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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42화 (42/172)

#041.

달콤한 꿈 10

뇌수면 치료를 받게 되면 보통 꿈을 꾸지 않지만, 한지수는 분명히 꿈을 꾸었다. 이름 모를 작고 예쁜 꽃이 가득한 장소에서 줄어들지 않는 달콤한 디저트를 원 없이 먹는 꿈을.

한때는 직업 때문에 몸매 관리해야 한다며 먹지 못했던 시기도 있었는데, 이젠 그 시기가 너무 오래된 것처럼 느껴졌다.

꿈에서 완전히 깨어난 지수는 부스스 눈을 뜨고 이번에야말로 낯선 천장을 확인했다. 딱 봐도 VIP 병실이었다. 공기 청정기가 열심히 돌아가는데도 공기가 조금 텁텁하게 느껴지는 걸 보니, 저가 있던 무의 공간이 비현실적으로 깨끗한 장소였나 보다 싶었다.

정신이 맑아진 지수가 얕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제 가슴을 내려다봤다. 밋밋한 가슴 위에 털 뭉치 하나가 엎드려 있었다. 동그란 엉덩이와 작게 튀어나온 꼬리를 본 지수가 나지막하게 털 뭉치를 불렀다.

“……토토야. 아빠 일어났어.”

쩍쩍 갈라지는 집사의 목소리에 토토의 귀가 쫑긋 움직였다. 저렇게 작은 것도 귀라고 쫑긋쫑긋 반응하는 게 새삼 귀여워 쿡쿡 웃으며 바라보니, 동그란 털 뭉치가 비척비척 몸을 일으켰다.

며칠 내내 제 자는 모습만 봐서 기운 없을 토토에게 한껏 미소 지어 보일 준비를 마친 지수는, 털 뭉치가 돌아선 순간 웃으려다 놀라 휘둥그레져서 입을 쩍 벌렸다.

“……토, 토토야?”

“쯰.”

“우리 토토 입에 뭘 그리 많이 넣었어?”

“쯰이.”

직사각형으로 네모나게 각진 토토의 얼굴을 본 지수는 당황해 바로 손을 뻗었다. 토토는 제 볼 주머니에 욱여넣은 것을 빼앗으려는 줄 알았는지, 호다닥 집사의 다리 쪽으로 달려갔다. 충분히 멀어진 토토가 다시 지수를 돌아보며 앞발로 작은 입을 막은 채 비장한 표정을 지었다.

지수는 대체 입에 뭘 넣어야 저리되는 건가 싶었지만, 차분히 형태와 모양을 파악하자 순식간에 결론이 나왔다.

“……토토야, 설마 그거…… 내 폰이야?”

“쯰!”

“……아니, 폰은 왜…….”

대체 왜 휴대폰을 입에 넣었단 말인가!

토토가 그간 한 번도 저지르지 않은 신종 기행에 당황한 지수가 어디서부터 지적해야 할지 몰라 입술을 달싹이고 있을 때, 병실 문이 열리며 성하진이 들어섰다.

그는 지수가 깬 것을 이미 느꼈는지 놀란 기색 하나 없이 들고 온 생수병 뚜껑을 열고 빨대를 꽂아 주며 말했다.

“일어나셨군요. 오늘은 1월 25일입니다. 치료는 성공적이었고, 현재 뇌 상태가 안정화 되었다고 합니다. 그래도 가이드 폭주 증세는 언제든 찾아올 수 있으니 조심하는 게 좋습니다.”

“네…… 그…… 성하진 에스퍼.”

“예.”

“어…… 먼저, 제가 자는 동안 토토 봐 주셔서 감사해요.”

“아닙니다. 토토와 함께 즐겁게 보냈습니다.”

“다행이네요……. 그리고, 음…… 저 봐 주신 것도 감사해요.”

“제가 할 일이니까요. 일단 물을 마시는 게 좋겠습니다.”

“아, 네.”

