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4.
달콤한 꿈 6
‘……우와…… 완전 사기템인데 이거……’
현존하는 회복 포션이나 S급 힐러의 스킬로도 녹아내려 형태가 사라진 장기는 복구할 수 없었다. 그렇다 보니 화염 속성 보스 몬스터를 상대하다 치명상을 입어 사망한 각성자가 분기별로 발생하고 있는 형편이었다.
게다가 포션은 던전 내부뿐만이 아니라 외부에서도 사용이 가능했다. 즉 일상 생활에서 생긴 치명상에도 사용할 수 있다 보니 이건 무조건 챙겨야 할 아이템이었다.
‘이것도 등급 제한 없이 쓸 수 있다면 도움 되겠어.’
완전 회복의 포션 역시 굉장히 좋은 옵션이었다. 지수는 포션을 전부 인벤토리에 소중하게 넣은 후, 다음 아이템을 바로 확인했다.
[교육생53971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팔찌 (-S급)]
착용 시 화염 저항 30% 증가 / 독 저항 (-S) / MP 3,000 증가
일부 조건 달성 시 업그레이드 가능. (업그레이드 조건 – 미공개)
‘후원자’의 가호(■■을 ■■■■ ■■■■ 발생 시 ■■■의 ■■ 발동) 상태 상시 적용.
귀속 아이템 / 거래 불가
한 교육생이 심혈을 기울여(정확히는 자신의 스승을 쥐어짜 내 강탈한 아이템이나 마찬가지다!) 만든 팔찌.
겉보기엔 그럴싸하게 보이지만, 관리자 입장에서 볼 땐 어디 내놓기 부끄러울 정도로 엉성하다.
그래도 없는 것보단 나으니 웬만하면 착용하자.
“…….”
지수는 다소 이상한 설명과 메시지가 깨지는 부분은 대충 흐린 눈으로 휘리릭 읽고, 허공에 떠 있는 팔찌의 디자인을 눈여겨봤다. 작고 영롱한 빛을 머금은 하늘색 보석 하나가 박힌 얇은 은색 체인의 심플한 모양이었다.
팔찌 부근에 왼손을 들어 올린 지수는 자신의 중지에 낀 반지와 팔찌를 번갈아 가며 바라봤다. 반지 역시 은색 얇은 링에 하늘색 보석이 박힌 디자인으로, 이렇게 나란히 두고 보니 마치 세트 아이템처럼 보였다.
“……예쁘네. 딱 내 취향이고.”
전체적으로 과하지 않은 디자인이었다. 자신이 좋아하는 색상인 은색과 하늘색 조합이 자연스럽게 어우러진 것도 마음에 들었다. 설명은 허접한 것처럼 떠들어 놨지만, 옵션만 두고 보면 사실상 꽤 좋은 축에 속했다.
게다가 세간에 알려진 ‘후원자’의 가호는 모두 옵션이 달랐지만, 그 효력은 전부 사기급으로 좋은 옵션이었다. 그렇기에 이번에도 망설임 없이 아이템 받기를 수락하자, 지수가 착용하지 않았음에도 자동으로 오른쪽 손목에 알아서 착 감겨들었다.
[교육생53971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팔찌(-S급)가 귀속됩니다. 인벤토리 보관 가능 / 거래 불가]
“그럼 이제…….”
지수는 마지막 남은 아이템을 클릭했다.
[다이렉트 메시지 스킬]
액티브 스킬.
습득 직후 즉시 후원자와 메시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시스템이 생긴다.
단! 후원자는 매우 바빠 대부분 자리를 비운 상태라 답변이 늦거나, 모든 질문에 답을 줄 수 없다.
이 점을 꼭 유의하자! (이로 인한 민원은 접수 불가)
“……난 후원자가 없는데?”
이번에도 들으라는 듯이 중얼거린 혼잣말에 설명창이 일순 파르르 떨리는가 싶더니, 밑에 스으으- 하고 작은 글자가 추가됐다.
