웃이거나 직장 동료거나 평소 다니는 길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평범한 사람들이었다.

임세주는 이렇게 많은 이들의 용기와 노력, 그리고 화합으로 이뤄진 긍정적인 에너지가 부정으로 차게 질린 지구를 따스하게 덮어 줄 거라고 믿었다. 내일도 부디 오늘과 같은 일상을 이어 나갈 수 있길 바라며 모두가 각자 자리에서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 노력하는 건 분명 긍정적인 일이었으니.

‘그러니까…… 나도 제대로 확인해야 해.’

모처럼 조금 여유가 생긴 저녁 시간. 최근 몇 달 동안 2차 대격변 방어 작전으로 쉴 틈이 없었음에도 임세주는 쉬지 않았다. 이미 누구보다 열심히 일하고 있었지만, 이번엔 2차 대격변 관련이 아닌, 개인적으로 시작한 분석을 다시금 체크하기 시작했다.

작년 늦봄. 정하진과 김현아, 한지수와 함께 회의를 위해 만났을 때 임세주는 한지수의 몸을 감싼 기운에 놀랐었다. 모자이크처럼 픽셀화로 보이는 형상이 너무도 기괴하여 당황했지만, 본인들이 괜찮다니 그동안은 크게 신경 쓰지 않았었다.

그날 이후 한지수는 김지수 신분으로 정하진과 한국과 호주에 번갈아 머물다가 현재는 바티칸에 방문한 상태였다. 해외 파파라치들이 집요하게 따라붙은 탓에 입국 당시 두 사람의 모습이 노출되었는데, 조슈아 에스퍼와 만난 후엔 행적을 찾을 수 없었다.

어차피 정하진과 있으면 세상 그 어디보다 안전할 테니 임세주는 딱히 그의 안전은 걱정하지 않았다. 다만 최근 영상에서 확인한 한지수의 기운이 전과 조금은 달라진 점이 보였기에 조금 더 자세히 알아보려고 노력 중이었다.

‘그땐 너무 놀라서 발견하지 못했던 것 같지만…….’

한지수의 몸을 두른 픽셀 같은 기운. 모자이크처럼 지직거리고 깨져 보이는 기운 사이로 어떤 빛이 보였다. 그가 두른 기운이 워낙 심각하게 일그러진 채 제멋대로 불규칙하게 움직이고 있어 파악이 쉽지 않았지만, 임세주는 깨짐 사이로 비치는 빛을 집요하게 보고 또 봤다.

빛의 정체를 파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제 가정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였다. 애당초 임세주는 오류 틈새로 보였던 빛의 존재를 인식한 첫날, 이미 그 기운을 알아봤다. 그 빛은 그녀가 몰라볼 수 없는 빛이었다. 오랜 시간 한지수의 곁에 늘 함께 있었던 이가 둘렀던 청량한 빛이었으므로.

그렇기에 마음으로 답을 내린 상태였지만, 이 내용을 김현아에게 보고하기 전에 조금 더 확실하게 해 두고 싶었다. 한지수가 이 보고를 듣고 상처받길 원하지 않았고, 김현아 역시 혼란해하지 않았으면 했으니까.

‘내 이론을 뒷받침할 근거가 필요해.’

여러 가설을 정리한 임세주는 최근 잘하지도 못하는 검색에 열을 올리고 있었다.

처음 검색한 내용은 대격변 이후 세상이 안정화되었을 때 대격변을 설명하며 가족을 잃은 이들의 인터뷰였다. 그리고 생존자 중 가장 자기 이야기를 활발하게 하는, 이른바 관심을 즐기는 이들의 SNS를 염탐했다.

대격변 당시 부모님이 자신을 위해 희생하셨기에 이 자리에 살아 있을 수 있었다는 한 남성, 남편이 아이와 자기를 위해 대신 괴물과 맞서 싸운 덕분에 도망쳤다는 여성, 제 형제자매의 희생으로 살아남은 이들 등 임세주가 눈여겨보며 참고 대상으로 삼은 이들의 공통점은 하나였다.

바로 누군가의 고귀한 희생으로 삶을 이어받은 사람들이었다. 그들이 두른 기운의 변화를 찾기 위해 과거 영상과 현재 영상 등을 두루두루 조사했으나 쉽지 않았다. 제가 세운 가설이 맞다면, 이들 중 진실을 말하는 이들은 없는 거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면 내 가설이 틀렸을 수도 있고.’

결국 임세주는 오늘도 수면 시간을 줄이기로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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