지수는 그가 내민 병을 잡으려 했지만, 성하진은 빨대를 잡고 지수의 입에 가져가 대 주었다. 중환자도 아닌데 너무 극진한 간호 같아 혼자 마실 수 있다고 말하려 했지만, 빨대를 마시기 좋은 각도로 기울인 그의 표정이 너무나도 진중하여 차마 거절할 수 없었다.

“……감사합니다. 잘 마실게요…….”

지수는 빨대를 잡은 그의 손가락에 입술이 닿지 않도록 끝부분만 살짝 물고 몇 모금을 마셨다. 차가운 줄 알았던 생수는 미지근했다. 찬물을 좋아하는 지수가 인상을 쓰며 입술을 달싹이자, 물병을 내려 둔 성하진이 앞으로 일정을 브리핑하듯 줄줄 읊었다.

“퇴원 절차는 마쳤습니다. 최성훈 교수님이 잠시 후 들르실 예정이라고 합니다.”

“아, 네. 그래요.”

“그리고 가급적이면 바로 기숙사로 돌아가서 쉬는 게 좋겠습니다. 혹시 필요한 게 있다면 제가 구해 오겠습니다.”

“아뇨, 괜찮아요. 그냥 기숙사로 가요.”

“예. 추가로 주무시는 동안 계속 식사 대용 포션을 섞어 투여하긴 했지만, 당장 식사는 씹는 것보단 미음부터 시작하는 게 좋다고 합니다. 기숙사로 돌아가면 제가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고맙습니다. 그런데, 성하진 에스퍼.”

“예.”

지수는 성하진에게서 시선을 돌려 제 발목과 발목 사이에 자리 잡고 멀찍이 서 있는 토토에게 흘긋 눈길을 주며 물었다.

“토토 입에 저거, 제 폰 맞죠?”

“예.”

성하진의 대답과 동시에 뭔가 알림이 왔는지, 토토의 볼 주머니에 넣은 폰이 지이잉 진동했다. 한지수의 휴대폰이 울리는 탓에 제 이빨을 건드려서 불편할 텐데도 눈을 질끈 감고 버텼다.

보통 햄스터라면 당연히 휴대폰을 입에 넣을 수 없겠지만, 토토는 ‘무한의 수납’이라는 스킬을 가진 몬스터다 보니, 평소에도 오만 것들을 볼 주머니에 넣곤 했다. 이렇게 한지수의 물건을 멋대로 넣고 돌려주지 않는 경우는 이번이 처음이었지만 말이다.

“토토야.”

“…….”

“토토야?”

“……쯰.”

“토토야. 아빠가 음…… 아빠 일어났다고 글 하나만 올릴게. 안 올리면 또 괜한 소리 나와서 그거만 올리고 다시 줄게. 그리고 폰 지저분해. 지지야.”

“토토가 자꾸 입에 넣으려 해서 제가 소독해 줬습니다.”

“아 감사합니다……. 아니, 그걸 말리셔야지 왜 소독을…… 아니, 아무것도 아니에요. 토토야, 아빠한테 잠깐만 줘 봐. 응?”

“……찃!”

지수가 손을 내밀자 반사적으로 달려오려던 토토가 멈칫하더니 새침하게 고개를 돌렸다. 당장 반가워서 지수에게 달려가 안기고 치대고 싶어 자꾸 흘긋거리고 있으면서 폰을 뺏기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저러고 있는 게 어이없기도 하고 귀엽기도 했다. 토토를 어떻게 구슬려야 하나 고민하고 있을 때, 성하진이 너스 콜을 누르며 말했다.

“글은 기숙사로 돌아가서 올리죠.”

“……네……. 근데 성하진 에스퍼. 혹시 제가 자는 동안 무슨 일 있었어요?”

“……아무 일도 없었습니다.”

“그래요?”

“예.”

