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73화 (73/172)

#073.

안 돼. 돌아가. 2

경기 남양주 제2 대피소.

대피소 내부는 어두운 실내에서도 눈에 잘 띄는 노란색 텐트가 잔뜩 설치되어 있었다. 조금 아까까지만 해도 우왕좌왕하던 민간인들이 각자 배정받은 텐트 안에서 얌전히 쉬는 모습을 확인한 진보라 에스퍼는 제 워치로 현 상황을 보고했다.

부상자도 없고, 자잘한 말썽을 일으킨 사람도 없고, 모두 안전하게 대피 완료했다는 내용을 보고하고 나니 알 수 없는 찝찝함이 밀려왔다. 이런 대규모 대피는 항상 사건 사고를 달고 오기 마련인데, 오늘은 너무 순조로워서 오히려 불안했다.

‘뭐, 아무 일도 없으면 좋은 거지만…….’

괜한 불안감을 떨친 진보라는 주변 소리에 집중했다. 각자 텐트 안에서 조곤조곤 대화하는 소리나 온갖 기기로 실시간 방송을 보는 소리가 섞여 들렸다. 그때 바로 앞 텐트에 엎드려 있는 중년 남자가 태블릿으로 보고 있던 실시간 중계 화면이 마침 눈에 들어왔다.

평화 길드 본관에서부터 시작해 한강까지 이동한 토네이도가 대격변도 견뎌 낸 양화대교를 1/3가량 부수고 나서야 소멸했다는 소식과 함께 처참한 영상이 나왔다. 토네이도의 위력이 워낙 강해 당연히 여의도까지 피해를 볼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빠른 소멸이었다는 앵커의 멘트가 들렸다.

-아~ 이렇게 피해가 크면 복구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송유리 에스퍼. 어떻게 보십니까? 저 정도 피해 규모면 복구할 수 있을까요?

앵커의 질문에 각성자 협회 소속이자 건축물 담당 재건 전문 에스퍼인 송유리가 담담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자세한 건 현장 나가 봐야 알겠지만, 영상으로 보이는 피해 규모로 봐선 건물 잔해가 거의 남아 있지 않은 것으로 보입니다. 이 경우엔 복구보단 다시 지어야 할 확률이 높을 것 같습니다.

-그럼 저런 경우는 어떤가요, 송유리 에스퍼?

진보라는 화면에 나오는 상층부만 부서진 건물을 보고 눈을 가늘게 떴다. 그리곤 저도 모르게 입 밖으로 나오려는 욕설을 겨우 짓씹어 삼켰다. 화면엔 강재윤이 사는 건물로 유명한 고층 빌딩이 나오고 있었다.

중상층부터 시작해 최상층인 강재윤의 집까지 건물 상단부가 심각하게 부서진 상태였지만 건물의 형태는 유지되고 있었다. 방송사도 강재윤의 집이라는 걸 분명 알고 촬영한 것 같았다. 그렇지 않고서야 훨씬 심각하게 훼손된 건물이 많은데도 굳이 피해가 상대적으로 덜한 건물을 보여 줄 리가 없을 테니까.

뉴스에 출연 중인 송유리 에스퍼 역시 저 건물이 어떤 건물인지 잘 아는 듯이 확답 드리긴 어려울 것 같다, 현장에 가 봐야 알 것 같다며 자세한 언급을 피했다. 별안간 속이 답답해진 진보라는 뉴스에서 시선을 떼고 대피소 밖으로 나갔다.

마침 바깥을 지키고 있던 각성자 협회 직원들이 진보라를 발견하고 인사해 왔다. 진보라 역시 그들에게 알은척을 한 후 사람이 없는 건물 뒤편으로 이동했다. 습관처럼 주머니에서 담배를 찾던 진보라는 얼마 전 제 가이드와 약속한 금연을 떠올리고 한숨을 쉬었다.

‘한지수 가이드 괜찮으려나…….’

반쯤 날아간 강재윤의 집을 보고 나니 반사적으로 한지수가 떠올랐다.

