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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72화 (72/172)

#072.

안 돼. 돌아가. 1

왜애애애애애애애앵----------

평화 길드 본관 건물에서 한 블록 떨어진 빌딩 옥상.

메아리치듯이 연속으로 울리는 사이렌 소리에 미간을 살짝 찌푸린 김현아는 제 옆에 쭉 서 있는 에스퍼들을 순서대로 확인했다. 바티칸 소속 조슈아, 각성자 협회 소속 정하영, 플레임 길드 길드장 신지원이 각기 다른 표정으로 거대해진 토네이도를 지켜보고 있었다.

조슈아는 감흥 없는 듯이 보이는 나른한 얼굴을 하고 있었지만, 며칠간 그를 지켜본 김현아는 저 힘없는 표정이 그의 디폴트 값일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 또한 다른 사람 못지않게 토네이도로 인한 피해를 누구보다도 걱정하고 있다는 것 역시.

조슈아의 옆에 서 있는 정하영은 누가 정하진과 쌍둥이가 아니랄까 봐 무덤덤하게 굳은 얼굴로 토네이도를 노려보고 있었다. 그리고 그 옆엔 퍽 심각해 보이는 정하영과 대조되는 남자가 보였다.

옥상 난간 위에 앉은 플레임 길드장 신지원은 평화 길드 건물이 토네이도에 이기지 못하고 모래성 흩어지듯 해체되는 모습을 스마트폰으로 촬영하며 싱글벙글 웃고 있었다. 그 모습을 본 김현아가 눈을 가늘게 뜨며 툭 던지듯 물었다.

“신지원 길드장님, 아주 즐거우신가 봅니다?”

“평화 길드 본관이 날아가는 걸 직관하는데, 솔직히 재미있긴 하네요. 와~ 상층부 쓸려 가고~ 어우, 밑에까지 그냥 다 날아가네~! 김현아 에스퍼, 이건 복구가 아니라 아예 새로 지어야겠는데요?”

“……X발.”

“으하핫! 김현아 에스퍼 욕하는 거 오랜만에 듣네.”

“그쯤 하시죠, 신지원 길드장님…….”

정하영이 한마디 하며 끼어들자 고개를 크게 주억거린 신지원이 입을 꽉 다물었다. 하지만 싱글벙글 웃는 낯은 숨기지 않고 계속 김현아를 흘끔거렸다. 누가 봐도 놀리는 기색이 역력했다.

새삼 신지원의 얼굴과 연기만 보던 시절이 그리워진 김현아가 깊은 한숨을 쉬었다. 하지만 딱히 기분이 상하진 않았다. 얼마 전, 대구에 생긴 던전 징후 싱크홀 때문에 플레임 길드 시설이 절반 이상 무너졌을 당시 본인도 저랬던 것 같았으니까.

“…….”

생각해 보니 자업자득이었다. 그래. 놀리라지, 어차피 이 반도 안에 평화 길드 소유 건물은 방금 사라진 것 말고도 많았다. 길드 신관도 서울 중심지에 있으니, 당장 본관이 먼지가 됐다는 게 신경 쓰이기보단 옆에서 이죽거리는 저 남자가 얄미워 주먹에 절로 힘이 들어갔다.

“어, 어어. 김현아 에스퍼. 주먹을 막 쥐네? 고작 S급인 나는 지금 너무 무서운데? 주먹 펴요? 나 촬영 중입니다?”

“……정하영 에스퍼. 제가 혹시 플레임 길드장을…….”

“안 됩니다.”

“네.”

“정하영 에스퍼, 저 지금 쓰급한테 목숨 위협받은 거 맞죠?”

“…….”

“와, 김현아 에스퍼 너무하네요. 우리 ‘애기’가 연기는 처음이니, 지도 편달 부탁드린다고, 잘 좀 봐 달라고 해서 내가 지수를 얼마나 성실하게 봐줬는데.”

