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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142화 (142/172)

#142.

푸른 별 1

하늘을 날았다.

누가?

…….

나는 하늘을 날았다.

……나는 누구지?

나는 별이 만든 길을 걸었다.

아니.

걷지 않았다.

나는 존재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는 반짝이는 길을 따라가고 있었다.

나는 바람이 되었다.

바람이 맞나?

형태 없는 흐름이 되었으니 바람이 맞지 않을까?

그런데 나는 누굴까?

나는 내가 누군지 알지만, 동시에 몰랐다.

나는 누구지?

나는 나를 잊어버린 건가?

나는…….

안녕, 나의 작은 별.

깜짝이야.

누구세요?

내가 보이세요?

난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있었단다. 물론 지금도 그렇고.

난 내가 보이지 않아요.

괜찮아. 자연스러운 현상이니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길을 따라가렴.

밤하늘에 수놓인 아름다운 별의 길이 나를 이끌었다.

걱정은 되지 않았다.

난 괜찮았다.

내가 누군지 모르는 것만 제외하면.

곧 네가 누군지 알게 될 거란다.

어떻게 나를 보고 계신 거죠?

나조차 내가 안 보이는데?

나는 괜찮은 게 맞나요?

후후후.

기분 좋은 웃음이 내 귓가를 스쳤다.

아니, 난 귀가 없었다.

이걸 어떻게 아는지 모르겠지만, 난 존재하지 않았다.

왜 당연히 소리가 귀를 스쳤다고 느낀 걸까?

심지어 저건 목소리가 아니었다.

애초에 소리가 아니었다.

네가 옳단다. 네가 살아온 시간이 자연스레 익숙한 방식으로 반응하고, 형태 없는 나를 듣고 느꼈을 뿐이지.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일단 알겠어요.

나는 왜 사라진 건가요?

나는 어디로 가나요?

그리고…… 누구신데 나를 이렇게 사랑해 주시는 건가요?

오늘도 질문이 많구나. 넌 언제나 호기심이 많은 아이였지.

너무도 충만한 사랑이 느껴졌다.

우주에 존재하는 모든 언어로도 표현할 수 없는 거대한 포용력이, 무한한 사랑이 나를 감싸고 소중히 보듬어 주고 있었다.

대체 어떤 존재가 이토록 강렬한 애정을 퍼부을 수 있는 걸까?

궁금했다.

그리고 그의 말대로 나는 호기심이 많은 것 같았다.

나를 잘 아세요?

그럼. 난 나의 아이들을 모두 잘 알고 있단다.

내가 당신의 아이예요?

맞아. 사랑하는 나의 아이. 난 너와 이렇게 대화할 찰나의 순간을 아주 오랫동안 기다려 왔단다.

다정한 그리움이 형태 없는 나를 감싼다.

그제야 나는 알 수 있었다.

내 곁에 수많은 내가 있었다.

나는 나와 함께 우주를 누볐다.

별을 따라 길고 긴 여행을 했다.

그런데 내가 왜 여행을 떠나게 된 거지?

이 길을 따라가면 어디로 가게 되는 건가요?

네가 있어야 할 장소로.

음…… 그건 너무 진부한 말 같아요.

조금만 구체적으로 말해 주시면 안 되나요?

후후후.

정말이지…… 하는 존재하지 않는 소리가 들린 것도 같았다.

나는 한없이 퍼부어 주는 애정을 고스란히 품은 채 우주를 유영했다.

저 멀리까지 이어진 별의 길은 끝이 보이지 않았다.

은하수를 따라 여행하며 우리는 많은 별을 스쳤다.

아름다웠다.

너도 이 아름다운 별 중 하나란다.

내가 아름답나요?

그럼. 넌 아름다워.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이 그렇듯이. 하지만 이 또한 네겐 진부한 말처럼 들리겠지?

……음.

조금요.

그런데 그 말이 맞는 것 같아요.

또 작게 웃는 소리가 존재하지 않는 내 귓가를 스친다.

진부한 말로 들리지만, 그의 말이 맞았다.

나는 그 진부한 사실을 별이 되고 나서야 이해했다.

삶은 아름답다.

