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31.
달콤한 꿈 3
탁탁탁탁-
언제나처럼 기민하게 움직이는 반가운 발소리를 들은 지수는 몸을 일으키려 했지만, 어째 물먹은 솜처럼 무거워 도통 일어날 수 없었다.
“쮜이~ 쮜~!”
“……토토야…… 잠깐만…… 곧 일어날게.”
“찌~ 쮜…… 쮜잇!?”
지수는 자신이 누운 침대 앞까지 다가온 토토가 갑자기 꽥 소리를 질러 저도 놀라 눈을 크게 떴다.
“토토야……? 왜 그래?”
“쮜이익!!! 쮜에에에엑!!!”
작은 눈이 휘둥그레지고, 다급하게 비명을 지른 토토가 와다닥 방을 뛰쳐나가 성하진을 불렀다.
지수는 토토가 왜 저러는지 종잡을 수 없어 일단 일어나려 했지만, 이번에도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다. 밖에서 성하진이 토토를 따라 방으로 다가오는 소리가 들렸다.
“쮜에엑!”
“한지수 가이드? 괜찮습니까?”
“……네……. 성하진 에스퍼, 지금 제가 몸이 좀…… 잘 안 움직이는 것 같은데…….”
지수는 곁으로 다가온 성하진이 침대 앞에 무릎을 굽히고 앉아 심각한 눈으로 저를 살피는 모습에 왜 그러냐고 물으려 했지만, 목소리를 내는 게 퍽 힘들었다. 그는 지수의 상태를 파악한 듯이 진지한 목소리로 물었다.
“한지수 가이드. 지금 김지수 가이드 모습으로 변할 수 있습니까?”
“……으…….”
시도해 봤지만, 스킬을 아예 다룰 수 없었다. 당황한 지수가 눈을 깜빡이며 바라보자, 성하진의 어깨까지 올라온 토토가 안절부절못하며 쮝쮝대기 시작했다.
“……안…… 되는 것…… 같은……데요?”
“쮜잇! 쮜이잇!!!”
지수가 힘겹게 겨우 뱉은 대답을 들은 성하진은 고개를 끄덕이더니, 잠시만 기다리라고 말하곤 일어나 침대 뒤로 돌아갔다. 뭐 하나 싶었는데, 소리를 봐선 옷장을 뒤지는 것 같았다.
후드 티와 코트를 꺼내 온 성하진은 지수의 가누지 못하는 몸을 부축해 후드 티를 위에 입힌 후 코트도 입혔다. 후드 모자를 뒤집어씌우고 얼굴을 최대한 가리더니 그대로 지수를 품에 안아 들었다.
“아…….”
지수는 성하진에게 안겨 침대에서 떨어진 후에야 자신의 얼굴이 왜 축축했는지 알 수 있었다. 밑으로 보이는 베개와 침대 시트가 피로 흥건히 젖어 있었다.
“한지수 가이드. 제가 꽉 안을 테니 긴장하지 말고 가만히 몸에 힘을 풀고 계십시오.”
“……네…….”
어차피 힘도 들어가지 않았다. 그보다 지수는 성하진의 어깨 위에서 안절부절못하는 토토를 먼저 안심시키고 싶었다.
“토토야…… 아빠 괜…… 으읏…….”
갑자기 몸이 붕 뜨는 기분과 함께 울렁거린 탓에 지수는 말을 맺지 못했다. 성하진의 어깨에 납작 엎드린 토토의 털이 마구 흩날리는 게 보였다. 갑자기 몸에 훅 불어 닥친 바람은 차고 날카로웠다. 그의 어깨 너머로 보이는 풍경이 방이 아니라 하늘로 바뀐 것을 확인한 지수는 현 상황을 파악했다. 성하진은 그 어떤 아이템 스킬 시전도 없이 날고 있었다.
“……성하진 에스퍼…… 비행 스킬이 있어요?”
“……예.”