김현아는 과거 연기력이 달리는 한지수가 드라마 촬영을 하는 날이면 어김없이 촬영장에 커피 트럭을 풀 옵션으로 보냈었다. 커피 트럭 말고도 이름 있는 온갖 유명한 스위츠와 호텔 쉐프가 만든 도시락도 따로 챙겨서 보냈었는데, 이는 전부 ‘내 새끼’가 부족해 NG를 많이 낼 수도 있지만, 그래도 배우님들과 감독님, 스태프님들께서 우리 애 좀 예쁘게 잘 봐 달라는 일종의 청탁이었다.

적절하게 보정 들어간 한지수의 사진, 그리고 팬심이 넘치다 못해 유치찬란한 문구가 적힌 현수막은 덤이었다. 그런 이야기만 쏙 빼고 자기가 아주 성실하게 봐줬다는 식으로 말하는 것도 꼴 받았지만, 열렬했던 과거의 덕질을 저렇게 은근히 비껴가며 언급하는 게 김현아를 더 울컥하게 했다.

“하영 언니. 역시 사고 처리로 깔끔하게…….”

“현아야, 참아. 저기 아직 공중파 드론 두 대 남아 있어.”

“응.”

김현아와 정하영의 호칭이 뒤바뀐 대화를 들은 신지원이 겁먹은 척하며 몸을 웅크렸다. 물론 김현아와 친하기에 할 수 있는 장난이었고, 겁먹은 것처럼 보여도 그는 고층 빌딩 옥상 난간 위에 앉아 다리를 흔들고 있었다. 도저히 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모습으로 촬영하던 신지원은 토네이도가 지나간 자리에 평화 길드 본관이 절반도 남지 않은 걸 보며 혀를 찼다.

“어후~ 아니, 근데 평화 길드 본관 쉴드 S급 아니었어요?”

“엄밀히 말하면 S+급이었죠.”

“와, 씨 지금 게이트 다 열리지도 않았는데 저 정도 징후면……. 던전 등급 불안~ 불안하네~.”

언론엔 A~S급 사이 쉴드라고 발표했지만, 사실상 건물 전체를 두르고 있는 방어 쉴드는 등급 외의 특수 옵션이 추가되어 있어 준 SS급 수준이었다. 그런데 저 대형 토네이도는 그 쉴드를 부수고 건물을 먼지처럼 빨아들이고 있었다. 예측 범위를 훨씬 넘어선 위력을 확인한 조슈아가 꽤 벌어진 균열을 주시하며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공략은 결정하셨습니까? 이것은 매우 불안정해 보입니다.”

자동 통역 아이템을 사용한 덕분에 말투는 딱딱하게 들렸지만, 목소리는 더할 나위 없이 부드러웠다. 팔짱 낀 채 하층부만 남은 길드 본관의 참상을 지켜보던 김현아는 옆 블록으로 이동 중인 토네이도에서 눈을 떼지 않고 말했다.

“일단 게이트가 다 열린 후에 등급부터 확인해 봐야 할 것 같군요. 확정 등급과 관계없이 저는 진입할 겁니다. 내부 스캔은 해야 하니까요.”

일부러 평소보다 느린 어조로 대답한 김현아의 말을 이해한 조슈아가 고개를 끄덕이자 신지원이 끼어들었다.

“징후가 이 정도면 적어도 S급일 것 같은데요? 저도 일단 진입합니다. 와~ 근데 서울에 이렇게 크게 터진 게 얼마 만이지? 아, 그나저나 지수는 좀 어때요?”

“…….”

말을 하다 말고 갑자기 노선을 튼 질문이었지만, 신지원이 저러는 게 하루 이틀이 아니라는 걸 잘 아는 김현아는 담담하게 대답했다.

“여기서 멀리 떨어진 안전한 곳에서 쉬고 있죠.”

“흐음, 그럼 지금은 서울에 없는 건가…….”

“그동안 연락 안 했어요?”

“하긴 했죠. 근데 톡은 아예 읽지도 않더라고요. 솔직히 지수 걔가 지금 누구 연락받을 정신도 아닐 테니……, 내내 치료받느라 제대로 받아들이고 슬퍼할 시간도 없었겠다 싶더라고요. 못 본 지 오래됐네.”

“…….”

“아, 장례식 날에도 보긴 했었구나. 일부러 변신까지 하고 온 애한테 가서 알아본 티 내기도 좀 그래서 모른 척했지만……. 뭐, 그 후로 소식이 전혀 없네요.”

