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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43화 (143/172)

#143.

푸른 별 2

지수는 토토의 양 겨드랑이를 잡고 제 무릎 위에 눕혔다. 배를 드러내고 발라당 누운 토토는 집사와 시선을 계속 맞추지 못하고 초조한 듯이 주둥이를 달싹였다.

“토토야. 아빠 봐 봐.”

“……찌.”

전혀 다른 목소리로 어색하게 대답한 토토가 큰 눈을 동그랗게 뜨더니 노골적으로 시선을 피했다. 소중한 반려 몬스터의 어딘지 어색한 상태를 살피던 지수는 문득 안식의 신이 했던 말이 떠올리곤 놀라 토토를 확 들어 올렸다.

‘잠깐……. 토토가 드디어 말할 수 있게 된 건가?’

다른 별로 이주하면 토토와 대화도 할 수 있을 거라는 말을 들었고, 무슨 시대인지 명확하겐 몰라도 유럽 귀족풍으로 추정되는 방에서 깨어났으니 합당한 의심이었다.

토토와 대화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다른 건 신경 쓰이지 않았다. 지수는 이 토실토실하고 소중한 햄스터와 당장이라도 여태 하지 못했던 모든 얘기를 풀어 놓고 싶어 눈을 빛냈다.

“토토야! 이제 말할 수 있어!?”

갑자기 지수의 코앞까지 들어 올려진 토토는 놀라 입을 쩍 벌렸다가, 이내 눈을 질끈 감곤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꾹 말아쥔 작은 주먹과 앙다문 입술이 유독 앙증맞게 보였다. 토토의 코에 쪽쪽 뽀뽀한 지수가 정수리를 북북 쓰다듬으며 말했다.

“우와, 토토야! 뭐라도 말해 봐. 아빠는 토토랑 너무너무 말하고 싶어. 응? 토토야. 아빠 해 봐. 응? 아빠~!”

“……혀…….”

토토의 입에서 어린아이의 작은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지수는 빨리 아빠라고 말해 보라고 재촉하는 대신 눈빛으로 애원하기 시작했다. 그 간절함이 전해진 걸까. 눈을 흘끔 뜬 토토가 조심스레 집사의 눈치를 살피더니, 이내 결심한 듯이 작은 주둥이를 움직였다.

“……형아아…….”

어?

“…….”

토토의 목소리를 처음 들은 지수의 눈이 커졌다. 자신을 ‘형아’라고 부른 목소리가 너무도 익숙했다. 아니, 익숙한 정도가 아니라 지수가 확실히 아는 목소리였다.

“토토야, 방금…….”

얼마나 놀란 건지, 말을 제대로 잇지 못한 지수가 떨리는 눈동자로 토토를 응시했다. 반려 몬스터를 잡은 손이 파르르 떨렸다. 모든 사고가 멈춘 것처럼 생각이 제대로 흐르지 않았다. 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조심스레 입을 열었다.

“다, 다시, 다시…… 불러 봐, 토토야.”

내가 지금 조금 놀라서 그런 거라고, 괜찮으니까 다시 한번 불러 달라고 애원하자, 머뭇거리던 토토가 용기 낸 듯 다시 입을 열었다.

“형아아……, 나야.”

“아…….”

지수의 기억 속 목소리보다 조금 더 톤이 높고 어린아이 같아지긴 했어도, 분명하게 아는 목소리였다. 애초에 저 사랑스러운 목소리로 자길 ‘형아’라고 부를 사람은 세상에 단 하나였다. 지수는 저도 모르게 침을 크게 삼킨 후,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억지로 움직였다.

“지, 지율…… 지율이야?”

설마설마하며 동생의 이름을 불러 보자, 지수의 눈치를 살핀 토토가 앞발을 꼼지락거리며 고개를 끄덕였다.

“우웅…….”

“……!!”

맙소사.

작지만 확실하게 자신의 의문에 답해 주는 토토의 주억거림을 본 지수가 입을 쩍 벌렸다. 토토는, 아니. 한지율은 그런 형을 향해 조심스레 말했다.

“미안해애……, 형이 알면…… 안 된다구 해서…… 어떤 아저씨랑 미리 약속해서 말 못 했어…….”

“…….”

맙소사.

“그래서…… 비밀루 한 대신에…… 나중에 여기에 오면 형이랑 말해두 괜찮다구 해서어…….”