[후원자 ‘안식의 신’이 ‘한지수’에게 자신의 피후견인이 되어 줄 것을 요청합니다]
[YES / 네 / 거절은 거절한다]
“…….”
잠시 홀린 듯한 눈으로 선택지를 멍하니 바라보던 지수가 천천히 손을 뻗었다.
‘YES’와 ‘네’를 두고 굳이 제일 멀리 있는 ‘거절은 거절한다’에 손끝을 가져다 댄 순간, [후원자 ‘안식의 신’과 피후견인 ‘한지수’의 상호 계약이 성립되었습니다]라고 쓰인 메시지가 팝업됐다.
그리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해당 메시지를 포함한 모든 상태 창이 순식간에 사라지더니, 온통 새하얀 공간에 바람이 불기 시작했다.
‘따뜻해…….’
눈으로 볼 수 있는 형태는 없지만, 분명하게 존재하는 따스하고 부드러운 바람이 끊임없이 지수의 몸을 스쳐 지나갔다.
부드럽게 전신을 휘감으며 스치는 다정한 바람을 만끽하던 지수는 불현듯 그리움이 벅차올라 입술을 깨물었다. 그저 바람을 맞고 서 있을 뿐인데 그리운 이가 저를 품에 안고 보듬어 주는 것 같은 따스함을 느꼈다.
입술을 달싹이며 주변을 두리번거려도 보이는 거라곤 순백의 공간뿐이었다. 그런데 왜 이런 기분이 드는 걸까……. 마치 세상에서 자신을 가장 사랑해 주는 이가 바로 곁에 있는 것 같았다.
‘보고 싶다…….’
마음속으로 강재윤을 그리자, 그가 저를 돌아보며 미소 지어 주던 모습이 흐릿하게 떠올랐다. 지수는 이 흐릿한 모습이 이내 제 의지와 관계없이 흩어질 거라 여겼지만, 기억의 잔상은 지수의 안에서 점점 더 또렷한 형태를 갖추기 시작했다.
“……재윤이 형…… 보고 싶어…….”
아무런 간섭과 방해 없이 선명하게 강재윤의 이름을 부르며 떠올린 순간,
[스킬 망각(S) 상태가 해제됩니다]
[스킬 통제(A) 상태가 해제됩니다]
[스킬 악몽제어(-A) 상태가 해제됩니다]
[스킬 단절(+B) 상태가 해제됩니다]
[스킬 새벽 고요 안개(A) 상태가 해제됩니다]
지수의 시야에 스킬이 해제되었다는 상태 창이 연이어 팝업됐다 사라졌다.
“……아…….”
정신 제어 스킬이 전부 해제된 것을 확인하고 몇 초 지나지도 않았는데, 강재윤에 대한 그리움이 구체화되며 눈가가 시큰하게 아파 오기 시작했다.
「지수야.」
세뇌당하는 내내 얼굴보다 더 떠올리기 힘들었던 부드러운 목소리가 귓전을 맴돌았다.
“……으…… 으읏…….”
그리움과 슬픔이 고여 시야가 뿌예졌지만, 온통 새하얀 세상은 일그러지지 않았다.
눈물이 일렁이는데도 변하는 것 하나 없이 모든 것이 그대로였다.
이 공간엔 오직 저 혼자라는 것을, 굳이 슬픔을 견딜 필요 없다는 것을 깨달은 순간 그동안 제 의지와 상관없이 삼켜야 했던 울음이 크게 터져 나왔다.
“흐윽……!”
눈물샘이 고장 난 것처럼 굵은 눈물방울이 펑펑 쏟아지기 시작했다.
눈가가 시리도록 아프고, 숨은 가쁘게 차오르며 딸꾹질까지 나기 시작했지만, 상관없었다.
오히려 이렇게 보고 싶다고 생각하며 오열할 수 있는 지금이 훨씬 더 좋았다.
