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5.
달콤한 꿈 7
지석민은 앞서 자신의 어머니와 아버지와 할아버지, 그리고 바로 직전에 할머니를 마주했을 때 그랬던 것처럼 만면에 여유로운 표정을 지어 보였다. 그러나 이번엔 손끝이 떨려 주먹을 콱 틀어쥐었다.
보스 몬스터는 지석민의 정신에서 흘러나오는 기억을 충분히 흡수했는지, 이내 직전과 달리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형. 왔어?”
“…….”
“이젠 맨날 휴가 나오나 봐? 엄마가 형 오면 같이 뭐 시켜 먹으라고 카드 주고 갔어.”
“…….”
“형, 우리 겜방 가자! 나 이번에 룰 티어 올랐어.”
김현아는 몬스터를 지켜보다 지석민에게 시선을 돌렸다. 지석민은 대격변 때 잃은 제 어린 동생을, 아니. 보스 몬스터를 바라보며 쓰게 웃더니 허리를 짚은 채 고개를 들고 “후우…….” 한숨을 쉬었다.
“왜? 겜방 가기 싫어? 아, 가자~ 엄마한테 뭐 시켜 먹었다고 하고, 응?”
“……그럴까?”
“어! 가서 짜파게티랑 컵볶이 시켜 먹고 싶어. 저 겜방 컵볶이 맛집이야.”
“그래? 그럼 거기로 가자. 형이 많이 사 줄게.”
김현아는 눈알만 굴려 보스 몬스터와 지석민을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정신계 저항 스킬이 높은 지석민은 조금 전까지 이어진 테스트로 증명했듯 이번에도 세뇌당하지 않은 게 뻔했다. 하지만 이 상황을 조금 즐기고 싶은 건지, 쓰게 웃으며 손을 뻗어 보스 몬스터의 머리를 거칠게 쓰다듬었다.
오랜만에 형을 만나서 반가워하듯 어깨를 움츠리며 “아 하지 마~” 하고 손을 탁 쳐 내는 개구쟁이 같은 소년의 모습은 가짜라고 치부하기엔 너무나도 리얼했다.
단순히 인간형을 띠며 흐릿한 인상을 주는 몽마와는 다르게, 완벽한 사람의 모습으로 변하는 재주를 부리는 악명 높은 이 몬스터의 이름은 레미니센스.
향수를 불러일으킨다는 의미로 붙은 이름이었는데, 김현아는 그 이름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영국에서 먼저 발견해서 붙였으니 어쩔 수 없지만…….’
던전과 해당 던전의 몬스터는 그를 먼저 발견한 국가에서 이름을 지었다. 이 몬스터의 경우 최초 영국에서 처음 발견되었기에 어쩔 수 없는 일이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김현아는 이 이름이 참 싫었다.
‘들을 때마다 현우 오빠가 생각난단 말이지…….’
어린 시절, 김현아의 큰오빠가 공부하며 자주 듣던 음악의 제목이 레미니센스였다.
워낙 명곡이라 지금까지도 많은 사랑을 받는 음악이었고, 김현아에게는 어린 시절 자장가와 같은 음악이었다. 그런 소중한 추억을 남겨 준 노래의 제목과 몬스터의 이름이 같다니, 영 유쾌하지 못했다.
특히 이 몬스터가 죽은 이를 흉내 내는 몬스터이기에 더더욱.
‘지석민 에스퍼 쪽은 충분히 확인했고.’
김현아가 이제 자기도 슬슬 테스트해 볼까…… 생각하며 다가가려는 찰나, 지석민이 김현아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무언가 망설이는 듯한 표정을 본 김현아는 곤란하게 됐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다. 아무리 정신계 저항 스킬이 있다 하더라도 이런 상황에서 침착할 수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특히……,
“김현아 에스퍼.”
“……예.”
“제가 그래도 오늘 이 자리 만드느라 힘깨나 썼는데, 5분만 시간을 주시면 안 될까요? 딱 5분이면 됩니다.”