태종대 던전 게이트가 그대로 소멸한 후, 진보라는 한지수의 연락에 바로 답할 수가 없었다. 꽤 긴 시간 각성자 협회에 묶여 수사받았기 때문이었다. 물론 이는 진보라뿐만이 아니었다. 당시 공략에 참석한 인원 중 바로 인터뷰 가능한 인원은 전부 불려 갔다.

그래 봤자 인터뷰에서 건질 건 없었다. 모두가 똑같은 것을 보고 똑같은 일을 겪었으니까. 그럼에도 조사는 여러 차례 진행됐다. 형식적인 절차라곤 하지만, 각자 기억하는 게 진실인지 아닌지 판별하기 위해 정신계 에스퍼까지 동원된 인터뷰를 몇 차례나 진행해 상당히 불쾌했었다.

당연하게도 공략팀원 중엔 거짓말하는 이가 없었다. 그럴 이유도 없었고 말이다. 애초에 던전에 진입하자마자 지형을 스캔했고 이후 몬스터 등급을 스캔할 때만 해도 이상할 건 없었다. 폐쇄형 던전도 아니어서 모두 별다른 걱정을 하지 않았다. 게다가 강재윤이 있었으니까 더더욱 그러했다.

A급 물리계 에스퍼인 진보라에게도 S급 에스퍼 강재윤은 걱정을 한시름 덜게 해 주는 정도가 아니라 굳은 믿음을 주는 리더였다. 강재윤이 있으니 우린 이 던전에서 무사히 살아 나갈 수 있다는 그런 신뢰를 주는 존재.

대격변 이후 5년이란 시간이 지났음에도 아직 인류는 던전이 왜 생기는지조차 파악하지 못했다. 때문에 균열에 대해선 그저 게이트화 되고 던전이 되면 들어가 처리하는, 흔히 말하는 ‘몸빵’으로 버텨 왔다.

그간 그런 이유로 미지의 변수가 많은 던전에서 죽어 나간 동료가 얼마나 많았는가. 지금이야 각성자 실종이나 사망 사건이 대폭 줄었지만, 그렇다고 사건 사고가 없는 건 아니었다. 그래서 던전에 진입할 땐 늘 긴장해야 했다.

하지만 공략팀에 김현아나 강재윤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졌다. 일단 압도적으로 강한 것도 있지만, 두 사람은 모든 상황에 임기응변이 뛰어났고, 어떤 위기가 닥쳐도 냉철하게 파악하여 침착하게 행동할 줄 알았다. 그랬던 강재윤이 그날만큼은 어딘가 이상했다.

후원자와 대화하는 건지 허공을 응시하던 그의 표정이 점점 험악하게 구겨지더니, 큰 충격이라도 받은 듯이 그 자리에서 굳은 채 한참을 움직이지 못했다. 그리곤 무언가 고민하는 듯이 연신 머리를 쓸어 넘기며 땅만 노려봤었다.

강재윤은 겉으로는 늘 사람 좋은 얼굴로 실실 웃는 표정을 유지하는 사람이었다. 아이돌로 지냈던 습관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제 공략팀원들을 포함해 타인에게 언제나 친절하게 대하려 노력했다.

심지어 머리끝까지 화나 있는 순간에도 그랬다. 입으론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독설을 뱉을지언정 얼굴은 늘 웃는 낯을 유지하는 남자였다. 그런데 그날 강재윤은 평소 여유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어딘가 초조해 보이기도 했지만, 그는 자세한 이야기를 하지 않았다. 그리고 자신이 확인할 것이 있으니, 나가서 김현아와 정하진이나 다른 즉시 투입 가능한 S급 지원을 요청하라고 했었다.

이후 갑자기 던전 내부 등급이 폭주했고, S급 몬스터가 다수 나타났다. 입구에 나타난 S급 몬스터를 겨우 정리했을 때 공략팀은 꽤나 처참한 몰골이 된 상태였지만, 침착하게 응급조치하고 강재윤의 명령에 따라 던전을 나섰다. 이게 모두가 기억하는 그날의 일이었다.

강재윤은 리더고, 던전에서 리더의 명령은 절대적이었다. 게다가 그는 게이트석을 가장 많이 가진 각성자였다. 강재윤을 걱정할 시간에 명령대로 퇴각하는 게 옳은 상황이었다. 그래서 명령대로 던전에서 나왔다. 이후 모두가 보는 앞에서 던전이 비명을 지르는 괴현상을 보이더니 이내 소멸했다.

