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6.
조우 3
“흐…… 끄르륵…….”
피가래 끓는 마지막 숨을 끝으로 숲이 고요해졌다. 더는 살려 달라는 애원도, 고통에 가득 찬 신음도 없었다.
그 고요해진 현장을 지켜보던 정하진은 남자의 얼굴을 확인했다. 여전히 코끝까지 올린 패딩 깃과 뒤집어쓴 모자 때문에 보이는 거라곤 눈밖에 없었지만, 지독하리만큼 담담하고 태연한 눈빛을 띠고 있었다.
사람을 여덟 명이나 죽여 놓고 어쩜 저리 평온할 수 있을까? 동종업계 베테랑 선배들을 제외하고 이런 잔인한 일을 눈 하나 깜짝하지 않고 해내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정하진도 처음 보는 유형의 사람이었다.
‘아니, 그보다 훨씬 더 지독한 사람이다.’
애초에 사람이긴 한 걸까?
정하진이 몸담고 있던 직업을 주제 삼아 만든 영화나 소설 등에선 주인공이 사람을 죽였을 때 냉정할 수 있고, 침착할 수 있는 걸 멋지게 표현하곤 했다. 하지만 실제론 그렇지 않았다. 겉으로나마 침착해 보일지언정 그들 역시 사람이었다.
사람이 사람을 죽이는 행위를 아무렇지 않게 느끼는 건 결코 냉철하고 멋진 게 아니었다. 인간 실격의 기준이 바로 거기에 있었다. 그리고 눈앞의 저 남자는 그 실격의 기준치보다 훨씬 못 미치는, 인간도 아닌 남자였다.
“으으……. 벌써 죽으면 안 되는데, 이거 진짜 어렵네.”
“…….”
“차라리 개미를 마사지해 주는 게 더 쉽겠어. 익숙해지려면 꽤 걸리겠는데.”
“…….”
남자가 혼잣말을 중얼거리며 정하진의 몸을 구속했던 힘을 소멸시켰다. 커다란 손아귀에 붙잡힌 듯한 압박감이 증발하고, 자유를 찾은 정하진은 남자를 향해 차분하고도 조심스레 물었다.
“이 힘은…… 뭡니까?”
그 물음에 남자의 시선이 정하진에게로 향했다. 언뜻 보면 참 다정해 보이는 눈빛이었다. 눈꼬리가 살짝 처져서 그런 걸지도 모르지만, 선량함이 느껴지는 눈매였다. 그런 눈을 하고 저 남자는 이런 짓을 서슴없이 저질렀다.
여기저기 터져 나간 사람이었던 흔적을 보며 정하진은 토기를 애써 참았다. 아무리 제가 극한의 상황에 익숙하고, 폭탄 테러 등 여러 상황을 겪었다고 하여도 이건 달랐다. 사람이 사람을 가지고 놀 듯이 이 지경으로 만드는 건 전혀 다른 문제였다.
정하진의 생각에 담긴 경멸이 얼굴에도 드러난 것인지, 남자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더니 어깨를 으쓱인다. 그리곤 나긋나긋하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차분하게 변명을 읊었다.
“그렇게 보지 마요. 난 나쁜 사람이 아니니까. 아니, 뭐……. 상황이 이러니 선입견이 생기는 건 어쩔 수 없지만. 그리고 이 힘은…… 저도 모르겠네요. 얼마 전에 갑자기 생겨서. 같이 있는 어떤 학생 말로는 제가 ‘각성’한 것 같다고 하더라고요.”
“각성…….”
“예. 뭐 자기가 읽던 소설에 그런 내용이 있었다나. 평범하게 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각성해서 헌터가 되는 그런 내용이래요. 그게 뭐냐고 물었는데, 거기선 저처럼 초능력을 쓰는 영웅을 헌터라고 부른다더군요.”
정하진은 제 동생 역시 이런 책을 많이 읽는다는 걸 알았다. 동생이 책 이야기를 하면 들어 주고 맞장구치는 정도로 끝나 자세히는 몰라도, 저 말을 듣고 나니 조금은 이해가 쉬웠다. 눈앞의 남자가 평범한 사람이었는데 갑자기 힘이 생겼다는 거라면, 최근 몇몇 그룹을 마주쳤을 때 들었던 소문이 진짜일 확률이 있었다.
“당신 말고…… 또 이런 힘을 가진 사람이 있습니까?”
그 물음에 남자가 고개를 살짝 기울이며 생각에 잠긴 듯이 눈동자를 위로 향했다. 몇 초간 생각을 정리한 남자가 작게 고개를 끄덕였다.