“…….”
이젠 세상 그 어떤 방법으로도 만날 수 없고 만질 수 없는 상대를 온전히 눈앞에 둔 상황이라면 말이다.
김현아가 대답 대신 지석민을 지그시 바라보자 그는 특유의 사람 좋은 미소를 지어 보이며 서글서글하게 말했다.
“솔직히 공략팀 입구에 대기시키고 우리 둘만 공략한 거, 쟤들 중 누가 위에 찌르면 저 징계입니다. 아시죠?”
“그렇게 되지 않게끔 제가 도와드린다고 했지만, 예. 그럴 수도 있겠죠.”
“물론 다들 김현아 에스퍼 팬이라 나가서 셀카 한 장씩 찍어 주면 입 다물게 뻔하긴 하지만요.”
“하하하.”
김현아는 자신의 목적 때문에 각성자 협회에서 입찰 성공한 이 던전에 ‘식생 샘플 채집’을 핑계로 함께 들어온 차였다.
던전 내부에서 서식하는 식물 몇 종을 채집만 하고 절대 공략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각성자 협회 상부의 허가를 받았지만, 현재 다른 공략팀은 던전 입구에서 야영 중으로 내부 공략은 지석민과 김현아 단둘이 진행했다.
이 모든 것이 각성자 협회에서 대구로 파견 보낸 공략팀 리더가 평소 친분 있는 지석민이었기에 가능했던 부분이라는 것을 김현아 역시 잘 알고 있었다.
“실험은 이제 다 끝난 거죠?”
“아직 하나 남았습니다만, 그건 제가 직접 진행할 예정입니다. 그러니 5분 정도는 괜찮을 것 같군요.”
그렇게 대답한 김현아가 절반 정도 부서진 바위 위에 올라앉았다.
지석민은 고맙다고 눈짓으로 인사한 후, 포동포동한 동생을 데리고 맞은편에 쓰러진 나무로 향했다.
거리가 조금 멀어졌지만, 김현아는 SS급 에스퍼답게 저 둘의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 보스가 보스다 보니 만약을 대비해 청력을 열어 둔 상태였고, 지석민은 제 동생이 앞으로 형이랑 뭘 할지 이야기하는 것을 들으며 미소 짓고 있었다.
형제는 마치 대격변 전의 어느 평범한 날처럼 계속 소소한 대화를 나눴다. 레미니센스가 쉬지 않고 종알종알 이야기하는 동안 지석민은 제 동생의 머리를 연신 쓰다듬고, 어깨를 꽉 안아 주기도 하고, 등을 토닥이기도 했다.
지석민의 기억에 남아 있는 동생의 생전 습관인지, 머리를 건드리면 유독 “아 쫌~” 하고 질색하며 형의 손을 쳐 내곤 했는데, 지석민은 저 반응을 볼 때마다 행복한 얼굴로 웃었다.
하지만 레미니센스에 대해 익히 알려진 것처럼, 이 행복은 오래가지 않았다. 4분쯤을 넘어가기 시작하니, 동생의 모습을 한 괴물이 상대를 제대로 감화시켰다고 확신하고 슬슬 헛소리를 뱉기 시작했다.
“근데, 형.”
“응.”
“그날…… 형이 휴가면서 집에 바로 안 오고 친구 집에서 술 마시고 자고 온다고 했잖아…….”
“응. 형이 그랬었지.”
“그날 만약 그냥 집으로 바로 왔으면…… 형이 집에서 각성했으면 내가 안 죽었을 수도 있었을 텐데……, 그치?”
“…….”
“나 그날 개무섭고 진짜 존나 아팠어……. 사마귀같이 생긴 괴물이 내 팔다리를 막 씹어 먹는데, 너무 무섭고 아팠어, 형…….”
“…….”
김현아의 눈썹이 살짝 치켜 올라갔다.