“…….”

김현아는 강재윤의 장례식 날을 떠올렸다.

그날 한지수는 변신 아이템을 사용해 김현아와 강재윤과 평소 친분 있었던 지인 김지수의 신분으로 장례식에 참석했었다. 다만 변신이 무색하도록 조절 못 하고 줄줄 흘리는 가이딩과 눈물 때문에 주변 에스퍼들의 시선을 한눈에 받았었다.

대부분은 이제 막 각성해서 가이딩 조절이 서툴다는 이야기에 속았지만, 신지원을 포함한 몇몇 연륜 있는 에스퍼들은 저 여성이 누군지 눈치챈 듯이 거대한 몸으로 은근히 가까이 붙어서 주변 시야를 차단해 주었었다.

보내야 하는 이가 없는 빈 관을 묻을 때 고개도 들지 못하고 어깨를 들썩이며 호흡조차 버거워할 정도로 오열하는 작은 가이드가 저들 덩치에 파묻혀 편히 울 수 있도록 말이다.

마찬가지로 강재윤의 장례식 날을 떠올린 건지, 촬영 내내 싱글벙글 웃던 신지원이 씁쓸한 미소를 띤 채 중얼거렸다.

“걱정돼서 얼굴이라도 한번 볼까 했는데, 솔직히 지금은 좀 그럴 것 같더라고요. 나랑 있으면 더 생각날 것 같아서.”

“…….”

“그래서 나중에 지수가 먼저 연락해 주면 만나 볼까~ 했는데 연락이 없어서 걱정되네요. 뭐, 김현아 에스퍼가 알아서 케어 잘하겠지만.”

“예예~ 제가 알아서 고급 인력까지 붙여 가며 잘 케어…… 하고 있……었……는데…….”

어색한 지점에서 뚝뚝 끊기는 말을 들은 세 사람이 동시에 김현아를 바라봤다. 무언가로 인해 놀란 듯한 김현아의 시선은 조금 전 막 토네이도가 지나가 텅 빈 길드 본관 터 위에 고정되어 있었다. 자연스레 같은 방향으로 눈을 돌린 세 사람은 제각각 다른 감탄사를 뱉었다. 그 감탄사를 자아낸 주인공이 제법 가까워졌을 때 김현아는 경악을 감추지 못했다.

“뭐야! 오빠 왜 아직도 서울에 있어!? 설마 지수만 두고 온 건 아니지!?”

김현아의 질문을 충분히 듣고도 남을 거리였지만, 대답 대신 날아와 옥상에 착지한 정하진은 네 사람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난장판이 된 지상을 내려다보며 말했다.

“아직 방송국 드론이 있으니 나한테 시선 주지 말고 원래 같이 공략하려고 했던 척해. 신지원 길드장님, 제 뒤통수는 그만 보시죠. 사람들이 의심합니다.”

“……아니, 정하진 에스퍼. 대체 등에 누굴 달고 온 겁니까? 도깨비감투도 가지고 있었어요?”

얼핏 보면 정하진은 혼자 날아온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이 자리에 있는 이들은 전부 S급과 SS급 에스퍼들이었다. 정하진의 등에 매달려 있는 투명한 존재가 내뿜는 하찮은 기척을 모를 수가 없었다.

김현아는 이 기척이 누군지 이미 파악해 이마를 짚을 뻔했으나, 간신히 바른 자세를 유지한 채 이를 꽉 물고 씨근거렸다.

“오빠, 내가 책임지고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고 했지…….”

“……그렇게 됐다. 자세한 건 나중에 설명하지.”

“아, 나 진짜……. 야. 넌 여기가 어디라고……. 하…….”

김현아의 중얼거림을 들은 신지원은 설마? 하며 정하진을 곁눈질했다. 그러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정하진의 목덜미 부근에서 S급 에스퍼가 아니면 들을 수 없을 만큼 작은 목소리가 들렸다.

“누, 누나. 내가 다 설명할게. 사정이 있어. 지원이 형, 안녕하세요. 오랜만이에요.”

“쮜이-!”

작은 햄스터의 울음소리는 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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