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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급 가이드는 이제 그만 쉬고 싶다-38화 (38/172)

#037.

달콤한 꿈 9

눈물을 그렁그렁 달고서 인내심을 발휘하며 바라보던 지수는 텍스트가 이내 한 줄의 문장이 된 것을 읽어 냈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이제 다 울었냐고 묻습니다]

“……훌쩍…….”

[‘후원자’ 안식의 신이 그렇게 계속 울면 머리가 아플 거라며 혀를 찹니다]

“흑…… 지금…… 흐읍…… 눈물이, 으흑…… 나는데 어쩌라고……. 으흐흑…….”

다소 반항스럽게 대답하자 텍스트가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이번엔 조금 더 빠르게 채워지기 시작했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자신은 걱정돼서 한 말인데, 태도가 영 불경하다며 고개를 젓습니다]

“……훌쩍…….”

[‘후원자’ 안식의 신이 얼굴이나 좀 닦으라며 핀잔합니다]

“닦을 거, 흑, 없, 어…….”

흐느끼며 투덜댄 지 1초도 지나지 않아 지수의 눈앞에 티슈 한 상자가 나타났다. 부드러운 티슈를 북북 뽑아 눈물 콧물을 닦자, 이번엔 휴지통도 생겼다.

후원자가 없었던 한지수는 겪어 본 적 없지만, 다른 에스퍼들이 던전에서 후원자가 필요한 물품을 지원해 준 일화를 종종 언급했었기에 고개를 기울이며 중얼거렸다.

“여긴 던전이야? 이렇게, 훌쩍, 이거저거 막 생기는 거 보면? 아, 나 지금 병원에서 자고 있지 참……. 훌쩍…….”

처음엔 던전 같은 공간인가 했는데, 말하다 보니 스스로의 처지가 떠올라 그건 아니라는 결론을 내린 찰나, 새로운 메시지가 팝업됐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이 장소는 자신이 직접 설계한 ‘영혼이 지나가는 통로’로 던전과 비슷한 형태로 만들어졌지만, 던전은 아니라며 부정합니다. 굳이 여기로 부른 이유는 자신과 계약 상태가 아닌 인간에게 아무 제약 없이 귀속 아이템을 줄 수 있는 장소, 즉 다른 후원자의 감시나 간섭을 받지 않는 유일한 공간이기 때문이라며 으스댑니다]

“……왜 그리 뿌듯해하는지는 모르겠지만. 흑……. 큼! 일단 좋은 거 줘서 고마워. 훌쩍. 계약 거절하면 장비라도 주려고 여기까지 부른 거야?”

[‘후원자’ 안식의 신이 대충 그렇다며 고개를 끄덕입니다]

“……왜 그렇게까지 해? 당신 S급 이하는 거들떠, 흑…… 훌쩍…… 보지 않는 거, 흡…… 아니었어?”

아직 멎지 않은 딸꾹질을 곁들이며 열심히 묻자, 잠시간 대답이 없던 후원자가 이번에도 조금 긴 메시지를 보내왔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자신은 엄격한 기준을 가지고 있을 뿐, S급만 후원하는 건 아니라며 찌푸립니다. 또한 원래 기회를 봐서 부르려 했는데, 오늘 마침 피후견인이 뇌사 상태에 빠진 김에 영혼을 쉽게 빼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흑…… 뇌사라고 하지 마. 그냥 잠시, 훌쩍…… 뇌를 끄고 자는 거라고 해.”

[‘후원자’ 안식의 신이 어쨌든 뇌가 완전히 멈춘 상태이기 때문에 이곳에 올 수 있었다고 합니다]

“…….”

지수는 안식의 신이 굳이 저런 쓸데없는 말만 하는 게 미심쩍어 티슈를 또 북북 뽑았다.

그새 눈물 젖은 얼굴을 닦아 내고, 퉁퉁 부은 눈을 손등으로 지그시 눌러 식힌 후 심호흡을 했다.