레미니센스는 인간의 기억을 훔쳐보고 사랑하는 이를 흉내 내는 몬스터. 지금 저 괴물이 지껄이는 이야기는 아마도 대격변 날, 우연히 각성한 지석민이 급하게 집에 도착했을 때 봤을 동생의 마지막 모습일 확률이 컸다.
구체적인 죽음의 과정을 묘사하는 것만 봐도 지석민이 제 동생을 발견했을 당시의 모습이 어떨지 눈에 선했다.
‘지석민 에스퍼가 정신계 저항 스킬이 높아서 다행이군.’
김현아는 저런 말을 듣고도 격한 반응을 보이지 않는 지석민을 살폈다.
그는 탄탄한 허벅지 위에 올린 주먹을 꽉 쥔 채 파르르 떨었고, 입술도 굳게 다물고 있었지만, 적어도 세뇌당한 기색은 보이지 않았다.
김현아의 우려 섞인 시선을 눈치챈 지석민이 고개 돌려 눈을 맞추며 작게 도리질했다. 그리곤 자긴 괜찮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달라는 의도가 분명한 눈빛을 보냈다.
김현아가 아무 반응 없이 가만히 있자, 지석민은 다시 미소를 머금으며 동생을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
“그날 형이…… 바로 집으로 갔으면 좋았을 텐데…… 정말 미안해. 희민아.”
“…….”
레미니센스의 손이 점점 날카롭게 변하기 시작했다. 기괴한 날붙이 모양으로 변한 손을 다 봤으면서도 지석민은 나지막한 목소리로 동생에게 꼭 해 주고 싶었던 말을 이어 나갔다.
“형은 매일매일…… 지금도 하루에 몇 번씩 희민이를 생각하고 후회해.”
“진짜? 매일 내 생각해?”
“당연하지. 진짜 하루도 빠지지 않고 매일매일 생각해. 희민이 꿈도 자주 꿔.”
“……그럼…… 형, 그럼, 있지, 나랑 같이 갈래?”
이젠 눈동자 색이 핏빛으로 물든 레미니센스가 기대에 가득 찬 목소리로 물었다. 네 심장을 잡아 뜯을 동안 얌전히 있으라는 선포를 듣고 쓴웃음을 삼킨 지석민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 찰나.
“!”
“……헉!!”
갑자기 공기가 훅 무거워지더니 어마어마한 압박감이 들기 시작했다.
전신을 짓누르는 압도적인 힘에 놀란 레미니센스가 어깨를 흠칫 떨었다. 그리곤 무기화했던 손을 다시 인간처럼 바꾸며 지석민에게 안겨 들었다.
“형! 괴, 괴물! 괴물이야! 저기 괴물이……!!”
“…….”
지석민은 제 품에서 벌벌 떨며 어딘가를 바라보는 보스 몬스터를 꼬옥 안아 주었다. 보스 몬스터의 시선 끝엔 김현아가 있었다.
던전에 입장함과 동시에 내내 기운을 죽인 채 있던 그녀는 자신의 힘을 전부 개방했고, SS급 에스퍼가 뿜어내는 본연의 기에 질려 버린 레미니센스는 파르르 떨며 눈물까지 줄줄 흘렸다.
“형, 나 무서워……! 형!!! 도와줘……! 형, 살려 줘!!!”
“…….”
김현아는 지석민이 제 동생을 한번 힘줘 꽉 안더니 어깨를 잡아 떨어뜨리는 모습을 지켜봤다. 지석민은 울지 않았다. 눈이 충혈되긴 했지만, 눈물은 전부 삼켜 냈다. 입술을 짓씹으며 자리에서 일어난 그가 김현아에게 다가왔다.
김현아는 나만 두고 가지 말라며 형을 향해 비명 지르는 동생을 차마 돌아보지 못하는 그의 어깨를 한번 꽉 잡아 준 후, 레미니센스에게 다가갔다.
※ 본 저작물의 권리는 저작권자에게 있습니다. 저작물을 복사, 복제, 수정, 배포할 경우 형사상 처벌 및 민사상 책임을 질 수 있습니다.
(3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