마침 아무도 없는 공간이기에 표정 관리를 할 필요도, 눈치를 볼 필요도 없었다.
덕분에 지수는 언젠가 아주 어린 시절에 그랬던 것처럼, 마음껏 목 놓아 울며 손등으로 하염없이 흐르는 눈물을 훔쳤다.
“으흑…… 으흐흑…… 재, 재윤이 형…… 혀엉…….”
드디어……,
드디어 아무런 간섭 없이 강재윤의 이름을 마음껏 부른다.
“혀어엉…… 보, 보고, 으흑, 크흡…… 흐극…… 재윤이 형, 보고, 싶, 으흑, 으, 으아아앙…….”
억눌린 것 없이 순수하게 당신이 보고 싶다고 말할 수 있다.
“흐윽, 재윤이 형…… 흐어어엉…….”
털썩-
허공에 무릎 꿇은 몸이 옆으로 기울며 순식간에 무너졌다.
지수는 공허의 바닥에 웅크린 채 오열하면서도 중지에 낀 반지를 쓰다듬었다.
[지정 타겟 ‘재윤이 형’에게 이동을 시도합니다]
우우우웅-
마나가 주변으로 응집되고,
[지정 타겟 ‘재윤이 형’의 위치가 확인되지 않아 스킬 사용이 취소됩니다]
이내 아무런 변화 없이 흩어진다.
“으흑…… 재윤이 형…… 흐으읏…… 혀어엉…….”
바람은 여전히 전신을 따스하게 감싸고, 눈물은 볼을 훑고 떠나는 바람을 타고 방울방울 흩날린다.
“……흑…… 흐읍…… 으흡…… 혀엉…….”
한지수는 이러다 눈이 멀어 버리는 건 아닐까 싶을 정도로 긴 시간을 울고, 울고, 또 울었다.
이 슬픔조차 강재윤이라는 존재에서 파생된 것이었기에 저가 최대한 품어 보고 싶었지만, 슬픔의 양이 너무 커서 도저히 다 담을 수가 없었다.
지수는 이 모든 슬픔을 억지로 품으려 들면 작은 그릇인 자신이 깨질 것이라는 사실만큼은 잘 알았다. 그랬기에 조금씩 눈물로 흘려보내며 강재윤을 최대한 많이 끌어안기 위해 노력했다.
* * *
보랏빛 노을이 지는 하늘, 초토화된 숲과 주변에 널린 몬스터 사체 등 눈에 보이는 모든 것이 승리를 비추고 있었다.
바로 이 공간을 비집고 들어온 두 인간의 승리를.
이 공간의 주인인 보스 몬스터는 더 이상 배경을 바꿀 힘이 없는지, 재앙을 겪은 공간을 방치한 채 허리 굽은 노인의 모습으로 한 남자의 앞에 서 있었다. 다부진 체격의 남자와 눈매가 닮은 노인이 눈물을 글썽이며 애원했다.
“석민아…… 꼭 이래야겠니?”
보스 몬스터의 물음에 각성자 협회 소속 지석민 에스퍼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는 더 대답하기도 질렸다는 듯이 제 옆에 헌칠한 여성을 향해 물었다.
“김현아 에스퍼. 이놈 이거, 아무래도 제게 단단히 꽂힌 것 같습니다만…….”
“그런 것 같네요. 지석민 에스퍼 여전히 인기 쩌네요.”
“아아~ 이런 인기는 좀 사양하고 싶은데요~”
질색하는 대답에 그건 그렇다며 피식 웃은 김현아가 조금은 미안한 기색 역력한 얼굴로 말했다.
“지석민 에스퍼.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다른 가족을 생각해 주실 수 있을까요?”
“예. 그럼 해 보겠습니다.”
지석민이 문제없다며 고개를 끄덕이고 얼마 지나지 않아 보스 몬스터의 모습이 흐릿하게 변하더니, 금세 키가 커지고 통통한 체격의 남자아이로 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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