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3.
달콤한 꿈 5
머리는 멍하고, 몸은 제대로 가누지도 못한 채 병원에 간 기억까진 있는데 이후로 기억이 뚝 끊긴 걸 보면 아예 신빙성 없는 추측은 아니었다.
“……상태 창.”
자신의 상태 창을 굳이 육성으로 불러 보는 건 오랜만이었다. 어째서인지 여기선 상태 창이 나오지 않을 것 같아 육성을 내 보았는데, 우려와 달리 눈앞에 반투명하고 푸르스름한 창이 팝업됐다.
한지수 / 인간 / B급 가이드
체력: C
근력: D (-)
의지: B (+)
MP: 180/180
[보유 스킬 보기]
※주의※
현재 정신 세뇌 스킬을 중첩으로 받고 있습니다. 언행을 조심하세요!
후원자: 없음
진행 중인 퀘스트: 없음
현재 위치: 1■■-■■, 안■■ ■이 만든 ■■의 ■■■
“……뭐야, 위치가 왜 이래……. 던전이야?”
현재 위치 표기가 ‘■’ 기호로 깨지긴 했지만, 앞에 숫자와 ‘-’가 보이는 패턴으로 미루어 보아 던전 표기법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통 상태 창에 표기되는 현재 위치는 던전 밖일 경우 지구와 국가와 지역 정도로만 표기되지만, 던전 안에 들어가면 꼭 어떤 번호가 부여되어 nnn-nn, **지형 이런 식으로 표기되기 때문이었다.
‘안 뭐시기가 만든 지형이라는 건가, 그런 것치고 아무것도 없는데. 이런 것도 지형이라고 할 수 있나?’
좌표야 그렇다 쳐도, 나머진 던전이라고 확신하기엔 다소 무리가 있는 공간이었다.
던전 중앙 하늘에 언제나 떠 있는 입장 인원이 표기된 창도 없었고, 던전에 입장하면 기본으로 주어지는 인스턴트 던전 공략 관련 퀘스트도 부여되지 않았다.
주변을 두리번거리던 지수가 미간을 찌푸린 순간, 띠링- 소리와 함께 편지 봉투 모양의 새로운 창이 하나 팝업됐다.
[다이렉트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
다이렉트 메시지.
지수 역시 그 존재는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애초에 다이렉트 메시지는 대격변과 함께 갑자기 등장한 ‘후원자’라는 존재들이 자신의 ‘피후견인’에게 습득 가능하거나 물질적인 선물을 보내 줄 때 이용하는 수단이었기에, 후원자가 없는 지수는 볼 일이 없었다. 그런데 지금 그 다이렉트 메시지가 눈앞에 버젓이 떠 있었다.
“……뭐야…….”
미심쩍어 손대지 않고 주변을 두리번거리자, 편지 봉투가 스윽- 눈앞으로 더 가까이 다가왔다. 그리곤 한술 더 떠 빨리 열어 보라는 듯이 봉투 주변으로 선명한 황금빛이 일렁이기 시작했다.
“……골드 등급?”
세간에 알려진 바로는 다이렉트 메시지도 등급이 있었다.
연두색, 푸른색, 분홍색, 은색, 황금색 등 색상별로 보상의 값어치가 분류됐는데, 이 황금빛 다이렉트 메시지는 받아 본 각성자가 몇 안 될 정도로 높은 등급이었다. 편지 봉투의 주변을 맴도는 빛이 누가 봐도 황금빛임을 확인한 지수의 눈이 커졌다.
“……진짜 골드 등급이라고?”
지수의 혼잣말에 그렇다고 긍정하듯 편지 봉투 모양이 더 가까이 다가왔다. 이젠 아예 코앞에 바짝 붙어 봉투 모양을 제대로 보기도 힘들 정도였다.
“…….”
상체를 뒤로 물러 봉투를 살펴보던 지수는 짧은 고민 끝에 이게 뭐든 상관없다는 결론을 내리고 손을 뻗었다.
못해도 골드 등급이었다. 그리고 등급을 떠나, 이 선택이 앞으로 다가올 미래에 좋지 않은 결과를 가져온다 해도 어차피 본인에겐 지금보다 더 최악인 미래는 없었다.
편지 봉투 모양을 손끝으로 톡 건드리자 봉투가 열리는 애니메이션 효과가 보이더니, 안에서 편지지인 척하는 네모난 상태 창이 팟-! 하고 튀어나왔다.
첫 다이렉트 메시지 내용에 나름 기대감을 품었던 지수는 실망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상태 창에 적힌 메시지는 한 글자도 빠짐없이 ■■■ 기호로 모자이크 처리가 된 상태라 내용을 하나도 읽을 수 없었다.
“……보라는 거야, 말라는 거야?”
이렇게 다 가려 두면 대체 뭘 보라는 거냐는 지수의 투덜거림에, 상태 창 앞에 또 다른 팝업과 함께 읽을 수 있는 메시지가 튀어나왔다.
[이 다이렉트 메시지는 안■의 ■으로부터 ‘한지수’에게 발송된 메시지입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YES / 응 / 네 / 예 / 열람하겠습니다]
“……거절은 없어?”
눈을 가느다랗게 뜨며 중얼거리자 편지 봉투가 일순 움찔한 것처럼 보였다. 지수는 그럴 리가 없다는 걸 알면서도 어째 이 봉투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것 같아 이번엔 일부러 들으라는 듯이 구구절절 말했다.
“선택지에 왜 거절이 없어? 그냥 입 다물고 주는 대로 받으라는 건가? 엄청 수상해서 누르기 좀 그런데…….”