진부하고, 진부하고, 너무도 진부한 진리이자 누구나 쉬이 입에 올릴 수 있는 진실이었다.

그렇기에 사실임에도 불구하고 신뢰를 얻을 수 없었던 걸까?

삶을 가진 이들은 그것이 당연할 테지.

그렇기에 그토록 아름다운 줄 모르고 있다가 제 손에서 빠져나갈 때에서야 후회하는 거겠지.

무엇이 그리 아쉽니?

이 사실을 지금 알게 된 게 아쉬워요.

아무래도 나는 이미 삶을 잃은 것 같아요.

그렇죠?

그러니 내가 누군지도 모르고……, 보이지도 않는 거겠죠?

나는 앞으로 이렇게 형태 없이 우주를 떠돌아야 하는 건가요?

네 상상력은 언제나 나를 즐겁게 만드는구나.

……상상?

이대로 잠시 침묵하고 조금 더 놀려 주고 싶은 마음도 있지만, 내 소중한 아이가 겁먹을 테니 그러면 안 되겠지?

으음…….

네.

놀리지는 말아 주세요.

후후후. 그래. 아쉽지만 내 아이와 짧은 유영은 여기까지겠구나.

왜요?

어디 가요?

잠깐, 나만 두고 가지 마요.

싫어요.

당신과 헤어지기 싫어요.

나만 두고 가지 마요.

오, 나의 작은 별. 난 늘 네 곁에 있단다.

계속 곁에 있다고 했지만, 난 당신을 몰랐어요.

지금까지 당신을 못 보고, 듣지도 못하고, 느낄 수도 없었어요.

지금 헤어지면 또 그렇게 될 것 같아요.

나의 작은 별이 나를 느끼지 못한다 해도, 내가 언제나 너를 지켜보고, 네 곁에 있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단다. 네가 태어난 순간부터 지금까지 쭉 그랬던 것처럼.

찰나의 순간, 그 말이 사실이라고 증명하듯 나는 나를 떠올리게 됐다.

나는 태어났다.

나는 누군가에게 안기기도 했고, 나는 누군가에게 내쳐지기도 했다.

나는 성장했다.

나는 울고, 웃고, 화내고, 사랑하고, 아파하고, 괴로워하고, 절망하고, 비탄에 빠졌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았다.

나를 위해 춤추는 반짝임의 물결이 시야를 가득 채웠을 때, 온전히 사랑받고 있음을 느꼈다.

나는 많은 이들에게 미움받았다.

나를 향한 손가락질과 험한 말이 쏟아졌을 때, 나는 세상에서 사라지고 싶다고 간절히 바랐다.

나는 사랑을 알았다.

나는 끝없는 좌절을 알았다.

나는 나를 미워했다.

그와 동시에 나는 나를 사랑했다.

미워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사랑했는데도 그만큼 아껴 주진 못했다.

나는 내가 누군지 이해하기 시작했다.

곁에서 다정한 웃음이 맴돈다.

나도 형태 없이 미소하며 은하수를 유영한다.

나를 사랑해 주는 은하수와 함께 영원히 우주를 누비고 싶다.

하지만 나는 이제 안다.

앞으로 걸어 나가야 할 길을.

곧 도달해야 하는 품을.

아…….

그걸 깨달은 순간, 모든 게 흐려지기 시작했다.

…….

아니, 보통 깨달으면 선명해져야 하는 거 아니냐고.

그 불만을 읽은 건지 다정한 웃음이 나를 감싸며 속삭인다.

저기란다. 쭉 길을 따라가렴.

밝게 빛나는 푸른 달을 지나쳐,

내 안내는 여기까지란다.

은은하게 빛나는 붉은 달이 굽어보는 푸른 별을 향해 나아간다.

기억하렴. 나는 항상 너를 지켜보고 있단다. 나의 사랑스러운 작은 별.

……그래요.

꼭 다시 만나요.

그리고 언젠가 내가 정말 별이 되면, 영원한 안식의 축복을 받게 된다면, 그땐 나도 당신 곁을 맴도는 별이 되고 싶어요.

당신이 만든 기나긴 여행길을 비추는 별 중 가장 밝은 별이.

