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9.
달콤한 꿈 1
바로 그 순간,
----------!!!
그의 주변에 미동 없이 떠 있던 얼음 창들이 공기를 가르는 날카로운 소음을 내며 일제히 쉴드로 날아가 처박혔다.
쿠과과과과과과광----!!!!
콰과과과과----!!!!
스킬의 파괴력이 얼마나 큰지, 바닥이 울리고 형광등도 잠깐 깜빡였다. 거기에 지수와 둘 사이를 막고 있는 강화 유리까지 부르르 진동했다.
“……세상에…….”
특수 유리 내부는 부서진 얼음 파편이 증발하며 피어난 냉기 안개로 자욱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냉기는 빠르게 증발했고, 몇 초 지나지 않아 토토의 쉴드가 모습을 나타냈다.
“……!!”
토토의 쉴드는 여전히 버티고 있었다. 물론 돔에 전체적으로 균열이 잔뜩 생겨 툭 치면 와르르 부서질 것처럼 보이긴 했지만, 그래도 아직 돔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성하진은 자신의 얼음 창이 전부 부서질 만큼 위력을 가했음에도 무너지지 않은 쉴드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인간이 아닌 존재가 이렇게 마나 응용을 하는 건 처음인데, 토토. 훌륭했다.”
“……!! 삐, 삐잇!”
가장 손상이 적은 쉴드 구석에 박혀 있던 토토가 앞으로 총총 나오며 켈록켈록 기침했다.
그리곤 언제 그랬냐는 듯이 부리를 굳게 다물고 부숭한 가슴을 내밀었다. 위풍당당한 토토와 시선이 얽힌 성하진이 고개를 끄덕이며 재차 칭찬했다.
“훌륭하게 잘 막았다.”
“삐이잇-!”
토토가 기분 좋게 날아오름과 동시에 쉴드가 사라졌다. 지수는 성하진이 토토에게 다음엔 공격으로 균열이 생기기 전에 미리 마나를 겉에 둘러 쉴드를 강화해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는 동안 토토의 정보를 확인했다.
[감화 몬스터]
이름: 토토
등급: S
종족: ■■인 남부 ■■카에 주로 서식하는 밀밭 쥐 (골든 햄스터 종)
스킬: 보호막(S) 무한의 수납(A) ……[더 보기]
푸르스름한 반투명 창이 허공에 팝업되며 토토의 정보가 보였다. 지수는 익숙하게 보호막(S) 스킬을 손으로 톡 건드렸다.
[보호막(S) Lv. 4 - 스킬 재사용 시간: 24:10]
보호막 사용 (173/500)
보호막을 사용하여 S++ 이상의 스킬을 방어하는 데 성공 (2/5)
“……어?”
저도 모르게 눈을 크게 뜬 지수가 토토의 스킬 레벨 업 조건을 다시 확인했다. 지금껏 그 어떤 던전을 공략해도 두 번째 수련 항목이 오른 적은 없었는데, 지금은 5회 수련 중 2회를 성공한 상태였다.
‘……S++급…….’
저도 모르게 고개를 기울이며 눈을 가늘게 뜬 지수는 ‘설마…….’ 하는 생각으로 특수 유리를 똑똑 두드렸다. 안에서 내내 스킬에 대해 진중한 대화를 나누던 성하진과 토토가 동시에 지수를 돌아봤다.
“……성하진 에스퍼.”
“예.”
“……음…… 조금 전에 사용한 스킬 등급이 정확히 어떻게 되나요?”
“말씀드린 것처럼 S급입니다.”
“……혹시 강화 아이템도 착용하셨나요?”
무언가 확신하고 묻는 게 분명한 질문이라 느낀 성하진은 포커페이스를 유지하며 반 박자 늦게 끄덕였다.
“아이템은 아니지만, 얼음 속성 공격력을 20% 증가시켜 주는 패시브 스킬이 있습니다.”
“……아…….”
“혹시 수련 조건에 더 높은 등급 공격이 필요합니까?”
“아, 아뇨. 더 높을 필요는 없어요. 방금 전과 같은 위력으로 세 번만 더 수련하면, 생각보다 빠르게 많은 경험치를 얻을 것 같아요.”
“알겠습니다. 토토의 스킬 재사용 시간은 얼마나 남았습니까?”
“24분 정도요.”
“그럼 잠시 쉬는 게 좋겠군요. 제 등급보다 높은 스킬을 사용했더니 몸이 뻐근한 것 같습니다.”
“……네, 네에…….”
아무리 봐도 힘든 기색 하나 없이 멀쩡해 보였지만, 본인이 그렇다는데 토를 달 수는 없는 노릇이기에 지수는 고맙고 미안하다며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성하진이 특수 유리문을 열자 뽀로로 날아온 작은 새가 지수의 어깨에 앉았다.
“토토야, 잘했어. 우리 토토 엄청 멋지네~”
“삐-!”
“토토가 최고다~!”
“삐잇! 삐잇!”
지수의 칭찬에 잔뜩 의기양양해진 토토가 몸에 비해 짧은 날개를 연신 파닥거리며 기분 좋게 울었다.
성하진은 토토가 이 순간을 즐기게 놔두고 지수와 함께 박스석 참관객 전용 의자에 나란히 앉았다. 그리고 팔걸이에 올려 두었던 커피를 집어 들었다. 박스석이 워낙 따듯해서 그런지, 플라스틱 컵 안에 얼음은 이미 다 녹은 상태였다.
