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4.
좋은 꿈 6
한때 지수도 꿈 수정을 써 본 적이 있었다.
오늘 사용한 것처럼 불순물 없이 정말 ‘좋은 꿈’만 꾸게 해 주는 순기능의 수정이 아니었던 게 문제였지만, 당시엔 그런 아이템이 있다는 사실에 혹해 너도나도 남용하던 시기였다.
꿈 수정으로 그리운 이들을 만나게 된 사람들은 대부분 다시 수정을 찾았고, 꿈에서 깨기 싫어 그대로 꿈속에 머무르길 택했다. 그렇게 수많은 이들이 행복한 꿈을 꾸며 아사했다. 아이템의 위험성 때문에 각성자 협회에선 꿈 수정 유통을 엄격하게 관리했다.
지수는 저 역시 강재윤에게 저급 꿈 수정을 전부 빼앗겼던 일을 떠올렸다. 다시는 사용하지 않겠다고 맹세하라고, 드물게 화내던 일을 떠올리자니 입이 썼다.
‘이건 후원자가 준 거니까 괜찮겠지. 시간제한도 있고.’
안식의 신이 준 달콤한 꿈 수정 아이템의 설명을 보면 현실 시간으로 10시간 동안 수면에 빠진다고 쓰여 있었으니, 그 시간제한이 끝난다면 깰 것이 분명했다.
꿈과 현실의 시간이 똑같이 흐르진 않겠지만, 지수는 최대한 이 꿈을 만끽하고 싶었다. 그래서 제 맞은편에 앉은 소년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고 있었다.
디저트로 유명한 카페에 앉은 지수의 맞은편엔 케이크를 먹으며 행복해하는 동생 한지율이 있었다. 지수는 오래전 실제 겪었던 이날을 선명히 기억했다.
마침 지수가 저녁 스케줄만 있던 날 점심시간쯤이었다.
한지율은 이날 아침부터 미열이 나고 머리가 아프다는 핑계로 맏형 한지원에게 학교를 쉬고 싶다고 했었다. 그렇게 휴일을 얻어 낸 뒤엔 지원이 출근하자마자 둘째 형인 한지수에게 연락해 케이크가 먹고 싶다고 졸랐다.
갑작스러운 동생의 병결 소식을 접하자마자 양해를 구하고 귀가한 지수는 멀쩡한 동생을 보고 조금 울컥했었지만, 그래도 진짜 열이 아닌 ‘핫팩 사기극’이었다는 것을 알고 안도했다. 그래서 어린 동생을 혼내는 대신, 하루의 일탈을 함께 했었다.
지금 꾸는 꿈은 그날 방문했던 카페 배경과 동생을 착실하게 재연 중이었다. 덕분에 지수는 햄스터처럼 볼 빵빵하게 케이크와 온갖 디저트를 입에 넣고 오물거리는 동생을 하염없이 지켜볼 수 있었다.
그 시선이 너무 과했던 걸까. 케이크와 마카롱에 집중하던 한지율이 드디어 형에게 시선을 주며 말했다.
“형아는 왜 케이크 안 먹어?”
“형은 팬케이크 나오면 먹으려고.”
“……!! 나도! 팬케이크 한 입만!”
“지율이가 다 먹어도 돼.”
“우와~!”
지수는 입에 케이크를 잔뜩 넣고 씩 웃는 동생이 그저 귀여웠다. 당시 초등학교 2학년인 동생은 또래와 비교하면 덩치는 작은 편이었지만, 굉장히 똑똑해서 형과 자신의 자랑이었다.
‘아니, 사실 우리 형제 중에 머리가 나쁜 건 나 하나뿐이지만, 형도 영재 소리 듣고 자랐고. 그러고 보니 나만 친부 닮았나?’
지수는 생각이 다른 쪽으로 빠지기 전에 정신 차리고, 케이크 위의 큼지막한 딸기를 포크로 콕 찍었다. 그리곤 제 행동에 동공이 흔들리는 동생을 잠시 감상한 후, 쿡쿡 웃으며 내밀었다.
“아~ 해.”
“……!!”
입 안의 케이크를 삼켜 낸 지율이 냉큼 포크의 딸기를 받아먹었다. 작은 입에 넣기엔 꽤 큰 딸기였지만, 어떻게든 욱여넣고 맛있다며 웃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기분이 좋았다.