“뭐, 네. 범상치 않은 인간을 세 명 정도 봤죠. 셋 다 최근이었고.”
“그들도 당신처럼 이런 힘을 씁니까?”
“아뇨. 다들 조금 달랐어요. 한 명은 특이하게 사람의 생각을 읽는 것 같더라고요. 독심술처럼. 그 인간 때문에 고생을 좀 하긴 했는데, 지금은 괜찮고.”
“…….”
괜찮다는 말은 그를 처리했다는 걸까? 의아함이 채 가시기도 전, 남자가 말을 이었다.
“다른 하나는 무슨 힘인지 확실하진 않지만, 그 사람이 흙에 손을 대니까 콘크리트처럼 단단해지는 걸 봤어요. 그리고 나머지 하나는 전기 수준은 아니고 정전기 같은 걸 손으로 만들던데……, 좀 자세히 물어볼 걸 그랬네요. 저 셋 다 죽었거든요.”
믿기 힘든 일이지만, 적어도 눈에 보이지 않는 힘을 본 이상 그가 하는 말이 거짓말 같진 않았다. 머리로 납득할 수 없어도 제 몸이 경험하지 않았는가. 빠르게 생각을 정리하고 나니, 한편으론 이 남자가 제게 이런 말을 구구절절 떠드는 이유를 몰라 내심 불안해졌다. 설마 모든 정보를 알려 주고 저도 처리하려는 걸까?
“뭐야. 왜 또 그렇게 쳐다봅니까? 저쪽이 먼저 쳐들어와서 어쩔 수 없었어요. 정당방어였다고요. 하여간에, 내가 아는 건 이 정도. 오히려 묻고 싶은데요. 당신은 아무 힘도 없어요?”
“……없습니다.”
제게도 그런 힘이 있었다면 너한테 묶여서 얌전히 있었겠냐고 말하고 싶었지만, 꾹 참았다. 남자는 진짜 없다고? 중얼거리며 가까이 다가와 정하진과 눈을 맞췄다.
“이상하네……. 난 당신도 뭔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거든요. 이게 말로 표현은 좀 어려운데, 저 세 사람 때도 딱 보고 알았어요. 평범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은 그…… 뭐라 해야 하지? 기운? 분위기? 하여간 딱 보면 말로 설명 못 할 기운이 있어서.”
“……제 기운이 다르다는 겁니까?”
“네. 그래서 난 당신도 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여기까지 자발적으로 따라온 것도 솔직히 내 뒤를 치려고 그러나 했는데, 반응 보니 그건 아닌 것 같고……. 저것들을 편히 보내 주자는 소리나 하고. 신기하네.”
“…….”
“어쨌든. 난 이제 가 봐야 해요. 우리 그룹은 노약자가 많아서 힘쓸 만한 사람이 별로 없다 보니, 내가 오래 자릴 비우면 위험하거든. 그래도 헤어지기 전에 오해는 풉시다. 다시 말하지만, 난 좋은 사람이에요.”
“…….”
정하진의 시선이 그의 뒤로 향했다. 제 뒤에 뭐가 있는지 잘 아는 남자가 그 반응을 보자마자 푸흐흐 웃음을 터뜨리며 고개를 저었다.
“내가 그리 오래 산 건 아닌데, 내 인생 통으로 걸고 보증해요. 저런 놈들 살려 둬 봤자 도움이 안 돼요. 그리고 나 같은 힘을 가진 사람도 조절을 잘해야 남한테 피해를…….”
말이 끝나기도 전, 남자가 황급히 입을 다물더니 뒤를 돌아봤다. 정하진 역시 그가 바라보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여전히 불빛 하나 없이 컴컴한 숲밖에 보이지 않았다. 주변은 몹시 고요했지만, 남자는 뭔가 들은 게 분명한 듯이 보였다.
“……아, 안 돼.”
계속해서 한 지점을 응시하던 남자가 흠칫 몸을 굳히더니, 정하진에겐 시선도 주지 않고 땅을 박차며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여기까지 가져온 약 가방도 전부 내버린 채 황급히 떠난 남자의 뒷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정하진은 생각할 겨를 없이 그를 따라 달렸다.
언뜻 본 그의 눈빛이 너무나도 다급해 보였다. 앞뒤 안 가리고 저리 달려갈 만한 장소라면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가 있을 것이 분명해 보였기에, 정하진도 길게 생각할 것 없이 땅을 박찼다.
‘빠르군.’