조금은 진정이 되는 기분이 들면서 머리가 차가워졌다. 그래서 지수는 다시 바닥에 편히 널브러지듯 앉아 말했다.

“후우…… 이제 좀 정신 들었으니까…… 말해 봐. 훌쩍. 나랑 계약한 이유가 뭐야? 나야 손해 볼 거 없어서 수락하긴 했는데, 일단 난 에스퍼나 힐러도 아니고, 딱히 레어 스킬도 없어서 도움 될 만한 건 없을걸?”

[‘후원자’ 안식의 신이 애초에 자신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인간은 세상에 몇 없다고 합니다. 어린 인간이 아주 건방지다며 콧방귀를 뀝니다]

“…….”

지수가 텍스트 창을 미심쩍은 눈으로 바라보자,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음에도 후원자가 먼저 말을 이어 나가기 시작했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사실은 한지수에게 당부하고 싶은 것이 있다고 합니다]

“……당부? 뭔데?”

[‘후원자’ 안식의 신이 잠시 기다려 보라며, 듣기 좋은 말을 고릅니다]

“…….”

지수는 후원자가 뜸 들이는 사이 나름대로 추측을 해 봤지만, 그가 자신을 피후견인으로 삼은 이유에 대해 전혀 예상 가는 바가 없었다.

물론 안식의 신이 저라는 존재를 몰랐던 건 아니었다. 애초에 그는 강재윤의 후원자였기에 아무리 바쁜 후원자라고 해도 시간 날 때마다 붙어 있던 저를 알 수밖에 없던 상황이었다. 그러나 피후견인으로 들인 이유는 아무리 생각해도 짐작 가지 않았다.

후원자의 대답을 기다리는 동안 지수도 나름대로 열심히 머리를 굴려 보고 있을 때, 눈앞에 새로운 메시지가 떴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한지수에게 삼시 세끼 잘 먹고, 푹 자고, 흡연하지 말고, 술도 멀리하고, 가끔 산책도 하며 적당히 운동을 곁들여 건강하게 살아가 달라고 당부합니다]

“……아니, 무슨 요구사항이…… 설마 내 장기라도 팔아먹으려고?”

[‘후원자’ 안식의 신이 무슨 그런 끔찍한 말을 하냐며 펄쩍 뜁니다!]

“아니, 수상하잖아. 그냥 건강하게 살라고? 그거 때문에 나랑 계약했다고? 내가 똑똑하진 않지만, 바보는 아니거든? 이유가 뭔데? 내 몸에 뭐 좋은 거라도 있어? 다른 나라에 눈물이 보석으로 변하는 각성자처럼? 혹시 내 장기가 엄청나게 좋아졌어? 내 몸이 필요해?”

[‘후원자’ 안식의 신이 어디 더 쨍알쨍알 읊어 보라며 피식거립니다. 그리고 그 보석쟁이는 사기꾼이니 믿지 말라고 덧붙입니다]

“……!!”

눈물이 보석으로 변하는 각성자가 사기였다니……. 순도 높은 예쁜 색의 보석을 만든다기에 하나쯤 수집하고 싶었던 지수는 실망한 기색을 애써 감추며 말했다.

“……어쩐지 사기 같더라. 어차피 살 생각도 없었어.”

[‘후원자’ 안식의 신이 한지수의 눈을 지그시 바라봅니다]

“……훌쩍.”

시선을 흐린 지수가 멋쩍어하며 괜히 티슈를 뽑아 눈물 닦는 척을 하자, 안식의 신이 다시 새 메시지를 띄웠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장난은 여기까지 하고, 이제 정말 솔직히 말하겠다고 합니다]

“……그래. 어차피 계약도 했으니, 솔직하게 말해 봐.”

이번에도 상태 창이 사라졌다.

