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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49화 (49/172)

#048.

부작용 5

“어…… 먼저 우리 길드원 중에는 진보라 에스퍼나 이수빈 힐러나 박민아 가이드 중 아무나요. 또 플레임 길드에 박호연 에스퍼, 유원석 에스퍼, 이민재 에스퍼요. 사실 진소민 힐러랑 임은하 가이드는 제가 전혀 모르는 사이라 연락하기 좀 그렇긴 한데, 저쪽도 응하면 상관없고요.”

“…….”

“그리고 또, 각성자 협회에 연서준 에스퍼랑 성준 힐러랑 지석민 에스퍼요. 아, 김승희 에스퍼랑 이정균 가이드도요.”

“…….”

줄줄이 거론된 이들의 공통점을 어렵지 않게 알아챈 정하진은 지수의 손을 조심스럽게 맞잡았다. 그러자 내내 제 몸을 부드럽게 감싸던 가이딩이 뚝 끊겼지만, 이를 내색하지 않고 평소처럼 침착하게 대꾸했다.

“부산 태종대 던전 공략팀이군요.”

“네. 세뇌 스킬 때문인지, 머리가 맑아지고 나서야 그날 진보라 에스퍼가 했던 말이 신경 쓰이더라고요. 재윤이 형이 안에서 확인할 것이 있어서 먼저 나가라고 했다고.”

“…….”

“그때 안이 어떤 상황이었는지 발표도 안 됐고. 기분 탓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쉬쉬하는 분위기라서요. 현아 누나도 따로 언급은 없었고요.”

“…….”

“공략팀 중에 저를 만날 의사가 있는 사람들은 다 만나 보고 싶어요. 그래 봤자 바뀌는 게 없다는 건 알지만…… 그래도요. 그래도 전 그날 안에서 대체 무슨 일이 있었는지 들어야겠어요.”

“…….”

한지수가 공략팀과 만나고 싶어 할 거라는 것은 이미 예상했던 부분이었다.

그간 태종대 던전이나 강재윤 관련 일을 생각할 때마다 세뇌 스킬이 다른 생각을 하게끔 사고의 흐름을 우회시키는 바람에 그럴 엄두를 내지 못했을 테니, 지금이라도 만나고 싶겠지.

당연했다. 정하진도 이해했다. 저라도 그랬을 거였다. 그래서 자신이 직접 그들에게 연락을 시도해 보겠다고 말했지만, 지수는 담담하게 덧붙였다.

“정하진 에스퍼 혼자 연락 넣긴 힘들잖아요. 제 휴대폰 주시면 저도 친분 있는 사람들한테 직접 연락해 볼게요.”

“…….”

지수의 요구에 정하진은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침묵했다. 토토 역시 귀를 쫑긋거릴 뿐, 집 안 어딘가로 시선을 옮기지 않는 똑똑함을 보였다.

지수는 평소 같으면 토토가 저렇게 고집부릴 때 토토의 기분에 맞춰 주는 편이었지만, 이번만큼은 단호하게 말했다.

“참고로, 전 제 욕 하도 봐서 이젠 신경 안 써요. 악플에 휘둘릴 나이도 지났고요.”

정하진은 사람은 누구나 생각 짧은 인간들이 던지는 돌에 맞았을 때 아픔을 느끼는 법이라고, 상처받는데 나이는 상관없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이번에도 침묵을 유지했다. 난감한 기색이 역력한 정하진의 얼굴을 본 지수는 잡고 있던 그의 손을 놓으며 진지하게 물었다.

“음…… 사람들이 제 욕 많이 하나 봐요?”

“그건 아닙니다.”

“그럼 뭐 때문인데요?”

“토토가 휴대폰을 숨긴 이유는…… 한지수 가이드가 접하지 않았으면 하는 유언비어가 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 건 한두 개가 아닌데요, 뭐.”