그러자 이젠 하다못해 편지 봉투와 상태 창이 의기소침해 보이기 시작했다.
이지를 갖춘 존재가 아니라는 걸 아는데도 저런 기운을 내뿜는다는 것에 의아함을 느낀 지수가 손을 내리자, 봉투가 뒤로 주춤주춤 물러나 새 팝업 창을 띄웠다.
[이 다이렉트 메시지는 ■식의 ■이 ‘한지수’를 위해 ‘특별 제작’된 아이템을 첨부해 보낸 메시지입니다. 열람하시겠습니까?]
[네 / 거절할 수 있지만, 그래도 받는 게 훨씬 좋으니 받겠습니다]
“…….”
여전히 받는다는 선택지밖에 없었지만, 바뀐 문구가 한결 설득력 있게 보였다. 그리고 지수는 아까 ‘안■’ 기호로 가려졌던 부분이 ‘■식’으로 바뀐 것도 확인했다.
‘……음, 설마 했는데……. 아무래도 진짜 안식의 신 같네.’
안식의 신.
세계에 알려진 수많은 후원자들 중, 의아할 정도로 피후견인이 별로 없는데도 불구하고 각성자들 사이에서 굉장히 유명한 후원자였다.
안식의 신이 선택한 피후견인이 전부 S급 이상 각성자뿐인 것도 큰 이유 중 하나긴 했다. 하지만 그들에게 주는 스킬이나 아이템이 다른 후원자에 비해 월등히 높은 값어치를 가지고 있다는 이유가 더 컸다.
일부 후원자들이 자신의 도움을 대가로 피후견인을 괴롭히거나 무리한 요구를 하는 데 비해 그는 그런 소문이 일절 없는 깨끗한 후원자이기도 했다. 게다가……,
‘자기 피후견인이 아닌 각성자들을 도와준 사례가 가장 많이 집계된 신이었지…….’
안식의 신은 자신의 피후견인이 아닌 다른 각성자들에게도 곧잘 간섭하곤 했다. 전 세계 각성자의 증언을 모아 주기적으로 후원자 정보를 업데이트하는 글로벌 사이트만 봐도, 안식의 신에게 도움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다른 후원자에 비해 많은 축에 속했다.
특히 한국 각성자들에게 도움을 준 기록이 눈에 띌 정도로 많았다. 그렇다 보니, 우스갯소리로 혹시 그가 한국인이었던 게 아니냐는 말이 있을 정도였는데, 그만큼 유독 한국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았다.
‘현아 누나랑 재윤이 형의 후원자이기도 하고…… 평소에 재윤이 형한테 도움도 많이 줬었다고 했으니, 나쁜 후원자가 아니라는 건 대충 알겠지만…….’
소문은 꽤나 좋은 신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기이함을 느끼는 이유는 하나였다. 바로 편지 봉투를 은은하게 둘러싸고 있는 저 선명한 황금빛 이펙트 때문이었다.
안식의 신을 후원자로 받아들인 강재윤과 김현아조차 골드 등급의 다이렉트 메시지를 받은 적은 손꼽혔다. 김현아의 경우까진 자세히 몰라도, 강재윤의 경우엔 5년간 총 대여섯 번 정도 골드 등급 메시지를 받았으니, 거의 1년에 한 번꼴인 셈이었다.
“……으음…….”
의아했지만, 받지 않으면 메시지 내용을 알 수 없었기에 지수는 ‘네’ 부분으로 손을 뻗었다. 그러자 퍼버버벙-! 하고 불꽃 이펙트와 폭죽 소리가 나며 봉투가 열리더니, 황금빛 반투명한 창이 떠올랐다.
메시지를 수락하여 모든 메시지 내용이 해금됩니다!
‘안식의 신’으로부터 ‘한지수’에게 다이렉트 선물이 도착했습니다!
-달콤한 꿈 수정 5개
-상처 재생 포션 10개 (L급)
-완벽한 회복의 포션 2개 (L급)
-교육생53971이 심혈을 기울여 만든 팔찌 (-S급)
-다이렉트 메시지 스킬
“……!!”
목록을 먼저 확인한 지수는 첨부된 아이템을 하나하나 눌러 설명을 확인했다.
[달콤한 꿈 수정]
세상에서 가장 달콤하고 행복한 꿈을 선사하는 안전하게 개량된 꿈 수정이다.
사용 시 현실 시간으로 대략 10시간 동안 수면 상태에 빠진다.
1회 사용 후 사라지는 소모성 아이템이며, 꿈에서 깨어난 후 쿨타임 3일이 지나야 재사용 할 수 있다.
생각이 많아 뇌가 뜨거울 때 사용해 보자!
“…….”
지수는 이게 정확히 뭔지는 몰라도 달콤한 꿈이라고 하니 받아서 나쁠 건 없다고 판단했다. 아이템 옆에 표기된 아이템 받기 버튼을 눌러 수령한 후, 다음 아이템들을 확인했다.
[상처 재생 포션 (L급)]
치명상을 입어 장기가 전부 타들어 갔어도 뿌리기만 하면 원래 형태대로 재생할 수 있는 포션.
단! 사용자의 숨이 붙어 있을 때만 효력 발생.
[완벽한 회복의 포션 (L급)]
등급에 관계없이 대상에게 부여된 저주, 중독, 석화, 세뇌, 변신 및 버프 등 존재하는 모든 효과를 무(無)로 돌리고,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오게 만든다.
주의: 모든 상태 이상과 버프 효과가 해제되니, 좋은 버프를 적용 중이라면 신중하게 사용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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