“후우…….”

강재윤은 게이트석이 그렇게 많았음에도 불구하고 나오지 못했다. 당시엔 그저 사고라고 생각했다. 이해할 수 없는 불운이 겹친 끔찍한 사고라고.

그랬던 진보라가 이상한 기시감을 느끼게 된 건 최근 들어 시작된 악몽 때문이었다. 악몽 속에선 당시 기억에 없는 강재윤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였다. 모두에게 던전을 빠져나가라고 명령하기 전에 허공을 보고 화내는 강재윤의 모습이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뭔가 이상했다. 강재윤이 이상한 게 아니라, 제 기억이 애매하게 뒤죽박죽이었다. 자신은 분명 던전에 들어가 장비로 지형과 몬스터를 스캔한 후 이상 현상이 발생했을 때 바로 전투를 시작했을 텐데……, 악몽 속의 자신은 전혀 다른 모습을 보이고 있었다.

손에 들고 있던 스캐너에서 지형과 몬스터 등급에 이상이 나타남을 알리는 경고 알림이 미친 듯이 울려 대고 있었지만, 진보라 본인은 꼼짝도 하지 못하고 있었다. 여기서 당장 나가라고 외치는 강재윤의 목소리가 간헐적으로 고막을 울렸지만, 몸이 움직이지 않았다.

그리고 제 후원자인 ‘황금 고리의 신’이 직접 쉴드 스킬을 사용해 진보라에게 날아드는 공격을 막으며 보호해 주는 장면도 보였다. 후원자의 강력한 방어막이 얼마 버티지 못하고 깨져 버렸을 때, 진보라는 자신이 움직이지 못한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자신은 두려워하고 있었다. 꼼짝도 할 수 없을 정도로 강한 공포가 전신을 지배해 바짝 굳어 움직일 수 없었다.

공략팀 모두가 기억하는 박호연 에스퍼의 팔 절단 사고는 S급 곤충형 몬스터의 공격이었다. 그런데 악몽 속에선 대체 어떤 몬스터가 공격한 건지 보이지도 않았다. 너무 빠른 데다가 압도적으로 거대한 탓에 존재의 형태가 눈에 제대로 담기지 않았다. 그런 존재와 맞닥뜨렸다는 자신의 기억이 현실이 아니라 악몽이어서 다행이라고 느낄 정도였다.

실로 무시무시한 악몽이었다. 근 몇 년 만에 처음 느껴 보는 무력함과 공포감은 선명하게 남았는데, 자신이 무엇에 공포를 느꼈는지, 그리고 강재윤이 혼자 겨우 막아 내고 있었던 건 대체 무엇인지 전혀 기억나지 않았다.

처음엔 단순히 악몽으로 치부했던 진보라는 이게 악몽이 아닐 것만 같다는 찝찝한 기분을 지울 수가 없었다. 그래서 공략팀 사람들을 은근히 떠봤지만 모두 기억하는 게 정확히 같았다. 그 누구도 그날 벌어진 일에 이질감을 느끼거나 악몽을 꾸지도 않았다.

역시 악몽일 뿐이었던 건가? 찝찝하긴 하지만 얻어 낸 정보가 없어 그대로 잊어버리려던 차, 당시 공략팀원들과 대화 도중 어떤 공통점을 찾게 되었다. 바로 공략팀원 중 후원자가 있는 이들 모두 그날을 기점으로 후원자에게서 대답이 없다는 거였다. 후원자들이 워낙 제멋대로에 바쁜 존재다 보니, 다들 대수롭지 않게 여기느라 여태 몰랐던 사실이었다.

진보라 역시 그랬다. 하지만 악몽 속에서 자신을 지키기 위해 던전에 개입한 후원자의 메시지를 떠올린 후엔 의구심이 들었다. 꿈속에서 본 제 후원자의 메시지는 대부분 깨져서 볼 수 있는 내용이 거의 없었지만, 그중 한글로 출력된 메시지 세 글자는 분명히 기억하고 있었다.

「도망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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