빠른 정도가 아니었다. 남자는 이미 보이지 않았다. 당연한 소리지만, 인간 같지 않은 움직임이었다. 긴 시간 동안 끊임없이 단련해 온 정하진의 육체로도 그를 따라잡는 게 불가능했다. 그나마 다행인 점은 목적지가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거였다.
남자가 달려간 방향으로 5분 정도 달려 산을 오르다 보니, 정하진의 예상대로 산림청 직원들이 지내던 건물이 나왔다. 그러나 건물 현관문은 부서진 채 너덜거렸고, 주변에 몬스터 시체가 널려 있었다.
거미처럼 생긴 거대한 몬스터는 배를 까고 뒤집힌 채 다리를 달달 떨며 “크르륵…… 끄르륵…….” 소리를 내고 있었다. 몬스터를 어떻게 한 건지 모르겠으나, 원래라면 둥글었을 것 같은 배가 종잇장 구긴 것처럼 쭈글쭈글하게 찌그러져 있었다.
정하진은 만약을 대비해 야구 방망이로 거미 몬스터의 머리를 내리쳤다. 주변에 널린 다른 몬스터들을 보니 마찬가지로 대충 구겨 주무른 것처럼 여기저기 모양새가 영 이상했다.
너덜거리는 문짝으로 조심스레 다가가자 누군가 흐느끼는 소리가 들렸다. 얼핏 들어도 어린아이가 분명한 울음이었다. 지체할 것 없이 바로 실내로 들어서자, 초토화된 내부가 보였다.
부서진 집기들, 무너진 벽과 널브러져 신음하는 사람들, 그리고 구석에 처박혀 있는 거대한 도마뱀처럼 생긴 몬스터 시체……. 그야말로 아수라장이었다.
정하진은 급히 우는 아이부터 살폈다. 다행히 아이는 괜찮았지만, 아이를 감쌌던 것으로 추정되는 남자는 하반신이 보이지 않았다. 정하진은 우선 아이를 남자의 품에서 꺼내 확인했다. 피가 묻긴 했어도 아이가 흘린 피는 아닌 것 같았다. 그는 삼촌이라 불린 상체만 남은 남자의 상태를 아이가 보지 못하게 손에 잡히는 걸 끌어다 급히 덮었다. 숨을 거둔 사람들, 생존한 사람들 전부 남자가 말했던 대로 노약자가 대부분인 그룹이었다.
“지수야, 정신 차려! 지수야!”
다급한 외침에 고개를 돌리자, 남자가 보였다. 그는 반쯤 기울어진 선반 아래 무릎 꿇고 앉아 누군가를 안고 어찌할 바를 몰라 하고 있었다. 그의 품에 안긴 다른 남자는 의식이 없었는데, 가까이 다가가 보니 복부에 크게 할퀴어진 상처가 보였다. 하지만 의식을 잃은 이유는 다른 데 있어 보였다.
“잠깐! 잠시 그대로, 천천히. 천천히 내려 두세요. 머리를 심하게 다친 것 같습니다.”
남자가 혹시나 그를 흔들까 싶어 급히 끼어든 정하진이 조심스레 다가가 옆에 무릎을 굽히고 앉았다. 어두컴컴한 상황에서도 심각하게 다친 게 보였다. 그나마 다행인 건 고통에 신음할지언정 자가호흡을 고르게 하고 있다는 것 정도였다.
“…….”
남자의 상태를 파악한 정하진이 주변을 다시 둘러봤다. 크게 다친 이들은 이미 식어 가기 시작했고, 그나마 부상의 정도가 덜한 사람들은 자기보다 어린아이나 노인을 먼저 챙기기 시작했다.
생존자 중 가장 부상이 심한 사람은 초능력 남자가 안고 있는 남자였다. 정하진은 고민할 것 없이 남자의 어깨를 부드럽게 잡아 쥐며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저희 그룹에 의사가 있습니다.”
“……!!”
“최대한 흔들리지 않도록, 그리고 신속히 이동해야 합니다. 가능하겠습니까?”
어두컴컴한 와중에도 남자의 눈동자가 흔들리는 게 보이는 것 같았다. 당장 대답하지 않는 모습에 혹시 그건 불가능하냐고 물으려는 찰나, 남자가 눈을 질끈 감더니 고개를 격하게 끄덕였다.
그가 고개를 주억거릴 때마다 눈에서 눈물이 후두둑 후두둑 떨어져 내린다. 그걸 본 순간, 정하진은 인정하기 싫지만, 인정해야 했다. 이 남자가 자기 입으로 말했던 것처럼, 그 또한 여전히 사람이라는 것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