세상 다 가진 얼굴로 온갖 종류의 케이크를 먹던 지율이 입가의 크림을 손가락으로 쓱 닦았다. 그대로 빨아 먹을 줄 알았는데 물티슈에 쓱쓱 닦고 다시 케이크를 퍼먹는 모습이 제법 점잖아 보여서 오히려 더 귀여웠다.
‘집이었다면 분명 핥아 먹었을 텐데.’
잘 먹는 동생이 복스럽고 사랑스러워서, 뭐라도 더 먹여 주고 싶어 옆에 가로로 꽂아 둔 메뉴판을 다시 집어 들려는 순간, 지율이 도리질하며 말했다.
“형아. 팬케이크까지만 먹고, 다른 데 가자.”
“어디 가고 싶은데?”
“다 먹고 말할게!”
“그래. 천천히 먹어.”
말로는 다른 곳에 가고 싶다고 했지만, 지율 본인도 아직 딱히 정해진 게 없는 것처럼 보였다. 천천히 생각해 보라고 말하는 와중에 마지막으로 주문한 팬케이크가 나왔다.
둘째 형이랑 함께하는 일탈이 꽤 즐거운지, 웃음꽃이 만개한 동생의 얼굴은 진심으로 행복해 보였다. 누가 봐도 신나 보이는 동생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수는 일부러 평소보다 훨씬 다정한 미소를 지으며 많이 먹으라고 말했다.
지수는 이 순간이 진심으로 행복했다.
시종일관 입가에 미소가 지워지지 않을 정도로 행복했다.
동생과 함께 디저트로 유명한 카페에서 함께 보내는 평일 낮의 시간이 너무나도 행복해서, 눈물이 날 것만 같았다.
지수는 맞은편에 앉은 동생이 저와 눈이 마주치자 배시시 웃는 모습을 보며 테이블 밑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
정말 사랑스러웠다.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만큼.
만약 눈에 넣어서 아프다면, 어떻게든 참을 수 있을 정도로.
세상 그 무엇보다 소중했다. 그렇기에 좋은 것만 먹이고, 좋은 것만 입히고, 좋은 것만 해 주고 싶었다.
뭐든 좋은 것만 안겨 주고 싶었다.
제 착한 동생은 사랑받으며 행복하게 살아 마땅한 존재였으니까.
“…….”
분명 행복한 꿈인데, 가슴이 아팠다. 저급 꿈 수정과 다른 부분을 인지한 지수는 자조하며 고개를 숙였다. 저급 꿈 수정을 썼을 땐 그저 행복한 감정만 가득했다. 현실과 구분이 어려운 꿈. 이렇게 가슴 아픈 감정 따위 느끼지 못하고, 오직 기쁨만이 충만한 꿈. 그렇기에 깨고 싶지 않은 꿈.
하지만 지금 이 꿈은 달랐다. 사랑하는 만큼 아픔도 공존했다. 꿈이라는 걸 한시라도 잊을 수 없을 만큼 말이다. 그 차이를 알고 나니 목이 메었다. 꿈의 주인의 감정이 요동치는 걸 느낀 걸까. 앞에 어린 소년이 고개를 갸웃하며 조심스럽게 묻는다.
“형아, 왜 그래? 혹시 머리 아파? 졸려?”
“……아니, 그냥. 지율이랑 이렇게 둘이 있으니까 너무 좋아서.”
울 것 같았다. 울면 동생이 걱정할 텐데. 그 생각으로 어떻게든 눈물을 삼켜 낸 지수가 제 무릎을 두드리며 말했다.
“지율아. 이리 와.”
“응~.”
바로 자리에서 일어난 한지율이 지수의 무릎 위로 올라와 앉았다. 지수는 제 동생의 허리를 감싸 안고 케이크와 마카롱을 앞으로 당겨 주었다. 그리곤 무릎에 앉은 동생을 향해 물었다.
“지율아. 케이크 다 먹고 형이랑 어디 가고 싶어?”
“나~ 전에에~ 재윤이 형아랑 갔던 강아지 산책하는 곳 가고 싶어.”
“유기견 보호소 말이지? 알았어. 같이 강아지 산책 봉사 활동 하러 가자.”
“그으래~!”
지수는 해맑은 얼굴로 힘차게 대답하는 동생을 품에 끌어안았다. 얼마나 있었을까. 방금까지도 품 안을 데워 주던 생생한 감촉이 점점 흐려지기 시작했다. 벌써 현실 시간으로 10시간이 지난 걸까.