어차피 숨길 생각 따위 없다는 듯이 바로 대답하는 그를 보며 지수는 약간 기가 찼다. 아무 아이템 없이 순수한 비행이 가능한 에스퍼는 바람 속성 에스퍼를 제외하면 국내엔 단 세 명이었다. 저 셋 중에 둘은 여성 에스퍼였고, 한 명은……,
‘……정하진 에스퍼였지. 내가 생각해도 어이가 없긴 한데, 이 사람도 애초에 숨길 생각이 없는 것 같기도 하고…….’
만약 성하진이 정말 그 정하진이라면, 너무 성의 없는 가명이었다.
물론 김지수라는 가명을 사용하는 자신도 만만치 않았지만, 그건 김현아가 지어 준 이름이었다. 이름은 워낙 실수하기 쉬우니까, 성만 바꾸고 똑같이 쓰는 걸 추천한다고 했었고, 지수는 자신이 머리가 좋은 편이 아니라는 것을 알기에 순순히 고개를 끄덕였었다.
당시엔 딱히 다른 생각할 여력이 없기도 했었고.
‘……정하진 에스퍼한테도 똑같이 그랬을 수 있겠네…….’
애초에 SS급 에스퍼가 자신을 보호하는 게 말이 안 되는 상황이라 생각하는 것을 미뤄 두고 있었던 부분이지만, 뭔가 이상하긴 했다.
그간 짧게 대화하며 알게 된 정보만 봐도 성하진이 정하진과 같은 인물일 확률이 꽤 높다고 생각했다.
정하진도 물 속성 에스퍼인데다가 김현아와 예전부터 알던 사이였고, 김현아가 ‘오빠’라고 부르는 몇 안 되는 인물이었다. 정하진의 과거 이력은 거의 알려진 게 없는 편이었다. 다만 평소 스킬 대신 몸을 쓰는 것만 분석해 보면 아마도 특수 부대에 복무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게 에스퍼 분석을 전문으로 하는 많은 너튜버들의 공통된 의견이었다.
‘……근데 진짜 정하진 에스퍼면 그건 그거대로 이상하잖아. SS급이 왜 나한테 붙어 있냐고. 딱히 아는 사이도 아닌데…….’
물론 이전 각성자 행사에서 몇 번 마주치긴 했지만, 그냥 인사를 나눈 게 다였다.
사인을 해 준 적은 있지만, 정하진이 요청한 건 아니었고 정하진의 쌍둥이 여동생 정하영이 요청했던 거였다.
사인을 받아 간 정하영이 정하진에게 종이를 건네고 그의 인벤토리에 넣는 걸 멀리서 지켜보긴 했지만……. 그냥 정하진의 인벤토리가 워낙 널널해서 그런가 보다 하고 대수롭지 않게 넘겼었다.
‘그냥 대놓고 물어볼까?’
지수는 입술을 달싹이다 이내 굳게 다물고 성하진의 어깨에 머리를 기댔다.
몸을 가누지 못하는 것부터가 문제긴 했지만, 지금은 입을 벙긋하는 것조차 힘들 정도로 피곤했다.
제 상태가 이러하니, 궁금한 것은 나중에 물어보는 게 좋겠다고 결론 내린 지수는 멍하니 어둑어둑한 저녁 하늘을 바라보다 눈을 감았다. 가슴이 넓어서 그런지, 성하진의 품은 안락했다.
지금은 또 떠올리기 힘들어진, 그리운 이의 품처럼 말이다.
* * *
성하진의 비행 스킬로 도착한 곳은 지수도 예상했던 한국대 병원이었다.
최성훈 교수의 개인 진료실 위치를 정확히 파악하고 있던 성하진은 병원 입구가 아닌 창문으로 향했다. 늦은 시간까지 모니터를 보며 집중하던 최성훈은 갑자기 제 등 뒤에서 드르륵 창문 열리는 소리에 놀라 흠칫했지만, 축 늘어진 채 안긴 사람을 알아보곤 벌떡 일어났다.
“……!! 이런, 한지수 가이드. 괜찮습니까? 일단 여기 눕혀요.”
성하진은 그가 가리킨 깔끔한 의료용 침대에 한지수를 눕히며 말했다.