나는 존재하지 않는 아름다운 미소를 향해 마주 웃었다.

* * *

“으음…….”

작게 뒤척인 지수가 햇살을 피해 베개에 얼굴을 묻었다. 몸이 조금 뻐근한 걸 보니 아주 긴 잠을 잔 것 같았다. 대체 얼마나 잔 건지 가늠할 수 없어 핸드폰을 찾아 손을 더듬었다. 침대 여기저기를 짚어도 익숙한 기기가 손에 닿지 않았다.

“어으……. 토토야, 아빠 폰 좀 찾아 줘…….”

강렬한 햇살에 맞서는 대신 베개에 고개를 파묻고 굴복하기를 택한 지수가 쩍쩍 갈라지는 목소리로 웅얼거렸다. 그런데 뭔가 이상했다. 침실이 너무 고요했다. 평소 같으면 “쮜이잇!” 하며 간단한 미션을 신나게 완수했을 토토의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토토 자니?”

오만상을 쓴 채 베개에서 고개를 들어 올린 지수는 마치 물속에서 눈을 뜬 것처럼 잔뜩 뭉개진 시야에 미간을 찌푸렸다. 눈을 몇 번 깜빡여도 여전히 시야가 뿌옜다.

답답함에 눈을 벅벅 비비자 다행히 시력이 어느 정도 회복됐다. 그래도 여전히 선명하진 않은 시야 탓에 눈을 가늘게 뜨고 토토와 핸드폰을 찾으려는데, 뭔가 이상했다. 방이 지나치게 넓었다.

높은 천장, 넓은 방, 그리고 전체가 창문인 듯한 한쪽에서는 새하얀 빛이 쏟아져 들어오고 있었다. 방을 채운 큼지막한 가구는 모두 현대풍이라기보단 빅토리아 시대를 다룬 영화에서나 볼 법한 화려한 가구들이었다.

“헉…….”

흐릿한 시야로 봤음에도 여기가 여태 지냈던 제 방이 아니라는 것쯤은 알 수 있었다. 방이 대체 얼마나 넓은 건지, 방 안에 저 멀리 거실로 보이는 공간도 있었다.

놀란 지수가 상체를 일으키자 협탁으로 추정되는 가구 위에서 무언가 움찔거렸다. 척 봐도 익숙한 형태의 푸짐한 털 뭉치였다. 지수는 아무리 시야가 흐려도 절대 몰라볼 수 없는 실루엣을 향해 손을 뻗었다.

“벌써 온 건가……. 며칠 더 걸릴 줄 알았는데……. 토토야. 괜찮아?”

“…….”

“토토야? 어디 아파? 왜 대답이 없어, 응?”

지수는 여기가 어디인지는 둘째 치고 반응 없는 반려 몬스터를 먼저 살폈다. 걱정스레 살피며 털 뭉치를 보듬자 토토가 슬그머니 제게 고개를 돌리는 게 보였다. 토토답지 않게 조금 겁먹은 것 같은 얼굴이었다.

“토토야, 괜찮아. 아빠가 같이 있잖아. 일단 여기가 어딘지 먼저 파악하자.”

대답 없는 토토를 달래며 인벤토리에서 방어 아이템과 공격 아이템을 꺼내려던 지수는 일순 멈칫했다.

“어? 뭐야…….”

인벤토리가 열리지 않았다.

“……상태 창?”

푸르스름한 창 역시 뜨지 않았다.

“헐? 이러면 안 되는데?”

“…….”

토토는 여전히 찍 소리도 내지 않았다. 지수는 토토를 손바닥에 올려놓고 보듬으며 물었다.

“토토야.”

푸짐한 햄스터가 집사의 시선을 피한다.

“한토토~.”

“…….”

정겹게 불러 봐도 여전히 시선을 피한 채였는데, 아직 완벽하게 회복된 시력이 아닌데도 토토의 동공이 떨리는 것처럼 보였다.

“토토야? 어디 아파? 응?”

“……찌, 찌이…….”

“?”

지수는 일순 멈칫하며 토토를 바라봤다. 뭔가……, 뭔가 이상했다. 평소 쮝쮝대는 소리가 아니라, 마치 사람이 어설프게 흉내 내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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