흘긋 시선을 돌리자 지수의 커피도 다를 바 없었다. 미지근해진 커피를 마시고 미간을 찌푸리는 지수를 본 성하진은 잠시 고민하며 입술을 달싹였다. 그러다 이내 말하지 않기로 결심하고 고개를 돌리려는 찰나, 시선을 느끼고 고개 돌린 지수와 눈이 마주쳤다.
“!”
“……?”
“…….”
“…….”
두 사람이 말없이 서로 바라보기만 하자, 어깨에 앉은 토토가 고개를 까딱이며 “삐?” 하고 울었다.
지수는 자신에게 뭔가 할 말이라도 있냐는 듯이 눈을 깜빡이며 성하진을 바라봤다. 그가 바로 말하지 못하고 입술을 달싹이자, 토토의 눈이 가늘어졌다.
“쀠잉? 쀠이잉?”
“…….”
“……성하진 에스퍼? 왜 그러세요?”
결국 지수가 먼저 운을 떼자, 그는 무표정하지만 멋쩍은 기색이 역력한 눈빛으로 지수의 커피를 가리켰다.
“별것 아닙니다. 얼음이 다 녹은 것 같은데, 괜찮으시다면 다시 차갑게 만들어 드릴까요?”
“……아? 진짜요? 가능하면 부탁드릴게요.”
지수가 그에게 커피를 건네주려 했지만, 그럴 필요가 없었다. 성하진이 딱히 어떤 행동을 취하지 않았음에도 컵 안에 얼음 결정이 생기기 시작했다. 지수는 눈썹 하나 까딱하지 않고 커피의 30% 정도만 적당히 얼린 그의 섬세한 스킬 운용에 진심으로 감탄했다.
“우와~ 딱 적당하네요. 고맙습니다.”
“필요하시면 언제든 말씀해 주세요.”
“그럴게요.”
지수는 막 주문한 것처럼 시원해진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쪽쪽 빨아 마셨고, 성하진은 그런 지수를 바라보다 토토의 부리부리한 눈빛을 피하며 제 커피를 절반 정도 꽝꽝 얼렸다.
성하진이 먼저 시선을 피했음에도 불구하고 토토는 지수가 커피를 마시는 내내 성하진을 지켜봤다. 그가 슬그머니 눈동자만 굴려 토토를 흘긋 보자, 눈을 더 가늘게 뜬 토토가 왼쪽 날개깃으로 자신의 눈을 가리키더니, 반대로 휙 돌려 성하진을 삿대질하며 허공을 쿡쿡 찔렀다.
“…….”
“…….”
몬스터와 에스퍼간의 이유 모를 눈싸움이 시작된 것을 눈치채지 못한 지수는 커피를 쪽쪽 마시며 휴대폰을 만지작거렸다.
커피는 막 받은 것처럼 시원하고, 박스석은 딱 훈훈한 정도로 적당히 따뜻했다. 평온한 휴식 시간이었다.
* * *
날이 저물기 시작한 저녁.
기숙사 방 침대에 옆으로 누워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던 지수는 조금 전, 허공에 띄워 둔 상태 창으로 시선을 옮겼다.
[보호막을 사용하여 S++ 이상의 스킬을 방어하는 데 성공 (5/5)]
오후 늦게까지 성하진과 쉴드에 마나를 응용해 강화하는 수련을 한 토토는 마지막 대련에서 무려 세 번의 공격을 막아 냈다. 마지막 일격에 쉴드가 부서지긴 했지만, 성하진은 이 정도 방어력이라면 S급 레이드에도 참여할 수 있을 수준이라며 토토를 칭찬했다. 덕분에 토토는 온종일 가슴을 내민 채 의기양양한 상태였다.
‘여기까지만 보면 아주 완벽한 오후였는데…….’
상태 창을 없앤 지수는 눈을 질끈 감고 자신의 완벽했어야 할 오후 일과를 되짚어 보기 시작했다.
‘토토랑 성하진 에스퍼랑 쉴드 수련을 마치고…… 근처 마트에서 장을 봤고…… 난…… 과자를 골랐지……?’
성하진이 대형 마트에서 카트를 끌던 모습과 견과류 봉지를 물고 날아오던 토토의 모습이 어렴풋이 떠올랐다. 그리고 과자 코너에서 자신이 좋아하는 초콜릿 과자를 고른 기억도 떠오를 듯 말 듯 했다.
분명 있었던 일인데, 어째서인지 지워지다 만 것처럼 흐릿했다.
꾹- 감았던 눈을 뜬 지수는 창밖으로 보이는 어둑어둑한 노을을 바라보며 입술을 짓씹었다. 자신이 기억하는 오늘의 마지막 하늘은 푸른 하늘이지, 저런 흑적색 노을이 아니었다.
게다가 방 협탁 위엔 자신이 먹다 만 것으로 보이는 초콜릿 과자가 보였다. 과자 봉지 안에 내용물은 절반 정도 남아 있었고, 그 옆엔 토토의 견과류 봉지도 뜯어진 상태로 몇 알이 굴러다니고 있었다.
‘마트에서 돌아온 기억도…… 저 과자를 먹은 기억도…… 토토에게 간식을 준 기억도 없어…….’
열린 방문 사이로 훈수 두는 토토와 저녁 식사를 준비하는 성하진의 대화가 들렸다. 둘 다 평범한 저녁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아니, 그들 입장에선 아무런 일도 없는 게 맞을 것이다. 만약 자신이 이상한 증상을 보였다면 성하진과 토토가 뭔가 조치를 취하고 의무 병동에라도 데려갔을 테니까.
그 사실에 오히려 더 심란해진 지수는 다시 눈을 감고 왼손 중지에 낀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입술을 깨물었다. 이 사실을 알려야 한다는 걸 아는데도, 꼼짝도 할 수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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