‘저 상태 창은 그냥 띄워 두고 톡처럼 안에 메시지만 쭉쭉 올라가게 바꿀 수는 없는 걸까? 이거 생각보다 엄청 정신없네. 이전 대화도 볼 수 없고.’

지수가 시답잖은 생각을 하며 티슈로 얼굴을 두어 번 닦고, 꽉 막힌 코도 풀고, 옷매무새를 정리할 때까지도 신규 메시지는 팝업되지 않았다.

슬슬 지루해지기 시작할 때쯤. 푸르스름한 메시지 창이 나타났지만, 예상했던 것보단 짧은 메시지가 쓰여 있었다.

[안식의 신은 한지수가 앞으로 계속해서 건강하게 살아가길 바란다고 합니다. 그리고 종국엔 마침내 행복해지길 바란다고 합니다]

“…….”

저 메시지를 본 지수는 일순 정수리부터 싸~한 기운이 퍼지는 것을 느꼈다. 너무 놀란 탓인지 손끝도 파르르 떨렸다.

지금껏 자신은 입 밖으로 꺼내지도 않은 말…… 아니, 애초에 아직 제 머릿속에서 정립되지도 않은 어떠한 바람을 저 후원자가 먼저 끄집어낸 것이 한지수의 머릿속을 뒤집어 놨다.

자신도 몰랐던 치부를 지적당하고 까발려진 기분에 얼굴에 열이 확 오르고 아찔해졌다. 그런 지수의 상태를 파악한 건지, 새로운 메시지가 나타났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이 바람은 자신의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이 제게 부탁한 것이라고 합니다. 자신은 오래전 어떤 인간에게 큰 빚을 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지금은 그 빚을 갚기 위해 그 인간이 바랐던 대로 피후견인을 찾아온 것이라고 솔직하게 말합니다]

“……그 사람이 누군데?”

[‘후원자’ 안식의 신이 한지수를 물끄러미 바라봅니다]

“……누구냐고. 알려 줘…….”

[‘후원자’ 안식의 신이 한지수에게 이 바람이 누구의 바람인지 구체적으로 알려 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피후견인은 자신이 행복하길 바라는 이가 누구인지 이미 답을 알고 있다고 합니다]

“하…….”

안식의 신의 대답을 들은 지수는 더 묻지 못했다.

아까부터 내내 그랬지만, 지금 제 마음속에 떠오르는 사람은 단 한 명뿐이었다. 제 행복을 기원하는 이가 누군지 확신한 순간 시야가 흐려졌다.

* * *

‘우는 것도 체력이 필요하구나…….’

이제 다 울어서 더 나올 눈물도 없을 줄 알았는데 오산이었다.

다시 터진 울음은 오히려 전보다 더 그치기 힘들었다. 덕분에 지수가 진정하기까진 꽤 많은 시간이 필요했다.

그동안 안식의 신은 떠나지 않고 종종 지수에게 어설픈 위로의 메시지를 보냈다. 우는 사람에게 건네는 다정한 말이 역효과라는 것을 모르는 건지, 그는 왜 더 우는 거냐며 당황하기도 했다.

아까보다 훨씬 더 많은 시간이 지난 후에야 겨우 진정한 지수는 이제 정말 앉아 있을 힘도 없어 허공에 널브러져 누운 채 끝없이 새하얀 위를 바라보며 침을 꼴깍 삼켰다.

하도 울어서 그런 건지 몰라도, 비행기를 탄 것도 아닌데 귀가 먹먹했다. 체력의 한계를 느끼고 있을 때, 새 팝업이 떴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더 궁금한 건 없냐고 합니다]

“……아까 물은 거나 대답해 주고 물어보지 그래.”

[‘후원자’ 안식의 신이 자신이 답할 수 없는 이유는 이미 설명하지 않았느냐며 이마를 짚습니다]

저 메시지를 본 지수는 훌쩍이며 입술을 삐죽 내밀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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