평소 뭐든 즉각 대답하는 편인 그가 잠시 뜸 들이는 것이 의아했지만, 그러려니 했다. 지수 본인도 오랜 습관 때문에 말하기 전 늘 한 번 더 생각하고 말하느라 대부분 대답이 늦는 편이었으니까.

‘아니, 잠깐. 성하진 에스퍼가 생각할 필요가 있다는 건 역시 뭐 있었던 것 같은데…….’

성하진의 반응도 반응이지만, 안식의 신이 굳이 디저트로 저를 붙잡은 것도, 토토가 저렇게 휴대폰을 감추고 있는 것만 봐도 역시 뭔가 일이 터진 것 같았다.

자신의 추측에 확신을 더하기 위해 지수가 리모컨으로 손을 뻗자, 옆에서 물병 뚜껑을 닫던 성하진의 손이 우뚝 멈췄다. 거리를 유지하던 토토도 흠칫하더니 지수에게 바로 달려오려다가 볼 주머니에 휴대폰 때문인지 눈치만 보기 시작했다.

“…….”

“…….”

“…….”

두 남자와 한 햄스터가 서로 시선만 교차하며 조용해진 상황. 지수는 리모컨을 다시 원래 위치에 내려 두며 토토를 향해 손을 뻗었다.

“토토야.”

대답은 없었지만, 눈은 지수를 향해 있고 귀는 확실하게 움찔거렸다. 지수는 저리 걱정 많은 제 반려몬을 향해 손을 조금 더 내밀었다.

“토토야, 폰 안 뺏어 갈게. 아빠가 우리 토토 안아 주고 싶어서 그래. 이리 와.”

“…….”

그 말에 토토는 작고 까만 눈을 슥 굴려 눈치 보더니, 주춤주춤 지수를 향해 다가왔다.

그러다 제게 내밀어진 손바닥을 보자 더 참기 어려웠는지, 네 발로 와다다닥 달려와 손바닥에 올라탔다.

지수가 손을 가슴으로 가져와 토토의 정수리에 뽀뽀하며 웃어 주자 토토 역시 지수의 턱에 정수리를 마구 비비며 치대기 시작했다. 평소라면 “쮜잇 쮜잇~” 하고 울었을 텐데, 지금은 폰을 넣고 있어 “쯔응~ 쯧! 찡-!” 하고 이상한 소리로 울며 볼을 비볐다.

지수는 “아빠가 너무 오래 잤지, 미안해~” 속삭이며 토토의 엉덩이를 토닥였다. 원래라면 푸짐해야 할 엉덩이의 그립감인데, 며칠 사이 홀쭉해진 탓에 살짝 포동포동한 정도로 느껴졌다.

‘우리 토토 살이 쪽 빠졌네……. 음, 확실히 야위었어.’

수의사가 듣는다면 헛웃음을 터트릴 법한 생각을 하며 토토의 엉덩이와 등을 계속 토닥였다.

온몸을 비벼 대며 반가움을 표현한 덕분에 볼 주머니 속 휴대폰이 지수의 턱을 퍽. 퍽. 치기도 했지만, 집사 때문에 토토가 마음고생한 것 같아 미안한 마음에 마음껏 치대게 놔두었다.

반려몬과 집사의 감동적인 재회 현장을 지켜보던 성하진은 간병인 전용 방으로 들어가 묵묵하게 짐을 챙기기 시작했다.

세뇌를 전부 다 거둬서 깨어나면 상실감에 극도로 힘들어하고 슬퍼할 수 있으니, 최성훈 교수는 심각한 상태가 아니라면 스스로 감정을 추스르도록 놔두라고 미리 주의를 주었다. 그러나 걱정과 다르게 지수는 괜찮아 보였고, 그 점이 오히려 더 신경 쓰였다.

성하진은 극도로 우울해야 할 상황에서 갑자기 차분해지는 이들이 보내는 신호가 뭔지 잘 알았다. 한지수는 무언가 결심한 게 분명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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