그렇게 대답한 지수는 대수롭지 않다는 것을 어필하기 위함인지, 언론이나 인터넷상에서 사람들끼리 공격해 대는 것엔 이미 이골이 나 아무렇지 않다며 밝게 웃어 보였다. 하지만 정하진은 한지수의 말에 긍정이나 맞장구치는 대신 고개를 작게 저으며 정정했다.

“그것과는 조금 다릅니다. 정확히는 한지수 가이드에 대한 이야기보다, 강재윤 에스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 재윤이 형이요?”

한지수는 갑자기 거론된 강재윤의 이름에 놀라 펄쩍 뛸 뻔했다. 하지만 제가 너무 동요하면 정하진이 입을 닫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황한 티를 내지 않으려고 표정을 관리했다.

나름대로 최선을 다해 노력했지만, 애석하게도 정하진에겐 한지수의 충격이 시각보다 청각으로 먼저 와 닿았다.

예상치 못한 이야기로 충격받은 탓에 쿵쾅쿵쾅 미친 듯이 뛰기 시작한 심장 고동이 선명하게 들렸다. 파르르 떨리는 입술을 감추기 위해 앙다문 모습도. 어중간한 위치에서 멈칫 굳어 버린 손도 눈에 띄었다.

이 모든 행동이 한지수가 매우 놀랐음을 가리켰지만, 정하진은 최대한 담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한 너튜버가 방송에서 한 말이 부풀어, 그게 마치 사실인 것처럼 이야기하는 부류가 있습니다. 기자들도 해당 너튜버의 헛소리에 하나둘 말을 보태며 기사를 쓰고 있어서 그 이슈로 한창 시끄러운 상태입니다.”

“……무슨…… 헛소린데요?”

“그 너튜버는 태종대에서 사라진 던전과 똑같은 던전이 중국에 나타났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리고요?”

살짝 갈라지는 목소리로 묻고는 침을 삼키는 소리가 선명했다. 토토를 쓰다듬는 척하던 손은 이미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정하진은 그런 한지수를 향해 차분하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같은 던전일 경우 강재윤 에스퍼가 던전 내부에 생존해 있을 수도 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

쿵-

쿵-

심장이 터질 듯이 뛴다. 온몸의 피가 가슴으로 쏠리는 착각이 들 정도로 전신이 차게 식으며 심장 부근만 욱신거린다.

“자칭 던전을 연구했다는 비전문가들도 나서서 말을 부풀리는 데 일조했고, 비전문가 너튜버들도 조회 수를 노리고 루머를 퍼뜨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 공중파 뉴스 토론에서도 이 부분을 다뤄서 말이 더 커진 상황입니다.”

“……공중파요? 공중파에서 다룰 정도면…… 어느 정도는 신빙성이 있다는 거 아닌가요? 흐…… 읏…….”

그냥 인터넷 뉴스도, 너튜브 밀리언 채널도 아니고 공중파라는 말에 깜짝 놀라 되묻는 한지수의 입술과 목소리가 눈에 띄게 떨렸다.

지수가 숨을 크게 들이마시면서도 제대로 내쉬지 못하는 걸 파악한 정하진은 조심스레 손을 뻗었다. 지수가 놀라지 않도록 매우 천천히, 느릿하게 손을 뻗은 그는 하얗게 질릴 정도로 꽉 쥔 주먹을 잡고 힘을 빼도록 풀어 주었다.

생각도 못 한 소식에 너무 놀란 나머지 지수의 심장은 조금 전부터 요란하게 격동하고 있었다. 저번처럼 과호흡 상태에 빠지지 않도록 당장 진정해야 할 단계라는 것을 확신한 정하진은 일부러 더 차분한 어조로 말했다.

“한지수 가이드. 천천히 심호흡하십시오.”

“흐…… 읏…… 저, 전 괜찮아요. 저, 괜찮으니까, 대답, 해, 주세요.”