“귀와 코에서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베개와 침대 시트가 흠뻑 젖을 정도로. 몸도 가누지 못합니다.”
성하진의 설명에 최성훈 교수는 이런 출혈 역시 뇌 과부하 증상 중 하나라고 말하며 등받이 없는 동그란 바퀴 달린 의자를 끌고 와 앉아 지수의 동공 반응을 확인하며 물었다.
“한지수 가이드. 말할 수 있겠어요?”
“……조금……요…….”
한 번에 말을 뱉는 게 어려워 드문드문 말하는 모습을 확인한 최성훈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곤 이번엔 지수의 관자놀이로 손을 뻗으며 나긋나긋하고 침착한 목소리로 말했다.
“한지수 가이드. 지금 뇌 과부하가 심해서 열이 나고 있어요. 완전 불덩입니다. 출혈이 있다는 건 어느 정도 손상도 입었다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 뇌부터 진정시킬 겁니다.”
“……잠깐……만요…….”
“아무 걱정하지 말고 긴장 풀어요.”
“……선……생님…… 잠시……만……요…….”
“나중에. 나중에 합시다. 지금 일단 환자분 상태가…….”
“하지…… 마요…….”
“…….”
“……그거…… 또 하지 마……요……, 제발…….”
“…….”
최성훈이 손을 거두고 지수의 얼굴을 빤히 바라봤다. 지수는 고개 가누기도 힘든 상태에서 최성훈 교수를 올려다보려 노력하며 말했다.
“제가…… 제가 알아서 잘…… 참아 볼게요…….”
“…….”
“선생님…… 제발…… 부탁……이에요…….”
뭔가 다급하게 말하려던 최성훈은 지수의 눈빛을 보곤 일순 입을 다물었다가, 조심스레 물었다.
“최근에 강재윤 에스퍼 생각이 또렷이 난 적 있습니까? 어렴풋이 난 게 아니고 또렷하게 말입니다.”
“……네……. 여기 오기 전에요…….”
한지수가 거짓 없이 솔직하게 대답한 것을 판별해 낸 최성훈이 고개를 주억거리며 다시 손을 뻗었다.
“후우…… 한지수 가이드. 일단, 세뇌 스킬은 사용하지 않겠습니다. 이건 약속하죠. 하지만 지금 환자분 뇌가 익기 직전이라 식혀야 하니 좀 주무셔야겠습니다. 잠깐만 자고 일어나는 겁니다. 무슨 뜻인지 알겠죠?”
“……네에…….”
지수가 드디어 조치에 동의하자 최성훈이 손을 쫙 펴고 작은 머리통을 덮으며 스킬을 시전 했다.
성하진과 토토는 최성훈 교수의 손에서 나오는 검은 아지랑이 같은 기운이 지수의 머리에 스며드는 것을 지켜보며 입을 굳게 다물고 있었다.
몇 초 지나지 않아 지수가 곤히 잠든 것을 확인한 최성훈은 깊은 한숨을 내쉬며 안경을 벗고 제 미간을 주물렀다.
눈을 질끈 감은 채 뭔가 고민하는 듯 잠시간 미간을 주무르던 그가 다시 안경을 쓰고 일어나 책상으로 향했다. 키보드를 몇 번 두드린 최성훈이 피로한 얼굴로 성하진을 바라보며 말했다.
“하아…… 일단, 뇌의 흐름을 차단했습니다. 자는 동안 아무런 꿈도 꾸지 않고, 뇌는 가사 상태를 유지할 겁니다. 한결 나아지겠죠. 더 자세한 건 보호자분과 이야기해야 하는데, 한지수 가이드의 보호자는 김현아 에스퍼로 등록되어 있습니다만.”
“김현아 에스퍼는 지금 대구 던전을 클리어 중입니다. 제게 말씀하시죠. 지금은 제가 보호자입니다.”
최성훈은 알아서 맞은편 의자에 앉는 성하진을 물끄러미 바라봤다. 그리곤 어떤 대답을 하기보단 성하진과 눈을 맞추며 무언가 관찰하듯 턱을 매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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