맙소사.

“형, 화났어……?”

“아니, 아니.”

“진짜?”

맙소사.

“당연……, 당연하지, 지율아, 형이 왜 화가 나겠어. 전혀, 절대, 하나도 화 안 났어……. 형이……. 형이 지금…….”

충격에 얼떨떨한 와중에도 화가 났냐는 말만큼은 즉시 부정한 지수가 조심스럽게 작은 햄스터를 품에 안았다. 턱 아래쯤에서 훌쩍이는 소리가 들렸다. 가슴과 손바닥 사이에 꼭 낀 통통한 몸이 들썩였다.

“아아……. 세상에, 지율아…….”

지수는 동생 한지율을 늘 그리워했던 것과 별개로 다시 만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는 한 적이 없었다. 그렇기에 이 사실이 믿기지 않았고, 너무 기쁘고, 가슴이 벅찼다. 순식간에 터질 것처럼 부푼 감정 탓에 눈물이 핑 돌았다. 아픈 것도 아닌데 “아……, 아아…….” 앓는 소리가 절로 새어 나갔다.

훌쩍훌쩍. 눈치를 보며 작게 흐느끼는 소리에 지수는 형은 절대 화나지 않았다고 확실하게 말해 주고 싶었다. 하지만 목이 꽉 메어 와 말이 나오지 않았다. 천천히 햄스터를 들어 올린 지수는 동생의 정수리에 꾸욱 입술 도장을 찍어 주었다.

“흑……, 형아아…….”

“흐흑, 흐윽, 지율아, 형이…… 형이 지율이 진짜 많이 보고 싶었어…….”

“우우웅……, 진짜아?”

훌쩍이며 묻는 목소리에 지수는 고개를 연신 격렬하게 끄덕이며 말했다.

“당연하지, 형이…… 형이 우리 지율이 얼마나 보고 싶었는지 몰라, 매일매일 지율이 생각 많이 했어, 지율이가 형 옆에 계속 있었는데 못 알아봐서 미안해. 우리 지율이 꽉 안아 주고 싶은데, 이렇게 작아서…….”

어떻게든 이 햄스터를 꽉 안아 주고 싶었다. 하지만 그러기엔 한지율의 모습이 너무도 한 줌이었다. 지수가 더 말을 잇지 못하는 모습을 본 작은 햄스터가 고개를 저었다. 그러더니 곧 형의 손에서 폴짝 뛰어내려 앞발로 눈물을 쓱쓱 닦았다.

“형아, 훌쩍……, 나, 나, 있지, 여기선 변신도 할 수 있어!”

“변신?”

수도꼭지라도 틀어 둔 것처럼 뚝뚝 흐르는 눈물을 방치한 채 의아한 얼굴로 바라보자, 한지율이 지수의 종아리 부근으로 이동하더니 앞발을 쭉 펼쳤다.

“이렇게!”

퐁-!

비현실적인 귀여운 소리와 함께 뿌연 연기가 터져 나왔다.

“헉! 지율아?! 지율아!!”

기겁한 지수가 동생을 부르며 연기 속으로 망설임 없이 팔을 넣었다. 그러자 손에 말랑말랑하고 작은 무언가가 잡혔다.

“형아, 괜찮아! 나 여깃써!”

“헉?!”

손에 잡힌 말랑이를 그대로 확 끌어당긴 지수는 그 말랑이가 동생이라는 걸 알고 입을 쩍 벌렸다. 휘둥그레지다 못해 거의 안구가 튀어나올 수준으로 커진 눈을 껌벅이고만 있자, 그 모습을 본 한지율은 형의 놀란 얼굴이 재미있는지 눈물을 그렁그렁 단 채로도 키득키득 웃었다.

“허억, 지율아, 이……, 이…… 어, 이 모습은 대체…….”

지수의 허벅지 위엔 마치 만화나 게임에나 나올 것 같은 3등신 정도 되는 꼬마 한지율이 앉아 있었다. 동글동글한 머리와 오동통하고 작고 짧은 몸, 그리고 머리 위에 솟아 있는 작은 햄스터 귀까지……, 모든 것이 앙증맞고 너무너무 사랑스러웠다.

“허…… 허어……. 헐, 아니 지율아…….”