괜찮다는 것치고 말을 드문드문 끊어서 겨우 호흡을 이어 나가는 주제에, 한지수는 정하진의 눈을 똑바로 바라보며 물었다.

“길드는, 현아 누나는요? 하, 후우…… 누나가 뭐래요? 그 주장한 사람들, 후우…… 그 사람들이, 말한 내용, 읏…… 확인은 했대요?”

두근두근- 두근두근두근- 두근두근- 두근- 제멋대로 펌프질해 대던 심장 고동이 더 격해졌다. 정하진은 한지수의 손을 맞잡은 채 천천히 손등을 보듬어 주며 고개를 저었다.

“그 무엇도 증명된 바 없습니다.”

“……으…… 흐…… 후우…….”

한지수는 가만히 앉아 있는데도 마치 뜀박질한 것처럼 얼굴을 찡그리며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다.

내내 얌전히 있던 토토 역시 걱정됐는지, 뽀로로 다가와 한지수의 손목에 양발을 올리며 “찌…….” 하고 울었다. 한지수는 숨을 고르게 쉬기 위해 노력하느라 토토에게 눈길 줄 여유조차 없는 듯이 보였다.

“이상…… 흡, 이상하잖아요, 그거…….”

“한지수 가이드.”

“토론도, 흐으…… 뉴스 토론도 했다면서요. 증거 없이, 공중파에서, 후우…… 단순 보도도 아니고, 리스크가 클 텐데…… 감수하고 방송할 정도라면…… 그러면, 어느 정도는…… 뭔가 확신하는 구석이 있으니까…….”

한지수는 연예계 쪽이긴 해도 나름 방송 물을 먹은 경력이 있다 보니, 오히려 엉뚱한 쪽으로 추측하기 시작했다. 공중파 뉴스 토론이라면 아예 신빙성 없는 이야기로 토론까지 가진 않았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

부산 사태를 겪기 전의 한지수였다면 공중파가 또 날조와 선동을 한다며 웃어넘겼겠지만, 지금은 동요하며 어떻게든 긍정적인 가능성을 찾으려 애쓰는 기색이 역력했다.

정하진은 한지수의 혼란함을 이해했다. 그래서 그의 착각을 정정하기 위해 손등을 부드럽게 두어 번 쓰다듬은 후에 천천히 고개를 가로저으며 부정했다.

“정확히 말하자면, 증거도 없는 상황에서 영상 몇 개 가져다가 무책임하게 떠든 사람들에 대한 비난을 한 내용이었습니다.”

“…….”

“물론 시청률 때문인지 진행자가 사실인지 아닌지는 두고 봐야 한다는 식의 애매한 멘트를 하긴 했지만, 출연한 전문가들은 근거 없는 주장이라며 단호하게 부정했습니다.”

“흐…… 후으…… 하…….”

“한지수 가이드. 천천히 호흡하세요. 천천히.”

“으으…… 괜찮아요, 일단, 알겠어요. 그…… 후우…… 중국에 나타난 던전은 뭔데요? 왜…… 왜 그런 이야기가 나온 거죠? 애초에 너튜브에서 아무 이유 없이 이야기가 나왔을 것 같진 않은데요…….”

정하진은 한지수의 호흡이 천천히 진정되는 것을 충분히 지켜보며 주의 깊게 살폈다. 심장은 여전히 빠르게 뛰었지만, 숨차지 않을 만큼 어느 정도 안정된 것이 확인되자 천천히 설명을 이었다.

사실 설명이랄 것도 없었다. 단순히 위성 사진을 대조해서 주변 파장이 비슷해 보인다고 주장하는 게 너튜버발 루머의 전부였기 때문이었다. 정하진은 사진이 또렷하지 않은 데다가 중국이 일부러 던전이 소멸한 것을 숨기기 위해 자체적으로 폭파까지 시키며 쇼를 했다는 건 말이 안 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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