곧 깨야 할 순간이 다가오는 걸 느낄 수 있었다. 헤어짐이 아쉬워 목소리에 물기가 묻으려는 걸 애써 참아 낸 지수가 평소보다 훨씬 상냥한 음성으로 동생을 불렀다.
“……지율아.”
“응?”
“형이 지율이한테 많이 미안해…….”
“뭐가 미안해?”
“오늘은…… 형이 더 못 놀아 줄 것 같아. 정말 지율이랑 더 있고 싶은데…… 이제 돌아가야 해.”
“어, 진짜……? 으응, 어쩔 수 없지. 근데, 형! 괜찮아! 다음에 또 놀면 되니까!”
천진하게 바로 다음을 약속하는 동생의 말에 지수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러자고 대답했다.
“응. 맞아. 다음에 또 놀자, 지율아. 형이 지율이 많이 많이 사랑해.”
“으응, 나도. 히힛~!”
쑥스러운 마음이 그대로 드러나는 반응이었다. 지수는 제 동생이 낯간지러움에 몸을 배배 꼴 때까지 몇 번이고 사랑한다고, 그리고 미안하다고 속삭여 주었다.
더 못 놀아 줘서 미안해.
형은 그럭저럭 잘 버티고 있어.
형도 지율이가 잘 있을 거라 믿을게.
그러니까 형 걱정은 하지 말고, 지율이는 거기서 지원이 형이랑 친구들하고 놀고 있어.
우리 나중에 꼭 또 만나서 매일매일 같이 놀자.
그리고 형이 지율이 만나러 가는 날, 지율이가 꼭 형 마중 나와야 해. 알았지?
사랑해.
형이 우리 지율이 정말 사랑해.
아주 많이 사랑해.
몇 번이고 인사를 건네고, 사랑을 속삭이던 지수는 무언가 제 볼을 찰싹찰싹 때리는 것을 느꼈다.
부스스 눈을 뜨자 시야가 밝으면서 뿌옜다. 곁엔 정하진으로 추정되는 인영도 보였다. 아직 잠이 덜 깨 더도 말고 딱 5분만 더 자고 싶다고 생각하며 뒤척인 순간,
“쮜잇!”
찰싹찰싹-
장난스럽게 볼을 때리는 토토의 찰진 손길이 느껴졌다.
“으윽…….”
“쮜에엣!”
찰싹찰싹-
“아이고, 토토야……. 요즘 들어 아빠를 너무 격하게 깨우는 것 같지 않니……?”
“쮜히힛~!”
토토가 웃는 소리에 지수 역시 작게 웃으며 눈을 비볐다. 그대로 몇 번 깜빡이자 침대맡에 앉은 정하진이 제대로 보였다.
“정하진 에스퍼. 잘 잤어요?”
“예. 한지수 가이드가 꿈 수정을 선물해 준 덕분에 잘 잤습니다.”
“오……. 매번 다 거절하더니, 이건 받아 줬네요?”
수정을 준 부분은 기억나지 않아 의외라는 듯이 눈을 크게 뜨자, 정하진이 어깨를 으쓱였다.
“안 받으면 두고두고 기억하고 섭섭해할 거라고 해서.”
“……!! 저 어제 또 진상 부렸어요?”
“아뇨. 그냥 꼭 받아 달라고 했습니다. 아, 곧 병원 예약 시간입니다. 식사 준비할 테니 씻고 나오시죠.”
“네에……. 토토야, 아빠 씻을게.”
“쮜!”
힘차게 대답한 토토가 정하진에게 다가갔다. 그는 이제 뭔지 말하지 않아도 잘 안다는 듯이, 토토를 직접 제 정수리에 올린 정하진이 주며 방을 나섰다.
둘이 주방으로 가자마자 토토의 훈수가 시작됐다. 아직 냉장고도 열지 않았는데 대체 뭘 저리 훈수 둔단 말인가.
문틈으로 저 둘을 물끄러미 바라보던 지수는 문득 오래전 일이 떠올랐다. 친형이 요리할 때면 옆에서 늘 뭐라도 하고 싶어 알짱대던 동생 지율이의 모습이 눈에 선했다.
“……씻자.”
꿈에서 선명한 동생을 만난 게 도움이 된 건지, 마치 어제 만난 것 같은 기분에 그렇게 크게 슬프진 않았다. 덕분에 지수는 가족을 그리워하며 슬퍼하는 대신, 저녁 출국을 기대하며 그럭저럭 괜찮은 하루를 시작할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