지수는 너무 당황한 탓에 뭐라 말을 못 하고 헉 소리만 냈다. 어휘력을 상실한 형의 반응을 본 한지율이 수줍은 듯이 얼굴을 붉히며 헤실헤실 웃는다.

“나 도와준 아저씨가, 내 몸은 이미 죽어서, 그때 사라져서 이게 최선이랬어.”

“……!!”

아니, 애한테 무슨 말을!

“그리구 내 기억을 다 모으지 못했다구 했어, 나머진 다 우주? 어디로 나가 버렸대. 그래서 모은 거로 쪼물쪼물 만들어서 이렇다구 했어.”

“…….”

지수는 제 상태를 설명하면서 자꾸 눈치 살피는 한지율을 깨닫곤 눈물을 쓱쓱 닦아 내며 씩 웃어 보였다. 동생이 불안해하는 게 느껴졌다. 혹시나 제 몸이 이런 모습이라 형이 실망할까 싶어 계속 걱정하는 기색이 역력했다. 지수는 양팔을 벌린 채 너무도 그리웠던 동생을 향해 환하게 미소하며 말했다.

“그랬구나, 우리 지율이 너무 귀여워. 진짜 귀여워. 그래도 다행이다. 이러면 형이랑 끌어안고 잘 수 있잖아. 지율이가 형 꽉~ 안아 줘.”

“……!! 으응!!”

한지율이 지수의 허벅지를 딛고 일어섰다. 그런데도 앉은 지수보다 키가 작았다. 그래도 상관없었다. 지수는 제 품에 파고든 동생의 작은 몸을 꽈아아악 부둥켜안았다. 단풍잎보다 작은 손이 지수의 옷을 꽉 움켜쥐고 헤헤 웃는다.

“……하……, 지율아…….”

“으응, 형아.”

이토록 소중한 존재가 쭉 곁에 있었는데도 몰랐다니. 지수는 내가 어떻게 너를 몰랐을까 중얼거리며 울음을 참았다. 멈추지 않고 흘러내리는 눈물은 막을 수 없었지만, 이렇게 기쁜데 엉엉 소리를 내며 울고 싶진 않았다.

제가 울면 동생이 그만큼 불안해할 거라는 걸 잘 알기에, 자그마한 동생을 품에 안고 몇 번이고, 몇 번이고 앞으론 다신 떨어지지 말자고 속삭일 뿐이었다.

* * *

“훌쩍…….”

“훌쩍, 훌쩍…….”

“훌쩍……, 히힛.”

“아하하, 지율이 눈이 붕어가 됐네.”

“형두 붕어눈이야.”

눈이 팅팅 부은 두 형제가 서로 얼굴을 확인하곤 웃음을 터뜨렸다. 얼마나 운 건지, 울다 지친 맘이 간신히 가라앉아 정신을 차려 보니 둘은 부둥켜안고 침대에 드러누운 채였다. 지수는 여기가 어딘지 아직도 확인하지 못했지만, 그 궁금증은 동생 한지율이 대신 해결해 주었다.

“으음, 그래서, 그 아저씨가 나를 이렇게 다시 만들어, 음……. 만들었다고 해야 할지 모르겠는데, 어쨌든! 지금 이 모습으로 만들어 주셨어.”

“음…….”

지수는 아까부터 지율이가 말하는 ‘아저씨’의 정체가 아무래도 안식의 신인 듯싶어 고민하는 눈으로 생각에 잠겼다.

‘하긴, 지율이가 볼 땐 아저씨……겠지.’

사실 지수의 기억 속 안식의 신은 제 또래로 보였지만, 그에게서 풍기는 분위기라고 해야 할지, 말로 표현하기 어려운 어떤 기운이 그의 나이를 훨씬 들어 보이게 했다.

새하얀 순백의 공간에서 만났던 그의 모습이 직접 만들어 낸 인형이라고 해서 그런 걸지도 몰랐다. 겉으로 보기엔 젊은 청년처럼 보여도 속엔 수백 살, 어쩌면 수천 살 먹은 노인이 들어앉아 있는 느낌을 받았으니까.

지수는 동생과 정체 모를 침실에 누워 편안하게 대화를 나눴다. 이곳을 파악할 시간에 차라리 제 동생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고, 동생 목소리라도 한 번 더 듣겠다는 심산이었다. 그런 형의 마음을 알아주었는지 한지율은 작은 입술로 조잘조잘 열심히 떠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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